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봉동에 대량살상 무기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함대전의 시대.
각국은 상상력을 통하여 앞다투어 함대전에 뛰어 들었고, 우주의 패권을 노리는 수 많은 무리들에 의해 우주는 전장이 되었다.
다들 저마다의 명분은 있었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가차없이 자행되는 정신적인 살상 행위.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우주는 넓으니까, 그래도 저를 사랑해 줄 남자가 있겠죠?"
라고 어떤 우주 순양함이 성명을 발표하면,
다른 누군가가 함포 사격을 통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니 얼굴로는 어림 없어."
그러면 우주 순양함은 큰 데미지를 입고 지구와 달 사이의 어느 공역에 죄초하고 마는 것이다.
공격이 공격을 낳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았다.
계속되는 군비 경쟁은 세계 정부의 우려를 불러 일으켰고, 이대로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세계 정부는 현상황을 테러로 규정, 자체적으로 국제 연합군 성격의 대규모 군대를 조직하여 파병을 준비하고 정보 기관을 통해 호시탐탐 대테러 진압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계 정부의 공권력이 한 개인을 무자비하게 유린한 사건이 발생한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첩보를 통하여, 미국 CIA와 SWAT 특공대가, 2층 빌라의 반지하 단칸방에 무력 침투하여, 당시 허니버터칩을 먹으며 미드를 보고 있던 21살 박모양을, 감은 지 오래되서 머리에서 냄새가 나는 채로 어디론가 끌고간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신발장이 넘어져 여러 켤레의 신발이 섞여 있는 모습으로, 당시 상황이 얼마나 갑작스럽고 긴박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침대 위에 잡지와 과자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나뒹굴었고, 방바닥에는 지저분하게 빠진 머리카락들이 거미줄처럼 흩어져 있었다. 다 모아서 가발을 만들면 사람 머리 하나 정도의 가발은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마철이 되면 습기가 많았기 때문에 벽에는 곰팡이가 슬었다. 방 구석 구석에 물먹는 하마가 놓여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이미 그 물먹는 하마는 물이 가득차서 출렁거리는 상태였다. 발뒤꿈치를 들고 올려다보면 골목길 아래가 보이는 조그만 창에 있던 방충망은 찢어져 버렸다. 그래서 이제 여름되면 모기가 들어올 수 있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을 방치한 채, 특수 조사단과 지구 연합의 정보 기관은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 월세는 누가 낸단 말인가...
집주인 아주머니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민간인에 대한 무자비한 무력 행사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훗날 언론과 민간 조사기관의 끈질긴 노력 끝에 이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량살상 무기따윈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다.
그것은 단지, 무력 행사를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든 국가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작전은 효과적이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긴장했고, 자기 검열에 들어갔다.
누군가가 자기를 감시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해갔다.
며칠 뒤 박모양은 정신을 잃은 채 인근 피씨방 소파에서 발견되었고, 정신은 붕괴되어 더 이상은 예전과 같은 세이버 릴리의 코스프레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여전히 머리에서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네오 토끼당의 당주 '오즈의 토끼'는 세계 정부에 항거하는 소규모 세력들을 받아 들여 자신의 막강한 우주 함대에 편입시키고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것이 국지전 성격을 띄고 지구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전쟁이다.
"주포 발사! 탄막을 쳐서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라!"
네오 토끼당 본대, 1번함 '당근이지' (Dangun Easy)의 브릿지에서 직접 작전을 지휘하는 오즈의 토끼는 목이 쉬도록 참전 중인 전 함대에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카나리온은 아직인가?"
오즈의 토끼는 얼마전에 배속 받은 오퍼레이터 베로니카에게 카나리온으로부터의 소식은 없었는지 물었다. 바니걸 복장의 베로니카는 아이패드의 '네오토끼당' 앱을 통해 카나리온의 회신을 확인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본부에서 보낸 지령 옆에 여전히 '1' 이라는 숫자가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카나리온에서는 아직 메세지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카나리온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베로니카가 오즈의 토끼 당주에게 물었다.
오즈의 토끼는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쉽게 당할 녀석들은 아니야. 분명히 어딘가에서 노닥거리고 있겠지... 젠장 이런 시국에 대체 어디서 뭘하고 있는거야 카나리온!!!!"
다음 이 시간에...
- 작가의말
이건 뭐지...!?
..싶은 것이 바로 '친환경 우주전함 카나리온'의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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