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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Messo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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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조회수 :
359,688
추천수 :
5,086
글자수 :
1,239,628

작성
16.11.29 09:08
조회
2,765
추천
43
글자
6쪽

동료

DUMMY

"알고 있겠지만 확률은 극악해.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지금의 일반적인 의료 기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하겠지."

툭 튀어나온 아랫배만큼이나 올록볼록한 주머니에 푹 한쪽 손을 찔러넣고, 코 끝을 찡그리며 나머지 한쪽 손으론 갈색 차트를 흔들어보인 중년의 남자가 돌연 차트를 뒤로 홱 던져버렸다.

이어 볼품없이 나동그라지는 차트의 소리와 더불어 흘러내린 원형테 안경을 거의 반사적이다 싶은 손놀림으로 밀어올린 남자는 푸짐한 몸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냉정한 시선으로 눈 앞의 '무언가' 를 훑어보다 마치 너스레를 떨듯,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를 피워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적' 이란 수식어가 붙었을 때의 이야기야, 친구.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정상적인 방법의 치료가 힘들거라는건 이미 예상은 하고 왔잖아? 그러니까 그 표정은 좀 풀어. 거, 사람도 잡아먹게 생겼네."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꽃병과 은근히 어울리는 과일 바구니 안의 귤을 꺼내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씹어가며, 두꺼비 같은 입술에서 주르륵 튀어나와 턱을 타고 흐르는 노란색 즙을 그저 손등으로만 슥 닦아낸 남자는 또다시 몽툭한 코 아래로 슬금슬금 엉덩이를 들이미는 안경을 재차 밀어올린 뒤, 반달 같은 이빨 자국이 선명한 귤을 내려다보다 이윽고 말을 이어붙였다.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다는건 잘 알아.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너 스스로가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있지. 굳이 내가 너한테 '이러저러하다, 때문에 뿅뿅을 해야한다.' 라고 말해줄 필요는 없다는 거야. 그래도 네가 원하니까 말해준다만은, 솔직히 지금 너는 이 귤과 같아. 예쁘게 껍질이 까져서 먹힌게 아니라 강제로 뜯어먹혀져서 제 모습을 찾기도 힘들지. 그러니까··· 약간의 형태를 구성할 수 있는 매개체가 아예 없어져버렸다고 해야하나? 쉽게 말하면, 음··· 넌 '바탕' 을 잃어버렸어. 그래서 아무리 채우고 채우도 그것을 담아낼 '바탕' 이 없기 때문에 다 줄줄 세고 마는거지. 좀 더 쉽게 말해줄까? 아주 좋은 예시가 있거든. 바로 마누라가 관리하는 내 월급 통장을 보면 돼. 정말 한순간에 사라져선 보이지도 않는다니까?"

끝에 다다라선 꽤나 자조적인 웃음을 흘려내며 손에 쥔 귤을 죄다 입 속에 쑤셔넣고 몇번 씹지도 않아 단번에 목 뒤로 넘겨버린 남자는 이곳이 무슨 제 집 냉장고라도 되는 것 마냥 익숙하게 탁자의 서랍장을 열어 미지근한 캔커피를 꺼내들더니, 마신다는 제스처로 '누군가' 에게 그저 한차례 흔들어보이고는 곧장 입 안에 가득 들이붓기 시작했다. 이미 주인의 허락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3분지 2 가량의 양을 한꺼번에 집어삼킨 남자는 이마저도 어느새 입을 타고 흘러 흰 의사 가운의 일부분을 갈색으로 물들여버리고 있음을 알아채곤 서둘러 주머니에 푹 박혀있던 왼손을 빼내 커피가 흘러내린 장소를 박박 문질러댔으나, 이미 흡수되어 한 몸 같이 변해버린 커피 얼룩이 고작 그런 행동으로 닦여질리가 만무했다. 오히려 퍼져나가는 전염병처럼 점점 세력을 확장시키는 시커먼 얼룩의 모습에 '카' 기묘한 감탄성을 내뱉은 남자는 여전히 자신을 응시하는 '무언가' 의 시선과 옥의 티 같은 얼룩을 차례로 쳐다보다,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한 한숨을 토해내었다.

"알겠다, 알겠어. 빨리 말해주마. 어디까지 말했지? 아, 그래. 그래서, 그 노력을 해도 '일반적인' 의학 지식으론 치료가 다 끝났다고 하는거다. 더 이상 뭘 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손도 대지 못하는거지. 어때, 간단하지? 그리고는 아주 간편하게 딱지나 한 장 붙여주고 퇴원시키는거야. '넌 이제 정상적으로 생활이 불가능하니까 이거라도 이마에 붙이고 있어. 그럼 널 불쌍하게 봐줄 사람들이 몇몇은 나오겠지. 걔네들한테 말해봐. 자기 좀 도와달라고.' 이렇게 말하는거지. 물론··· 음, 맞아. 그냥 내가 의사들을 싫어해. '의사' 라는 직책이 무슨 권력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것들이 많다니까? '내가 이러저러한 처방을 내렸으니 너는 닥치고 따라라.'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넘쳐난다는걸 알면 지금 밖에 있는 환자들이 뭔 생각을 하겠냐? 그래서 입 다물고 있는거야. 의사들이 환자를 무시한다는건 솔직히 좀 이슈거리가 될만한 것들이거든."

갈수록 말의 요지와는 동떨어진 잡담 비스무리한 말만을 내뱉으며 실컷 제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해낸 남자는 갑자기 자신에게 손짓하는 '무언가' 의 행동에 입을 꾹 다물고 한발짝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서, 가능성은?"

그리고 울려퍼지는 쇳소리가, 귀를 틀어막고 싶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순간 싸늘하게 병실 전체를 뒤덮어버리자, 남자는 목울대의 움직임마저 선명하게 드러나는 침을 저도 모르게 꿀꺽 삼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편안하게 자본 기억이 요 근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최고의 잠자리였다라고 해도될 만큼의 푹신함과 따뜻함 속에서 조용히 눈을 뜬 한서준은 거칠게 떨려나오는 숨소리가 흐릿한 정적만을 남기고 사라져감을 인식함과 동시에 아직 자신이 늑대의 뱃 속에 있지 않음을 깨닫고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늑대의 눈동자가 있을 장소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리 오래지 않아 늑대도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음을 알아챈 그는 재차 고개를 돌려 제법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다시한번 늑대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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