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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연재수 :
2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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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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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3,839

작성
15.04.0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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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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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글자
9쪽

84. 2년째 겨울의 끝.

DUMMY



84


"조심해서 들어!"

네 명의 사네들이 덮어놓은 나무 뚜껑을 들었다. 확 덮쳐오는 열기에 향긋한 고기 향과 과일소스의 냄새가 배어 올랐다.

"오! 잘 익었는데?"

"자 벽돌을 치워!"

남자들이 지팡이를 들어 통돼지를 둘러싸고 있던 화덕의 벽돌을 하나 둘 치웠다. 돼지는 발라당 배를 내 놓고 뒤집혀 있었다. 잘 익어 갈색으로 번들거리는 껍질에는 기름이 흐르고 있었다. 통돼지의 드러난 배 속으로 삐죽이 닭이며 오리며 노르스름하게 익은 여러 가지 다른 고기들도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배속에 과일과 야채가 차 있어 통통하게 부풀어 있었다. 통돼지 주변에도 과일과 야채들이 잘 익은 채로 푸짐하게 쌓여있었다.

"자! 접시를 가져와!"

"예! 히히히."

돼지를 들어 올린 사람들은 곧 접시를 가지러 흩어졌다. 페어필드 노인이 곧 큰 칼을 들고 돼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장원의 마당은 잔치가 한창이었다. 헨리를 비롯한 올 겨울 장원에 머물 기사들도 가벼운 차림으로 테이블에 앉아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껍데기와 살코기에 지방까지, 겹 살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 큰 고기 한 덩어리가 소금 간만 한 채로 멀거니 삶아져 식탁 가운데 놓여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에덜라드에는 소금이 귀했다. 테이블 위에는 허옇게 삶겨 나온 김이 무럭무럭 나는 고기와 함께 그 귀한 소금이 올라와 있었다. 바다에서 난 소금이 아닌 북서부 산지의 암염이었지만 귀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마당에는 페어필드가 장원 인근의 소작농과 농노들도 불려왔다. 모두 이미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 크게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어쩌면 말이야, 조만간 펠릭스 도련님도 엑스퍼트가 될 거라는 징조 같은 거라니까?"

"요즘 학교 졸업생들 중 엑스퍼트로 졸업하는 생도 수가 어느 정도지? 여기 누구 학교 출신 없나?"

"바보! 그거 국가기밀이야!"

기사들은 연신 고기를 뭉텅 썰어 입으로 가져가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의 대상인 펠릭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인근 꼬마들에게 고기를 담은 접시를 나눠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웃고 있었다.


올해는 추수도 풍작으로 끝나고 오랜만에 펠릭스도 일찍 장원으로 와 있었다. 페어필드 영감은 기쁜 마음으로 크게 주변 사람들에게 베푼 것이었다.

집안 부엌에서는 세실리아가 잘게다진 고기와 야채 그리고 소금과 향료들을 섞은 재료를 치대고 있었다. 겨울 저장용 소시지를 만들던 참이었다. 세실리아는 문득 창문 밖을 바라봤다. 마당의 풍경을 살펴보던 세실리아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틈에서 아들의 얼굴을 발견했다. 세실리아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한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펠릭스가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세실리아는 그냥 혼절하고 말았다. 다행이 펠릭스는 멀쩡하게 장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세실리아는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을 쓸어내렸다.

"뭘 그렇게 정신없이 쳐다보는 거니?"

"펜, 오라버니…."

세실리아는 뒤돌아서 다가온 오빠를 바라봤다. 눈에 눈물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세실리아가 보던 창밖을 살피던 펜은 곧 여동생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펠릭스는 괜찮을 게다."

"흑!"

그러나 세실리아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펜은 그녀를 가만히 안아 다독여 주며 말했다.

"최근엔 서자라도 그렇게 험한 일을 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더라. 더욱이 기사들의 말을 듣자니 일리아드 남작도 나름 펠릭스를 신경 써 주고 있다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하지만, 너무 불안해요. 저 아이가 군대에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죠? 남작부인이 행여 나쁜 마음이라도 품으면 어쩌죠? 당장 내년에 또 몬스터 토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괜찮을 거다. 믿자! 저 녀석은 반드시 무사히 돌아올 거다!"

세실리아와 펜은 슬픈 눈으로 지긋이 마당의 펠릭스를 바라봤다. 올해 그 험한 경험을 하고도 펠릭스는 밝게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를 간 후로 펠릭스는 밝은 웃음을 짓는 모습이 부쩍 늘었다. 남작가에서 교육을 받고 있을 때 보다 성격도 밝아진 것 같았다.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귄 탓이겠지…."

펜은 펠릭스를 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부엌의 분위기는 아랑곳없이 마당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식 익는 향이 넘쳐나고 있었다.



"살아서 이곳을 다시 밟을 줄이야…!"

라이트먼 남작은 감격에 겨워 말에서 내려 땅에 입을 맞췄다.

전장을 정리한 아이샤들은 곧 부대를 재정비해 둘로 나눴다. 부상자들과 함께 남아있을 부대를 남기고 나머지 부대는 라이트먼 남작을 앞세워 과거 라이트먼 남작령의 수도로 향했다.

마을은 예상대로 폐허만 남아 있었다. 간간히 불타버린 가옥들 틈으로 상태가 괜찮은 건물이나 돌로 지은 망루 같은 것이 남아있긴 했지만 사람의 흔적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없어진지 오래였다.

아이샤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 라이트먼 남작가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이곳을 떠날 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죠."

남작은 아이샤와 로렌스 백작과 함께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저택의 주변을 돌고 있었다. 영주의 저택도 온전히 남아있지 못했다. 건물 외벽은 반쯤 무너져 있었다. 무너진 벽을 타고 넝쿨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지붕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불탄 자국이 창가마다 시커멓게 남아있었다. 다만 현관의 장엄한 하얀 대리석 기둥 둘만이 눈부시게 남아 영화롭던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잠시 사람들은 아련하게 영주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레 동행을 부탁해서 혹시 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걱정 했었습니다."

로렌스 백작이 말을 꺼내자 라이트먼 남작은 오히려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니요, 오히려 저 때문에 전투가 혼란스럽지는 않았나 싶어 부끄럽습니다."

"허허, 뭐 일단 크게 이겼고 제가 생각해도 아슬아슬 했지만 작전대로 되었으니 아무렴 어떻소?"

"허허허!"

"하하하!"

로렌스 백작과 라이트먼 남작은 마주보고 크게 웃었다.

사실 이번 원정에 라이트먼 남작이 동행할 계획은 아니었다. 때문에 작전회의에도 참여하지 않아 자세한 계획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이번이 태어난 고향을 볼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라이트먼 남작이 뒤늦게 무리해서 참가 하게 된 것이었다.

"성벽은 어느 쪽이었나요?"

말없이 따르던 아이샤가 물었다.

"저쪽 언덕에 외성벽이 있었습니다. 영지가 오크들에게 떨어지던 마지막 날 할아버지가 가문의 고램을 이끌고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 그리 나갔었죠."

"우선은 그쪽으로 가 보도록 하죠."

곧 부대는 언덕으로 방향을 돌렸다.

"원래 몬스터가 없었던 영지였던지라 외성벽도 없었는데 갑자기 몬스터들이 창궐하는 바람에 급조한 성벽이었죠."

"그때는 어디 남부에 그렇지 않은 곳이 있었겠습니까?"

로렌스 백작과 라이트먼 남작은 씁쓸하게 과거를 상기하며 언덕으로 말을 몰았다. 잠시 후 언덕으로 향하는 일행 앞으로 정찰병이 급히 돌아왔다.

"뭔가요? 몬스터인가요?"

아이샤가 긴장한 정찰병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그… 라이트먼 남작님."

"…?"

"먼저 가보셔야 하겠습니다."

정찰병은 의외로 지휘자인 아이샤가 아니라 라이트먼 남작에게 다가가 말을 전했다. 뭔가 느낀 라이트먼 남작의 얼굴빛이 변하더니 서둘러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아이샤와 다른 이들도 따라서 속도를 높였다.


"뭐라고 해야 할지…."

언덕아래에 도착한 로렌스 백작은 말에서 내려 언덕 위를 바라보고 있는 라이트먼 남작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뒤따라 도착한 아이샤와 기사들도 모두 말에서 내려 언덕 위를 숙연하게 바라봤다.

빨갛게 석양이 지고 있었다. 외성벽이 있었다는 언덕에는 돌무더기만 굴러 다녔다. 성벽은 이미 오래전에 파괴되어 흔적만 남은 상태였다. 석양을 가려 그림자를 만드는 유일한 물체는 성벽이 아니라 고램의 잔해였다. 허리부분이 언덕과 돌무더기에 묻혀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상채만 드러난 고램은 장갑의 일부분만 남아 뼈대가 다 들어나 있었다.

남아있는 좌측 견갑에는 수십 년의 세월에도 그려진 문장이 선명했다.

눕혀진 검 위로 세 개의 별이 그려져 있었다. 라이트먼 가문의 문장이었다.

"할아버지…!"

라이트먼 남작은 나지막이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30여 년 전 영지를 지키기 위해 당시 라이트먼가의 가주인 자신의 할아버지가 타고나갔던 라이트먼 가문의 영주 전용기였다.

그 세월 성벽도 영주저택도 마을도 다 무너졌건만 그럼에도 영주기는 영지를 지키려는 듯 남쪽을 향해 굳건히 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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