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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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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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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61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2.0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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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은행은 우리의 친구인가 (4)

DUMMY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




잠수이별을 당해버린 광배가 화장실 칸에 들어가 쓰디쓴 첫 연애의 눈물을 훔치고 있을 즈음이었다.


텅 빈 영부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영부였다.

그의 손에는 검은 장갑이 끼워져 있었는데, 검은색이라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불그스름한 것이 묻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부는 장갑을 벗더니 나무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나무책상 위에 있는 선반을 올려다보았다.


선반에 올려진 세 번째 성배에 들어있는 검은액체가 조금씩 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분명 성공하겠지.'


털썩. 그가 소파에 앉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인위적 자아는 비록 실패했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는 자신감이 있었다.


확신이 들었다. 이번 일은 분명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걱정할 것 없는 것이지.'


그가 고개를 돌려 나무책상위에 올려진 달력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날짜는 12월 30일 목요일. 내일이면 올해의 마지막 날이 된다.


'마지막 날이라... 올해도 참 빨리 지나갔군.'


그는 생각했다. 신용호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저 싸가지 없고 내 말을 들어먹지 않는 신용호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죽일 수는 없다. 죽여봐야 손해다. 신용호는 신도가 아니니까. 신도를 죽여야 그럴싸한 변명거리라도 만들어지는데, 신용호를 죽이게 되면 뒷처리가 곤란하다.


게다가, 안익준과 김철환의 비밀을 캔 것 정도로 구영원에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김철환 한 명쯤 사라진다고 구영원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안익준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내일 신도들에게 본보기 정도로 사용한 후에 돌려보내야지. 그럼 한동안 잠잠하겠지.'


영부는 소파에 편히 드러누웠다.

안광윤이 자기 편이다. 안광윤은 현 정부와 연관이 깊은 인물로서, 비록 경기도 끝자락에 위치한 평택 경찰서의 장이지만 꽤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기 아들의 교육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 그로서는 놀라운 점이었다.


대체로 부모들은 자기 자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길길이 날뛰는 것이 정상일 터인데, 안광윤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철 없이 키우고 말았다. 그 덕에 안익준은 해달라는 건 다 해주고, 안 되는 것은 없고 되는 것만 있는 그런 아이로 자라나 버렸다.


안익준은 아빠만 믿었다. 좋은 의미에서의 믿음이 아니라, 좋지 않은 의미에서의 믿음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무엇이든 다 해주리라 믿었다. 아니, 당연하게 여겼다.


'능력은 없는데, 지문이 닳았다 이거지.'


영부의 생각대로 안광윤에게는 능력이 없다. 그에게는 그저, 지문이 닳을 정도로 윗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잔재능만 있을 뿐이다.


'듣자니 부인은 종교에 관심이 없다지.'


안광윤과 그의 아내는 쇼윈도 부부였다.

안광윤은 위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원했고, 그의 아내는 평범한 가정을 원했다.


결혼 초기, 안광윤의 출세욕심 때문에 두 부부는 자주 충돌했는데, 결국 타협점을 찾았는지 서로가 누구를 만나든,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뭐, 부부 문제는 자기들끼리 해결해야지. 내가 나설 문제는 아니고...'


쿠웅— 쿵—


닫힌 영부실 창문 틈새로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얼마 전, 구영원은 이미 건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신축공사를 하게 되었다. 라헬의 여종들이 사용할 건물이다.


올해는 날이 매우 춥다. 벌써 며칠 째 영하 13도 이하를 맴돌고 있었다. 심지어 오늘은 체감 온도만 영하 20도를 기록했다.

이렇게 추운 날 공사를 시작하면 좋지 않다는데, 영부는 마음이 급했는지 억지로 공사를 하도록 밀어붙였다.


당연히 공사 관계자들이 반대를 했지만, 영부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하고 싶다는데 해야지, 그럼. 라헬의 여종들이 편히 있을 만한 곳이 있어야 한단 말이야.'






(대근건설 - 블러드뱅크)



"네?! 하,하지만... 그렇게 하면 인간 황대근이....."


키드니는 난감했다.

갑자기 들어온 쉐도우와 조지용이 한 말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우리 대근이가 위험해져요. 물론 제가 골수들한테서 피를 빼돌리기는 했는데.... 그건 정말 미미한 수준이라구요. 어느 정도 살만큼 돈 벌면 됐지,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쉐도우와 조지용의 요구는 이러했다.


지금까지는 다이캐피탈이 골수들로부터 빼돌린 혈액이 인간 황대근의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쉐도우와 조지용은 현재 빼돌리는 혈액의 양이 10에서 1이나 2정도였다면, 이제부터는 그 양을 6에서 8정도로 확 늘리라 말했다.


심지어 이 둘은 키드니에게 골수들과 함께 지내는 조혈모세포들을 모두 매수하라는 얘기까지 했는데, 그녀가 매수는 불가능하다 하자 그렇다면 디톡스를 이용해 무력으로 잡아들이겠다는 협박아닌 협박을 했다.


'왜 이러는 거야? 쉐도우는 사장도 아닌 놈이 왜 사장인 것처럼 굴고 저 난린데?'


키드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이사가 눈빛이 돌변해 저러는 것도 이상하고, 쉐도우가 자기 일도 아닌 것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의아했다.


뇌부서가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회사가 은행에 대고 이러쿵 저러쿵 할 권리는 없다. 회사와 은행은 엄연히 다르니까.

따지고 들면 은행 역시 하나의 기업이라 봐도 무방할 터인데, 그렇게 되면 회사 하나가 다른 회사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이런 짓을 하라고 하시는 건지... 저는 도무지.... 빼돌리는 혈액양을 갑자기 늘리면 큰일나요. 그리고 자꾸 조혈모세포들을 매수하라 하시는데, 걔네들 잘못 건드리면 안 됩니다. 걔네들 은근히 약해서 잘못 되면 혈액이 아예 생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최악의 경우는 골수형성이상증후군 같은 질병이 나타나고 말 거예요. 그러면 은행들은 다 줄줄이 도산이라구요."


쉐도우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키드니 대표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네?"

"시대는 교체됩니다. 저무는 해가 있고, 떠오르는 해가 있는 법이죠. 당신은 지금 저무는 해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군요."


키드니는 이 남자가 대체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캔서를 바라봤지만, 캔서의 표정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캔서가 왜 자신에게 5000cc나 되는 혈액을 요구했는지. 캔서는 이미 쉐도우와 손을 잡은 뒤였던 것이다.


조지용은 왜 여기 있는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캔서와 비슷하리라 그녀는 생각했다.


".....원하시는 게, 뭐죠?"


쉐도우가 웃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군요."


쉐도우가 그녀로부터 벗어나 조지용과 함께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인간 황대근이 나약해지길 원합니다."


키드니는 움찔했다. 저 발언은 대근건설 직원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다.

인간 황대근은 자신들의 주인인데, 주인을 배반하는 무서운 말이니까.


"인간 황대근의 심신이 나약해지면, 저의 계획이 잘 들어맞을 것 같거든요."


끼이익. 문이 열리고, 쉐도우가 말했다.


"기존에 챙기던 혈액의 양의 5배는 더 챙기도록 하시고, 캔서 대표님에게 보내십시오. 걱정은 마세요. 돈은 두둑이 챙겨드릴 겁니다. 자식을 낳으실지 어쩌실지는 뭐, 제 알바 아니지만. 아마 몇 대가 놀고 먹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돈이겠죠."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직원휴게실)



"어쨌든, 그렇게 다이캐피탈과 블러드뱅크의 은밀한 뒷거래가 형성이 된 거죠. 왜 그런짓을 하는지는 저 역시 잘 모르겠지만, 제가 뇌부서에 있었을 때 떠돌던 소문입니다. 물론, 음모론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쉽게 믿으시는 건 좀 비추입니다."


언제나처럼 직원휴게실에 직원 네 명은 나란히 앉아 레이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날이 추워 인간 황대근이 추위를 느끼는 탓일까, 메모리아부서는 가뜩이나 사무실에 난방도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따듯한 코코아를 한 잔씩 홀짝이고 있었다.

몸이 조금씩 녹아들 무렵, 혜윰이 레이지에게 물었다.


"정말 음모론일 뿐인 걸까요? 사실이면 어쩌죠? 왜, 음모론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정말 위험한 상태인 경우도 있었잖아요. 나라 하나가 없어질 뻔 했다던가."


황대근이 대답했다.


"음모론은 그냥 음모론입니다. 사실인지 어쩐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뭐 하러 믿습니까? 그런 건 그냥 방구석 키보드 대장들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허구일 뿐이죠."


혜윰이 반박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이 연기 난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사실이면 어쩌실래요?"


황대근은 하하하 웃더니 말했다.


"하하! 사실이면 제가 혜윰씨를 누나라고 부르도록 하죠."


혜윰이 제안했다.


"거기에 추가로 엉덩이로 이름쓰기 어때요?"


황대근은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


"엉덩이로 이름쓰기요? 혜윰씨 저보다 나이 많죠? 대체 엉덩이로 이름쓰기가 언제적 벌칙입니까? 완전 옛날 세포같네요. 뭐 좋습니다! 제가 다 하도록 하죠! 얼마든지 해주죠!"


그때 레이지 가장 끝에 앉은 메모리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메모리씨는 월급 안 받나요? 월급 받으면서 뭐 하러 겁도 없이 다이캐피탈에서 돈을 빌립니까?"


메모리가 말했다.


"아니.... 분명 월급을 받긴 받았걸랑요?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돈이 다 사라졌지 뭡니까? 정말 신기루같았어요."


레이지가 말했다.


"신기루고 나발이고, 갚을 생각이나 하세요. 하루하루 이자가 붙을 텐데, 빌린 원금이 얼마죠?"


메모리가 말했다.


"음... 500만셀입니다.

"밀린월세가 얼만데요?

"....100만셀이죠."

"....그럼 나머지 400만셀은 어디있습니까?"

".....글쎄요?"


메모리의 나사 빠진 경제관념 때문에 레이지가 한참 열을 내고 있는데, 누군가 메모리아부서로 찾아왔다. 바로 WBC의 대장 케어였다.


"저기, 대근씨?"


케어가 직원휴게실로 들어왔다. 직원휴게실에 난방이 되지 않는 탓인지 케어는 순간 몸을 움츠렸다.


"저, 이 부서가 문제해결사무소라면서요?"


케어의 말에 4명의 직원은 일제히 눈을 깜빡였다. 문제해결사무소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허나 케어는 그들의 반응 따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인간 황대근에게 문제가 좀 있습니다."


케어는 아주 자연스럽게, 정말 이곳이 문제해결사무소라도 되는 양 굴며 4명의 직원 앞에 있는 간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조금 전 조혈모세포들한테서 전서혈이 왔는데, 블러드뱅크와 다이캐피탈이 수상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와싸!"


쿠당—


케어의 말이 끝나자마자 혜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 마냥 기쁨의 소리를 질러댔다.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황대근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는데, 그의 표정은 마치 나라잃은 백성마냥 처량해 보였다.


"대근씨! 엉덩이로 이름쓰기! 우리 메모리아 직원들 이름 전부 쓰기! 한석봉어머니가 떡을 써는 것 마냥 정성들여 쓰기! 컨트롤 부장님 이름하고 케어대장님 이름도 쓰는 거예요! 알겠죠! 그리고 내가 누나다!"


케어는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메모리와 레이지는 익숙하다는 듯 소파에 앉아 코코아를 홀짝일 뿐이었다.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황대근은, 어떻게 해야 이곳을 몰래 벗어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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