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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보통 운이 아니잖은가?"
"이런, 설마 내가 그 정도에 당할 거라고 본건가?"
라이너 후작은 혼파로에게 웃으며 말했다.
라이너 후작과 혼파로가 이끄는 젊은 무리는 몬스터 토벌을 끝내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다만 그 방향이 뮨족의 마을이 있는 곳이 아니라 북쪽, 라이너 후작의 요새가 있는 곳이었다.
"아무리 대마루급의 실력을 가진 자네라도 그때 그 상황은 운이 좋았다고 보네!"
"허허허."
라이너 후작은 그저 웃어 넘겨야 했다.
뮨족이 말하는 대마루급의 실력이라면 마스터급의 실력이었다. 그러나 에덜라드에서 지금의 라이너 후작은 서부의 대 귀족으로 선대나 선선대의 라이너 후작과 달리 무력이나 검술에는 별 소양이 없는 것으로 알려 져 있었다.
"하지만 킬러 고릴라 떼는 확실히 좀 무섭기는 했지…."
남북으로 나뉜 서부 산맥의 서남쪽은 오크가 많지 않았다. 주로 나타나는 몬스터는 스캐빈저라는 커다란 쥐 모양이 몬스터와 그놈들을 사육해서 타고 다니는 고블린 떼가 많았다. 그러나 소형 몬스터가 많은 만큼 대형 몬스터인 오거도 심심찮게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진짜 위험한 녀석들은 따로 있었다.
"그래도 저건 제법 돈이 될 걸? 어때? 누이들에게 선물 같은 거라도 살까?"
라이너 후작이 가리키는 수례위에는 허연 털의 사람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커 보이는 고릴라 모양의 사체가 쌓여있었다. 잡기 어렵기로 유명한 킬러 고릴라였다.
올해 라이너 후작과 뮨족의 젊은이들은 몬스터 토벌 중 오거를 만났다. 고램이 없다면 기사들 십여 명이 협공을 해야만 잡을 녀석이었다. 하지만 마스터라면 달랐다. 마스터는 고램의 도움 없이 1대1로 오거와 맞설 수 있는 존재였다.
라이너 후작의 실력에 겁을 먹은 오거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 도망가던 녀석이 킬러 고릴라들의 운거지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놈들이 무서운 이유는 힘 좋고 영리하며 나무 위를 빠르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몬스터 중 가장 오러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뮨족의 여자들은 치장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잖은가?"
"그래 알지, 그러니 뭘 좋아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야."
"그러고 보니 대마니께서 새로 향로가 필요하신 거 같더군."
"하하, 고작 향로? 혼파로, 저걸 팔면 얼마나 돈이 될지 모르는 건가? 아니면 향로를 한 1천개쯤 사다 드릴까?"
"…라이너, 난 아직도 너희들이 말하는 그 돈을 잘 모르겠다. 자네는 왕이 될 텐데 그래도 그게 필요한가? 너희들이 말하는 왕은 그 돈이라는 걸 잔뜩 가지고 있어야 될 수 있는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라이너 후작은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고민스러웠다. 같이 자라오면서 자신은 이들의 문화를 이해했지만 뮨족은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고수했다.
"자네는 대마니에게 왕이 될 것으로 예언 받았고 대마루급의 실력도 있고 또 자네를 따르는 전사들과 철거인도 그리 많잖은가? 더욱이 웨스터랜드 제국에서도 자네를 왕으로 해 주겠다는데 뭐가 더 필요한 건가?"
라이너 후작은 이들에게 왕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이들은 왕이라는 계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혼파로, 저 녀석들을 잡을 때 내가 쫓던 오거도 같이 싸웠지?"
"…그랬지."
라이너 후작에게 쫓기던 오거는 킬러 고릴라의 영역에 라이너 후작과 같이 들어서자 일단 킬러 고릴라부터 상대해야 했다. 오거가 자신을 쫓던 마스터의 인간과 손을 잡고 상대해야 할 만큼 킬러 고릴라들은 위험한 놈들이었다.
킬러 고릴라는 몸집이 작은 인간보다 7m에 달하는 오거를 먼저 집중 공격했다. 나무위에서 오거의 머리와 어깨 등으로 몇 마리가 뛰어내려 공격하자 정신을 잃은 오거가 킬러 고릴라 몇 마리를 머리에 얹은 체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곳이 라이너 후작의 발치였다. 라이너 후작이 쓰러진 충격으로 정신이 없는 킬러 고릴라와 함께 정신을 잃은 오거까지 순식간에 베어 넘겼다. 그런데 또 하필이면 그에게 목숨을 잃은 킬러 고릴라 중 무리의 우두머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몬스터의 특성상 우두머리를 잃자 킬러 고릴라들도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스터라도 위험할 순간 이었다.
그것을 두고 혼파로는 라이너 후작에게 운이 좋다고 한 것이었다.
"놈이 킬러 고릴라와 싸우다 우연히 나를 구했다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가 가진 뛰어난 능력을 인정해서 한 행동은 아니겠지?"
"그렇지."
"왕이라는 건 말이야 힘으로 눌러서 되는 것이 아니야. 철거인이나 전사가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 돈이나 다른 누군가의 인정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저 오거같은 녀석들마저도 우연히 그러게 행동하는 게 아니라 충성심으로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만드는 그런 게 필요하지. 이해가 되는가?"
"…오크들처럼 오거를 사육하겠다는 건가?"
"푸하하! 안되겠군, 그만하자구. 도저히 자네를 이해시킬 말이 생각나질 않네."
결국 포기한 라이너 후작은 도착한 요새로 뮨족의 젊은이들과 들어섰다. 이제 이곳에도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이슨 백작가의 차남인 조지입니다."
조지가 정중하게 아이샤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샤가 답례를 하고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슷한 나이 대였지만 아이샤는 소년들에 비해 훨씬 어른처럼 느껴졌다. 아이샤는 소년들을 하나씩 일일이 만나며 말을 건넸다.
"칼 맥퍼슨 입니다."
칼이 인사를 하자 아이샤는 친근하게 아는 체를 했다.
"그때 제대로 인사를 못했죠? 목숨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저야말로 아이샤님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겁니다."
그러자 소년들이 놀라서 칼에게 몰려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칼? 아이샤님의 목숨을 구했다니?"
"아니 그게, 어쩌다 보니…."
소년들이 요란을 떨자 아이샤의 뒤에서 호위하던 로렌스 백작이 호통을 쳤다.
"이 녀석들! 아직 아이샤님과 얘기 중이잖은가? 예의를 지켜야지!"
그러자 소년들이 다시 후다닥 흩어졌다. 영락없는 또래소년들의 모습이었다. 아이샤는 미소를 띠며 다음 소년들의 인사를 받았다.
아이샤는 맥티어넨과 맥스 등 얼굴을 기억하는 소년들과는 간간히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쌍둥이들의 차례였다.
"라이트먼 가의 케드릭 입니다."
"세드릭 라이트먼 입니다."
그러자 아이샤는 갑자기 얼굴빛이 어두워 졌다.
"라이트먼가 라면 이번 고램을 되찾은?"
"예, 아이샤님 덕분에 이번에 영주기와 선선대의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답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소년들은 다들 좀 전의 콩 조각이 묻은 케드릭의 장난 섞인 대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진지한 쌍둥이들의 행동이었다. 반대로 아이샤의 얼굴은 어두웠다.
"아뇨, 오히려 제가 두 분에게 사과를 해야 할 거 같군요."
"예?"
"결국 여러분의 영지를 찾지 못했으니…."
"아! 아닙니다. 어차피 저희는 영지에 대한 기억도 없는걸요…."
"그럼요. 아이샤님 덕분에 그곳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습니다."
그런 쌍둥이들을 보며 아이샤의 얼굴은 더더욱 굳어졌다. 두 소년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마음속에 있던 괴로운 감정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올해 자신이 한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그 희생을 치러서 무엇을 건졌는지 원정에서 돌아오며 느꼈던 회의감이 되살아 난 것이었다.
마지막 소년과 인사를 마친 아이샤는 무리의 중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소년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여러분!"
"…."
소년들은 아이샤가 무슨 말을 해 줄지 기대감에 차 있었다.
"작년 그랜빌 에서부터 올해 원정까지 그동안 여러분들의 참여는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올해 까지 입니다! 앞으로는 학생들의 연합 군정에 참여를 절대 금하겠습니다!"
"예?!"
"그럴 수가?!"
갑작스런 아이샤의 발언에 소년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아이샤의 발언은 단호했다.
"다시 말하지만, 군무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까지 두 번 다시 여러분 학생들의 원정 참여를 불허합니다!"
"하지만 아이샤님!"
"그런!"
소년들의 불만에 찬 아우성이 잠시 이어졌다. 그러나 아이샤는 잠시 소년들의 소란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후 말을 이었다.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도 수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들이 목숨 바쳐 싸우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바로 여러분들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남부의 미래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학생들의 원정 참가는 엄금 하겠습니다. 대신…."
아이샤는 잠시 소년들을 쓱 훑어봤다. 소년들은 갑작스런 아이샤의 선언에 실망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둘러본 아이샤는 냉담한 얼굴에 잠시 미소를 떠올리더니 말을 이었다.
"군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면 얼마든지 환영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반드시 무사히 돌아와 주세요!"
아이샤는 소년들의 눈을 천천히 한명씩 바라봤다. 소년들은 아이샤의 눈에서 기대감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제 옆자리를 여러분을 위해서 비워 두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제 옆에 당당하게 서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아이샤는 짧게 인사를 하고는 호위들과 자리를 옮겨갔다. 멀어져가는 아이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부 소년들은 모두 가슴속에서 뭔지 모를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반드시 저 자리에 내가!'
모두들 그렇게 다짐하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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