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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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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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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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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주인이 바뀐 돈 1

DUMMY

1.


“으흐으으···.”


뿌옇던 시야가 조금씩 또렷해지자 낯선 공간이 망막에 맺혔다.


김 지배인은 상체를 일으키면서 몸을 움츠렸다.


자연스러운 방어 본능이었다.


분명, 빗속에서 쓰러졌었다.


그것도 산길에서.


그런데 여긴 대체 어디일까.


밖에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주변 사물을 돌아보았다.


나무로 지어진 가건물?


목조주택?


대피소?


아니, 어쩌면 산장?


“여기가 어디지? 으으읔···.”


일어서서 걸어보려 하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힘이 없는 건지, 마비가 된 건지,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기를 써도 뜻대로 되지 않자 김 지배인은 다시 몸을 모로 눕혔다.


심한 갈증에 현기증까지 일었다.


속은 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은데도 온몸이 다 축축했다.


비에 젖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땀을 흘려서였다.


웬 땀을 이리도 많이 흘린 걸까.


몸을 이리저리 만지다가 왼쪽 품 안으로 손길이 갔다.


“어···!”


없다!


김 지배인은 다시 상반신을 일으켰다.


“분명히 여기에 끼고 있었는데···.”


돈을 세 덩이로 나누어 두 덩이는 땅에 묻고 나머지는 옆구리에 끼었다.


틀림없이 옆구리에, 비닐봉지에 담아 끼었는데, 그게 어디에 가 버린 걸까.


망연자실한 표정에 입까지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나무 문이 비틀려 열리는 소리와 함께 환한 빛이 들어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뭘 찾고 있나?”


어디선가 나타난 검고 큰 그림자.


그 그림자가 김 지배인의 앞에 서서 묻고 있었다.


찾고 있는 게 뭔지 궁금하다는 물음이었는데, 그 말투가 좀 야릇했다.


마치 잃어버린 돈의 행방에 대해 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림자를 노려보고 있으니 그 형체가 서서히 또렷해졌다.


사극에나 나올 법한 예스러운 특이한 복장.


대충 묶어 넘긴 긴 머리.


범상치 않은 외모 때문에 느껴지는 위화감 때문인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 하는 사람이지?’


김 지배인이 계속 아무 말 없이 노려보고만 있자 상대는 다시 묻는다.


“찾고 있는 게 이건가?”


비닐봉지에 싸인 뭉치.


그걸 보자 김 지배인의 눈동자가 심하게 꿈틀댔다.


동시에 그의 손이 불쑥 앞으로 뻗었다.


하지만 상대는 얼른 그걸 도로 거둬 버린다.


“이거 자네 게 맞나?”


뭐지?


이 사람 혹시···.


김 지배인은 은밀한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상대 남자의 눈빛이 날카롭고 뜨거워졌다.


“대답 못 하는 거 보니까 자네 게 아닌가 보군.”


들고 있던 봉지를 등 뒤에 숨긴 남자는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김 지배인은 다급해졌다.


“잠깐···!”


남자가 다시 멈춰 섰다.


“내··· 내 거요!”


김 지배인이 떨면서 대답했다.


남자는 못 믿겠다는 얼굴로 다시 질문을 이어간다.


“삼억 가까이나 되는 큰돈인데, 이게 어디서 난 거지?”

“집··· 집을 계약하러 왔다가··· 사고를 당했소.”


차분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떠오르는 대로 둘러대니 허술하기 그지없는 대답이 되고 말았다.


이는 오히려 상대를 더 의심하게 했다.


“집을 사는 사람이 왜 이런 데서 어슬렁대지? 요즘은 집 계약을 산속에서 하나?”


돈을 잃어버리는 것도 괴로웠지만, 거짓말이 탄로 나는 것 역시 화가 나는 일이었다.


궁지에 몰리는 것 같자 김 지배인은 버럭 화를 냈다.


“너··· 뭐야? 그거 빨리 이리 가져와! 죽고 싶어?”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상체를 바짝 세우기까지 했다.


이렇게 윽박지르면 상대가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후후···.”


남자가 한 손을 들더니 김 지배인의 앞으로 내밀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허공에서 뭔가를 쥐는 것 같은 동작이 이어졌다.


그러자···.


“케헥··· 커허어엌.”


김 지배인의 몸이 붕 떠 올랐고, 갑자기 숨이 턱하니 막혔다.


목을 부여잡은 김 지배인이 발버둥 치기 시작한다.


“뭐··· 케엑··· 뭐야? 크허어어업···.”


숨이 막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자 순식간에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극한의 공포.


살아야겠다는 본능.


그러다 어느 순간, 필사적인 몸부림이 잦아들면서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앉았다.


다시 김 지배인의 입이 열렸다.


“자··· 잠깐! 살려줘! 돈··· 돈··· 줄게! 돈··· 더 있어!”


남자의 손아귀에서 슬쩍 힘이 빠졌다.



2.


유정은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삼억.


삼억도 적은 돈이 아닌데, 더 있다고 한다.


그럼 대체 얼마나 있는 걸까.


유정이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 남자의 얼굴에 코끝을 들이댔다.


“얼마나?”


공포에 질린 상대는 이를 덜덜 떨며 겨우 답을 한다.


“시··· 십억! 전부··· 십억! 사··· 살려주면··· 절반을 주겠다.”


십억이라!


그렇게 큰돈을 저 한 사람이 다 가지고 있다.


유정의 코끝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얼른 얼굴을 뗀 유정이 몸을 다시 바로 세웠다.


표정의 변화를 들키기 싫어서 고개도 틀었다.


평온하기만 하던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돋아났다.


만약 그 돈이 수중에 들어온다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건가.


청운당은···.


후훗, 청운당?


그 돈을 가지고 청운당에서 산다고?


저런 빌어먹을 일성 같은 놈이랑 정신 나간 은둔 폐인들하고 같이?


유정의 눈망울이 크게 흔들렸다.


예전에 아랫마을에 휘발유를 구하러 갔을 때 들은 얘기가 있었다.


혼자서 십억 정도 있으면···.


아주 큰 부자는 아니어도 서울 외곽에 소형 아파트 하나 정도 사서 그럭저럭 살만한 정도는 된다고.


그때는 그저 속세의 일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것 같은데.


유정은 비즈니스 정장을 입은 자신이 자가용을 몰고 아파트에서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셨다.


유정의 눈빛이 다시 뜨거워졌다.


“나머지는 어디에 있지?”


다리를 다쳐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남자는 한사코 바로 앉으려 했다.


몸을 일으키는 걸 도와주자 그가 다시 유정의 낯빛을 살폈다.


“먼저··· 날 살려준다는 약속을 해라.”


유정도 남자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궁지에 몰려 잔뜩 긴장한 얼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유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담보도 없이 남발한 공수표 같은 것이었다.


유정은 생각했다.


돈을 챙기면 조용히 놈을 죽이고 지리산을 뜬다.


일성이 찾지 못하게, 법사들 그 누구도 찾지 못하게, 꼭꼭 숨어 살 것이다.


얼굴도 고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먼저 세상을 떠난 만봉의 몫까지 열심히 살 것이다.


남자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또 이상한 조건을 제시한다.


“나머지 돈은··· 찾기 힘든 곳에··· 숨겨두었다. 다리가 다 나으면··· 데리고 가겠다.”


시간을 벌려는 수작인가?


유정은 순간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지금 확 죽여버리고 저 삼억만 가지고 사라질까?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화를 누그러뜨리고 지루한 시간을 견디면 그 돈의 세 배 이상을 거머쥘 수 있다.


안절부절.


두근두근.


붉으락푸르락.


크게 숨을 들이켜고 몸에 힘을 빼자 동요하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머릿속에서 충동도 흩어졌다.


“좋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회복술로 다리를 치료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일성이 있다.


전혀 의외의 시간과 장소에서 도술의 영기가 감지된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일성을 내치고 달아날 결심을 굳힌 이상 최대한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안 그러면 송담과 영일, 또 만봉에 이어서 놈의 네 번째 희생자가 될 것이다.


유정은 아지트 안에 숨겨 두었던 먹거리를 꺼내 내밀었다.


원래는 청운당으로 가져가려던 것들이었다.


참치, 스팸, 콩자반, 조미김, 피클, 할라페뇨, 핫바, 초코바, 콜라···.


남자는 다른 건 제쳐두고 콜라를 가장 먼저 잡았다.


피시익-.

벌컥벌컥.


1.5리터 콜라 뚜껑을 따자마자 단숨에 절반이나 비워버린 남자는 다른 것들도 하나하나 건드렸다.


유정은 구석에서 등산객이 잃어버린 가방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서 응급구호 세트를 꺼내 내밀자 남자는 그때 서야 안심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3.


구례군 부근의 허름한 카센터.


“하이고··· 이거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데에~.”


카센터 사장의 얼굴이 알쏭달쏭했다.


제법 큰 사고를 짐작하고 고객의 안전을 걱정하는 듯하면서도.


그 덕분에 수리비로 한몫 단단히 잡을 것 같은 기대감에 부푼 표정.


이미 본 곳을 또 보고, 다시 보고, 재차 보는 걸 반복하는 게, 얼마 정도에 후려치는 게 좋을까로 고민하는 듯했다.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이 그 뻔한 수작을 모를 리가 없다.


“수리비는 걱정 말고, 할 수 있는지만 말해봐요!”


신 기자가 먼저 쿡 찔러봤다.


그러자 카센터 사장의 말투가 빠르게 차분해졌다.


“아이유, 요즘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듣고 싶은 대답이 바로 그거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돈이 얼마가 든다는지 하는 말은 아무 의미 없었다.


관심도 없고.


왜?


돈은 수중에 충분히, 아니··· 흘러넘칠 정도로 있으니까.


“그럼 한 반나절이면 충분할까?”


스나이퍼 박이 작업시간을 떠봤다.


그런데 카센터 사장이 볼을 씰룩인다.


“그렇게나 빨리요? 글쎄요? 뭐··· 큰 차도 아니고··· 아벤떼니까 박살난 거 바로 떼고 새로 끼우면 되기야 되겠지만, 새시나 부품을 바로 구할 수가 있어야지요.”


스나이퍼 박이 쓰고 있던 벙거지를 휙 벗었다.


갑자기 드러난 대머리에 놀란 카센터 사장이 움찔한다.


“반나절에 다 고치는 거로 합시다. 돈 걱정은 말고!”


놀란 사장이 머뭇대면서 확답을 못한다.


그러자 스나이퍼 박이 바로 쐐기를 박는다.


“현금으로 줄 테니까, 그렇게 합시다.”


사장의 얼굴에서 순간 환하게 빛이 났다.


“아··· 그럼 제가 힘을 한 번 내보겠습니다.”


신 기자는 주머니에서 오만 원권 여섯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선불이고··· 그럼 이따가 저녁에 와서 나머지 주면 되죠?”


사장의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졌다.


스나이퍼 박은 트렁크에서 사과박스를 꺼내 핸드 캐리어에 실었다.


“아이고··· 사과를 사셨나 봐요. 여기 사과가 맛이 좋죠. 제가 저 앞까지 끌어···.”

“아니, 됐습니다.”


신 기자는 달려드는 사장을 뿌리치고 길가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이만하길 다행이었다.


다른 차도 아니고 렌트카다.


그런데 저리 박살을 냈으니···.


곧이곧대로 돌려주면 돈이 깨지는 건 둘째 치고 분명 꼬리가 밟힐 것이다.


대충 저렇게 고쳐서 타고 다니다가 때 되면 버리고 이 나라를 뜨는 거다.


“손님, 어디로 갈까요?”

“아··· 사람들 많이 안 다니는, 좀 한적인 숙박업소요.”


신 기자의 말에 기사가 백미러를 들여다본다.


뭐지, 하는 표정으로 눈을 마주치자 기사가 다시 말했다.


“손님, 혹시 자살하러 가시는 거 아니죠? 하하하!”


웃음이 터진 건 신 기자도, 스나이퍼 박도 마찬가지였다.


자살이라니.


기사 양반! 당신 손에 갑자기 이십억이 떨어졌는데 자살 생각이 날까?


이렇게 받아치고 싶었으나,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려 화면을 보니 국장이었다.


하루 종일 보고가 없자 궁금했던 모양이다.


신 기자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다 전화를 받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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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062. 이 애는 안 돼요! 1 24.02.23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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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060. 부엌혈전 3 24.02.17 7 0 12쪽
59 059. 부엌혈전 2 24.02.16 9 0 12쪽
58 058. 부엌혈전 1 24.02.14 10 1 12쪽
57 057. 부적은 어디에 2 24.02.10 8 0 11쪽
56 056. 부적은 어디에 1 24.02.07 10 0 12쪽
55 055. 주인이 바뀐 돈 2 24.02.03 12 0 12쪽
» 054. 주인이 바뀐 돈 1 24.02.02 12 0 11쪽
53 053. 내친 김에 어디 한번 5 24.01.31 12 0 12쪽
52 052. 내친 김에 어디 한번 4 24.01.26 13 1 11쪽
51 051. 내친 김에 어디 한번 3 24.01.25 15 1 11쪽
50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24.01.24 13 1 11쪽
49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5 1 12쪽
47 047. 쫓기는 놈 쫓는 놈 2 24.01.20 18 1 12쪽
46 046. 쫓기는 놈 쫓는 놈 1 24.01.19 2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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