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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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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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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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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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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젠 더 이상 비밀이 아니야 (2)

DUMMY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직원휴게실)



다음 날 화요일, 인간 황대근이 한창 시험을 치르고 있을 때였다.

그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에는 뇌부서, 특히 맷돌팀이 가장 바쁘고 나머지 팀들은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


책상에 앉아 가만히 시험을 치르니 손과 발팀장 빅풋이 일을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손과발팀의 핑거스 형제들과 핑거스 자매들만이 섬세한 작업을 할 뿐이다.


인간 황대근이 컴퓨터용 싸인펜을 이용해 OMR카드를 체크할 때, 핑거스 형제자매들이 조금만 실수를 하면 마킹이 번지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인간 황대근이 시험기간일 때가 가장 바쁘다고 할 수 있다.


웅성웅성—


메모리아부서는 한가한 편이었다. 지금은 굳이 메모리아부서가 일을 할 타이밍은 아니었으니까.


직원 휴게실에는 레이지를 포함한 4명의 직원들이 오랜만에 주혁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황대근은 휴게실에 있는 이들에게 크레파스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쉐도우는 다시 자신의 정체에 대한 기억을 잃은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메모리는 황대근이 들려준 이야기를 곱씹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범인을 잡지 않는 이상 쉐도우는 안전하잖아요? 근데 왜 대근씨를 해치려 들었던 거죠? 막말로 인간 대근이가 범인에 대한 기억도 잘 못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영부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전 생각해요. 저번에도 여러 사건이 있어서 다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분명히 공범이 있어요. 누군진 모르겠지만."


혜윰이 메모리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건 맞는 말이에요. 인간 대근이는 13년 전 그날의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요. 대근씨가 그때 기억과 무의식에 들어가 봐서 알겠지만, 범인의 얼굴은 여전히 지워져 있었잖아요. 메모리씨 말대로, 쉐도우가 굳이 대근씨한테 위협적으로 굴 필요가 없을 텐데요."


4명의 직원이 한 소파를 죄다 차지해 앉아있던 터라, 어쩔 수없이 서 있던 주혁은 혜윰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날의 기억은 분명히 남아있어. 그게 바로 기억 상실증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거든."


혜윰이 소리쳤다.


"그 날의 기억이 기억상실증의 원인이라고요? 대근이가 지금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거예요?"


황대근이 대신 대답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기억상실증을 조금 과장되게 다루어서 그렇지. 생각보다 대다수의 인간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기억상실을 겪고 있습니다. 비참하고 공포스러운 기억과, 그것 때문에 도로 살아난 마음 속 깊은 회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거죠."


그가 말하는 동안, 주혁은 레이지를 번쩍 들어 바닥에 던지고는 자기가 소파에 앉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황대근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기억을 억압한 것이고, 표면적으로 기억상실처럼 나타난 겁니다. 대근이 같은 경우는 완전한 기억상실이라기보단 아마 부분기억상실이라 해야 맞겠지만요."


과거의 기억이 너무 고통스럽거나 충격을 먹어서, 의식이 그것을 완전히 억압하고 있다면 기억상실증을 불러올 수 있다.

의식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과거의 회상이 떠오르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제 아무리 인간 황대근의 무의식이 깨어났다 해도, 의식의 허락이 없이는 무의식이 제멋대로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저, 그럼...."


주혁에 의해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레이지가 인어공주 자세를 취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결국 무의식을 해결해야 의식이 해결된다는 게 아닙니까? 그렇게 해야 범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주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소용 없어. 범인의 얼굴을 기억해 낸다 해도 범인을 감옥에 가둘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잖아. 증거가 없으면 경찰도 범인을 잡아가지 못해. 그리고 만약 인간 황대근이 범인의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면 그놈은 아마 미쳐 돌아버릴지도 몰라."


말이 살인사건이지, 자기 부모가 눈 앞에서 가죽이 벗겨져 살해 당한 걸 똑똑히 기억하며 사는 게 얼마나 괴롭겠는가?

현재 인간 황대근의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범인의 얼굴을 선명히 기억해낸다면, 인간 황대근의 정신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영부가 범인으로 추정되고 있잖아요. 만약 영부가 범인이 확실하다고 쳤을 때, 그가 13년 전의 범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죠?"


혜윰의 핵심적인 질문에 휴게실 내에 있던 직원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고민에 빠졌다. 영부가 13년 전의 범인이라는 것을, 대체 어떻게 증명해낸단 말인가?


영부가 범인이라 확신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사건이 점점 방대해질 수록 영부의 뒷편에 누군가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황대근은 궁금했다. 그가 누굴까? 본 적은 있을까? 마주친 적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우리가 영부에게만 많은 집중을 하여 화가 나진 않았을까?






(대근건설 - 제 1건물 브레인 - 부장실)



드림팀장 돌쇠가 열심히 미생물들을 굴리고 있는 동안, 브레인은 연기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부서의 장도 아니고 뇌부서의 부장인 그가 경제적으로 궁핍할 이유는 전혀 없을 터인데, 그는 드림팀 배우 오디션에 지원했다.


보통 인간들의 배우 오디션은, 특히 주연급 배우를 뽑는 오디션은 잘생기고 아름답고 몸이 좋고 키가 커야 아무래도 유리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드림팀 오디션은 좀 다르다.



인간 황대근이 백날천날 예쁘고 잘생긴 인간들만 보는 것도 아니고, 꿈이라는 것은 평범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뛰어넘기 때문에,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오게 된다. 때로는 인간이 아닌 괴물이나 허구의 존재들, 혹은 마다가스카의 신비로운 생물들부터 우주적 존재까지 다양하다.


그러니 외모적으로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브레인이 배우 오디션에 도전하는 것이 딱히 이상할 일은 아니다.


"흠흠~"


브레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장실 한 구 석에 있는 옷장으로 걸어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곳에 옷장이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흠흠~ 오디션 보러 갈 때는 이걸~ 입고 가야지~"


그는 옷장에서 새하얀 발레리나 복장을 꺼내 들었다.

그가 입기에는 너무 작지 않을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그런 복장은 옷장에 한가득 걸려있었다.

그 중 몇 개는 심하게 늘어나 있었는데, 특히 허벅지와 배, 그리고 팔뚝 부분이 축 늘어나 잇었다.

아무래도 한 두 번 입어본 게 아닌 것 같다.


"그럼 이걸 입고 연습 해 볼까? 오디션날 긴장하지 않으려면, 연습을 많이 해 둬야 하는 법이지."


브레인은 문 쪽으로 가서 확실하게 잠겼는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사뿐한 발걸음으로 입고 있던 양복을 하나하나 훌렁훌렁 벗기 시작했다.

딱히 묘사하고 싶지 않은 잠깐의 순간이 지나고, 꽃무늬가 그려진 사각 트렁크 팬티만 입고 있는 브레인은 제법 힘겹게 발레리나 복장을 입고 있었다.

발은 어찌저찌 들어갔고, 문제는 허벅지인데 그의 허벅지가 순수 지방으로만 이뤄진 두꺼운 허벅지라 그런지 발레리나 복장은 꼭 끼어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 이거 왜 이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쑥쑥 잘만 들어갔는데.... 아오 진짜!"


아무래도 조금 전 보았던 옷장 속의 옷들이 늘어난 이유가 있는 듯 하다. 옷 하나 입는데 저리 고생하는 것을 보면.


"아오, 썅! 내가 얼마나 날씬한데 이게 안 들어가?! 옷 잘못 만든 거 아냐?!"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한 10분 정도 걸렸을까. 브레인은 드디어 발레리나 복장을 입을 수 있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옷장 옆에 있는, 닦지 않았는지 아주 더러운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이리 저리 살폈다.

그러고는 발레 동작 중 하나인 그랑 쥬테(grand jete)를 연습했다.


쿵—!


다른 발레리나나 발레리노처럼 착지 시 아주 가볍게, 마치 깃털이라도 된 것처럼 가볍게 착지해야 하는데, 브레인은 아니었다.

쿵쿵쿵. 이 세글자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브레인은 모든 발레 동작을 쿵쿵쿵. 이 세글자로만 표현했을 뿐이다.


"후후, 이번 오디션은 내가 다 쓸어버린다."


본인이라도 즐거워하니 다행이다. 남들은 괴로울지 몰라도, 본인은 즐거우니 최소 스트레스는 받지 않을 것 아닌가.

물론, 하루빨리 진실을 알았으면 싶긴 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 날의 시험이 모두 끝이 났고, 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선생들은 학교에 남아 자잘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1교시부터 3교시까지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금방 점심시간이 돌아왔고 선생들로 가득했던 교무실은 텅 비어버렸다.


시험 날에는 급식을 주지 않기 때문에, 선생들은 보통 대체로 나가서 사 먹든, 해 먹든 굶든 하며 점심을 해결했다.

신용호는 굶는 쪽을 택했다. 최근 몇 주간 앉아서 일만 해서 그런가, 속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다 큰 어른이니 한 끼 정도 굶는다고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더 이상 키가 자라거나 몸 속 장기들이 자랄 나이는 훨씬 지났으니까. 오히려 줄어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럼 이 정도로 된 것 같고...."


얼추 일을 마친 신용호가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삼각김밥이라도 사올까 고민하는데, 오늘따라 김철환의 빈 자리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는 전날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안익준과 김철환이 수상한 대화를 했던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워.'


'혹시나?'하는 의문가득한 생각이 그의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쨌든 직장동료로서 함부로 사생활 침해를 하면 안 되지만, 신용호는 결심했다.

그는 교무실 문으로 가서 복도에 누가 있나 확인한 후, 김철환의 자리로 갔다.


김철환의 옆자리는 곽두팔의 자리였다. 하지만 그가 이젠 죽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책상은 텅 비어있었다.


'갑작스럽게 죽긴 했지.'


신용호는 김철환의 책상을 이리저리 훑어보았으나 특별히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다.

책상은 언제나처럼 과자 부스러기들과 텅 빈 과자 봉지들, 그리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구성된 걸그룹 앨범과 굿즈(goods)가 책상 여기저기를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 내가 괜히....'


의심을 거두고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무언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곽두팔의 책상 가장 아랫서랍에 무언가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서랍의 틈새 사이로 약간의 회색빛이 도는 빳빳한 종이가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살짝 튀어나와있었다.


'크흠....'


신용호는 나쁜 짓을 저지르려는 어린아이마냥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하더니, 천천히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서랍 안에는 그가 예상했던 바로 그것이 들어있었다.

시험지였다.


'이건... 1학기 중간고사랑 기말고사 시험지인데?'


시험지에는 작은 메모장이 붙어있었다. 단순히 시험지가 교사의 책상 서랍에서 나왔다고 무조건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메모장이 결정적인 단서였다.


'역시, 그동안 안익준한테 시험지를 빼돌렸던 거야. 그래서 곽선생이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았나? 김철환한테 협박 당한 건가?'


웅성웅성—


바로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고 허세 가득한 목소리가 주를 이루는 것을 보니 아마 김철환인 것 같다.

신용호는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으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본능적으로 들고 있던 메모가 적힌 시험지를 접어 자켓 안주머니에 쏙 넣어버렸다.

드르륵. 교무실 문이 열렸고, 신용호는 자기 자리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보는 척 했다.


째깍째깍—


오늘따라 유난히 소리가 크게 들리는 교무실 벽에 걸린 시계 바늘의 움직임을 따라, 그의 심장은 약하게 두근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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