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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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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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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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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39,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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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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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글자
8쪽

동료

DUMMY

사람 한명이 간신히 들어가 서있기조차 힘든 좁디 좁은 창고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건지, 피가 끌려간 흔적의 크기만큼이나 덧없이 흔들거리는 창고의 문을 홱 열어젖힌 한서준은 곧 지하로 통하는 듯한 계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흠칫 멈춰서고 말았다.

물론 계단에까지 이어진 끈적한 핏자국들이 몬스터의 다음 이동 경로가 바로 이곳이라는 점을 가감없이 알려주고 있었지만, 그로써는 아무래도 무작정 내려가기가 영 꺼려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불편한 몸은 그렇다치더라도, 정작 그에겐 없고 몬스터에겐 있는, 그러니까, 이 지하실에 대한 '정보' 의 부재가 그의 발목을 꽉 붙들어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탓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만약' 이란 단어를 되풀이하며 끔찍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하는 이성적 사고방식에 꽁꽁 옭아져버린 몸이 스스로 행동에 통제를 둔 것 뿐이었다.

초인적으로 지진의 기운을 읽고 미리 대피하는 동물들의 능력과 같달까? 사실 어디에 더 가까운지 따져보면 그냥 '안전' 이란 이념에서 나온 일종의 윤리 의식 비스무리한 피상적 판단이었으나, 지금의 한서준은 그런 쓸모없는 관념의 흐름을 따라갈만큼 그리 유복한 상태가 아니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이런 극과 극을 달리는 사태와 직면할지도 모르는 터라 잠시도 망설일 틈이 없었고, 또 대책없이 쉴 틈도 없었다.

따라서 오직 몬스터의 살생 여부로만 머릿 속을 새빨갛게 덧칠해버린 한서준은 더 이상 아무 거리낌도 없이 계단에 손을 내딛는 자신의 몸에 따라 천천히, 허나 최대한 조심스럽게 한칸한칸 높이를 줄여나갔다.

그렇게 불과 몇 십초도 흐르지 않아 마침내 도착한 칙칙한 지하실의 케케묵은 먼지 냄새를 한껏 코로 들이킨 그는 의외로 밝은 빛을 뿜어내는 전등이 천장에 매달려 꽤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지하실 전체를 비추고 있음을 알아챈 뒤 바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정작 발견한건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죽어있는 몬스터의 시체였다.

눈알 한 쪽에 대검이 박힌 것도 모자라 파열 수류탄의 파편에 넝마가 된 몸 이곳저곳은 꿀렁꿀렁 아직도 피를 토해내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떨어져나갈 듯한 너덜너덜한 살점들은 여태 붙어있다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쇠구슬에 얻어맞고 날아간 돌출부의 상처에선 처음의 빨간색 피 대신 정체불명의 보랏빛 액체를 줄줄 흘려내고 있었는데, 필시 지독한 냄새가 날거라 예상한 것과 정확히 들어맞는 시큼한 냄새를 풍겨대는 몬스터의 사체에서 엉망진창이 된 대검을 다시 회수한 그는 마치 코를 비틀어 짜는 듯한 표독스런 냄새가 이젠 뇌까지 쿡쿡 쑤셔오는 기분이 들자, 서둘러 몬스터와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시취보다 더 끔찍한 냄새가 호흡마저 턱턱 막히게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거의 반강제적인 수단으로 지하실 안쪽까지, 초입 부근과는 달리 빛의 유입이 없어 새카만 어둠만이 짐승처럼 웅크린 구석에 도착한 한서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잠깐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려 입구와 다시 거리를 좁혀가기 시작했다.

후우욱.

순간 뒷통수가 간지러울 정도로 강하게 날아온 뜨끈뜨끈한 바람이 그의 발목을 붙잡지만 않았다면 아마 이미 입구에 도착했을 것이 분명했다.

한서준은 온 몸을 소름 돋게 만드는 무언가의 '숨결' 에 그만 석상 마냥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살기나 위압감 같은 그런 정신적인 강압이 아니라 '인간' 이란 동물의 본능이 자연스레 감응한 약육강식의 압박감이 절로 그의 몸을 약자로써 반응케 만든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죽는다. 이런 생각이 삽시간에 머릿 속을 뒤덮고 온 몸을 지배한 것도 모자라 신체의 제어권을 전부 빼앗아가버린 탓이었다.

식은땀이 흐르는게 신경 하나하나에 전해질만큼, 평소보다 몇 배로 확장된 감각들이 전해다주는 정보는 비록 '상대는 덩치가 크다.' 라는 약간 추상적인 견해가 전부였지만, 이건 다시말해 지금 뒤에 있는 무언가가 어떤 형태의 생물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미지에 대한 공포감을 뇌 속에 아로새기기엔 충분한 자극제라는 뜻이었음이다.

하지만 그런 몇 초간의 날선 대치 중에서도 그의 한쪽 상념에선 문득 궁금증이 하나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와서 침입자를 눈치채지 못했을리 없는 '무언가' 가 왜 자신을 공격하지 않냐는 원론적인 의문이었다.

굳이 정체를 확인하지 않아도 몬스터의 일종일게 분명한 어둠 속 생물체가 이제껏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는게 한서준에겐 오히려 의문으로 다가왔던 것이었다.

흥미가 없는걸까? 아니면 그냥 누가 온지도 모르고 잠을 자는건가?

사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지금의 상황은 그에게 아주 좋은 탈출의 틈이 될 수도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천천히 팔을 움직여 몸을 다시 뒤로 돌린 한서준은 그제서야 마주한 어둠 속 한쌍의 황금빛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 몸을 좀 더 움직여 아예 자리에 앉아버리고는 본격적으로 가만히 눈동자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크기가 어린아이의 몸집보다 더 큰 눈동자와 정면으로 시선을 맞부딪히며,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황금빛 물결 안에 '살기' 라는 위험 물질이 담겨있지 않음을 깨달은 한서준은 마치 보여준다는 식으로 공기총과 대검을 풀어낸 뒤, 흡사 눈동자에 빨려가듯, 혹은 그 부슬부슬한 빛에 홀린 사람 마냥 비척비척, 서서히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신마저도 어둠에 잡아먹혀갈 때 쯤, 뻣뻣하게 튀어나온 거친 잿빛 갈기털과 먼저 마주한 한서준은 그 아래 곧게 뻗어나온 커다란 발과 발톱 위에 어느새 자신의 손이 올라가있음도 알아챘지만, 그저 그 꺼끌꺼끌한 감촉을 손바닥 가득 담아내며 쓸어낸 그는, 의외의 침입자를 경계하는 듯한 거대한 잿빛 꼬리가 무슨 감각 기관처럼 자신의 몸 주변을 맴돌고 있음을 눈치챘으나, 여전히 살기가 없음을 다시한번 눈동자를 바라보며 인식하곤, 좀 더 몸을 움직여 이 알 수 없는 거대 생물체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물론 송곳 같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털이나 잿빛 갈기, 그리고 몸통에 비해 축 늘어진 꼬리 같은 걸로 보아 쪽지에 나와있던 '포장마차 같은 크기의 늑대' 임이 분명했기에 그리 훑어볼 필요는 없었으나, 지금의 그에겐 한가지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더할나위 없이 무거워진 몸을 뉘일 수 있는 안락한 장소. 이 장소를 꺼져가는 정신으로나마 늑대의 옆이라 정한 그였기에 잠시라도 몸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자위적인 수단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정확히는 더 이상 움직일 기운도 없이 삽시간에 늘어져버린 몸으로 어딘가 안전한 장소를 찾지 못할 것 같아 정한 이 장소에서 골아떨어지려는 자신의 안전에 대한 심리적 안정을 꾀하기 위한 핑곗거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뒷 일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안전하다 판단되는 늑대의 옆에서 잠을 자겠다는 의지를 굳혔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색을 하지 않았다곤 하나, 큼직큼직한 일들을 한꺼번에 소화해내기엔 그의 정신은 아직 썩어버린 사과요, 10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갓 부화한 병아리 수준이나 마찬가지란 소리와도 같았다.

결국 그렇게 스스로의 위안 밖에 되질 않는 여러 생각으로 머릿 속의 모든 대립들을 일축시켜버린 그는 여전히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황금빛 눈동자와 다시한번 시선을 마주치곤 그대로 그 뻣뻣한, 허나 묘하게 푹신한 갈기털에 파묻혀 밀려오는 잠과 비례하는 무게의 눈꺼풀을 서서히 닫아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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