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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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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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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8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1.2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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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1)

DUMMY

(대근건설 - 망각의 호수)



며칠 뒤 토요일. 망각의 호수는 조용했다.

노인은 언제나처럼 호수에 낚시바늘을 던진 채 태평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이런~ 염병할. 허구한 날 허탕이니 이건 뭐 재능이 없는 건지 신이 날 외면한 건지 헷갈릴 지경이로구만."


늘 그랬듯이, 낚시는 언제나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다른 직업으로 바꾸든지 해야지. 이러다 굶어 죽겠ㄴ..... 어?"


그때, 낚싯대에 긴장감이 돌면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줄이 팽팽해졌다. 호수 밑에서 무언가가 미끼를 문 모양이다.


"좋았어! 물어라, 물어! 오랜만에 큰 놈 하나 낚아보자!"


노인은 무거워진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허나 쉽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노인이 호수에 빠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내가 뒤질 것 같으냐?!"


최선을 다해 낚싯대를 잡아당기니, 기억 하나가 올라왔다. 제법 큰 기억이다.

노인은 늘 그랬던 것처럼 건져 올린 기억을 흐뭇하게 쳐다보더니 옆에 있는 통에 던져 넣었다.


노인이 제대로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re:recall : deleted memory - unknown]






(대근건설 - 디톡스)



점심시간이었을까, 미르는 메모리아부서로 왔다.

피니시 팀장의 허락을 받고 황대근과 함께 디톡스에 가기 위해 혈관정류장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크레파스를 찾아야 하니까.


이시연의 일도 끝났고, 위장팀의 바쁜 하루하루도 끝이 났으니 드디어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크레파스가 얼마나 대단한 거길래 이렇게 찾으려고 그러시나요?"


혈관버스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으며 미르가 물었다.


"그건 그냥 애들이 갖고 노는 크레파스일 뿐이잖아요."


황대근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냥 크레파스가 아닙니다. 상상력을 이용할 수 있는 크레파스죠."

"상상력이요?"

"그 크레파스는 상상력을 이용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크레파스입니다. 그걸 쉐도우가 손에 넣기 전에 먼저 찾아야겠습니다."


미르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쉐도우가 먼저 손에 넣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인간 황대근에게 아주 불리한 일이 벌어질 지도 모릅니다. 정확히 무슨 일일지는 확신하기 어렵겠지만."


한참을 떠들다 보니 혈관버스는 어느새 디톡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주위 디톡스 직원들이 메모리아부서 직원인 황대근을 보며 눈치를 주기는 했지만, 감히 제재할 수 는 없었다. 곁에 미르가 있었으니까.


미르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황대근을 바라보는, 디톡스 정문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위장팀 증명 카드를 보여주었다.


"피니시 팀장님께서 흡수되지 못한 영양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디톡스 측에서 그 영양소들을 가져갔다고 되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뇌부서보다는 못하지만, 소화기 부서의 위장팀은 나름의 권력을 쥐고 있기는 했다.

미르의 말대로 여러 영양소들이 미처 흡수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디톡스는 위장팀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런 영양소들을 함부로 치우고는 했던 것이다.


"정말로 피니시팀장님이 영양소를 찾아오라 하셨습니까?"


디톡스 건물 내로 들어서며 황대근이 질문하자, 미르는 씨익 웃었다.


"후후, 아뇨. 우리 피니시팀장님께서 위장팀장이 된 이후로는 대근이 몸 속에 흡수되지 못하는 영양소는 하나도 없답니다. 그만큼 대근이 몸이 건강하다는 거죠. 우리 위장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황대근은 예전에 한 번 혜윰과 디톡스에 온 적이 있다.

메모리아부장이었던 트래디션이 죽은 후 왔던 것인데, 이렇게 정식 루트를 통해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분명히 그때는 혜윰이 누군가의 뒷목을 탁 하고 쳐서 좀도둑마냥 몰래 잠입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자, 여기가 분류장이에요."


뭐가 어찌 되었든, 그들은 분류장에 도착했다.


분류장은 디톡스 측에서 대근건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등등을 주워 말 그대로 분류하는 곳인데, 이곳은 완전히 소각할 것들과 아닌 것들을 구분하고는 한다.

소각되는 것들은 보편적으로는 소장팀과 대장팀으로 보내진다.


낑낑-


미생물들이 개고생을 하며, 순 생작업으로 쓰레기들을 구분하고 있었다.

미르는 흡수되지 못하고 버려진 영양소, 즉 미네랄과 나트륨, 지방이나 비타민 등등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살피는 척을 했고, 황대근은 'ect(기타)'라고 적혀있는 곳으로 갔다. 크레파스는 영양소가 아니니까.


'젠장, 왜 없지?'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크레파스는 보이지 않았다. 작업하던 미생물 하나가 곤란에 빠진 황대근의 표정을 보더니 도와주느냐 물었다.


"음.... 제가 몇 번을 뒤져봐도 안 보이네요. 죄송합니다."


미생물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크레파스는 찾을 수 없었다.

미생물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는지 황대근에게 말했다.


"크레파스 같은 건 어지간해서는 발견되기 어려운 물건입니다. 만약 발견되었다면, ect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 아마 뇌부서로 보내질 테니까요. 평범하지 않은 물건은 헨리 사장님께서 본인에게 직접 가져오라고 하셨거든요."


결국,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둘은 디톡스를 빠져나왔다.

미르는 일단 명분을 내세워야 하기 때문에 비타민(처럼 보이는)과 미네랄(처럼 보이는)것들을 일부 들고 있었다.



너무나 지친 나머지, 둘은 혈관버스를 타고 WBC매점에 내려 적혈구 라떼를 마시기로 결정했다.

부족했던 당이 채워지고 있을 때 쯤, 미르가 황대근에게 물었다.


"크레파스는 찾으셨어요?"


황대근은 입을 빨대에 박은 채 고개를 저었다.


"미생물 한 명이 도와주긴 했는데, 못 찾았습니다."


미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크레파스는 어디 있는 걸까요? 누가 먹었나?"






(대근건설 - 제1건물 브레인 - 사장실)



비슷한 시각, 쉐도우는 사장실에 있었다.

그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영부가 그에게 화를 냈기 때문이다.

화도 그냥 화가 아니었다. 허리케인, 아니 토네이도 급의 화였다.


"젠장할,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첫 번째 인위적 자아도 망했고, 두 번째 인위적 자아도 망한 터라 영부는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심지어 어찌 된 일인지, 그의 머리 중앙 부분은 차량 없는 고속도로 마냥 뻥 뚤려있었다.


머리숱도 풍성했던 놈이 갑자기 왜 저리 된 것인지 쉐도우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지도 잘못한 게 많지.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데....!"


털썩. 쉐도우는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는 순간,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회색 정장 바지 뒷주머니에 무언가 들어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안에 있는 것을 꺼냈다. 크레파스였다.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쉐도우의 엉덩이 힘 때문인지 크레파스는 절반이 뚝 부려져 있었다.

그는 부서진 크레파스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뒷통수를 한 대 맞기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황대근......?"






(대근건설 - WBC매점)



"그래서, 너는 휴가가 없는 거야?"


휴가 따위는 꿈도 못 꾼다는 미르에게 황대근이 물었다.

황대근 역시 젊은 나이이기는 했지만, 미르의 나이가 훨씬 더 어렸기 때문에(미성년자일지도 몰랐다) 황대근은 말을 놓기로 했다.


"왜 휴가가 없지? 위장팀은 원래 그런 거냐?"


미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저희가 일을 멈추면, 대근이는 큰일나요."

"평생 일을 해야 하는 거야?"

"그런 셈이죠. 나중에 대근이가 나이가 들면 좀 천천~히 일해도 된다고는 하는데.... 이게 인간들마다 달라서 꼭 그렇지도 않대요. 어떤 인간은 20대때 위장 다 버려서 위장팀이 한가하다고 하고, 어떤 인간은 나이 70이 되어서까지 소화력이 좋아서 위장팀이 개고생을 한다고 하구.... 대근이는 어찌될 지 모르겠어요."


미르가 언제 올지, 오긴 올지 확신조차 하기 어려운 자신의 미래 얘기를 하는 동안 황대근은 생각했다.

아까 디톡스에 갔을 때, 분류장에서 미생물이 했던 얘기가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크레파스 같은 건 어지간해서는 발견되기 어려운 물건입니다. 만약 발견되었다면, ect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 아마 뇌부서로 보내질 테니까요. 평범하지 않은 물건은 헨리 사장님께서 본인에게 직접 가져오라고 하셨거든요.'


왜 헨리는 ect로 분류되는 것들을 자신에게 가져오라 한 것일까?

어쩌면 헨리가 아니라, 그의 뒤에서 쉐도우가 지시했던 명령은 아니었을까?


'평범하지 않은 물건이라. 만일을 대비해서 준비하려 한 건가?'


그때, WBC매점 야외 테라스에 앉아 느긋한 간식타임을 즐기던 황대근과 미르에게 누군가 달려왔다. 플루였다. 그녀의 옆에는 키도 있었다.


"대, 대, 대, 대근씨!!!!"


플루의 표정은 그녀의 덜덜 떨리는 목소리 만큼이나 심각해 보였다.

황대근은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은 플루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플루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우, 우, 우리 대장님이....!!!"


답답했는지, 그녀의 곁에 있던 키가 대신 소리쳤다.


"케어 대장님께서 사라지셨어요!"


미르는 비명을 질렀고, 황대근은 생각했다.


'아니, 요즘 실종이 유행인가? 피니시팀장님도 저번에 갑자기 사라지시질 않나, 이번에는 케어야?'


아무래도 굿이라도 한 판 하는 게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케어는 영부의 몸 속에 있었다. 그는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다른 인간의 몸 속, 그러니까 다른 회사에 온 것은 케어로서는 처음이었다.

사실 대근건설외에 다른 회사로 갈 기회가 좀처럼 없기도 했지만, 굳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으니까.


'근데 여긴 뭐가 이렇게 칙칙하고 어두워?'


대근건설은 개떡같이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나름 찰떡같이 영차영차 굴러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이상했다. 너무 어두웠고, 직원들로 추정되는 이들도 모두 칙칙하게 생겼다. 마치 악마들처럼 생겼다.


사방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드넓고 푸르른 운동장도 없었다.


"빨리빨리 걸어!"


케어의 양 옆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햇빛을 못 봐서 그런 것인지 피부는 하얗다 못해 거의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체격은 우락부락했는데, 똑같이 우락부락한 왕근과는 다르게 이 두 남자에게는 이유 모를 불쾌감이 들었다.


"사장님, 침입자를 데려왔습니다!"


한참을 걸었을까, 두 남자의 걸음이 멈췄고 케어 역시 걸음을 멈추었다.

케어의 앞에는 옛날 중국 황제가 앉아있을 법한,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덜 화려하고 칙칙한 색으로 치장 된 높은 단상이 있었다. 단상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기가 죽은 케어는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릎 꿇어!"


두 남자의 호통에 케어는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녀석이 모발팀 두피에서 발견되었다고?"


단상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어는 이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허나 한편으로는, 상당히 낯선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습니다 사장님."

"뭐.... 알겠다."


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마주 봐라."


목소리가 케어에게 명령했다. 케어는 자신을 짓누르는 싸늘한 분위기를 이겨내려 애쓰면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게 되자, 케어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쉐, 쉐, 쉐도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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