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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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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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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79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2.0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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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걱정과 오지랖은 한 끗 차이 (4)

DUMMY

그날 점심시간, 정우엄마와 서세희는 평택시내에 있는 플레이트타운(plate town)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녀들의 이번 점심계획은 제법 거창했는데, 플레이트타운에서 우선 식전빵으로 마늘빵을 세 번 정도 리필해 먹은 다음, 둘이서 포크안심 라이스와 수제함박스테이크, 그리고 빠네 파스타를 먹는 것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카페에 들러 간식을 먹기로 했는데, 오늘은 카페에 가지 말고 체인점인 '도넛대학'에 가자는 서세희에 제안에 계획이 약간 수정되었다.


둘이서 식전빵을 다섯 번이나 리필해 먹고 세 종류의 음식을 초토화시킨 후 도넛이라니. 생각만 해도 배가 불러오는 기분이지만 정우엄마의 반응은 이러했다.


"내가 예전에 어디 동영상에서 봤는데 말이야. 이미 밥을 먹어도 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위장이 자리를 만들어낸대. 이건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거야."


서세희는 한 술 더 떴다.


"어머, 무슨 소리야 정우엄마? 우리가 언제 밥을 먹었어? 우린 쌀 한 톨도 안 먹었어. 아직 밥 안먹은 거라구."


정우엄마는 맞장구를 쳤다. 어머,어머. 그렇지! 우린 안 먹었지! 우리 도넛먹고 또 뭐 먹을까?


아무래도 이 두여자는 오늘 하루 작정을 하고 나온 듯 하다.

저리 먹어대는대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을 보면, 신이 저 두 사람을 돕는 게 틀림 없다.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



한편, 오지람은 영부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부엌에는 그녀 혼자뿐이었다.

영부는 보통 밖에서 신도들과 사 먹거나, 혹은 구영원 국수잔치가 있는 경우 구영원에서 먹곤 했는데, 평소에는 이렇게 신도들이 영부의 밥을 챙겨주고는 했다.


다 큰 어른인 영부를 챙길 바에야 차라리 봉사 차원에서 결식아동들이나 독거노인들을 챙겨주는 게 좀 더 이롭지 않을까 싶지만, 신도들의 생각은 달랐다.


영부를 챙기는 것은 곧 큰하늘님을 챙기는 것과 같다고 믿는 그들이었다.


탁탁—


탁탁탁. 도마 위를 날아다니는 잘 갈린 식칼의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오지람은 양파를 썰고 있었다. 양파와 채소 등등을 썰고, 김치를 썰은 다음, 미리 잘라 준비한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식칼에는 여전히 피처럼 붉은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지람은 냄비를 찾았다. 헌데 보이지 않았다.


"아 이거 참. 어디로 갔지? 저번에 쓰고 어디에 놨더라? 누가 가져갔나?"

"이거 찾으십니까, 자매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오지람은 고개를 번쩍 처들었는데, 그만 툭 튀어나온 싱크대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아이구야...."


오지람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엌에 온 이는 다름아닌 영부였다.


"여, 영부님? 여긴 무슨 일로...?"


영부가 부엌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자매님께 말씀 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엥, 말씀이라고요? 무슨 일이죠?"


문 쪽에 있던 영부는 아주 천천히, 티나지 않게 그녀에게 다가왔다.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탄과 손을 잡은 한 못된 마녀가 큰하늘님께 반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영부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감히 큰하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헛소문을 퍼뜨리고...."


영부가 도마 위에 놓여있던, 여전히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식칼을 집었다. 식칼을 들지 않은 반대편 손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뒤로 숨기고 있었다.

오지람은 이유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게다가, 그 마녀는 구영원의 형제님들을 유혹해 죄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고 합니다. 큰하늘님께서 정해주신 운명의 짝이 아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간음입니다. 그것은 큰하늘님의 십계명에 명시되어 있는 명백한 사실이죠."


물론 십계명에 간음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나, 그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구절이다. 그만큼 애매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부는 이 구절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했다.

또한 그의 재해석에는 큰 오류가 있었다. 만약 영부 말대로 큰하늘님이 정한 운명의 짝이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게 죄라면, 영부 역시 죄인이다.


그에게는 라헬의 여종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저는, 그런 사악한 마녀의 죄를 사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영부는 어느새 오지람의 코앞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오지람은 영부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 그 마녀가.... 그 마녀가 누구... 누구죠...?"


푹—


"허...허억...!"


영부가 식칼을 들지 않은 반대편 손에 들려있던 주사기를 오지람의 무방비한 뒷목에 내리 꽂았다.

곧 약물이 그녀의 혈관을 타고 순식간에 온 몸으로 퍼졌고, 그녀는 힘없이 스르륵 쓰러졌다.


주사기에 들어있는 약물은 GHB(gamma hydroxy butyrate). 뉴스에서는 일명 '물뽕'이라 불리는 마약의 일종이다.

GHB를 맞으면 정신은 멀쩡한데 온 몸이 마비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타인이 내 몸을 가지고 멋대로 행동하고 무슨 짓을 해도 손을 쓸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 될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무, 무, 무...슨...."


오지람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마 몸 뿐만 아니라 혀뿌리까지 조금씩 마비되고 있을 터다.

시간이 지나면 풀리긴 할 테지만, 그 시간까지 오지람이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다.


따악—


영부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이 신호였는지 닫혔던 부엌문을 열고 기다렸다는 듯 그의 보디가드 두 명이 들어왔다.


"이 여자 옮겨."


영부의 지시에 보디가드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보였다.

보디가드들은 여전히 공포로 물들어진 눈빛을 한, 몸이 굳어버린 오지람을 들쳐업고는 부엌을 빠져나갔다.


오지람은 발버둥치려 노력했다. 허나 소용없었다. 그녀의 혀는 점점 더 굳어왔고, 그녀의 심장 역시 점점 더 조여들어갔다.


"흠."


영부가 도마위에 놓인, 제대로 익었는지 윤기가 흐르는 잘린 배추김치를 집어들더니 입에 쏙 넣었다.

맛이 좋다. 아마 새우젓 덕분일 것이다.


"함부로 큰하늘님의 권위를 무시하면."


영부가 김치 하나를 더 입에 넣었다. 그의 입가에 김치국물이 묻어났는데, 마치 피가 흐르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 댓가는 죽음 뿐이지."






오지람이 어딘가로 끌려가는 동안,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은 근골격부서 대련실에 있었다.

직원들은 이번 오디션의 우승자인 광배와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황대근은 광배에게, '이번 오디션의 최종 우승자인데 혜택이 무엇이냐' 물었다.



보통 오디션은 1등을 할 경우 예를 들어 1억을 준다던가, 아니면 유명 브랜드 자동차를 준다던가 하는 혜택을 미리 공지할텐데, 드림팀 오디션은 아니었다. 오디션 관계자들은 그저 우승을 할 경우 배우가 될 수 있으며 뇌부서로서의 연봉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만 했을 뿐이다.


"참나, 저는 뇌부서로 이직시켜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광배는 툴툴거렸다.


"이번 오디션 목적이 뭐였는 줄 알아요? 그냥 몸 함부로 굴려도 되는 거. 아, 성적인 건 아니고 여러가지 위험천만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스턴트맨을 구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하실 겁니까? 드림팀의 전속 배우? 월급은 많이 준다던데요."


황대근의 질문에 광배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 월급이 미끼였어요. 브레인 부장 반칙저지른 거 알죠? 드림팀 오디션 관계자들은 뇌부서 직원을 뽑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뇌부서 놈들이 이번에는 좀 지지부진 했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나은 브레인을 뽑으려고 한 거죠. 사실, 녹스 팀장님 덕분에 뇌부서에서 유일하게 브레인만 최종 라운드까지 올 수 있었던 거예요."


혜윰이 물었다.


"녹스팀장님 덕분이라고요?"


광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래 오디션 관계자들은 뇌부서 출신 참가자들을 그냥 뽑아주려고 했는데, 녹스 팀장님이 완강하게 반대하셔서 그나마 브레인만 남은 거죠."


메모리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럼.. .월급은?"


광배가 말했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건 그냥 미끼였다고."


그러다 그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황대근이 물었다. 왜 그러느냐고.


"히히, 그래도 다행인 건 있어요! 이번 오디션 덕분에 뇌부서 여직원 한 명이 저한테 관심을 갖더라고요? 사실 한 명이 아니고 여러명이긴 한데..."


혜윰이 물었다.


"그래서, 사귀는 거예요? 그 뇌부서 여직원하고?"

"네! 어제부터 1일입니다!"


핑크빛 오오라를 풍기는 광배를 짜증난다는 듯 내려다보며, 레이지가 말했다.


"오, 정말 재수 없고 짜증나네요. 당장 꺼지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


레이지가 아무리 뭐라 해도 광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한참 분홍색으로 가득한 꽃밭을 걷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사실, 광배에게 이번 연애는 사상 첫 연애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성인이 되고 대근건설에 입사할 때까지 단 한번도 연애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그였다.


이는 근골격부서 직원들이라면 보편적인 현상 중 하나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하루 일과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근육과 데이트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내연애를 하고 있다고 저렇게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것이다.

대체 어떤 멍청이가 사내연애 한다고 떠들고 다니겠는가. 근골격부서 직원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뭐, 더 이상 들을 건 없고 우리도 그만 가죠. 점심시간 곧 끝나겠네."


황대근이 동료들을 이끌고 머리 속이 꽃밭이 되어버린 광배로부터 벗어나려 하는데, 누군가 황대근을 불러세웠다.


"대근군! 여기 있었구만!"


젠장, 왕근이다. 황대근은 동료애따위는 모두 집어치운 채 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의 동료들은 그가 도망치자 본능적으로 자기들도 뛰기 시작했다.


"대근씨, 왜 도망쳐... 으악!"


메모리가 왕근에게 붙잡혔다. 메모리는 혼자 죽을 수는 없었는지 레이지의 팔을 낚아챘다.


"아니, 메모리씨! 뒤질 거면 혼자 뒤져야지, 난 왜 잡아악!"


그러자 레이지도 혜윰의 팔을 잡았다.


"악! 레이지씨! 누가 내 팔 함부로 잡으래요? 미쳤어?!"


그리고 황대근 역시, 혜윰에게 붙잡혔다. 그는 소리쳤다.


"메모리씨! 당신의 희생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절 놓아주십시오!"


메모리가 소리쳤다.


"아니,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얘기는 곧 죽어도 안 하시네요?! 다들 이렇게 의리없이 굴 겁니까?!"


황대근이 혜윰의 팔을 뿌리치려 애쓰며 소리쳤다.


"그러는 메모리씨도 날 버리고 어서 도망가라는 말은 입이 바로 붙어있어도 안 하는군요!"


정말 눈물겨운 동료애다. 이들만큼 완벽한 콤비가 또 있을까.

바로 이 날,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30분이 더 지나서야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저녁시간이 될 때까지 두 다리로 걷지 못하고 기어다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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