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그리고 언뜻 보이는 협곡과도 같은 흉터 부위에 손을 올려놓으려는 순간, 흡사 빛이 쏟아지듯, 비스듬히 내리꽂힌 황금색 물결이 어느새 자신을 뒤덮어버렸음을 눈치챈 그는 손 끝에서 느껴지는 우둘투둘한 감촉과 묘한 싸늘함마저 머릿 속에 새겨내고, 어제와 다를바 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늑대에게 가만히 두 손을 들어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의 바램대로 늑대가 이 제스처의 의미를 파악하리란 보장은 없기에 이건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으나, 적어도 몬스터들처럼 다짜고짜 살기를 뿌려대고 있지는 않으니 그래도 안전하다란 자위적인 판단을 가지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던 한서준은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고요히 요동치는 황금빛 눈동자 속에 이전과 마찬가지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욕구를 강하게 느꼈지만, 곧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쇠사슬 비스무리한 압박감에 온 몸의 신경들이 삽시간에 곤두서버리는 것을 인지하곤 황급히 뒤로 몸을 굴려 공기총과 대검을 단번에 낚아채버렸다.
비록 한쪽 다리의 부재가 그의 몸을 안정적으로 받쳐주지 못해 종국엔 볼품없이 넘어져버리고 말았으나, 일단 공기총을 손에 쥔 것만으로 거머리 같이 몸뚱아리를 뒤덮었던 긴장감을 다소 해소시킨 한서준은 이 끈적하게 달라붙는, 결코 좋다라곤 할 수 없는 기운이 늑대가 아닌 그 뒤의 무언가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콰직.
듣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끔찍한 파육음과 함께 뭔가를 반복적으로 씹어대는 괴상한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퍼졌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절로 귀를 벅벅 긁고 싶어질 정도로, 마치 기생충과도 같은 꿈틀거림이 직접적으로 뇌를 간질이고 손 끝 발 끝 하나하나마다 그 더러운 감촉을 되새기게 만드니, 그로써는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이 치솟아 올랐지만, 문득 황금빛 눈동자 속에 피어나는, 흡사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빨간색 빛이 점점 늑대의 두 눈을 물들이고 있음을 알아챈 그는 지면에 닿아있는 자신의 몸뚱아리를 스멀스멀 옭아매는 오묘한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분명 '고통' 과 '분노' 가 가득한 눈빛을 띤 늑대에게 천천히 기어갔다.
그렇게 점점 가까워질수록 선명하게 후벼파는 괴음과 코 끝을 감싸도는 혈향이 자꾸만 그의 몸뚱이를 늘어지게 붙잡고 막아섰으나, 기어이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거진 절반이 붉게 물들어져버린 늑대의 눈동자 바로 앞까지 이동한 한서준은 그 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수많은 흉터들이 늑대의 몸 이곳저곳을 뒤덮고 있음을 알아챔과 동시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굵은 쇠사슬 구속구가 목과 발, 그리고 몸통 한 가운데를 정확히 가로지르고 있음도 알아채고는 반사적으로 꿀꺽 침을 삼켜내고 말았다.
아예 꿈쩍도 하지 못하게 사지 전부를 지하실의 천장과 바닥에 이어버린 것이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박제시키듯 고정시켜놨는진 몰라도, 괜히 자신을 쳐다만보고 있던게 아니었음을 새삼 깨달은 한서준은 어쩐지 싸늘하게 식은 땀방울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으나, 여전히 마주한 눈동자 속엔 자신을 향한 살기가 없음을 어렴풋이 인지하곤, 시선을 돌려 늑대를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들을 바라보았다.
잠들기 전에는 왜 알지 못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로, 사방에 뻗어나간 쇠사슬들은 단순 늑대가 묶인 장소 뿐만이 아니라 지하실 전체를 하나의 구속 장치로 사용하고 있었다. 다시말해, 오로지 늑대만을 위한 장소란 뜻이었다.
또한 쇠사슬 하나하나가 성인 남성의 몸통만한 굵기를 자랑하는 터라, 만약 끊어낸다 하더라도 전문적인 장비가 없으면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한서준은 아까 전 자신이 발견한 협곡과도 같은 흉터의 바로 옆에 무슨 크레이터 마냥 푹 파여 없어진 자국이 선명한 또다른 흉터를 발견하곤, 순간 얼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와 붉게 물들여진 늑대의 두 눈. 그리고 '고통' 에 찬 떨림과 '분노' 로 점칠된 거친 숨소리까지.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한 결과, 아니, 그런 것을 할 필요도 없이 뭔가가 뜯어먹은 흔적이 역력한 몸통만 봐도 늑대가 이곳에서 무언가의 먹잇감이 되어가고 있음을 가감없이 알려주고 있던 탓이었다. 그것도 신선도를 착안해 야금야금 살점만 발라먹는, 그러니까,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조금씩 뜯어먹히는 식량으로써 묶여있단 것이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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