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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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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07 21:10
연재수 :
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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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2
추천수 :
72
글자수 :
707,785

작성
24.01.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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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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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DUMMY

5.


철산은 건우를 스치고 지나가는 여학생 하나를 정확히 가리켰다.


“저기, 저 학생···.”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정철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놈을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정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이없게 놓치게 될 줄이야.


자신이 무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놈이 생각보다 훨씬 더 교활한 것이었을까.


아무런 성과 없이 스승 앞에 돌아왔을 때 스승은 꾸지람이나 호통이 아닌 차가운 침묵으로 그를 대했다.


정철은 그 침묵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기에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네, 이놈!”


정철은 이번에야말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기로 놈을 덮치려 했다.


그러나···.


“물러서라!”


운천이 그를 막아서더니 오히려 앞장서고 나선다.


머쓱해진 정철이 쭈뼛쭈뼛 맨 뒤로 날아올랐다.


운천은 한 마디를 더 보탠다.


“이제부터 정철은 내 허락 없이는 절대 먼저 나서지 마라!”


하늘이 노래지는 소리였다.


그간 쌓아 올렸던 명성과 신뢰가 한순간에 허물어져 원점에서부터 모든 걸 의심받는 기분이었다.


청운당의 후계자!


법사들 모두 그렇게 생각해 왔고, 자신조차 그걸 당연하다고 여겨왔는데.


단 한 번의 무모한 도발로 이제 그 모든 게 다 흩어져 버리는 건가.


정철은 불편한 마음에 짧은 날개를 연신 비벼댔다.


운천은 건우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여학생의 꽁무니를 살폈다.


벌써 여러 명의 몸을 거친 건지 나찰의 흔적은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알아채지 못하는 때가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운천은 심란해졌다.


“철산, 놈이 맞는지 다시 확인해 봐라! 저리 어슬렁대는 게 아마도 건우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다. 놈이 건우를 해하기 전에 제압할 것이다.”


운천의 말에 철산은 재차 여학생의 기운을 살폈다.


분명 나찰의 사기(邪氣)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틀림없습니다.”


철산은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운천은 학생들이 흘러넘치는 학원 로비에서 어떻게 하면 놈을 단숨에 덮칠지를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곧,


펑-!


하는 파열음과 함께 엄지만 한 크기의 말벌로 변한다.


“벌침에 영기를 불어넣어 놈의 발목을 찌를 것이다.”


철산은 운천의 의도를 이해했다.


독성이 강한 벌침으로 목이나 얼굴 쪽을 찌르면 자칫 여학생의 몸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발목을 찌를 때 나찰이 놀라 여학생의 몸에서 빠져나오면, 그때를 노려 잡는다.


철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운천의 뒤로 물러났다.


부웅-!


운천은 천장으로 솟았다 내려앉기를 반복하며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나찰은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고, 또 쫓기고 있다는 걸 잘 알기라도 하는 듯 움직였다.


똑바로 걷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방향을 꺾기도 했고, 느리게 걷다가 갑자기 속력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움직이는 패턴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느껴질 때마다 운천은 하늘로 잠시 솟아올라야 했다.


운천이 세 번째 접근에서도 실패했을 때였다.


나찰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코를 씰룩였다.


‘홋! 아주 가까이에 있다···.’


갑자기 멈춰 선 나찰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걸음이 빨라졌다.



6.


나찰은 걸으면서 머리카락 다섯 가닥을 뽑아 들었다.


‘이놈들···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어 주마!’


손에 쥔 머리카락을 지나치는 학생들에 하나씩 던져 붙인 나찰은 돌연 흡연실로 들어가 버린다.


나찰의 뒤를 바짝 쫓던 운천이 담배 연기에 기겁하고 물러났을 때였다.


철산이 이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어···!”


나찰의 영기가 순간 여럿으로 번져 보이자 철산은 어리둥절하며 급상승한다.


“스승님! 잠시만···.”


흡연실 앞에서 선회하며 놈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운천이 머리를 들었다.


“그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으응? 뭐라···.”


당황한 운천은 날갯짓이 잠시 느려졌다.


“그놈이 아니라, 저기 저놈! 아, 아니··· 저기 긴 머리가··· 아니, 저기 짧은 바지···.”


철산은 방향타를 잃은 비행기처럼 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다급하게 외쳤다.


운천은 철산의 이상행동이 마음에 걸려 잠시 위로 솟아올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철까지 거들고 나선다.


“스승님! 놈이 자신의 흔적을 퍼뜨리는 기만술을 쓰는 것 같습니다.”


운천은 아차 싶었다.


악귀 나찰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지난번 놈을 잡을 때도 별의별 꼴을 다 보지 않았던가.


“하는 수 없다. 한 놈씩 찔러 보는 수밖에···.”


운천의 말에 철산과 정철은 동시에 꿀벌로 변했다.


펑-!

펑-!


그런데 그와 함께,


딩동댕-!


하며 수업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린다.


로비에 흩어져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교실로 빨려 들어갔다.


흡연실에 있던 이들도 후다닥 그 뒤를 따랐다.


학생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세 법사는 다시 천장으로 솟아오른다.


“지금 따라 들어가서 바로 확인하시지요?”

“저 안을 온통 난리 통으로 만들고 싶은 거냐?”


적극적으로 제안했지만, 다시 여지없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정철은 답답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은 죄도 있으니 조용히 감내해야 했다.


정철은 철산 곁에 붙어 앉아 교실 안을 살폈다.


다음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쏟아져 나올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막 얘기를 나누려던 찰나였다.


철산이 또 이상한 소리를 했다.


“저··· 저··· 저기··· 사기(邪氣)가 점점 늘어나고 있소이다.”


나찰의 교실 안.


도사들의 공세적인 영기를 느낀 나찰이 더 적극적으로 기만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열댓 개를 더 뽑은 나찰은 그걸 후후 불어 교실 안 학생들에게 전부 붙였다.


또 창밖으로도 던져 참새와 제비, 비둘기에도 붙였다.


나찰의 사기가 순식간에 퍼지자 도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부웅-!

부우우웅-!


나찰은 로비 천장과 바닥을 갈팡질팡하며 갈피를 못 잡는 벌 세 마리를 보았다.


“저놈들이구나!”


나찰의 눈이 길게 찢어졌다.



7.


쉬는 시간 차임벨이 울렸다.


로비는 다시 쏟아져 나온 학생들로 가득 찼다.


나찰은 무리 속에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벌들은 당황한 건지 이리저리 오가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흐흐흐흐···.”


비릿하게 웃은 나찰은 회심의 일격을 더하기 위해 학원관리실로 향한다.


“저기요!”


관리실 안에서 졸고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로비에 큰 벌이 날아다녀서 너무 무서워요. 빨리 잡아 주세요!”


겨우 잠에서 깬 남자는 “벌?” 이러더니 바로 장대 빗자루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잠시 후 남자가 휘저어 대는 빗자루에 놀란 벌들이 발광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웅-!

에에엥-!

부웅-!

에에엥-!


나찰은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잠시 지켜보다 로비를 가로질렀다.


수업이 조금 늦게 끝난 건우네 반 학생들도 막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 건우가 보였다.


걷던 나찰은 잠시 멈춰 섰다.


어떻게든 건우에 관한 정보를 얻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야만 주변에서 어슬렁대는 도사들에게 좀 더 거하게 분탕질 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일성 말로는 저 어린아이를 잡으러 왔다더니, 왜 여태 안 잡고 있는 거지?”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던 나찰은 건우를 지켜보다 다시 그의 교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텅 빈 교실.


건우가 앉아있던 자리가 보였다.


나찰은 태연하게 교실 안으로 몸을 들였다.


혹시 몰라 열려있던 교실 문을 잠시 닫아 두었다.


건우의 자리에 걸린 배낭이 보였다.


지퍼가 열려있었다.


나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후다닥!


냉큼 건우의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서 내용물을 꺼내 확인했다.


교재와 노트.


필통.


수첩.


명함.


그리고 과자와 초콜릿 몇 개가 있었다.


명함을 본 나찰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오호! BW 엔터테인먼트 로드매니저라!”


건우가 로드매니저라는 것도 신기한데, 일하는 곳이 BW라고 한다.


자신이 몸을 취한 지은이라는 아이의 방에 걸려있던 한 배우의 사진!


그 줄리 한이란 배우의 소속 회사가 바로 BW가 아니던가.


나찰은 분명 본 기억이 났다.


줄리 한의 브로마이드 아래에 찍힌 BW 로고를.


수첩을 펼쳐 휘리릭 넘겨보니 주요 일정을 기록한 듯한 글씨가 보였다.


나찰은 입맛을 다시면서 배시시 웃었다.


“이거 정말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걸!”


밖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들렸다.


나찰은 꺼냈던 물건들을 도로 집어넣으려 가방을 벌렸다.


그런데 그때 나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라··· 이게 뭐야?”


나찰의 손이 가방의 바닥을 훑더니 뭔가를 집어 들었다.


누르스름한 종이에 그려진 붉고 가는 선들, 기하학적인 문양들.


부적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총 다섯 장.


나찰은 입이 찢어졌다.


“이야~! 이거 산타클로스의 선물인가? 흐흐흐···.”


부적을 얼른 주머니에 챙겨 넣은 나찰은 가방을 다시 책상에 걸고 교실을 벗어났다.


휘이~!


휘파람까지 부는 나찰이 고개를 들어보았다.


아직도 로비 천장은 빗자루를 피하는 벌들로 왕왕대고 있었다.


“아저씨 너무 감사해요! 꼭 좀 잡아주세요!”


나찰은 관리실 직원에게 꾸벅 인사까지 하고는 유유히 자신의 교실로 사라진다.



8.


“스승님! 약한 장풍이라도 써서 저 남자를 물리쳐야겠습니다.”


정철이 운천을 졸랐으나, 운천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운천은 그대로 창가를 가리키더니 그쪽으로 이동할 것을 명했다.


“저기 눌려서 뚫린 방충망 사이로 잠시 나간다.”


운천은 끝까지 작은 노출도 허용하지 않았다.


정철은 답답함에 속이 타들어 갔다.


이러다가 자칫 나찰의 공격에 다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운천은 건우가 있는 교실 안을 주시하면서 창문 밖으로 몸을 피했다.


“악귀가 쓰는 술은 법사들의 것과는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흐릿해진다. 마지막까지 또렷하게 남는 놈을 잘 봐라. 그놈이 진짜 나찰이다. 그때 잡으면 된다.”


정철은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 보여준 기만술로만 그칠 나찰이 아니라는 거였다.


얼마든지 또 다른 사술로 자신들을 연이어 공격할 수 있는 나찰이었다.


빨리 결딴을 내서 놈의 목을 치지 않으면 계속 끌려만 다니다 언젠간 자신들의 목이 먼저 날아갈 터···.


정철은 부은 입을 내민 채 방충망 위를 어슬렁댔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나고 차임벨이 울렸다.


건우는 수업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운천이 그걸 보고 신호를 보냈고, 정철과 철산이 운천을 따랐다.


그런데 건우를 따라가는 건 법사들만이 아니었다.


나찰도 건우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철산은 그 움직임을 느끼고는 바로 운천에게 고한다.


“놈이 움직입니다. 방향이 건우가 움직이는 쪽입니다.”


운천이 잠시 제자리에서 선회했다.


“놈이 건우를 해칠지 모른다. 우리가 먼저 건우의 뒤에 따라붙어 막는다.”


운천이 다시 움직였다.


정철은 튀어나온 입을 주체하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날개를 퍼덕였다.


멀리서 건우가 탄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그 뒤를 종종걸음을 쫓는 나찰도 보였다.


나찰의 모습은 역시나 아까 그 여학생이었다.


나찰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길가에 세워져 있던 공용 자전거 한 대를 렌트했다.


이를 지켜보는 법사들은 혀를 내둘렀다.


인간들 세상에 적응하는 속도가 자신들보다 빠른 게 놀라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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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077. 기다려라, 나찰 1 24.03.30 9 0 11쪽
76 076. BW, 비상사태! 4 24.03.29 7 0 11쪽
75 075. BW, 비상사태! 3 24.03.24 8 0 11쪽
74 074. BW, 비상사태! 2 24.03.23 9 0 11쪽
73 073. BW, 비상사태! 1 24.03.22 9 0 11쪽
72 072. 한 피디 2 24.03.17 8 0 11쪽
71 071. 한 피디 1 24.03.16 6 0 12쪽
70 070. 나찰을 잡아라 2 24.03.15 9 0 11쪽
69 069. 나찰을 잡아라 1 24.03.10 8 0 11쪽
68 068. 동상이몽 2 24.03.09 7 0 12쪽
67 067. 동상이몽 1 24.03.08 5 0 11쪽
66 066. 일성을 부를 때 3 24.03.02 6 0 11쪽
65 065. 일성을 부를 때 2 24.03.01 7 0 12쪽
64 064. 일성을 부를 때 1 24.02.28 5 0 12쪽
63 063. 이 애는 안 돼요! 2 24.02.24 6 0 11쪽
62 062. 이 애는 안 돼요! 1 24.02.23 6 0 12쪽
61 061. 부엌혈전 4 24.02.21 7 0 12쪽
60 060. 부엌혈전 3 24.02.17 7 0 12쪽
59 059. 부엌혈전 2 24.02.16 10 0 12쪽
58 058. 부엌혈전 1 24.02.14 10 1 12쪽
57 057. 부적은 어디에 2 24.02.10 8 0 11쪽
56 056. 부적은 어디에 1 24.02.07 10 0 12쪽
55 055. 주인이 바뀐 돈 2 24.02.03 12 0 12쪽
54 054. 주인이 바뀐 돈 1 24.02.02 12 0 11쪽
53 053. 내친 김에 어디 한번 5 24.01.31 13 0 12쪽
52 052. 내친 김에 어디 한번 4 24.01.26 14 1 11쪽
51 051. 내친 김에 어디 한번 3 24.01.25 16 1 11쪽
»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24.01.24 14 1 11쪽
49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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