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꽃미남 황태자는 알고 보니 뱀파이어
입술에서 피의 잔을 천천히 떼어내는 그의 모습은 우아하면서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가늘게 뜬 그의 눈은 보는 이의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느낌은 마치 새벽 호수의 공기가 폐 안에 가득 차 들어오는 것과도 같았다.
근정전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인현궁의 외전, 지붕 처마의 단청이 아름다운 자그마한 누각에서 얼굴에 핏기라고는 없는 새하얀 남자가 홀로 앉아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쪽빛 소매 사이로 삐져나온 가지런한 손가락이 찻잔 끝을 살며시 감싸 안으며 천천히 들어 올렸다.
섬섬옥수라는 말은 이런 손을 두고 하는 말일까……. 하지만 그 손의 주인은 분명 남자였다. 인현궁 안에서 쪽빛 곤룡포를 입고 있을 사람은 한 사람 뿐인 것이다.
바로 진켄 함장.
응?
"아... 역시 사극이면서 뱀파이어가 나오고, 높은 신분이면서 멋진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은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요 함장님. 뭔가 내용은 둘째 치고 그 자체로 제 마음을 설레게 한답니다."
함장이 '이런 건 어때?' 라면서 종이에 끄적인 글을 텟사에게 들려주자, 텟사는 그 내용이 퍽이나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뭐... 내용이 허접 쓰레기일지라도, 멋진데다가 매너 좋고 신분까지 높은 남자가 나오면 솔직히 재미는 있습니다. 게다가 그 남자가 뱀파이어이면서 한 여자만을 사랑한다면요."
오퍼레이터 마야도 거들었다.
"아... 그래? 그것이 현실인가? 난 광활한 우주에서 펼쳐지는 진지한 요리 대결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닌 것 같습니다. 함장님."
텟사와 마야가 입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잠시 뜸을 들인 진켄 함장이 말을 이었다.
"우린 제1회 에우로파 요리 대회의 2회전을 시작해야만 해. 기업형 체인점에 밀려나는 영세 치킨 집을 위해서 !"
진켄 함장은 주먹을 불끈 쥐며 은하 저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다.
조선 시대라는 건 다 거짓말이고, 지금 이 곳은 태양계 저 편, 목성의 위성 에우로파인 것이다.
현재 위치를 구글맵에서 확대해 보면, 이 곳은 에우로파에 위치한 중식당 '사천성'이었다.
그 때 이 모든 분위기를 깨며 시끄러운 목소리가 따지고 들었다.
"2회전은 시작 안 하고 무슨 얘기들을 지껄이는 거야!!"
사천성 점주 왕창싸였다.
그는 1회전에서 자신의 세력이 꼴찌를 하자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그 와중에 카나리온의 함장과 그의 승무원들이 알 수 없는 헛소리를 나누는 모습을 보다가 그만 화가 치민 것이다.
조바심 나는 것은 컨츄리하트 호의 인스턴트 함장도 마찬가지였다.
2회전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어떤 종목인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인스턴트 함장이 진켄 함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2회전 종목은 뭐냐?"
진켄은 찰나의 시간 동안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음... 2회전 종목이라...
몰라. 그냥 자유 ! 2회전은 자유롭게 요리를 만드는 거다!"
'아무 생각도 없어 저 사람!'
구경하던 관중들은 그냥 되는대로 하자는 식의 진켄 함장의 대회 진행에 혀를 내둘렀다.
(다음 이 시간에...)
- 작가의말
동심으로 돌아가서 아이스케키 놀이를 하려고 했지만...
잡혀갈 뻔 했습니다.
정녕 동심으로 돌아갈 순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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