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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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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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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72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1.2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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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젠 더 이상 비밀이 아니야 (1)

DUMMY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시간은 흘러 12월 6일 월요일이 되었다. 오늘은 2학년 2학기 기말고사의 첫날이다.


"어찌저찌 최저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어."


시험이 모두 끝나고, 황대근과 친구들은 복도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딱히 공부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았던 천강우는 내년에 고3이라는 사실이 제법 무겁게 느껴졌는지 최저가 어쩌고, 전문대가 어쩌고 하며 나름의 미래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오, 이번엔 좀 열심히 했나봐?"


이시연의 말에 천강우는 미간을 좁혔다. 그녀의 말에 화가 난 게 아니라, 김철환이 그에게 했던 헛소리가 생각난 것이다.


"당연히 열심히 했지. 김철환새끼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겠어. 내가 전문대 가서 잘 되면 어쩔거야? 4년제 대학 나와서 백수 되는 인간들이 한 둘이야? 우리 형도 지금 백수라고!"


천강우에게는 위로 8살 터울의 형이 한 명 있다. 나이차이가 제법 나서일까, 둘은 딱히 친하지 않았다.


말투는 틱틱거리고 어떻게 보면 싸가지가 없어 보이는 천강우는 나름 애교 많은 성격이었는데, 그의 형은 지나칠 정도로 무뚝뚝했던 것이다. 그의 형과 천강우가 나눈 대화는, 아마 1년 치도 채 안 될지 모른다.


"그건 그래. 우리 둘째 누나는 전문대 나왔는데 지금 돈 제일 잘 벌어. 모은 것도 많고. 가끔 나 맛있는 것도 사주고 용돈도 줘."


백경민에게는 두 명의 누나가 있다. 누나들은 천강우의 형과 엇비슷한 나이대였다.

집에 남자 형제밖에 없어서 그런 것일까, 천강우는 위로 누나만 두 명이 있는 백경민을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좋겠다. 나도 누나있었으면 좋겠다! 누나들은 형들처럼 싸가지 없지 않을 것 같어."


그러자 백경민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거 다 환상이야. 누나들한테 내가 얼마나 많이 욕먹고 혼났는데."

"최소한 개패듯이 널 패진 않을 거 아녀?"

"패진 않지. 둘 다 나보다 한참 작은데 날 어떻게 패. 대신 눈빛으로 날 패지. 그리고 둘 다 성질이 얼마나 사나운데. 말로 나를 죽기 직전까지 팬다니까. 요즘 와서 나아진 거야. 옛날에는 진짜 심했어. 나 야외운동 좋아하잖아. 피부가 타면 겁나 뭐라 한다니까? 옷 좀만 잘못 입어도 욕하고."


더 이상 누나들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지, 백경민은 화제를 돌렸다.


"야, 황대근. 그런데 영어 6번 답 3번 맞지?"


백경민이 구겨진 영어 시험지를 펼쳐 보여주자, 황대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5번인데. 아까 채점할 때 못 들었냐?"


그의 대답에 백경민은 제법 충격을 먹은 듯 했다.


"뭐? 3번 아냐? 복수형이라고 했잖아?"

"그렇지. 복수형 고르라고 했는데 넌 단수형을 골라버렸지."

"뭐라고?! 단어 끝에 s붙은 게 복수형이었어? 단수 아녀? 언제부터 복수였대? 왜 나한테 말도 안하고 복수형으로 바꿨냐? 이거 완전 세상이 잘못된 거 아니여?"


세상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백경민의 머리가 잘못된 건지는 알 수 없다.

한편, H고등학교의 뒷골목에서는 김철환과 안익준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눈다 하니 왠지 따듯한 말을 건넬 것 같겠지만 아니었다.

둘 사이에서 느껴진 분위기는 제법 서늘했다.


"아니, 쌤."


안익준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김철환에게 따졌다.


"곽쌤을 죽이면 어쩌자는 거예요?"


김철환은 제 나름대로 억울해 보였다.


"야,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냐? 그리고 내가 죽인 게 아냐. 다 큰하늘님의 뜻 아래서 행해진 일이라고. 믿음이 부족한 자는 원래....."


안익준은 짜증을 내며 김철환의 말을 잘라버렸다.


"아니, 믿음이고 나발이고. 곽쌤을 죽이면 난 어떻게 되는 건데요? 들키면 어쩌려고요?"

"그래도 넌 모의고사 성적이 좋잖냐. 티 안나."

"이번 기말공부 안 했다고요.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면 이상할 거 아니에요?"

"여자친구 사귀느라 소홀히 했다고 하면 되지."


저걸 대책이라고 알려주는 건가, 안익준은 코가 막히고 기가 막혔다.


"무슨 여자친구예요, 여자친구는? 이번 기말공부 진짜 안했는데, 성적 떨어지면 책임지실 거예요?"

"너 머리 좋잖아. 티 안난다니까? 네가 알아서 잘 해봐.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성적보다 고3성적이 더 중요한 거야."


김철환의 쓸데없는 위로 따위, 안익준에겐 통하지 않았다.


"저 서울의대 못 가면 쌤이 책임지실 거예요? 쌤이 책임질 거냐고요?!"

"뭐? 내가 그걸 왜 책임져? 너 미쳤냐?"


우지끈—


갑자기 들려오는 수상한 소리에 물어 죽일 듯 다투던 둘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누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누굴까? 학생? 아니면 선생?


"어이쿠!"


우지끈거리는 소리의 주인공은 신용호였다. 그는 무릎이 바닥에 닿은 채 넘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벽에 기대 둘의 대화를 엿듣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넘어진 모양이다.

넘어진 그의 옆에는 무너진 자잘한 교육용 자재들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그 놀라운 광경에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안익준의 얼굴은 그만 사색이 되어버렸다.

김철환은 최대한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겁 먹은 학생에게 권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넌 그만 가 봐! 가서 내일 시험 공부나 해! 쓸데없는 데 참견하지 말고!"


안익준은 쭈뼛거리며 김철환과 신용호에게 대충 인사를 하더니 특유의 거만함을 겨우 유지한 채 그곳에서 도망쳤, 아니 빠져나갔다.

신용호는 그런 안익준을 의심스럽다는 듯 쳐다보며,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쳐다보았다.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신용호가 안익준에게 집중하는 사이, 김철환은 그곳에서 몰래 도망치려 했으나 금방 들키고 말았다.


"시험지 빼돌리신 겁니까?"


신용호의 돌직구에 김철환은 심장이 바닥으로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으나, 티를 내지는 않았다.

신용호가 눈치챘을지는 모르지만, 김철환의 손끝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 자신을 의심하는 선생을 향해 비열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김철환이 대답했다.


"아뇨? 제가 그런 짓을 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

"모름지기 교육이란 언제나 공정함과 평등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런 치사한 짓 하는 놈이 아닙니다."

"뭐, 그럼 다행이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신용호의 눈빛을 외면하며 김철환은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러다 그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신용호를 향해 뒤를 돌아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말입니다. 괜히 이상한 소문 퍼뜨리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상한 소문이라니. 신용호는 의아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괜히 저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신다면, 명예훼손 죄로 당신을 고소할 테니까요. 저도 곧 정년인데, 명예롭게 퇴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가정이 있는 남자라서요."







첫날 시험이 끝나고, 박정우는 안익준이 소개해주었던 학원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는 기분이 꽤 좋았는데, 이번 기말 영어 성적이 올랐기 때문이다. 주위의 모든 관심을 끊고 공부에만 집중하다 보니, 조금씩 성적이 오르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물론, 아직은 아주 뛰어난 성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성장하고 있으니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황대근에 대한 그의 비뚤어진 열등감 역시 많이 줄어들었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니 얻은 긍정적 결과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쌤! 저 영어 성적 올랐어요!"


경쾌한 손짓으로 학원 문을 열어젖히며, 바로 보이는 박정우 담당 선생에게 박정우가 소리쳤다.


"저번보다 10점 올랐어요! 점점 오르고 있나 봐요!"


그런 날이 있다. 주변 풍경이라고는 쥐뿔도 관심 없었는데, 희한하게 그날따라 주변 풍경을 유독 자세히 관찰하고, 또 시야에 유독 자세하게 들어오는 날이 있다.

박정우에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원래 학원 위쪽 벽에 십자가가 달려있었던가? 흠,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랬던 것도 같다.


"정우 왔어? 오늘 시험 어땠어? 긴장은 안 했어?"


학원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책상에 앉아있던 한 여자 선생이 박정우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네. 잘 본 것 같아요. 올해 들어서 점수가 가장 높게 나온 시험이었어요. 영어가 10점이나 올랐다니까요!"

"음~ 잘했네. 저번에 내가 보여준 문제는 나왔니?"


박정우는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그 문제가 나올 거라는 걸 어떻게 예상하셨어요? 그 문제는 황대근 말고 다른 애들 거의 다 틀렸거든요! 안익준은 맞출 줄 알았는데 틀렸다고 하더라구요. 그 문제 쌤이 예상해준 문제랑 완전 똑같던데요? 답도 똑같고!"


이쯤 되면 눈치를 챌 법도 하건만. 박정우는 눈치가 없었다.

그런 불쌍한 박정우를 향해 선생은 눈웃음을 살풋 지으며 말했다.


"하하, 그냥 이 일 오래하다 보면 감이 절로 생기는 거야. 그나저나 내일은 뭐 본다고 했었지? 얼른 예상문제 풀어야지?"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점심시간이 끝날 때 쯤이었다. 메모리아부서 직원들, 그 중에서도 혜윰과 황대근은 한참 드림팀 오디션을 위한 연기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황대근은 딱히 오디션을 볼 생각이 없었다. 드림팀 배우가 되어봐야,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한들 일만 더럽게 많이 시키고 귀찮고 대사를 외우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을 더 준다고는 하지만, 황대근은 이미 돈에 관한 건 초월한 상태였다. 의미가 없다. 어차피 나중에 은퇴하고 일 그만 둬도 매달 500만셀이 통장에 꽂히는데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는가.


'그러니까, 저 말고 메모리씨랑 연습해요.'


황대근은 혜윰에게 자신의 거절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혜윰은 메모리가 자신을 경쟁자로 생각한다면서, 자신과 연기 연습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대답했다.


결국, 황대근은 혜윰과 연기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좋아요. 그럼 제가 정우엄마 역을 할 테니까, 대근씨는 영부역을 해요."


혜윰이 배역을 임의로 정해주었는데, 황대근은 불만족스러웠다.


"왜 내가 영부역입니까?"

"그럼 대근씨가 정우엄마역 할래요?"


그는 영부든 정우엄마든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영부역은 좀 더 뻔뻔하고 싸가지 없고 성격 드러운 애가 해야 찰떡이죠. 저는 너무 온유하고 성품이 온순해서 영부역을 하기엔 조금... 안 맞는다고 할까요?"


황대근의 말 같지도 않은 말에 혜윰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정말 개소리하시네요. 입 다물고 그냥 영부역 하세요."


조금 전부터 둘의 연기 연습을 구경하기를 기다리던 레이지는, 도무지 연기 연습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인내심을 잃고는 소리쳤다.


"아오 진짜! 둘 다 입 좀 닥치고 그냥 연기 연습 빨리 하면 안 되는 겁니까? 굼벵이가 집 짓는 것도 이것보단 빨리 짓겠네."


레이지가 툴툴거리자 황대근과 혜윰은 그런 레이지를 빤히 쳐다보더니 동시에 외쳤다.


"와~ 말하는 싹바가지! 레이지씨가 영부역을 하면 완전 찰떡이겠는데요?"


이래서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법이거늘, 레이지는 결국 하루종일 혜윰의 연기상대가 되어주어야만 했다.

정우엄마역을 맡은 혜윰은 연기인지, 아니면 진심이 담긴 것인지 모를 주먹질을 영부역의 레이지에게 마구 선사해주었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면서, 황대근은 저 자리에 자신이 없다는 것에 대해 하늘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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