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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뭘짓 님의 서재입니다.

밸붕 소설속 마왕성 문지기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닉뭘짓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2
최근연재일 :
2021.05.18 16:22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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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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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77,308

작성
21.05.1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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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자각(2)

DUMMY

루크의 시선이 흔들렸다.


‘나의 삶이 누군가가 활자 한 문장으로 서술한 유흥거리에 불과했다니.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마냥 부정하기엔 방금 상황이 너무나도 똑같다.


-짐은 마계를 지배하는 베르제우스 라 디스트리녹스 3세이노라. 이 마을에 있는 용병왕이라는 자는 짐의 앞으로 오라.


-나약한 버러지들이여. 네놈들 따위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의가 치밀어 오르는구나.


마왕의 선언은 이야기로 떠오른 대사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다.


-제가 용병왕이라 불리던 늙은이입니다.


-마왕이시여, 무고한 주민들을 먼저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난생처음 본 인간이 이야기 속의 삽화와 같은 모습으로, 이야기 속과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머릿속 소설의 묘사 그대로. 또 소설의 삽화 그대로 이 마을이 마기에 의해 잿빛으로 물든다.


그가 본 마을 건물의 구도가 책에 삽입된 마을 라디움의 풍경과 일치한다.


마지막으로 마왕은 분노하며 소설과 같이 운석으로 이 작은 마을을 밀어버렸다.


‘아니야, 이럴 수는 없다.’


루크가 양손으로 자신의 두개골을 감싸 쥐었다.


그는 마냥 부정하고 싶었다. 자신이 행적들이 겨우 활자의 나열 따위일 리가 없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억들이 그를 더 중요한 고민으로 이끌고 말았다.


이것이 소설 속의 그저 재미로 설정된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라지만.


‘나에게는 현실이고 앞으로 닥쳐올 미래라면?’


루크의 눈과도 같은 안광이 혼란으로 흔들렸다.


이 이야기가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정확히 집고 있다면?

그런데 그가 이야기를 애써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그래서 소설의 전개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나는 그것으로 괜찮은 것일까?'


용사파티가 마왕성의 문을 함락시키고, 카리나가 금발의 여기사에게 죽임을 당하는 미래.


마지막으로 마왕이 용사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마계가 멸망하는 결말.


그런 결말이 다가와도 괜찮은 것일까?


용사가 그의 세계를 무너트리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아직 이 정도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다. 조금만 더, 한 장면만 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루크의 혼란스럽던 안광이 결심으로 인해 선명해진다.


“만약 이 세계가 이야기일 뿐이고, 내 기억들이 앞으로 펼쳐질 미래라고 한다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의 끝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잖아?


생각을 정리한 루크의 귀에 실망에 젖은 마왕의 투덜거림이 들렸다.


"너무나도 나약하도다. 헛걸음만 하였느니. 성으로 돌아가자꾸나. 카리나야."


"베르제님. 오늘도 멋있으셨어요! 베르제님은 정말로 대륙최강이세요!"


카리나가 마왕의 축 늘어진 어깨를 주무르며 아양을 떨었다.


마왕은 완벽한 강함을 추구한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의 강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굽히지 않는 강한 신념, 어떻게든 이겨 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을 향한 믿음 등 강한 정신까지 추구하는 자이었다.


케인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구걸하는 순간 그는 마왕에게 있어서 강자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따라서 마왕의 전투 전의 기대감에서 비롯한 떨림은 금방 가라앉고 말았다.


차분한 마왕은 마법을 쓸 때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


바닥에 아까와는 달리 완벽한 형태의 이동마법진이 그려졌다.


"빨리 올라타거라 뼉다구야. 짐은 침실에 누워서 쉬어야겠느니."


전신으로 귀찮음을 뿜어내며 마왕이 재촉했다.


“빨리 좀 타세요!”


루크가 또 마왕을 기다리게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바라보는 카리나의 눈초리가 몹시 뾰족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하핫, 저는 이 근방에 갑자기 볼 일이 생겨 버렸군요, 먼저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루크가 궁색한 변명거리를 내뱉으며 두개골을 긁적였다.


"뼉다구야. 네놈이 인간계에 무슨 볼일이 있느냐?"


마왕의 표정에 잠시 의문이 스친다. 하지만 마왕은 기본적으로 강자와의 혈투를 제외한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자.


"뭐. 짐이 신경 쓸 필요 없는 하찮은 일이겠느니. 알겠노라. 대신 알아서 돌아오도록."


그는 권태가 묻어나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한차례 빛이 일렁이고 마왕과 카리나가 사라졌다.

혼자남은 루크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차분하게 이질적인 기억을 찬찬히 살펴봤다.


["레이라! 일어나봐. 빨리 마을로 가보자!“

마을로 가봐야 한다는 소리에 레이라가 다리를 덜덜 떨며 일어선다.]


운석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어린 용사는 소꿉친구와 함께 마을로 다급히 뛰어온다.


[오전을 내내 걸어서 넘었던 뒷산을 두 시간 만에 넘었다.]


마을 근처에 보이는 저 작은 산을 말하는 듯하다. 어린아이들이 넘나들 수 있을 만해 보이는 크기의 산.


루크는 그 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마왕이 곁에 있는 것을 허락할 만큼의 강자였다. 저런 작은 산에서 발생하는 기척쯤은 아무리 작다 해도 절대 놓칠 리가 없는.


‘정말로 이 세상이 소설 속이라면, 이야기대로 인간 꼬마 둘이 이 산을 넘어오겠지.’


루크는 마을 주민이 그간 자주 오고 갔는지 선명하게 뻗은 산길에 발을 들였다. 그에 두 눈에서 느껴지는 확신.


‘이 세상이 소설이건 뭐건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결말을 스스로 만들어가면 되는 일.’


만약 이 마을로 뛰어오는 어린애들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죽인다.


용사를 죽이는 것. 그것이 용사가 주인공인 소설의 결말을 가장 쉽게 뒤트는 길일 터이니.


루크의 노란 안광이 살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 * *


지저귀는 새 한 마리 없는 고요한 산속.


그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마물, 붉은 판금 갑옷을 입은 스켈레톤이 그곳을 헤매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지. 어디서도 기척이 느껴지질 않아.’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인간의 출입이 잦은 산이라 하여도 작은 산짐승, 하다못해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기척 정도는 느껴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 산에서는 그 어떠한 생명체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세팅을 해놓은 무대 같은 형상.


그러나 그의 심기를 가장 거스르고 있는 상황은


‘어린 용사의 기척도 느껴지질 않는다.’


이 세상이 소설이라면, 원작에서는 이쯤 용사와 그의 소꿉친구 레이라가 산길을 뛰고 있어야 했다.


이 기묘한 산속을 헤매는 동안. 루크는 이 세상이 소설 속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어가고 있었다. 수상함을 느낀 그가 이 산을 샅샅이 살피는 사이.


어느새 노을빛 햇살이 나무 사이를 비추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캬악!


어느새 레이나도 울다 지쳤는지. 시우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슬라임의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방해했다.


그때,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와 사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원작의 주인공은 사라진 마을을 망연히 주저앉아 바라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노을이 비칠 때쯤 신탁을 받고 찾아온 대신관 일행과 만난다.


지금 노을이 지고 있다는 것은, 한참 동안 루크가 산을 지키고 있었음에도.


주인공은 산을 넘어 안전하게 마을에 도달했다는 뜻이었다.


원작대로 그 어떠한 위협도 만나지 않은 채 말이다.


원한다면 산의 초입부에 선 채, 산 정상에 있는 바윗돌의 개수까지 셀 정도로 뛰어난 감각을 지닌 자신이 그들을 찾고 있음에도.


‘말이 되질 않아.’


무언가 인위적으로 원작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이끌기 위해 그의 감각을 차단한 것처럼 말이다.


그때 루크의 안광이 번뜩였다.


“설마?”


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보였다. 어느새 웃음기가 싹 가신 그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디 한번 정해진 채 다가오는 결말을 바꾸려고 발버둥 쳐보라는 건가?”


루크의 뼈마디만 앙상한 두 주먹이 꽉 쥐어진 채 부들부들 떨렸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만 이런 기억이 들어온 이유가 뭘까?’


아까부터 계속되어온 루크의 의문이었다.


‘이것이 고작 우연일까?’


기억이 떠오른 것이 잘못된 이동마법진의 여파라기엔 몹시 이상했다.


루크는 수백 년 동안 마왕과 함께 해왔다. 강자와의 대결 전에 흥분한 마왕의 마법적 실수는 고작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마왕이 아직 마왕이 아니던 시절.


그가 다른 고위 마족들에게 도전하는 도전자의 입장이던 시절, 그때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있던 일.

새삼스레 8서클의 전격마법을 맞으며 워프했다고 이런 현상이 나타날 리 없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원작이 시작되는 시점에 내게 기억을 주입하지 않는 이상 말이지.’


마치 마왕이 라디움을 멸망시키는 것을 보면서 이 기억이 사실임을 확인하라는 듯이 말이다.


‘그 누군가는 굳이 왜 나에게 기억을 주입했을까?’


기억대로라면 나는 한낱 악역 조연일 뿐이었다. 마왕과의 결전 전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최대 위기.

주인공을 각성시키기 위한, 오직 그것만을 위해 만들어진 조연.


작중의 중요도로 따지면 당연히 마왕에게 기억을 주입 시켜줘야 함이 옳다.


‘하지만 마왕이 아닌 나에게 이런 짓을 한 이유는 당연히 하나겠지.’


미래를 바꾸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라는 의미.


마왕에게 이 기억을 주었다면, 그는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마왕의 바람은 오직 강자와의 대결.

강한 적과 싸울 수만 있다면 생사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자였다.


‘그래서 원작에서도 기쁘게 죽음을 받아들였지.’


마왕은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달가워할 것이다.


여정을 통해 점차 강해져 마왕과 맞붙기 전 최강이 되는 용사.


그리고 그의 대적자인 마왕 자신. 강자와의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일 기회.


그 싸움을 위해서라도 오히려 그는 원작의 전개를 지키려 들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왕의 권속 된 자. 마왕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본능이 내재 된 존재.’


결말을 바꾸기 위해 이리저리 구르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다가 방금처럼 살짝 개입해 이야기가 원작대로 진행되게 만든다.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뀌지 않는 미래에 절망하는 나를 지켜보며 즐기려는 거겠지.’


나에게 기억을 준 누군가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 세계의 신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어디 한번 발버둥 쳐봐라. 그래도 미래는 바뀌지 않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비웃음 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단순히 환청인지. 아니면 의문에 대한 대답일지는 알 수 없었다.


빠드득.


루크가 크게 분노로 이를 갈았다.


자신에게 기억을 주입한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놀아나기 싫다고 가만히 있으면, 멸망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한다 해도 지금 같이 방해가 들어올 터.


이런 경우 방법은 하나겠지.


‘기억 속의 모든 사건, 주인공의 모든 행보마다 끼어드는 것.’


기억 속 모든 전개의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까지 모든 것들을 비틀고자 시도한다.


때로는 사소한 보조 마법진의 결함이 마도구를 망가뜨리는 법이다. 작은 마법진이 고장 나면, 그 결함은 연결된 다른 마법진에 영향을 주어 새로운 고장을 발생시킨다.


이런 것이 한두 개씩 늘어나다 보면 결국 모든 마법진이 엉망이 되어버리고.

결국 마도구는 멈춰 버리거나, 예정된 마법과 전혀 다른 마법이 내장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게 비록 작은 비중이라 할지라도 살아야 할 인물을 죽이고, 죽었어야 할 인물을 살린다. 있어야 할 물건을 부수고, 존재해야 할 마을과 도시를 불태운다.’


이렇게 변해버린 배경 속에서 원작이라는 정형화된 틀이 과연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루크는 대신관과 어린 용사가 만나고 있을 폐허가 된 마을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돌아선 그의 입가에는 선명한 미소가 자리 잡고 있다.


“농락하려는 대상으로 나를 골랐다면, 그 선택.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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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정보조직(1) 21.05.16 5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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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첫걸음(6) 21.05.15 7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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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첫걸음(2) 21.05.12 108 1 12쪽
5 첫걸음(1) 21.05.12 123 1 12쪽
4 자각(3) 21.05.12 162 1 13쪽
» 자각(2) 21.05.12 19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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