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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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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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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38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2.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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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걱정과 오지랖은 한끗 차이 (2)

DUMMY

검은복면의 남자가 영부실을 떠나고, 영부실 안에는 영부와 여성 신도 둘 뿐이었다.

신도의 이름은 오지람. 나이는 영부와 엇비슷한 50대 중후반의 나이로, 가족은 없고 혼자 사는 여자였다.


'흠.....'


그녀는 영부의 머리를 흘깃 보았다. 얼마 전, 그녀는 영부가 수원역에서 쓰러진 것을 목격했는데 그 때 하필이면 영부의 치부를 알게 된 것이다.


오지람은 입이 간지러웠다. 주변 아는 동네 아줌마들이나 다른 신도들에게 영부에 대해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이다.

허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영부의 치부를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구영원 신도들에게 있어서 영부의 존재는 거의 신과 같았으니까 말이다.


"자매님,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오지람은 '라헬의 여종들'의 일원이 아니다.

라헬의 여종들은 영부의 말에 따르면 큰하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여성 신도들로만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오지람은 포함되지 않았다.


웃어야 할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오지람의 외적인 모습은 영부에게 있어 기준 미달이었던 것이다.


"음, 라헬의 여종들이 영부님께 이걸 전달해 달라고 해서요."


오지람이 영부에게 건넨 것은 자료였다. 라헬의 여종들과 관련한 자료였는데, 자료는 얼마 전 영부가 보던 수첩에 적혀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어떤 아기가 태어났는데 몇 살이고 상태는 어떻고 등등에 관련한 내용들이었다.


"아, 고맙습니다. 귀찮으셨을 텐데, 고마워요."


오지람의 눈은 영부의 머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수원역에서의 그 날 이후로 계속해서 고민했다. 영부가 대머리라니, 잘못 본 것일까? 분명히 저번에 봤을 때는 대머리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대체 언제부터?


오지람의 눈동자가 영부에게서 떠날 줄을 모르자, 영부가 물었다.


"자매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오지람은 영부를 쫒아가던 두 눈을 애써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영부님! 믿습니다!"






(대근건설 - WBC매점)



오디션은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는데, 대다수의 직원들은 2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할 준비를 해야만 했다.

이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인간 황대근은 죽은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어차피 이들은 거의 365일 24시간 내내 일을 하다시피 하니까, 크게 달라질 것도 없긴 했다.



황대근과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은 WBC매점에 도착했다. 오디션을 구경하는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매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대식세포 주스와 백혈구 모양 감자칩을 잔뜩 구매한 후 매점 외부에 설치한 간이 테라스로 가서 앉았다.

목이 말랐는지 대식세포 주스를 한 번에 들이키며, 혜윰이 말했다.


"광배씨가 우승할 줄은 몰랐네요. 이번 오디션은 근골격부서 집안 싸움이나 다름 없었어요."


그녀 말대로 이번 오디션은 근골격부서가 모두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연기 쪽에는 젬병인 그들인데, 희한하게도 이번 오디션에서는 체력과 근력을 요하는 연기가 많았다. 그래서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핑거스자매들과 광배의 대결. 승리의 여신은 광배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릴리팀장님이 얘기해주셨나요?"


갑자칩 하나를 오물오물 씹어먹으며 레이지가 말문을 열자, 직원들은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는데, 메모리와 혜윰이 그를 때렸던 부위가 여전히 시퍼랬다.


"김철환이 송치되었답니다!"


정말 뜬금없는 소식에 황대근은 깜짝 놀랐다.


"김철환이 송치됐다고요? 갑자기?"


황대근 뿐만 아니라 다른 메모리아부서 직원들 역시 깜짝 놀랐는데, 오디션에만 집중하느라 릴리가 보낸 전서혈도 미처 읽지 못한 것이다.

오디션 기간에는 인간들이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즐기는 것과 비슷하게 대근건설의 모든 직원들이 축제기간처럼 즐기고는 한다. 허나 릴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말 그대로, 워커홀릭 그 자체인 여자였다.


"김철환이 시험지를 유출했다고 합디다. 안익준이 박정우한테 소개시켜줬던 그 학원도 연관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김철환이 받아먹은 돈이 한 두 푼이 아닌 것 같아요."


레이지의 말에 혜윰이 물었다.


"그럼 안익준은요? 그 싸가지 바가지는 어떻게 됐어요?"


레이지가 대답했다.


"쩝, 안익준은 무사합니다.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그 새끼 아빠가 빽이 든든한가 봐요. 이번 정권하고 연관되어 있다는 음모론도 돌 정도니까요."


메모리가 잘 됐다는 듯 손뼉을 쳤다.


"어쨌든 그거 참 다행이네! 그 놈은 허구헌날 우리 대근이를 경쟁자로 생각하더니, 서울의대는 못 가겠군요. 우리 대근이는 똑똑하고 애가 참 좋은 녀석인데, 안익준 그 놈은 멍청한 놈이었네요. 꼼수를 안 쓰면 문제도 못 푸는 거 아닙니까?"


다른 직원들의 안익준 뒷담화를 들으며, 황대근은 생각했다.

안익준의 아빠가 과연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익준을 혐의에서 제외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라면 뒷돈을 써서라도 대학에 지 아들을 넣어줄 것 같다고.






(경기도 평택시 - J아파트)



이른 새벽, 박정우는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뚱뚱한 마카롱 마냥 퉁퉁 부어있었는데, 부은 정도가 포크로 콕 하고 그의 눈을 찌르면 터질 것처럼 심한 상태였다.


"진짜... 울고 싶어서 내가...."


박정우는 책상에 올려진 스탠드형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훌쩍이고 있었다.

그는 슬펐다. 자신이 그동안 해 온 노력이 물거품이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한다고, 제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아빠한텐... 아빠한테는 뭐라고 해야 하지...?"


그의 부모님은, 특히 정우아빠는 박정우의 성적이 올랐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물론 아직 정우아빠의 기대에는 한참 미치치 못하는 중상위권의 성적이지만, 어쨌든 성적이 오르긴 올랐으니까.


고등학교 2학년 짜리가 영어시험성적을 10점 이상 올리는 게 말이 쉽지 사실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들키면 어쩌지? 난 이제 어떡하지? 내년 3학년 1학기 중간고사는? 그건 어떡해?"


자신을 지켜주던 든든한 뒷배가 사라져버렸으니, 박정우는 홀로 무인도에 떨어진 것만 같은 외로운 기분을 느꼈다.

비록 거짓으로 점철되기는 했으나 어쨌거나 학원에서 배워 먹은 게 있으니 응용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면 될 터인데, 박정우는 그 방법을 몰랐다.


그는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 '떠먹여주는대로만 공부할 줄 아는' 전형적인 학생이었던 것이다.


"박정우!"


그가 코를 찡찡거리며 훌쩍이는데, 정우엄마의 목소리가 방문 틈새 사이로 들려왔다.


"박정우! 학교 안 가니?! 방에서 뭐 하니?!"


벌컥. 정우엄마가 문을 열고 아들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왕눈이 개구리마냥 퉁퉁 부어버린 아들의 모습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어쨌든 자기 자식은 자기 자식인 모양인지, 정우엄마는 박정우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


"아니, 너 얼굴이 왜 그 모양 그 꼴이 됐니? 평소보다 더 심각하네! 누가 너 팼니? 왜 그러는 거야?"


비록 괜찮느냐고 물어보는 게 먼저가 아니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녀 나름대로의 걱정 표시에 박정우는 흐느꼈다.


엄마에게 사실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거짓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좋은 것일까?


"그게.... 그게...."






(대근건설 - 구영원)



비슷한 시각, 밤을 꼴딱 새버린 영부는 영부실 창밖으로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새벽 특유의 공기와 공허한 느낌을 자아내는 어릿어릿한 풍경이 영부의 두 눈을 간지럽혔다.


'신용호.... 함부로 경찰에 신고를 해?'


영부는 알고 있었다. 김철환을 신고한 이가 누구인지.

그는 또한 신용호에 관해서도 제법 잘 알고 있었는데, 몇 달 전 새천년 마차 사건이 터지기 전 신용호를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김철환은 신용호를 구영원 신도로 만드려 했으나 실패했다. 신용호는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으니까.

영부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신용호를 처음 본 그날, 그는 직감했다. 이 남자는 쉬운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싸가지 없는 놈.'


자신이 아끼던 지파장 중 한 명인 김철환을 경찰에게 넘겨버린 자. 신용호.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깟 어린놈들 시험보는 시험지를 유출 한 게 그렇게 큰 죄란 말인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겁탈한 것도 아니다. 그냥 종이 쪼가리 하나 좀 빼돌린 게 그토록 나쁜 일이었던가?


그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안익준이 서울의대를 가면, H고등학교의 위상과 명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구영원에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우수한 학생을 가르친 선생이 구영원에 다닌다. 이것만큼 아름다운 스토리가 또 있을까.


"쯧, 안익준 아버지가 손을 쓰실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좀 힘들겠군."


이미 김철환에 대한 뉴스는 퍼질대로 퍼진 뒤였다. H고등학교는 처음으로 맞는 이 태풍같은 사건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곧 내년이 될 것이고 신입생을 받아야 할 텐데, H고등학교는 학부모들의 민원전화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내 자식이 그 학교에 입학하는데 학교를 바꾸고 싶다거나, 교장이 누구고 이사장은 누구냐거나, 선생들을 전면 교체하라거나, 심지어는 학교에 폭발물을 설치하겠다는 둥 온갖 민원 전화란 전화는 다 걸려왔다.


"이제 H고에 구영원 사람은 없는데...."


영부는 안익준을 떠올렸다. 안익준은 구영원 신도가 아니기에 구영원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와 영부는 서로 상부상조 하면서 공생하는 관계였다.


영부는 엄청난 자본력으로 안익준의 아버지를 지원하고, 그의 아버지는 영부의 뒤를 봐준다.


"완벽하지. 그런데 이젠 그 완벽함이 무너져내린 거야. 안익준에게는 내가 무얼 기대할 수 있지?"


털썩. 창가에 서있던 영부는 손님용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는 나무책상 위 선반에 있는 성배를 바라보았다. 세 번째 성배 안에 든 검은 액체는 아직 미동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신용호가 내년에 고삼 담임을 맡게 된다는 소문도 있던데, 정말인가?"


곰곰이 생각하던 영부는 갑자기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철환은 없지만, 안익준을 잘 이용하면 될 것도 같다.

빈 지파장의 자리 또한, 어떻게든 메꿔질 것 같다.


스륵—


영부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가발을 벗었다. 땀이 차서 괴로웠던 것이다.

그나마 살아남았던 그의 옆머리 역시 점점 빠지고 있었는데, 영부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머리에 좋다는 검은 콩과 두유, 두부 등등도 많이 먹었는데 왜 이럴까? 머리를 감을 때 마사지 하는 샴푸 하는 것도 잊지 않는데 왜 이러는 것일까?


차라리 완벽한 대머리가 되는 게 낫지, 지금 영부의 머리 상태는 아주 지저분했다.

듬성 듬성, 옥수수 이빨 빠지듯 애매하게 난 머리는 영부의 마음을 더욱 어지럽힐 뿐이었다.


"젠장할, 머리를 심으려고 해도 내 두피는 안 된다고 거절하다니. 내가 다른 늙어빠지고 쉰내나는 아저씨들인 줄 아나?"


물론 영부는 아저씨다. 몇 년 뒤면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될 지도 모르는 나이다.

그가 자신이 아직도 20대 젊은 청년인 줄로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영부실 문이 열렸다.


"어... 어... 저기...."


오지람이었다. 그녀는 텅 빈 영부의 옥수수 이빨 빠진 것 같은 머리를 목격하고는 두 동공을 덜덜 떨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어..... 여, 영부님....? 지파장님들께서 부르시는데....요....?"


영부는 순간, 쥐구멍이 있다면 어디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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