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그러나 정작 밧줄은 잡아당겨지지 않았다. 돌에 걸린건지 상대방의 몸무게가 어마어마한건지 팽팽하게 추켜올려져선 도저히 끌어당겨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밧줄을 쥐었던 손이 미끄러져 빠질 정도로 두 팔에 가해져오는 반발력은 그의 상상력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손바닥의 껍질이 벗겨질 것만 같은 마찰력이 제법 알싸한 고통으로 뇌리를 스쳐지나가니, 밧줄을 쥐었던 손이 절로 느슨하게 풀어지며, 그와 동시에 팽팽하던 밧줄이 힘없이 늘어뜨려졌다.
군생활을 해오면서 박힌 굳은살이 언제 이렇게 물렁해졌는진 비록 알 수 없었으나, 손가락 마디마디에 존재해야할 누런 살덩어리가 이젠 말 그대로 '살' 밖에 남지않았음을 새삼 깨달은 한서준은, 저도 모르게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굳이 막아서지 않았다.
어렴풋이 자신의 몸 이곳저곳이 예전만도 못하다는 것 쯤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굳은살마저 물렁하게 바뀌어버렸을 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난 10여년의 공백이 가감없이 드러난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로지 컴퓨터만 붙잡고 살아온 그에게는 응당 올바르게 일어난 '자연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아니, 말이 좋아 자연적인 현상이지, 사실 이건 노화나 다름없는 현상이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 그가 40대를 엿보는 나이라는 점은 결코 변하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운동은 커녕 수년간을 폐인처럼 틀어박혀지내 왔으니,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서서히 퇴화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막을 수 없는 '인간적인 노화' 의 특성이었다.
한서준이 다시금 푹 한숨을 토해내었다. 지금까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자신의 나이를 문득 떠올리자마자, 거의 반사적으로 터져나온 한숨이었다. 아무런 발전도, 성과도 없이 그저 10년 전의 모습 그대로, 그것도 다리 하나가 없어진 채로 이곳에 갇혀있다 생각하니, 감정의 구석구석에서 차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가긍함에서 비롯된 연민의 소치이기도 했다.
물론 자기 자신을 불쌍하다 여겨도 좋을만큼의 값어치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만큼의 인생으로 가꾸는데 필요한 약간의 필수 조건마저 뒷받침 되질 않았던 지난 10년을 고려해본다.' 라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따지고보면, 이 정도의 '한풀이' 는 그에게 어느정도 용납이 되는 수준의 재정비용 수단이었다.
한서준은 느슨하게 풀어놓았던 손에 재차 힘을 불어넣었다.
다시금 팽팽하게 치솟아오르는 밧줄의 모습과 더불어 미묘하게 진동하는 돌무더기의 모습이 거의 동시다발적인 현상으로 일어나 그의 눈동자를 콱 틀어쥐었다. 밧줄이 관통해버린 돌무더기의 특정 부근에서 떨어지는 잿빛 분가루가 마치 눈처럼 그 아래의 지형을 칙칙하게 물들여갔다. 여러번의 당김이 계속 될수록, 들썩이는 돌무더기와 흩날리는 돌가루들이 쉴세없이 그의 눈과 코, 그리고 목구멍을 마음껏 유린하듯 질척하게 매달려왔고, 진행이 전혀 되질 않는 밧줄의 어마어마한 반발력은 또다시 손을 헐겁게 풀어놓도록 화끈한 고통을 손바닥 전체에 균일하게 선사했지만, 이번엔 조금의 타협도 없이 우직하게 줄만을 잡아당기던 한서준은 느닷없이, 분명 사람 하나가 누워도 될 만큼의 거리로 떨어져있던 돌무더기가 어느샌가 코 앞까지 다가왔음을 퍼뜩 인식하곤, 그만 밧줄을 손에서 놓아버리고 말았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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