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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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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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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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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7. 콩나물밥(2)

DUMMY


“오스키친 갔다 왔어?”

“응, 이번에 수행 통역 맡은 독일 고객이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모시고 갔었지.”

“어떻든? 소문대로 좋더나?”

“식당 근사하고 음식도 화려하고 약 탄 것 같다는 소문대로 맛도 좋더라. 손님도 감탄하면서 드셨고.”


주호는 콩나물밥을 입안으로 몰아넣으면서 말했다.


“특별한 날 큰맘 먹고 먹으러 갈만해. 좋은 경험이었어. 그치만 난 우리 시현이가 해주는 콩나물밥이 더 좋다!”

“요리가 다른데 비교할 수는 없지. 나도 공부 삼아 한번 가보긴 해얄 텐데.”

“되게 비싸더라 야.”


따끈따끈하고 아삭아삭한 콩나물밥을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닥닥 긁어먹은 주호가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 고객 때문에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온 거야.”

“엉, 뭔데?”

“그 고객이 호텔이나 유명 식당 말고 한국 집밥을 먹어 보고 싶대. 그리고 특별히 먹어 보고 싶은 음식이 있다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너라면 알까 싶어서.”

“?”

“음식 이름이 새 이름이라는데 짐작 가는 게 없어서 말이지. 나랑 같이 가서 얘기 좀 들어봐 줄래?”


영어 번역을 하는 주호는 통역 일도 겸하고 있는데, 이번에 일주일간 오스트리아에서 온 미술관 관장의 수행 통역 일을 맡았다.

새로 설립된 미술관의 개관 행사에 초대되어 강연을 하게 된 요한 브랜틀리 관장은 독일인이지만 영어가 능해서 강연도 영어로 하기로 했기에 영어 통역이면서 독일어도 좀 하는 주호가 섭외된 것이었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는데 의외로 우리 음식을 잘 드시더라. 콩나물도 맛있다면서 잘 드시고. 그런데 집밥을 먹어 보고 싶어 하셔.”

“집밥이 뭐 별건가, 요즘은 집밥처럼 나오는 음식점도 꽤 있잖아? 그런 데 모시고 가보지 그래.”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우리 고용주가 아주 고지식하잖냐. 귀한 손님이니까 웬만하면 요구사항 다 들어주고 싶어 하거든. 정작 브랜틀리 관장은 그렇게 까다롭질 않은데. 집밥 얘기도 그냥 한 것 같고. 그런데 그 새 이름 요리는 진짜로 바라는 것 같아서 뭔지 찾아 주고 싶어.”

“새 요리?”


시현은 속으로 새 요리 몇 가지를 떠올려 보았다.


“너무 정보가 없는데?”

“나중에 내가 좀 더 자세히 물어볼게. 그건 그렇고 너 집밥 한번 해줄 수 있냐? 우리 집이나 영우네 집에서?”

“내가 가서 하면 출장 요리지 집밥이냐?”

“부탁 좀 할게, 집밥 스타일로 해줘. 우리 엄마는 대구에 계시고 영우네 엄마는······, 부탁하기 어렵잖아.”


주호의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지만 대구 본가에 계시고 영우네 어머니는, 음, 아무리 집밥이라 해도 외국 손님 대접하기에는 요리 솜씨가 좀 부족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그래, 너희 집 가서 해줄게.”


그래서 주호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작은 식사 자리가 성사되었다.

테마가 ‘집밥’이라 시현은 너무 모양내지 않고 소박한 한 상을 구상했다.


요한 브랜틀리 관장이 독일인인데도 김치도 잘 먹고 비빔밥도 잘 먹더라 하기에 특별히 외국인을 배려한 음식을 놓지는 않았다.

불고기, 비빔밥, 잡채 등의 요리는 이미 호텔과 식당에서 먹었다기에 배제하고, 콩나물을 좋아하더라는 주호의 말을 참고해서 콩나물밥, 두부탕, 배추김치, 김치찌개, 조기구이, 북어조림, 콩나물무침, 취나물, 오이볶음, 부추전 등으로 상을 차렸다. 그리고 식후에 누룽지와 숭늉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주호가 모시고 올 손님은 아르 브뤼(Art Brut) 미술로 유명한 ‘마리아 G’ 미술관의 관장 요한 브랜틀리 박사였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G 미술관은 원래 정신병원이었다. 치료의 일환으로 입원 환자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가 효과가 좋아 미술치료센터를 운영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별도의 미술창작센터를 열게 되었다.


이번에 그가 내한해서 강연 및 그림 소개 등을 맡게 된 전시회는 국내에 새로 설립된 푸른비 미술관의 개관 전시회인데 대형 병원의 후원을 받아 개관하는 미술관이라 첫 전시회를 아르 브뤼 전시로 잡았다.


시현이 미리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주호가 호텔에서 브랜틀리 박사를 모시고 왔다.

옅은 금발에 오십 대 후반 정도, 온화해 보이는 중년 신사였다. 독일인이라 몸집이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선이 가늘고 체격이 작았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요한 브랜틀리입니다.”

“안녕하세요. 송시현입니다. 주호 친구고 오늘 식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브랜틀리 관장은 영어가 유창했고, 통역인 주호가 옆에 있는 데다 시현도 간단한 회화 정도는 가능해서 식사는 무리 없이 잘 진행되었다.

음식에 호기심이 많은지 식사 중에도 조리법이나 재료 등에 대해 질문을 하곤 했다.


“관장님은 서울이 처음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일본에는 세 번쯤 다녀갔고 중국도 갔었는데 어쩐지 한국엔 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는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창밖을 내다보며 어딘가 아련한 눈을 했다.


“하지만 말은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절친했던 한국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관장님은 한국이 처음이라고 하셨는데도 김치도 잘 드시고 찌개도 잘 드시네요. 젓가락질도 능숙하시고.”


시현의 말에 브랜틀리 관장은 빙그레 웃었다.


“한국은 처음이지만 한식은 어릴 때부터 먹어봤거든요. 진짜 한식과는 좀 다른 독일식 한식이긴 했지만.”


그는 천천히 시현의 반찬을 고루 맛본 후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저는 편부슬하에서 자랐습니다. 형제자매도 없는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많이 외로웠습니다. 그때 저를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돌봐주신 분이 계셨어요.”


브랜틀리 관장이 자란 독일 남부 지역의 작은 마을에 딱 한 명의 한국인 여성이 있었다.


“예전에 간호사로 독일에 와서 일하셨던 분인데, 그때는 독일 남성과 결혼해서 남편의 고향에 와서 살고 계셨지요. 아이가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제가 엄마가 없는 게 안쓰러워 그랬는지 저를 잘 챙겨 주셨어요. 옷도 꿰매 주고 아버지가 늦게 오시는 날이면 집에서 재워 주기도 하고 틈만 나면 불러다 밥을 먹이고 그랬지요.”


그는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한 눈으로 웃었다.


“요리 솜씨가 그렇게 좋지는 않으셨지만.”


브랜틀리 관장의 표정이 어찌나 따뜻한지 통역하던 주호도 그의 말을 들은 시현도 절로 미소를 지었다.


“김치도 그 댁에서 처음 먹었습니다. 독일 배추는 너무 크고 뻣뻣해서 아무리 소금물에 오래 절여 놔도 숨이 죽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시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재료를 구할 수 없어 진짜 한식을 먹이지 못한다고 아쉬워하셨어요. 뮌헨 같은 대도시에 나가면 한식집이 있기야 하겠지만 멀기도 하고 너무 비싸다고, 언젠가 한국에 같이 가서 진짜 소박하고 맛있는 한식을 먹이고 싶다고 그러셨지요.”


관장은 고개를 숙였다.


“결국 같이 오지는 못했지만요.”


혹시 그분은 돌아가신 건가? 시현은 조금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숟가락질만 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유명하다는 식당도 가보고 호텔 음식도 먹었습니다만 오늘 식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관장은 마지막 콩나물무침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콩나물무침이나 콩나물국은 먹어 봤지만 콩나물밥은 처음 먹는데 정말 맛있네요. 아까 말씀드린 한국 아주머니가 집에서 콩나물을 길렀거든요. 물을 주면 쑥쑥 자라는 게 신기했어요. 제가 물을 준 적도 있습니다. 처음엔 콩나물 맛을 몰랐는데 몇 번 먹다 보니 좋아하게 됐어요.”


그는 숭늉 그릇을 내려놓았다.


“한국에 오면 먹어봐야지 했던 걸 다 먹는 것 같네요. 이 물도 정말 구수하고 맛있습니다.”


시현은 브랜틀리 관장에게 숭늉을 한 그릇 더 떠주면서 물었다.


“그런데, 주호에게 듣기로 드시고 싶으신 새 요리가 있다고 하셨다면서요? 제가 준비해 드리고 싶었는데 정확히 뭔지 몰라서 오늘은 준비를 못 했습니다.”

“아아······.”


주호의 통역을 들은 브랜틀리 관장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지나가는 말로 한 이야긴데 주호 씨가 기억하고 계셨군요.”


브랜틀리 관장은 숭늉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도 골고루 먹어봤고 가보고 싶었던 고궁이나 골동품상, 미술관도 잘 보았습니다만 아직 풀지 못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걸까요?”

“어렸을 때 절 돌봐주신 한국 아주머니가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분은 지금 요양소에 계십니다.”

“······.”

“김명자라는 분인데, 헌팅턴 병(Huntington's disease)이라는 병을 앓고 계십니다. 알츠하이머와 더불어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에 속하는 병이지요. 진행은 느린 편이었지만 자식처럼 여기시던 저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신 지 오래되었습니다. 남편도 일찍 돌아가셔서 혼자시고요.”


브랜틀리 관장은 항상 들고 다니는 낡은 가방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미술관 관장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칠 년쯤 전인가, 요양소에 들어가셨는데 그때 이미 저를 알아보지 못하셨지요.”


그때 브랜틀리 관장은 업무적으로도 생활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을 때였다.

삶의 굴곡에서 지칠 때면 가끔 그녀를 찾아가 위로를 받았던 습관대로 그녀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들고 요양소를 찾아갔었다.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낯선 사람을 대하듯 공손하게 인사했지만 그가 앉아 있는 동안 찰흙을 만지면서 계속 뭔가 요리하는 흉내를 냈다.

요양소에는 환자들을 돕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도구나 요리도구들이 준비되어 있다. 요리도구는 진짜가 아니고 아이들의 소꿉놀이에 쓰는 장난감처럼 모형 레인지지와 식기들, 찰흙과 밀가루 반죽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김명자 씨는 헌팅턴 병으로 인해 인지 능력이 떨어졌고 손의 움직임도 불편했으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찰흙을 반죽한 뒤 쪼개서 냄비에 넣으며 가끔씩 브랜틀리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자신의 기준으로 요리가 끝났는지 명자 씨는 그릇을 브랜틀리에게 내밀면서 천진하게 웃었다.


“손님, 이거 먹어.”

“고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음식이에요?”


브랜틀리 관장이 묻자 명자 씨는 고개를 양쪽으로 갸웃갸웃하다가 말했다.


“어렸을 때 먹었던 거. 근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나. 새 이름이랑 비슷했는데.”


명자 씨는 어린애처럼 뺨을 부풀리더니 말했다.


“어릴 때 밥 대신 너무 많이 먹어서 큰 뒤에는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인제 먹고 싶어. 우리 요하니도 먹이고 싶고.”


브랜틀리 관장은 명자 씨의 손등을 살짝 쓸었다.


“명, 제가 요하니예요. 모르시겠어요?”


명자 씨는 멍하니 브랜틀리 관장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니야, 우리 요하니는 이렇게 크지 않아. 수염도 없고.”


어른이 된 요한의 기억은 명자 씨에겐 없는 걸까.


“제가 이번에 한국에 오기 전에도 요양소에 들렀었습니다.”


브랜틀리 관장은 명자 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명, 저 이번에 한국에 가요. 옛날에 저한테 한국 얘기 많이 해주셨지요? 밥도 해주시고 김치도 해주시고. 저 이번에 가서 한국 음식 많이 먹고 올게요. 고궁도 보고 골동품도 보고 옛날에 명이 살았다는 동네도 가보고 사진 찍어 올게요.”

“응. 그것도 먹고 와.”


명자 씨는 그거라고만 말했지만 브랜틀리 관장은 그게 명자 씨가 말하던 새 이름 비슷한 요리라는 걸 알아들었다.


“예.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브랜틀리 관장이 명자 씨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참이었다.


“잠깐만!”


명자 씨가 브랜틀리 관장을 부르더니 방 한쪽에 놓인 트렁크에 가서 뭔가를 뒤적거렸다.


“이거, 이거 갖다줘.”


한참이나 트렁크를 뒤적거리던 명자 씨의 손에 끌려 나온 것은 아주 낡은 노리개였다. 백동 몸통은 괜찮았으나 수실은 다 해어져 나들나들했다.

명자 씨는 주춤주춤 어렵게 브랜틀리 관장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손에 노리개를 쥐여주었다.


“이거, 갖다줘. 꼭 돌려줘.”

“누구한테요?”


명자 씨는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지 입을 오물오물하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여우, 전당포, 언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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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9. 수제비(1) +6 24.06.19 418 44 12쪽
50 28. 노리개(2) +8 24.06.18 424 39 12쪽
49 28. 노리개(1) +8 24.06.17 427 43 12쪽
» 27. 콩나물밥(2) +5 24.06.16 425 38 13쪽
47 27. 콩나물밥(1) +5 24.06.15 482 36 12쪽
46 26. 조우 +7 24.06.14 488 36 12쪽
45 25. 맥적(4) +9 24.06.13 480 38 13쪽
44 25. 맥적(3) +4 24.06.12 480 35 12쪽
43 25. 맥적(2) +6 24.06.11 481 33 12쪽
42 25. 맥적(1) +8 24.06.10 488 39 12쪽
41 24. 고종 냉면(3) +6 24.06.09 494 34 12쪽
40 24. 고종 냉면(2) +6 24.06.08 493 38 12쪽
39 24. 고종 냉면(1) +7 24.06.07 493 36 11쪽
38 23. 향설고 +5 24.06.06 500 42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504 42 13쪽
36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510 40 12쪽
35 21. 나미와 미미(2) +7 24.06.03 511 41 11쪽
34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513 39 12쪽
33 20. 경성 오므라이스(3) +6 24.06.01 524 47 11쪽
32 20. 경성 오므라이스(2) +6 24.05.31 524 4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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