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창작소

요괴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누즈
작품등록일 :
2016.04.20 19:44
최근연재일 :
2016.09.21 18:5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2,123
추천수 :
170
글자수 :
228,029

작성
16.04.24 16:54
조회
175
추천
2
글자
13쪽

피로 이어진 5

DUMMY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아도 랑칸과 천력은 1구역 안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이 갔다. 일부의 내통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은 햇빛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개중에 몇몇은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겠지만, 귀한막이에 가로막혀 사살당하거나 다시 잡혀 들어가 사육을 당하고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바깥 구역의 사람들은 조금도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모른다.


끔찍하다. 천력은 생각했다.


“일단 상황은 대충 알겠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군요.”


천력이 물었다.


“뭔가요?”


존이 대답했다.


“그럼 저희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하단 말인가요? 지금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만.”


천력의 질문에, 존이 잠깐 대답을 망설였다. 침묵이 길어지자, 랑칸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긁으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참다못한 랑칸이 짜증을 내려는 찰나, 존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1구역 안으로 들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네?”


“뭐?”


랑칸과 천력이 동시에 말했다. 어이가 없어진 둘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후, 다시 존을 바라보았다. 존의 얼굴은 단호했고, 괜히 해보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말이 되는 소리야? 1구역은 점령당했다며? 거기에 우리를 들여보내겠다고? 게다가 우리는 요괴 사냥꾼이야. 4구역에서 3구역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떡하잔 말이야? 설마 우리보고 저 귀한막이를 뛰어넘기라도 하란 말이야?”


천력이 끼어들었다.


“돕는 걸 거절할 생각이었다면 여기까지 따라오지도 않았겠지만, 적어도 불가능한 것을 맡긴다면 저희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랑칸이 탁자를 내려쳤다. 고기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존을 금방이라도 날려버릴 듯 한 기세였다.


“장난해? 목숨을 걸라고? 귀한막이를 넘어가려고만 해도 군이 출동할거야. 게다가 간신히 어떻게든 넘어갔다고 치자, 1구역 안에서 뱀파이어 군주하고 붙으란 말이야? 그동안 넌 뭘 할 건데?”


“귀한막이를 넘을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가 없다고?”


존이 품에 손을 넣었다. 총이라도 꺼내려는 걸까, 랑칸의 몸이 잠깐 움찔했는데, 존이 꺼낸 것은 두 장의 카드였다.


그 카드에는 존과 랑칸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 밑에 작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이건 뭐야?”


“구역 통과 카드군. 어디서 구했습니까?”


천력이 말하자, 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1구역까지의 구역 거름소를 통과할 수 있는 카드입니다. 1구역 안에는 뱀파이어의 내통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저와 협력하는 이들도 있지요.”


“1구역 안에서 만들어진 것입니까?”


“네. 제가 아무리 으뜸 요괴 사냥꾼이라 해도 서라벌국의 통과 카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카드를 만들 수 있는 협력자가 있다. 그런데 왜 직접 들어가지 않는 겁니까?”


천력의 물음에 존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제 얼굴은 이미 알려져 있으니까요. 아마 제가 구역을 통과하려고 하자마자 바로 체포될 겁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필요했던 거죠.”


“젠장, 우리가 올 것도 알고 있었구만. 완전히 네 놈 손바닥 안이네.”


랑칸이 쓴 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계획이 돼 있었던 건지, 천력은 새삼스럽게 앞에 앉은 사내가 무섭게 느껴졌다.


“여러분은 이 카드를 사용하여 1구역 안으로 들어가 협력자를 만나시면 됩니다. 원래는 그들이 직접 밖으로 나왔었지만, 얼마 전 에 제가 나타난 것을 알고는 1구역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금지가 되었거든요. 핸드폰 같은 걸로 하는 연락 자체도 얼마 전에 두절된 상태이구요. 따라서 여러분들이 직접 들어가시고, 그들이 건네주는 정보를 받아 오시면 됩니다. 그 이외에는······.”


꽤 긴 대화가 오갔다. 존의 이야기에 처음에는 랑칸과 천력 모두 그것이 가진 위험성에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나 곧이어 나온 보수 얘기에 랑칸은 금세 태도를 바꿨다.


랑칸은 일단 존의 제의를 수락한 후, 신이 난 채로 보수에 대해 좀 더 협상을 시작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반대해도 소용이 없었기에, 천력은 그 이야기에 합류하는 대신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 하나를 존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뭐, 보수는 일이 끝난 다음에 계산해도 됩니다. 그보다 궁금한 게 있군요.”


“뭐죠?”


천력이 턱 끝으로 아까 누리안이 올라간 계단을 가리켰다.


“누리안 말씀이십니까?”


“예. 저 애는 왜 데리고 계신 겁니까? 아까 이야기를 들으니 딸도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사연이 있나요?”


존의 대답은 이랬다. 존이 뱀파이어 군주를 쫓아 서라벌 국에 왔을 때, 그가 처음 본 것은 어느 여인을 물고 있는 뱀파이어 군주의 모습이었다. 황급히 총을 쐈지만 어느새 뱀파이어 군주는 여인과 더불어 사라진 후였다.


그 옆에 남겨져 있던 게 누리안이었고, 차마 혼자 놔둘 수가 없어 데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혼자 남은 게 불쌍해서 데리고 있다구요? 그럼 다른 곳에 맡겨도 되지 않습니까?”


존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애를 뱀파이어가 노리고 있어요.”


“왜 굳이 저 애를?”


바로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존은 누리안이 있는 2층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고개를 내린 존이 말한 것은 꽤 충격적이었다.


“아까 전에, 뱀파이어 군주에게 물린 여인에 대해서 말했었죠?”


“네.”


“그 여인이 누리안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요? 잠깐, 물렸다면 뱀파이어가 됐을 테고··· 설마?”


“맞아요. 그 설마입니다. 누리안을 노리고 있는 뱀파이어가 바로 누리안의 어머니에요.”


천력이 놀란 얼굴을 하며 물었다.


"도대체 왜? 아무리 뱀파이어라고 해도 딸을 알아볼 수 있진 않습니까? 갈증이 심해 가족을 해치는 경우는 들어봤지만, 의도적으로 노릴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 여인을 물었을 때, 저를 본 뱀파이어 군주는 그녀에게 속박을 걸었습니다.”


“속박?”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같은 피가 흐르는 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그 자신이 죽는 속박을요. 따라서, 그녀는 누리안을 노리고 있습니다. 아까 처음 저를 만나셨을 때 제가 쫓고 있던 뱀파이어가 바로 그녀입니다.”


“왜 그런 속박을?”


“간단하죠. 제가 누리안을 데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제 발을 묶어두려고 하는 겁니다. 어린 여자아이와 함께 자유롭게 이동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꽤 머리를 쓴 거죠.”


랑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뱀파이어 군주란 놈, 이름에 안 어울리게 쪼잔하구만. 그래서 넌 저 애를 지키기 위해 함부로 다니는 것도 힘들다 이거지. 알았어. 우리한테 맡겨.”


랑칸의 흔쾌한 승낙에, 존의 얼굴이 밝은 표정이 되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천력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쫓겨야 하는 누리안의 상황에 조금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를 뱀파이어에게 빼앗긴 것도 슬픈 일일 텐데, 그 어머니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니.


‘나와 비슷하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옛 일이 떠오르며 천력이 한층 더 우울한 기분에 젖어들려는 찰나, 랑칸이 그의 어깨를 친 후 일어나며 말했다.


“뭘 그리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어? 일단 오늘은 한 숨 자두자구. 존, 어차피 낮에 해야 되는 일 맞지?”


어느새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2층으로 올라가시면 남는 방이 있습니다. 제가 안내하도록 하죠.”


존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향했다. 그 뒤를 랑칸이 따랐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력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다시 떠올리지 말자. 어차피 다 지난 일이야. 몇 번이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그 또한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놈들과 만났다고?”


어둠으로 뒤덮인 공간. 빛이라고는 천장에 뚫려 있는 다섯 개의 구멍으로 밖에 들어오지 않는 곳, 그 중앙에 거대한 의자가 놓여있고 그 위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 앞에는 한 여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는데, 남자의 물음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표하자 남자는 다시금 여자에게 물었다.


“어떤 녀석들이더냐? 위험해 보이더냐?”


“잘 모르겠습니다. 둘 중에 한 명은 칼을 차고 있었는데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체구도 작고 그다지 눈에 띄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칼을 찬 녀석? 혹시 머리의 한 부분이 흰 색이 아니더냐?”


“맞습니다. 한 쪽 눈만 덮을 정도로 머리를 길렀는데, 그 부분만 흰 색이었습니다. 특이해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그의 웃음에 여자가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웃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그 놈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요즘 들어 설치기 시작하는 애송이에 불과하다. 존이 재밌는 장난감들을 데려왔구나.”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느새 소리 없이 여자의 옆에 와 있었다.


여자의 놀람도 잠시, 남자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여자의 목을 감았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새하얀 손가락, 마디마디, 힘줄 하나하나가 불거져 마치 해골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남자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여자의 목을 어루만졌다. 마치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목이 부러져나가는 것처럼.


여자의 몸이 어느새 사시나무 떨 듯 떨리고 있었다. 남자의 손이 닿았다는 것에 대한 기쁨인지, 감동인지. 그러나 여자의 표정은 그 두 감정과는 다른 한 가지, ‘공포’를 나타낸다는 것이 더 적합할 듯 했다.


남자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리고 여자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네 딸의 일은 어떻게 됐지?”


여자의 입술이 떨리며 움직였다.


“그 사냥꾼이 방해해 좀처럼 기회를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힘들다고?”


남자의 나직한 대답에, 여자의 몸이 한층 더 떨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보았다면 여자의 주변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 여자를 지긋이 바라보던 남자가 자상하게 여자의 목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금 속삭였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마라. 존이 있다면 힘들 법도 하지.”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확실히 그 감정이 감동에 가까운 듯 했다. 그러나 뒤에 이어진 남자의 말은 여자에게 다시 한 번 확실히 공포를 심어 주었다.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그 애를 물지 않으면, 너에게 찾아 드는 건 지독한 고통 밖에 없을 테지.”



랑칸과 천력이 잠든 후, 존은 누리안의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천력에게 화를 내며 대들던 모습과는 달리, 잠이 든 누리안은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마냥 온순하게만 보였다. 제멋대로 뻗쳐 베개를 어지럽힌 머리카락을 사랑스레 어루만지는 존의 얼굴은 마치 자상한 아버지와도 같아 보였다.


그때 누리안이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를 했다.


“엄마······.”


짧은 한 마디. 보고 싶어, 아니면 어디에 있어. 차라리 이런 말이었다면 그 슬픔이 덜할 것을. 누리안을 바라보던 존의 얼굴이 복잡 미묘한 표정을 띠기 시작했다. 그저 누리안에 대한 동정심일까? 존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잊혀 가던 기억이 고개를 들추고 자신을 알리려고 하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스스로 되뇌며 그것을 꾹꾹 누르던 존이었지만, 어느새 자신의 머릿속이 그 기억으로 뒤덮여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인간의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형태를 띠었다. 희, 노, 애, 락, 오, 욕. 그 감정들을 넘어서 기타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그의 얼굴을 스쳐갔다. 그 변화에 자신 또한 괴로운 듯, 꽉 다문 이 사이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참는 탓에 존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갔다.


잠시 후, 존은 예의 평소에 짓던 편안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 한 번 잠들어 있는 누리안을 바라본 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요괴사냥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 피로 이어진 8 16.04.24 223 2 8쪽
18 피로 이어진 7 16.04.24 212 3 12쪽
17 피로 이어진 6 16.04.24 208 2 12쪽
» 피로 이어진 5 16.04.24 176 2 13쪽
15 피로 이어진 4 +2 16.04.24 232 2 8쪽
14 피로 이어진 3 16.04.24 112 4 10쪽
13 피로 이어진 2 +2 16.04.24 248 4 9쪽
12 피로 이어진 1 +2 16.04.24 193 3 13쪽
11 하늘을 나는 물고기 6 16.04.22 153 3 13쪽
10 하늘을 나는 물고기 5 16.04.22 162 4 9쪽
9 하늘을 나는 물고기 4 16.04.22 163 4 8쪽
8 하늘을 나는 물고기 3 16.04.22 269 6 13쪽
7 하늘을 나는 물고기 2 16.04.22 176 5 5쪽
6 하늘을 나는 물고기 1 16.04.22 323 3 12쪽
5 칼을 든 나그네 5 16.04.20 392 8 8쪽
4 칼을 든 나그네 4 16.04.20 427 8 8쪽
3 칼을 든 나그네 3 16.04.20 510 12 6쪽
2 칼을 든 나그네 2 +2 16.04.20 554 14 7쪽
1 칼을 든 나그네 1 +1 16.04.20 1,279 1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