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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377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1.2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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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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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2)

DUMMY

다음날 일요일 이른 새벽, 케어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오늘 따라 희한할 정도로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침대에서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뒹굴거렸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어. 내가 다른 회사 직원한테 납치 당해서 이상한 곳에 갇히는 꿈이었거든. 그게 말이 되냐? 게다가 감옥에 갇히기까지......"


이불을 찾아 손을 더듬거리던 그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감지했는지 감았던 두 눈을 번쩍 하고 떴다.


".....뭐지?"


케어는 눈치가 없지 않다. 이곳이 자신의 침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아니, 세포를 잡는다.

케어는 딱딱한 감옥 바닥에 드러누운 채 전날 있었던 일들을 회상했다. 아니, 회상할 수밖에 없었다.


영부의 머리를 다 뽑아버리고 대근건설로 돌아가려 했는데 영부의 몸 속 직원들이 그를 납치했고, 결국 그는 영부의 몸 속을 지배하는 또 다른 사장을 만난 후 이곳 감옥에 갇혀버렸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네. 쉐도우가 왜 여기 있지? 분명 대근건설에 있을 텐데? 왜 여기 있는 거야? 쉐도우가 그럼 두 명이야?"


쾅—


케어가 한참을 중얼거리고 있는데, 무언가 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날 그를 쉐도우에게 끌고 갔던 두 남자가 나타났다.

왼쪽에 서있는 남자의 손에는 감옥의 문을 열 수 있는 낡은 열쇠가 들려있었다.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의 손에는 개밥그릇이 들어있었다. 그 안에는 뭐랄까, 나름 예쁘게 꾸며 놓은 음식물 쓰레기처럼 생긴 음식이 들어있었다.


"처먹어라."


남자가 개밥그릇을 케어에게 던졌고, 감옥을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정확하게 10분 준다. 그 안에 다 처먹어라. 10분이 되면 다시 올 테니까."


두 남자가 떠나고 케어는 두 명이 있던 자리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쌍으로 날렸다.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기분이 나빴다. 자기가 무슨 짐승도 아니고, 개밥그릇에 밥을 주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안 먹으면 또 뭐라고 지랄이는 거 아냐?"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았다. WBC의 정식대원이 되기 전 견습생 때 배고픔을 참는 극한의 훈련도 하니까, 이정도쯤은 케어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몰래 버려야지.'


두 남자가 오는지 잘 감시하며, 케어는 감옥 저편 구석에 있는 변기에 개밥을 흘려 내렸다. 그리고 물을 내려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버렸다.


"다 처먹었냐?"


10분이 지났는지 두 남자가 도착했다. 케어에게 밥그릇을 던져주었던 남자는 깨끗하게 빈 그릇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아, 잘 처먹었군. 이제 문을 열어줘."


남자의 말에 열쇠를 들고 있는 남자가 굳게 잠겼던 감옥의 문을 열어주었다.

두 남자는 케어의 양 팔을 단단하게 붙잡은 후, 그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머리카락을 복구해."


쉐도우를 닮은 남자, 즉 사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케어의 예상을 뛰어넘는 말이었다.


"영부의 머리를 복구해 놓도록 해라."


케어는 곤란했다. 이미 다 뽑혀버린 머리를 어떻게 복구한단 말인가?

그 방법을 알면 인간들이 저리 마음고생하고 괴로워하고 고통을 받겠는가?


'그나저나 머리도 머린데, 목소리가....?'


죽은 머리카락을 되살리라는 요구도 요구였지만, 그보다 어제부터 케어를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사장의 목소리였다.

케어는 고개를 들고 사장의 얼굴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분명 생김새는 남자인데, 목젖도 튀어나왔는데, 털도.... 나는 것 같은데, 왜 목소리는 여자인 걸까?


'아니지, 목소리가 얇은 남자들도 있잖아. 이렇게 편견에 휩싸여서야....'


케어는 자신의 고정관념에 대해 잠시 반성하더니 사장에게 말했다.


"저, 머리카락을 복구하는 건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퍼억—


케어가 사장의 명령을 부정하자 곁에 있던 간수하나가 그의 뒷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케어를 끌고 왔던 두 남자는 감옥의 간수들이었다.

간수가 케어의 뒷통수를 더 후려치려 하자, 사장이 말렸다.


"됐어, 그냥 둬. 자기가 아마 뭘 잘못했는지도 모를 거야."


간수가 사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다시 뒷짐을 진 상태로 케어를 감시했다.

사장이 여전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케어에게 말했다.


"네 녀석이 우리 주인 머리에 탈모라는 무서운 질병을 퍼뜨린 것을 잘 알고 있다. 원래대로 복구해라."


케어는 억울했다.


"아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건 복구 못 한다니까요? 죽은 머리를 되살리는 건, 인간들도 해결하지 못한 세기의 난제라고요!"


그러나 사장은 막무가내였다.


"네놈을 잡아온 이유는 단 하나다. 주인의 머리를 원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지."

"젠장!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걸 알면 우리 인간 황대근이한테 레시피 전달해줘서 떼부자 되게 해줬겠지! 썅!"


케어가 난리법석을 피우자, 사장은 간수들에게 소리쳤다.


"저 놈이 복구하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감옥에 가둬라!"


간수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케어를 붙잡아 다시 감옥으로 끌고 갔다.

질질 끌려가는 케어는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심정이었다. 약을 만들어줄 혜윰도 없는데, 어떻게 머리카락을 되살린단 말인가?


"쌍놈들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하냐고! 니들도 못하는 걸 나보고 하라고 해?! 이 양심 없는 개새끼들!"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직원휴게실)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은 심각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 주제는 바로, '케어를 어떻게 구출할 것이냐'였다.

레이지를 포함한 4명의 직원들은 언제나처럼 직원휴게실에 모여 앉아 있었는데, 컨트롤은 그런 레이지 때문에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뇌부서 직원의 자부심은 어디에 내팽겨쳐놓고 저 지랄일까 싶었던 것이다.


"확실한 건, 케어는 지금 영부의 몸 속에 갇힌 거네요. 꼼짝 없이 갇힌 겁니다."


컨트롤이 걱정을 하든 말든, 레이지가 말했다.


"함부로 타 회사 직원을 납치하다니, 정말 예의가 없는 놈들이로군요."


메모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거긴... 월급 많이 줄까요...?"


레이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어느 부서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제 우린 어떡하죠?"


혜윰이 물었다.


"영부의 몸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요? 그런데 거긴 어떻게 들어가요? 영부랑 뽀뽀라도 하지 않는 한 들어가긴 어려울 텐데요."


인간들은 알지 못하지만, 인간의 몸 속에는 저마다 대근건설과 흡사한 각자 나름대로의 회사가 존재한다.

직원들이나 세부적인 사항은 달라도, 부서나 팀은 대체로 비슷한 편이다. 인간들 몸 속에 들어있는 장기들이야 뭐, 누구나 다 똑같지 다르진 않으니까.


인간의 몸 속에서 일을 하는 직원들은, 부서이동이나 팀 이동이면 모를까 이직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법적으로 막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인간들이야,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직장을 옮기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이놈들은 좀 다르다. 한 회사에 평생 뼈를 묻을 각오로 임해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허나 아주 간혹 가다 이직에 성공하는 경우가 존재하기는 한다.


다만, 그 방식이 수위가 조금 높을 뿐이다.



혜윰의 말대로, 인간 황대근이 영부와 진한 스킨십을 하지 않는 이상 영부의 몸 속으로 들어갈 방도는 없다고 보면 된다.


"휴우...."


초파리 모양 비행선을 타고 가기에도 애매하다는 결론 때문일까, 혜윰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죠. 방법은 그럼 하나 뿐이에요. 제가 사랑의 묘약이라도 만들어서 지그문트 팀장님한테 연락을 할게요. 그런 다음에는 대근이랑 영부가 서로의 몸을...."


끔찍한 대사가 나오기 전에, 황대근이 서둘러 혜윰의 입을 막았다.


"그건 안 됩니다!"


자신의 입을 막았던 황대근의 손을 떼어내며 혜윰이 꿍얼거렸다.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요? 이거 밖에는 없다구요. 원초적 본능을 이용한 원초적 방법으로..."

"아뇨, 방법이 있습니다. 절대로 대근이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막아야죠! 대체 어떻게 영부랑 그딴 짓을 하게 만들 생각을 하는 거지!"


나머지 세 명의 직원이 19금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황대근은 생각했다.


'크레파스, 크레파스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만 있으면 공간이동은 쉽게 할 수 있단 말이지. 그때 부바와 키키를 구할 때도 보면 쉽게 공간이동을 했었어. 크레파스가 어디 있는지만 알면 되는데.... 하지만 크레파스가 어디 있는지 찾기까진 너무 오래걸려. 언제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잖아. 그럼 방법이.....'






(대근건설 - 뇌부서 - 드림팀)



밤 11시, 황대근은 드림팀의 수면실로 갔다.

레이지의 권한을 이용해 들어갈 수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드림팀 직원들은 아직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녹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직원들이 와서 황대근에게 왜 이곳에 있느냐 따져 물으면 레이지의 핑계를 대면 될 터였다.


뇌부서 직원들은 재수 없고 밥맛 떨어지는 인간들, 아니 세포들이지만, 내 편일 경우 이렇게 편할 수 가 없는 것이다.

원래 성질 더러운 놈들은 남의 편일 때는 나쁜 놈이지만 내 편일 때는 착한 놈이니까.


풀썩—


수면실의 침대에 풀썩 드러눕자, 포근한 이불이 그의 몸을 감쌌다.


'진짜 비싼 침대 쓰나? 끝내주네 아주. 그냥 영원히 잠에 빠져들어도 상관없을 정도야.'


황대근은 케어고 뭐고, 그냥 이대로 잠에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애써 유혹을 뿌리치고는 두 눈을 감은 후 드림팀에 오기 전 레이지와 했던 대화를 상기했다.


'레이지씨, 드림팀 수면실에 절 좀 보내주세요.'

'수면실이요? 거긴 왜요?'

'거기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영부의 꿈 속에 들어가서 케어를 되찾아올 겁니다.'

'여기 직원휴게실 소파에서 해도 되잖습니까?'

'저번에 한 번 수면실에 맛을 들인 후로는 거기가 아니면 집중이 잘 안 됩니다.'

'그냥 거기 침대에 편해서 가고 싶은 건 아니고요?'

'......'


재수 없기는. 그냥 좀 들어주지.


'뭐, 어려운 건 아니니까 들어는 주겠는데.... 정말 할 수 있겠습니까? 케어를 데려오는 거 말입니다.'

'당연하죠.'

'아니, 이론상으로는 그럴 수 있다 쳐도 그게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냥 영부랑 대근이랑 그렇고 그런짓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레이지가 지그문트에게 연락을 취하려 하자, 혜윰은 그를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대근씨는 드림워커예요. 꿈이나 기억, 그리고 무의식을 이용해 상대에게 접근하는데는 도가 텄죠. 이러다 신내림받고 회사 나가도 모를 정도라니까요.'


칭찬인지 아니면 칭찬을 빙자한 돌려까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지는 혜윰의 말에 어느 정도 설득을 당한 것 같았다.


'드림워커라고요? 대근씨가? 이야... 대근건설이 만들어진 이후로 드림워커는 몇 안 되는데. 이거 영광입니다. 좋아요, 수면실로 데려다 드리죠. 제가 허락했다고 하면 드림팀놈들도 뭐라고는 못할 겁니다. 지금 당장 가시죠!'


황대근은 이전에 박정우를 죽이려는 영부의 기억을 훔친 전적이 있다.

기억을 훔치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헌데 이번은 좀 다르다. 기억을 훔치는 것이 아니다.


영부의 몸 속으로, 그의 몸 속 회사로 직접 쳐들어가서 케어를 구해 내야만 한다. 이는 기억을 훔치고 무의식이나 꿈 속을 거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이다.


'뭐, 최소한 죽지는 않겠지.'


그는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수면실에 있는 작은 탁상시계의 초침이 오른쪽으로 열 번 정도 째깍거리며 움직이자, 황대근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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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2) 21.11.25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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