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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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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7.0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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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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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6. 매구의 흔적

DUMMY

나루가 말을 이었다.


“사람이 많이 와서 아주 시끌벅적했어요. 이런저런 냄새도 진짜 많이 나고, 그런데 순간적으로······.”


나루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상한 냄새가 휙 스쳐 지나갔어요. 아주 불쾌한 냄새······.”

“뭐라고?”


금손과 은롱이 동시에 머리를 번쩍 들었고 나루가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아주 약한 냄새여서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단 말이에요. 전 삼족구잖아요.”


나루는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아주아주 약한 냄새여서 확신할 순 없지만 여우, 여우 노린내랑 비슷했어요.”

“······.”

“혹시 오인국 셰프에게서 그런 냄새가 났니?”


금손이 묻자 나루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처음엔 그 사람한테서 나는 냄새인가 생각할 뻔했어요. 왜냐하면 오인국 셰프가 가게에 들어왔을 때 그 냄새가 났거든요. 그런데, 다시 정신을 집중해 보니 그 사람이 아니었어요.”

“······.”

“냄새를 맡자마자 제가 먹는방 문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는데, 오인국 셰프 바로 뒤에서 가게에 들어왔던 어떤 사람이 바로 도로 나가는 걸 언뜻 봤거든요. 그리고 냄새도 사라졌어요.”

“따라 나가 봤어?”


은롱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묻자 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게 밖까지 따라 나갔는데 없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금방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어.”


금손과 은롱, 나루는 모두 먹던 것을 그치고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셋 모두 미식가에 먹보였다. 그런데 다들 먹을 생각을 안 하는 거 보면 보통 일이 아닌가 본데.

시현은 회심의 가수저라를 측은한 눈으로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혹시 그 냄새라는 게 보통 사람 말고 다른 존재에게서 나는 걸까요?”


생각에 잠겨 있던 고양이와 삼족구, 구미호가 시현을 쳐다보았다.


“사람마다 다른 체취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난번 조향사 손님이 왔을 때도 그랬지만, 여우 노린내 비슷하다는 말에 모두 무척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아서요.”

“으응.”


은롱이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응, 우리가 걱정하는 게 하나 있어서 그래. 그냥 사람 냄새면 상관없는데.”

“혹시 다른 존재의 냄새일까 봐 걱정하는 거야?”


시현이 묻자 금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좀 위험한 존재가 나타난 게 아닌가 하고.”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시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원래 별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나루 이야기를 듣고 보니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


시현은 지난번에 장에 갔을 때 오인국 셰프를 만났던 이야기를 했다.


“그때 오스키친 고문이라고 오인국 셰프와 함께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요.”


시현은 또 망설이다가 말했다.


“확신할 순 없지만요. 왠지 제 느낌에 그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시현은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그냥 제 느낌일 뿐이지만 왠지 금손 씨나, 은롱이, 나루처럼 인외 존재가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게 이상했다. 마치 금손이나 은롱, 나루를 대할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금손이나 은롱, 나루는 시현에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데 배지호는 뭔가 미묘하게 불편한 느낌을 주는 게 있었다.


“냄새는?”


나루의 물음에 시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냄새는 전혀 못 느꼈어. 사실 외모나 냄새는 그냥 보통 사람 같았는데 미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좀 이상했다는 거야.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냥 내 감이 그랬어.”


시현은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려고 했다.


“머리가 황갈색이고 키가 크던데, 나보다 컸으니까 180은 넘고, 얼굴도 굉장히 잘생겼어. 외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좀 이국적인 느낌이 있었어.”


은롱과 나루가 서로 마주 보았다.


“혹시······.”


나루가 고개를 흔들었다.


“모습은 중요하지 않아,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정도 원하는 대로 외모를 바꿀 수 있잖아. 보통 사람이 알아볼 순 없을걸?”

“우리 형은 보통 사람이 아닌걸.”


은롱의 말을 들은 나루가 시현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건······ 그러네. 이 형도 보통 사람은 아니지.”


시현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답답해서 곁에 앉은 금손의 꼬리를 살짝 건드렸다.


“금손 씨, 저도 좀 알려주면 안 됩니까?”


드물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금손이 앞발로 시현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더니 은롱과 나루를 향해 말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이미 오인국이 시현이에게 접근한 걸 보면 시현이에게도 말을 해주는 게 좋겠다. 물론 그냥 요리사 스카우트하려고 접근한 걸 수도 있겠지만, 만약을 위해서 말이야.”


은롱과 나루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은롱이 입을 열었다.


“형아,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건 매구야.”

“매구?”


매구가 뭐지?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긴 한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매구는 오래 묵은 여우 요괴를 말하는 거야. 형이 처음 우리 전당포에 왔을 때 구미호가 천 개의 간을 먹으면 인간이 된다는 옛날이야기 얘길 했잖아? 그건 구미호가 아니고 매구야.”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동네에서 사람들 이간질을 하고 요부 짓으로 남자들 돈을 뜯어내고 그러는 여자가 있었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그 여자를 보고 ‘저런 매구 같은 계집, 남자들 간을 다 빼먹는다’고 욕을 하던 기억이 났다.


“매구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역사가 길고 영성도 높지. 하지만 잔인하고 교활해. 구미호가 사람들에게 악명을 얻은 것은 대부분 다 매구의 짓이야. 형도 여우 누이 이야기는 들어봤겠지?”

“응, 그야 들어봤지.”


아들 셋 있는 집에 막내로 태어나서 사랑을 듬뿍 받던 여동생이 사실은 여우의 화신이라 가축의 간을 빼먹다가 나중에는 가족들의 간까지 모두 빼먹는다는 여우 누이 설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가장 전형적인 매구 이야기지. 매구와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견제해 왔어. 삼족구는 원래 매구와 우리를 다 대적하는 신수였지만 우리 선대에서 극적으로 화합해 함께 매구를 상대하게 됐지.”


매구와 구미호는 여우 신수의 자리를 놓고 오랫동안 대적한 모양이었다. 사람을 돕고 몽로를 만들어 정화시켜 주며 힘을 얻는 구미호와 달리 매구는 간을 빼먹거나 사람의 혼을 빼고 그 탈을 뒤집어쓰는 등 사람과 동물을 해치는 행위로 힘을 얻었다.

힘이 강해지면 산신령을 내쫓고 산을 점령하기도 한다. 매구가 가장 강성했을 때는 용과도 대적할 만했다고 한다.


금손이 외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거타지라는 사람을 아나?”

“아뇨.”

“신라 때 사람으로 명궁이었지. 진성여왕 때 사람인데, 양패 왕자가 당에 사신으로 갈 때 호위로 데려간 궁사 50명 중 한 명이었다네. 그때 곡도라는 섬에 이르렀더니 풍랑이 일어나 뱃길이 막혔는데, 열흘이 지나도 배가 떠나려고만 하면 풍랑이 일어 배가 뜰 수가 없었다는 거야.”

“예에.”

“꿈에 선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활 잘 쏘는 궁사 한 명을 섬에 남기고 가면 떠날 수 있다고 했다는군, 그래서 제비를 뽑았더니 거타지가 걸려서 거타지만 놔 두고 당으로 떠났다지.”


금손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혼자 남은 거타지에게 섬의 못에서 어떤 노인이 나타나 말하길 자기는 서해의 용인데, 새벽마다 노승 한 명이 나타나 주문을 외우며 못 주위를 돌면 서해 용 가족이 모두 힘을 못 쓰고 못 위에 떠오른다고 했다네. 노승이 매일 한 명씩 간을 취해 먹기 때문에 용의 가족이 모두 죽고 이제 용 부부와 딸 하나만 남았다는 거였어."

"예."

"거타지는 용의 부탁을 받고 못 가에 숨어 있다가 다음날 새벽 용의 간을 빼먹으러 온 노승을 활로 쏘았지. 화살에 맞은 노승이 땅에 떨어져 죽었는데 늙은 매구였다는 설화라네.”


시현은 놀라서 금손과 은롱을 쳐다보았다.

여우 요괴가 그렇게 강한가? 용의 간을 빼먹을 만큼? 그런데 사람의 화살을 맞고 죽고?


“그 거타지라는 사람은 물론 특별한 사람이었을 거야. 사람들 중 드물게 있는 인외 존재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지. 서해 용은 물론 그걸 알고 거타지를 섬에 붙잡았던 거고.”


금손이 계속 말했다.


“세상은 언제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법, 오랜 세월 동안 매구와 흉수들, 다른 영수들은 서로 견제하면서 이 세상의 균형을 잘 유지해 왔었다네. 그런데 암암리에 계속 힘을 기르던 매구가 크게 성한 때가 있었어. 육십 년쯤 전이던가, 그때가 거타지 때 이후로 가장 매구의 힘이 강해진 때라고 해.”


금손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은롱이의 선대, 그러니까 세루와 나루의 선대가 모두 힘을 합해서 겨우 매구 무리를 퇴치했다네. 대신 세루나 나루의 부모 역시 큰 피해를 입고 몸을 감출 수밖에 없었지.”


금손은 앞발을 들고 감겨 있는 왼쪽 눈을 가볍게 두드렸다.


“나도 그때 눈을 잃었다네.”

“날 구하느라고 그랬죠.”


은롱이 금빛 눈을 들었다.


“매구는 그때 이후 완전히 세력이 꺾여서 바깥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있거든. 저번에 조향사 얘길 들었을 때는 사람이 맡은 냄새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

“음, 애당초 매구나 우리의 냄새는 보통 사람이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거든.”


금손은 앞발로 턱을 쓸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 조향사가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금손의 말을 들으며 시현은 지난번에 왔던 조향사, 서규원을 떠올렸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후각이 뛰어난 사람이었지.


“인간 중에도 가끔 정말로 특별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우리의 본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송윤수나 여기 시현이도 있으니,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이가 있는 것도 가능한 일이야.”


금손의 말을 들으며 은롱도 고개를 끄덕였고, 금손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나루가 냄새를 맡았다고 하니까, 게다가 시현이 얘길 들으니까 아무래도 매구 또는 매구의 흔적이라도 다시 나타난 게 아닌가 싶어 꺼림칙하군.”


시현은 금손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은롱이가 이렇게 어린데 죽림의 후계자가 된 게 그래서였구나. 어린 나루가 혼자 있는 것도 그렇고.


“그럼, 지금은 매구와 대적할 만한 신수가 없는 건가요?”

“매구와 대적할 수 있는 건 구미호와 삼족구인데, 세루는 영원의 계곡에서 몸을 회복하고 있지만 그가 다시 눈을 뜰 수 있는 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몰라. 십 년이 될지, 백 년이 될지. 옛날이라면 사신수가 매구를 누를 수 있었지만 지금 세상엔 사신수가 사라졌고.”


금손은 외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매구도 제대로 된 매구는 아닐 거야. 당시 매구의 왕이라 불리던 매구를 비롯해 강한 매구들은 세루와 나루 부모의 손에 목숨을 잃었거든. 지금 만약 매구가 나타났다 해도 그때의 잔당이거나 아직 어리고 힘이 부족한 놈일 테지.”


잠시 말을 멈추고 있던 금손은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너무 걱정은 말고, 그래도 어느 정도 경각심은 갖고 있는 게 좋겠구나. 매구가 만약 다시 나타났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꼬리를 드러낼 테니까 말이야.”


작가의말

거타지 설화는 『삼국유사』 권2 기이편(紀異篇) 제2 「진성여대왕 거타지조(居陀知條)」에 실려 있습니다.


*

qaz789q 님, 따뜻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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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37. 기억나지 않는 꿈(1) +4 24.07.02 348 42 13쪽
» 36. 매구의 흔적 +5 24.07.01 374 35 12쪽
60 35. 가수저라(加須底羅) +6 24.06.29 433 41 13쪽
59 34. 환음 향설고 +6 24.06.28 428 40 12쪽
58 33. 송화다식(2) +13 24.06.27 450 43 13쪽
57 33. 송화다식(1) +8 24.06.26 454 41 13쪽
56 32. 송화 +9 24.06.25 475 41 12쪽
55 31. 가지 누르미 +10 24.06.24 483 45 13쪽
54 30. 첫 번째 선물(2) +7 24.06.22 529 55 12쪽
53 30. 첫 번째 선물(1) +5 24.06.21 525 49 12쪽
52 29. 수제비(2) +10 24.06.20 525 49 12쪽
51 29. 수제비(1) +7 24.06.19 526 50 12쪽
50 28. 노리개(2) +8 24.06.18 532 44 12쪽
49 28. 노리개(1) +8 24.06.17 532 49 12쪽
48 27. 콩나물밥(2) +5 24.06.16 535 44 13쪽
47 27. 콩나물밥(1) +6 24.06.15 588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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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4. 고종 냉면(1) +7 24.06.07 599 43 11쪽
38 23. 향설고 +6 24.06.06 620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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