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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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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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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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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4. 환음 향설고

DUMMY

신 사장은 잠깐 의식이 돌아온 것 같았으나 다시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 부인이나 시현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인은 정말 기쁜지 눈물을 닦으며 신 사장의 이불깃을 여며 주고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시현아, 정말 고마워. 이렇게 맛있는 떡과 다식은 처음 먹어 본다. 네 다식 덕분에 나도 진짜 오랜만에 옛날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고, 아마 이이도 잠깐이나마 기억이 돌아왔나 봐. 이제 희망이 생긴다.”

“천만에요. 사모님 정성 덕분이지요. 또 올게요. 다음엔 더 좋은 걸 만들어 올게요.”


사모님과 작별하고 밖으로 나온 시현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팔을 내두르면서 껑충껑충 뛰었다.


“쯧쯧,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왜 저래?”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시현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지면서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시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세를 바로 했다.


‘효과가 있었어. 잠깐이지만 눈에도 힘이 돌아오고 손도 움직이셨어. 고개도 끄덕이셨고.’


시현은 신 사장이 과거의 추억 속에 들어갔다 온 것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잠시 의식이 돌아온 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잠깨일꽃의 꿀이나 신목의 송홧가루가 효과가 있는 게 확실하니까, 조금씩 더 연구해 보자. 사장님을 꼭 일으켜 드릴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죽림 전당포로 향하는 시현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


오늘은 드디어 대망의 환음 향설고 만들기를 시도해 보기로 한 날이다. 시현뿐 아니라 금손이나 은롱, 세나까지 모두 기대에 부풀어서 죽림의 분위기가 다소 들떠 있었다.


시현은 송가미록의 환음 향설고 조리법을 신중하게 펼쳤다.

이건 필사도 할 수 없고, 오직 시현만 볼 수 있는 것이라 더욱 조심스러웠다.


우선 재료 준비.

죽림의 약수와 세나가 창고에서 내준 마고할미의 숯을 준비했다.


“그런데, 마고할미는 알지만 마고할미의 숯이란 건 뭔가요?”


마고할미는 우리나라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각 지역의 설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그건 삼천갑자 동방삭의 설화와도 관계가 있다네.”


동방삭이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 년을 살았다는데 그 후에도 저승차사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우리나라로 도망쳐 와 살고 있었다.

오래 산 만큼 웬만한 영물 못지않게 꾀가 많아지고 재주가 늘어서 저승차사들이 잡아가려고 찾으러 다녔지만 매번 실패했다.


저승차사는 마고할미에게 조력을 구했고, 마고할미는 자신이 구운 숯을 매일 못에 나가 씻었다.

숯을 씻는 할미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어느 날 지나가던 노인이 그녀에게 왜 숯을 씻느냐고 물었을 때 할미는 검은 숯을 씻어 희게 만들려고 빨고 있다고 했다.


“허, 노망 난 노파 아닌가? 내 삼천 년을 살았지만 검은 숯을 빨아서 흰 숯을 만든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군!”


노인이 그녀를 비웃었을 때 마고할미는 일어서서 그의 손목을 움켜쥐고 씩 웃었다.


“동방삭, 널 잡으려고 기다린 지 오래다. 이제 그만 저승으로 가자.”


그때 마고할미가 숯을 씻던 못이 울산 성안동에 있는 못이라 해서 지금도 그 못의 이름을 숯못이라고 한다.


“마고할미가 그때 숯 굽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고 하는데 이건 그때 마고할미에게 숯 굽는 법을 배운 숯장이들이 대대로 만들어낸 참숯이에요. 흰 숯이라고 백탄이라고 부르죠.”


세나가 꺼내준 숯은 은은한 흰빛이 섞여 있는 회색으로 모양이 단정하고 보기 좋았다.


“화력도 좋지만 정화의 힘이 담겨 있어서 예부터 물이나 장 등을 정화하는 데 썼지요.”

“예에.”


옛사람들은 우물을 파면 우물 밑바닥에 숯을 깔았다. 시현의 할아버지도 장을 담글 때 숯을 썼다.


시현은 백탄을 하룻밤 담가 두었던 물을 꺼내 살짝 맛을 보았다.


“이거, 일반 물과 맛이 다르네요. 원래도 약수라서 정말 맑은 맛이 났는데 백탄을 담갔더니 물이 답니다.”


은은한 단맛과 깨끗한 맛이 한결 강했다.


시현은 우선 생강을 씻기 시작했다. 무게 한 냥 반이라 했으니 지금 기준으로 환산하면 60그램 정도를 준비하면 된다.

이 생강은 며칠 전 시현이 약령시에 들렀을 때 송홧가루를 사면서 함께 사 온 것인데 품질이 매우 좋고 매운 향이 강했다.

보이지 않는 책에 적힌 환상의 요리를 처음으로 해 보는 거라 생강 하나를 씻는 것에도 온 정성을 다했다.


껍질을 벗기고 얇게 저민 생강을 숯으로 정화한 찬물 다섯 홉 반, 그러니까 1리터 정도를 부어서 은근한 불로 달였다.

생강 향이 우러나오도록 푹 달인 후 은롱을 불렀다.


“은롱아, 이번에 받은 서천꽃밭의 소리꽃을 써야 해.”


기다리고 있던 은롱이 작은 단지를 내밀었다.

어항처럼 투명한 단지 안에 물처럼 보이는 액체가 차 있는데 꽃 세 송이가 달린 나뭇가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은방울꽃을 닮은 꽃가지가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단지는 그림으로 그린 달항아리처럼 아름다웠다.


은방울꽃보다는 좀 크고 종처럼 생긴 소리꽃의 꽃송이는 특이하게도 흰 꽃잎과 붉은 꽃잎이 섞여 있었다. 대개 흰 꽃에는 흰 꽃잎만, 붉은 꽃에는 붉은 꽃잎만 있을 텐데 이 꽃은 한 송이에 두 가지 색이 공존했다.

꽃 한 송이에 흰 꽃잎이 네 장, 붉은 꽃잎이 두 장 있었다. 시현이 조심스럽게 흰 꽃잎 세 장과 붉은 꽃잎 한 장을 떼자 은롱이 꽃가지를 받아서 얼른 단지에 넣고 봉인했다.


“이렇게 해 두면 상하지 않거든. 나중에 또 쓸 수 있어.”


시현은 우려낸 생강 물에 꽃잎을 넣고, 소리꽃의 꿀 반 홉을 넣었다.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신중하게 재료를 배합하는 시현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송 솟았고, 손에서는 반짝반짝 은은한 아우라가 피어올랐다.


“형 손에서 피어나는 아우라가 점점 더 빛깔이 좋아지네.”


은롱의 말을 들은 시현이 손을 눈앞에 들었다가 아쉬운 듯 내렸다.


“그래? 나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한테는 보이지 않네.”


불 조절을 하면서 이 각(삼십 분) 동안 잘 우린 후 식혀서 면보에 걸러내었다.


“지금도 향이 좋은데 배를 넣으면 더 향기롭겠지.”


한 알 남겨두었던 이무기 산의 배를 쪼개서 후추를 박아 넣고 뭉근히 달인 뒤 식혔다.

서천꽃밭에서 보내온 울음울꽃의 씨앗과 웃음웃을꽃의 꽃술을 넣어 마무리.


“자, 이제 씨앗과 꽃술의 약성이 잘 우러나도록 반나절 정도 두었다가 확인해 보면 될 거야.”


정성껏 만들었지만 과연 제대로 된 환음향설고가 만들어졌을지는 시현으로선 알 수 없었다.

은롱이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까 기다려 볼 수밖에.


“이대로 두고 내일 아침에 와서 봐. 그럼 확실히 알 수 있어.”


벌써 해가 저물 때가 다 되었기에 시현은 그대로 퇴근했지만 과연 제대로 된 향설고가 나왔을지 몰라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고조부의 비법 요리를 한 건데, 신비한 재료들을 사용해 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거의 잠을 못 자고 아침 일찍 죽림으로 달려갔는데 은롱이 폴짝거리며 그를 맞았다.


“어서 와, 형아, 나도 궁금해서 아침부터 살펴봤는데······.”

“응, 어때?”


정확한 것은 실제로 실어증 환자에게 써봐야겠지만 은롱이 구미호의 능력으로 향설고의 효능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어서 오게. 자, 먼저 커피부터 한 잔 들게나.”


금손의 말에 이어 세나가 커피잔을 내밀었다.

왜들 말을 안 하고 자꾸 뜸을 들이지. 제대로 안 만들어졌나?


시현은 커피잔을 받아들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처음이니까 잘 안됐을 수도 있지. 하지만 조리법을 알고 재료가 있으니까, 그리고 읽을 수 있다는 건 만들 자격도 있다는 거랬으니까. 안 되면 다음에 다시 해 보지 뭐.


“은롱아, 어때?”


그래도 내심 기대를 담고 은롱을 향해 물었더니 은롱이 대답했다.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봤거든. 맛을 살짝 보고 구미호의 힘을 동원해서 확인해 봤는데······.”


은롱이 조금 미안한 듯 어깨를 으쓱하는 걸 보고 시현은 풀이 죽었다. 역시 잘 안됐구나.


“귀한 재료를 제공해 줬는데 미안······.”

“됐어, 형아, 됐다고!”

“응?”


은롱의 말에 이어 금손과 세나도 손뼉을 쳤다.


“첫 번째 신비의 요리 성공을 축하하네.”

“축하합니다!”

“어······.”


시현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고 금손과 은롱이 웃음을 터뜨렸다.


“형아, 됐다니까. 형아가 환음 향설고를 만들었어!”


은롱이 생글 웃으며 향설고가 든 용기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형아 고조부가 만든 향설고보단 좀 못하긴 해. 재료랑 조리법이 같다고 해도 아무래도 조리할 때 똑같을 순 없으니까 이건 형아가 아직 요령이 부족해서 그런 거겠지.”

“음, 송윤수는 아무래도 고유 기운이 치유 쪽으로 발달해 있었으니까 그 부분은 시현이가 따라가기 어렵겠지. 하지만 시현이가 가진 고유의 기운은 내가 보기엔 윤수보다 더 나은 감이 있으니 수행을 좀 더 하면 할수록 능력이 더 강해질 거라고 보네.”

"그래도 처음 만든 게 이 정도면 진짜 잘한 거야. 대단해 형아!"


시현은 실감이 나지 않아서 향설고 용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설마 했는데 진짜 됐다. 내가 환음 향설고를 진짜 만들었어.’


은롱이 시현의 허리춤을 톡 치는 바람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이걸 보관하려면 환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옛날 송 숙수는 이걸 갈아서 환으로 빚어 보기도 했다지만 죽림에서 보관하려면 역시 내가 하는 게 낫지.”


은롱이 뭔가 뿌듯한 어조로 말하면서 향설고를 담은 용기 뚜껑을 열었다.

재주를 한 번 폴짝 넘고 여우로 변신한 은롱은 몽로를 뽑아낼 때처럼 향설고 그릇 앞에 앉았다.

은롱의 이마에서 은빛 아우라가 흘러나와 향설고 그릇을 감쌌고 그릇 안에서 향설고가 회오리치듯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은롱과 향설고 그릇 주변의 안개가 걷히자 향설고 그릇 안에는 옅은 자주색을 띤 환 네 알이 남아 있었다. 형태는 몽로와 비슷한데 투명한 몽로와 달리 불투명한 환이었다.


“배가 하나뿐이라 환이 네 알 나왔네. 그래도 보통 사람은 이거 한 알이면 충분하니까, 가을 되고 배가 많이 나오면 그때 좀 더 만들어줘, 형.”


배는 굳이 이무기 산의 배가 아니고 보통 배라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가을에는 더 좋은 향설고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세나가 응원하듯 말하자 시현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송가미록 비밀의 요리, 드디어 한 가지를 해냈다. 고조부가 만든 것보다 효능은 떨어진다지만, 그래도 만들 수 있었어!

새삼 자기 손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


“자네 그 사장님은 차도가 좀 있으시다던가?”


금손이 물었고 시현은 보고 있던 조리서에서 고개를 들었다.


“예. 지난번 송화편이랑 송화다식을 드시고 나서 조금이지만 차도가 있으시다 해서, 새로 또 해드리려고 해요. 이번엔 신목의 송홧가루 양을 조금 늘려서 만들어 볼까 합니다. 같은 걸 또 드리면 물릴까 봐 다른 종류의 떡으로 시도해 볼까 싶어요.”

“흠, 떡 좋지.”


금손이 분홍색 혀를 내밀어 입가를 살짝 핥고는 침을 꼴깍 삼켰다.

시현이 책을 놓고 금손을 쳐다봤다.


“혹시 뭐 드시고 싶은 간식 있으세요?”

“으응.”


금손이 조금 멋쩍은 듯 목을 가르릉 울리자 시현이 싱긋 웃었다.


“말씀해 보세요.”

“음, 먹어 본 지 아주 오래된 거라 가끔 생각나는 게 있긴 한데.”


시현은 읽고 있던 송가미록의 후식 부분에 잠깐 눈길을 주었다. 금손이 옛날에 먹었던 거라면 역시 궁중 과자겠지? 잡과병이나 서여향병 같은 거려나.


“저기 말이지, 카스텔라인데.”

“카스텔라요?”


작가의말

qa**** 님, 따뜻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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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35. 가수저라(加須底羅) +6 24.06.29 255 35 13쪽
» 34. 환음 향설고 +6 24.06.28 312 36 12쪽
58 33. 송화다식(2) +13 24.06.27 347 38 13쪽
57 33. 송화다식(1) +8 24.06.26 365 37 13쪽
56 32. 송화 +9 24.06.25 388 37 12쪽
55 31. 가지 누르미 +10 24.06.24 402 38 13쪽
54 30. 첫 번째 선물(2) +7 24.06.22 451 47 12쪽
53 30. 첫 번째 선물(1) +5 24.06.21 447 43 12쪽
52 29. 수제비(2) +10 24.06.20 445 44 12쪽
51 29. 수제비(1) +6 24.06.19 449 45 12쪽
50 28. 노리개(2) +8 24.06.18 454 40 12쪽
49 28. 노리개(1) +8 24.06.17 457 44 12쪽
48 27. 콩나물밥(2) +5 24.06.16 456 40 13쪽
47 27. 콩나물밥(1) +6 24.06.15 512 37 12쪽
46 26. 조우 +7 24.06.14 516 37 12쪽
45 25. 맥적(4) +9 24.06.13 509 39 13쪽
44 25. 맥적(3) +4 24.06.12 508 36 12쪽
43 25. 맥적(2) +6 24.06.11 509 34 12쪽
42 25. 맥적(1) +8 24.06.10 522 40 12쪽
41 24. 고종 냉면(3) +6 24.06.09 528 36 12쪽
40 24. 고종 냉면(2) +6 24.06.08 525 39 12쪽
39 24. 고종 냉면(1) +7 24.06.07 525 37 11쪽
38 23. 향설고 +6 24.06.06 534 43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538 43 13쪽
36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542 41 12쪽
35 21. 나미와 미미(2) +7 24.06.03 545 42 11쪽
34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547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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