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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328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1.1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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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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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왕의 분노 (1)

DUMMY

"아저씨 집 짱 넓다!"


황규현은 황석현의 집에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황규현이 새로운 보육원을 구할 때까지 함께 있는 것이라 했으나, 황석현은 욕심이 들었다.

제 손으로, 제가 번 돈으로 자식 한 번 잘 키워보자는 생각뿐이었다.


이제 그의 나이는 50줄을 훌쩍 넘은지 오래다.

황규현의 나이 올해로 10살이니, 황석현에게 있어서 상당히 늦둥이인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말 안통하는 황규현이 갓난아기가 아니라는 것일까.


"아저씨 혼자 살아요?"


황석현의 집은 제법 좋은 편이었다. 34평 아파트에 혼자 사니, 집도 꽤 넓어보였다.

집안살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 이주에 한 번 청소아주머니가 오셔서 집을 청소해주시니 늘어놓을 것도 없었다.


"나, 이런데 처음 와봐요! 궁전같다!"


황규현은 이 집을 제법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애기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보육원이나 에파타학교 같은 곳에서만 생활했으니, 당연하긴 하다. 이런 집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처음일 테니까.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집일 수도 있지만, 황규현에겐 아니다.


'애가 너무 어릴때부터 고생을 해가지고.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을.'


황석현은 집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황규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꺼내 물었는데, 그는 그런 자신의 행동에 놀라 스스로의 뺨을 쳤다.


'아, 안 되지. 이젠 안 된다. 이젠....'


텅-


황석현이 아직도 한참 남은 담배갑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젠 끊어야지. 애한테 좋을 것도 없으니.'


담배를 끊는 건 축하할 일이지만, 황석현의 손은 떨렸다. 아무래도 골초였던 그가 담배를 끊으려니 입이 심심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냉장고를 열고 사탕 두 개를 집어 들었다. 한 개는 황규현에게, 다른 한 개는 자기가 먹었다.


'자녀 분이랑 같이 사는 건 좋다 이거에요.'


사탕 덕분에 정신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며, 황석현은 여경아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가 황규현과 함께 살겠다고 하자, 여경아는 나무라는 듯, 걱정하는 듯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내분하고 이혼했으니까 법적인 자식이라고는 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피는 못 속이잖아요. 애가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얘기해 줘야죠.'


황석현은 고민스러웠다.

황규현에게 '내가 네 아빠다'라는 사실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황석현은 험악한 인상에 몇 십 년간 강력범들을 쫓으며 생긴 상처가 곳곳에 베어있었지만, 나름 여린 사람이다.

예민하고, 유명 프렌차이즈 샌드위치 가게에서 주문도 잘 못할 정도로 소심한 구석도 있다.

담배 냄새에 약간 찌들어있어 전혀 그래보이지는 않지만, 감수성도 풍부한 사람이다.


"아저씨, 아저씨! 나 짜장면 먹고 싶어요! 곱배기로!"


황규현의 해맑은 말투에, 황석현은 생각을 거두었다.

지금은, 지금은 그냥 이 상태로 있고 싶다.

복잡하고 귀찮은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잖아.

일단, 밥부터 먹자.


"그래, 탕수육도 시켜 먹자."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8월 16일 화요일, H고등학교가 개학식을 할 무렵이었다.


"저 진짜 미치겠어요."


메모리아부서 직원휴게실에 있던 메모리는 다른 세 명의 동료들에게 신세한탄을 했다.


"아니 글쎄, 저희 집주인이 월세를 30만셀이나 올린다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됩니까? 한달에 30만셀은 커녕 10만셀도 적금들기 어려워 죽겠는데, 월세를 30만셀을 올리다뇨? 겨우 방 한 칸에 툭하면 기생충이 기어나오는 그 낡은 방에!"


직원휴게실에는 4인방외에 다른 직원들도 있었다.

며칠 전, 인간 황대근이 잘 싸우도록 도왔던 프로틴과 광배, 그리고 왕근이었다.

케어와 플루, 그리고 키는 인간 황대근이 영부와 싸우면서 생긴 상처를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니, 대근씨는 살 수 있겠어요? 그 집에? 솔직히, 그게 집입니까? 거기서 살면 우울증 걸리겠다니까요? 돈 받아 처먹으려고 집을 그딴 식으로 지은 거지! 돈 없는 놈들이 아쉬워서라도 그딴 마굿간보다 못한 데 살려고 아등바등 하는 걸 아니까!"


메모리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메모리의 신세한탄을 배경음악삼아 약을 먹고 있었다.

이상한 건 아니고, 이들이 먹는 약은 플루가 준 회복약이었다.


"근손실 왔어요... 마이너스 1kg..."


프로틴과 광배, 그리고 왕근은 우울해했다.

근손실이 왔다는 게 이유였는데, 실제로 근육이 빠진 것은 아니고 단지 몸무게가 1kg빠졌을 뿐이다.


'한 놈은 신세한탄하고, 다른 놈들은 근손실 타령이구만.'


황대근은 축 처진 휴게실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광배에게 물었다.


"광배야, 맷돌팀은 요즘 괜찮냐? 처음엔 힘들다며?"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개학식 때문인지, H고 선생들은 하나같이 바빴다.

물론 학생들은 조금도 바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불만을 토로할 뿐이었다.

몇 시간 동안 학생들을 교실에 방치할 거면 뭐 하러 일찍 오라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안락원 대표? 거기가 뭐?"


3학년 1반 학생들은 모두 한 가지 주제에 관해 이야기 중이었다.


"거기 안락원 대표있잖아, 그 사람 박정우 아빠래!"

"박정우 아빠라고? 박정우가 누군데?"

"아, 그 있잖아! 황대근한테 열등감 쩔던 놈."

"아~ 나예민반에 걔?"

"어. 지금은 좀 조용하긴 한데, 아무튼 걔네 아빠래."

"걔네 아빠 회사원 아냐? 갑자기 왠 안락원 대표?"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아냐? 그런데 중요한 건 이거야. 서류상에는 분명 박바람이 안락원 대표라고 적혀있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게 사실은 조작된 거래!"

"조작된 거라고?!"

"그렇다니까? 일명 바지사장같은 거지. 그냥 이름만 쏙 올려놓은 거야. 사실상 대표는 다른 사람이래."

"그게 누군데?"

"그건 아직 몰라. 경찰들이 안 알려줬어. 뉴스에도 아직 안 나왔어."

"그게 대체 누굴까? 넌 누군지 알 것 같아?"

"엄마가 그러는데, 구영원일지도 모른대."

"구영원? 시내에 있는 거기?"


"어. 구영원이 돈이 존나게 많대. GH도서관하고 에파타학교 있잖아, 거기도 구영원 소유라는 말이 있어."

"그게 사실이면 좀 소름인데. GH도서관, 에파타학교, 안락원... 죄다 사람들 떼죽음 당했잖아?"

"또 하나 더 있어."

"여기서 더 나올 게 있어?"

"보육원. S고 근처에 있는 거."

"거기도야?!"


"어. 보육원에 있던 애들이 다 죽어있었대. 누가 죽였다나봐."

"미친 거 아냐? 인간 못 죽여서 한서린 귀신이 붙었나?"

"나도 왜 죽이는 지는 모르겠어. 누가 그러는데, 구영원은 사이비종교래."

"사이비? 거기 그냥 평범한 교회 아니었냐?"

"아니래.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완전 개 사이비래. 교회나 성당에서 성경 보잖아, 구영원은 기존 성경은 내버려두고 지들이 만들었대. 완전 조작된 거지."

"와, 정성이 대단하다. 나같음 그짓 못한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황대근하고 걔네들이 또 구해줬다는데?"



반 친구들이 이렇다 저렇다 하며 떠들어대는 동안, 황대근은 책상에 앉아 공부 중이었다.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일까,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황대근도 긴장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놈인가 보다.


'다시는 이런 일 겪고 싶지 않아.'


황대근은 지겨웠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무슨 마가 꼈는지 툭하면 살인사건이란 말인가.


'그때 안락원 부엌에서 봤던 그 장면... 진심으로 잊어버리고 싶다.'


황대근이 '수학의 왕도'라는 제목의 문제집을 푸는 동안, 반아이들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미쳐버리겠네.'


한편, 3학년 2반의 박정우는 우울했다.


'아빠가... 아빠가 그럴줄은 몰랐는데...'


박정우는 박바람이 구영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번 사건의 주역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왜 우리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한 거지. 아니다, 말 해봐야 좋을 게 없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지도...'


박정우는 괴로웠다. 머리가 복잡했다. 저 남자가 내 아빠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사실 자신은 알고 보면 입양해 온 자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어쩌면, 그러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힘들겠다.'


박정우는 한편으로는 엄마를 걱정했다. 벌써 박바람이 두 번째 사고를 쳤으니, 걱정할 만도 하다.


'아니다. 그래도 우리 엄만 강하니까.'


그의 생각대로 정우엄마는 강한 사람이었다. 속이 상하고 상처도 받고, 울고 화도 냈지만 정우엄마는 마음을 다잡았다.

박바람이 구속되고, 그녀는 구치소에서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우 20살 되자마자 이혼절차 밟을 거야. 그런 줄 알아.'

'뭐? 이혼? 그게 말이 돼? 난 도장 안 찍어. 내가 이혼해줄 것 같아?'

'당신이 도장을 찍던 안 찍던 그건 관심없어. 당신이 이혼안하면 소송들어갈거니까.'

'야, 나 여기 갇힌 거 안 보이냐? 그런데 이혼소송까지 더해?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날 보고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거냐?'

'조금도 안 들어.'

'허, 참!'

'아무튼 잘 지내. 아, 그리고 정우는 면회 안 올 거야.'

'뭐라고? 그 자식, 아빠가 여기 갇혔는데도 무시한단 말이야? 그러게 애를 왜 그렇게 키워서는!'

'입 다물어. 당신 잘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응, 오랜만이네. 당신 목소리 잊을 뻔 했어."


점심을 먹은 뒤, 황규현은 황석현의 침대 위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긴장도 풀리고 이젠 정말 안전하다고 느낀 탓인지, 잠든 아이의 얼굴은 평온했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연락하고."

[얘기 들었어. 안락원인가 뭔가 하는 그 사건.]


황석현은 통화 중이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상대는 여자인 듯 하다.


"....네가 규현이 고아원에다가 버린 거야?"

[뭐?]

"이혼할 때, 네가 잘 키우겠다고 데려갔잖아. 그래서 몇 년 동안 너한테 양육비도 줘야 했고. 단지 양육비만 원했던 거야? 나한테 들키기 싫어서 서류도 조작한 거야?"

[......]

"...정말인가 보네. 그럼 나한테 규현이를 맡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당신을 뭘 믿고 맡겨?]

"뭐?"

[툭하면 다쳐서 오고, 직업은 위험천만한데 언제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런 남자한테 애를 어떻게 맡겨?]

"자식들이 정말로 상처받는 건 그런 게 아냐. 물론, 네 말도 맞긴 하지. 하지만, 자식들은 자기들이 부모에게 버림받는 것을 더 두려워해."

[난 안 버렸어. 그냥 좀... 맡긴거지.]

"그게 버린 거야. 고아원에 맡기고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잖아."

[......규현이 당신이랑 있구나?]

"......"

[그래 뭐, 잘 키워봐. 이젠 나도 상관 안 할 거니까.]

"....."

[근데 이거 하나만 알아 둬. 자식이라는 건 말이야, 한 사람의 발목을 잡는 존재들이야. 나중에 크면 효도한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 다 구라야, 그런 거. 내가 마지막으로 충고하는데, 당신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면 그냥 규현이 다시 보육원에 맡겨버려.]

".....싫어."


황석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걱정 하지마. 잘 키울 테니까. 네가 걱정 안 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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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어른의 찌질함 22.01.22 15 1 12쪽
269 왕자의 발악 (4) 22.01.21 17 1 11쪽
268 왕자의 발악 (3) 22.01.21 16 1 11쪽
267 왕자의 발악 (2) 22.01.20 12 1 11쪽
266 왕자의 발악 (1) 22.01.20 12 1 11쪽
265 인생은 한 방 22.01.19 13 1 11쪽
264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3) 22.01.19 15 1 10쪽
263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2) 22.01.18 11 1 11쪽
262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1) 22.01.18 16 1 10쪽
261 왕의 분노 (2) 22.01.17 20 1 11쪽
» 왕의 분노 (1) 22.01.17 15 1 12쪽
259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2) 22.01.16 17 1 10쪽
258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1) 22.01.16 13 1 11쪽
25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5) 22.01.15 12 1 10쪽
25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4) 22.01.15 12 1 11쪽
25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3) 22.01.14 14 1 10쪽
25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 22.01.14 13 1 11쪽
25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22.01.13 14 1 11쪽
252 안락원(安樂院) (3) 22.01.13 14 1 11쪽
251 안락원(安樂院) (2) 22.01.12 12 1 11쪽
250 안락원(安樂院) (1) 22.01.12 15 1 10쪽
249 인페르노(inferno) (4) 22.01.11 16 1 11쪽
248 인페르노(inferno) (3) 22.01.11 15 1 11쪽
247 인페르노 (inferno) (2) 22.01.10 15 1 10쪽
246 인페르노 (inferno) (1) 22.01.10 17 1 11쪽
245 더러운 배신자 (3) 22.01.09 19 1 11쪽
244 더러운 배신자 (2) 22.01.09 17 1 12쪽
243 더러운 배신자 (1) 22.01.08 20 1 11쪽
242 악인 혹은 선인 (3) 22.01.08 21 1 12쪽
241 악인 혹은 선인 (2) 22.01.07 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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