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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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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303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1.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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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인페르노(inferno) (4)

DUMMY

(경기도평택시 - GH도서관)



안익준은 안익준이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할머니가 들고 있던 젖은 손수건을 빼앗았다.


"내놔!"


할머니는 저항했지만, 아직 혈기왕성한 청소년의 힘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다 늙은 게 욕심은 많아서!"


퍼억 - 퍽-


할머니는 결국 바닥에 쓰러진 채 안익준에게 얻어맞기 시작했다.

안익준이 패륜아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동안에도, GH도서관은 더욱 더 불타고 있었다.


뜨거운 불길이 점점 거세진다. 고통이 더해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제... 제발...! 그 손수건은....! 그건 손주가 선물로....!"


할머니는 애원했다. 거세지는 불길 때문일까. 할머니의 식도는 타들어가고 있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면역력도 약할 테니, 이미 노인의 식도는 큰 화상을 입었을 터다.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다 해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꺼져!"


안익준이 애원하는 할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다 살았잖아? 그만큼 살았으면 됐지 뭘 더 살라고 그래? 그거 욕심이야, 욕심."


타다다다-


안익준은 할머니를 버렸다. 자기만 살겠다고 젖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아직 불길이 닿지 않아 보이는 계단으로 달려갔다.

홀로 3층에 남겨진 할머니는 곧 정신을 잃었고, 영원한 안식에 빠져들었다.


'씨발... 어디고 가야 돼?'


안익준은 2층에 도착했다. 어찌저찌 2층까지는 왔는데, 어째 1층으로 내려갈 도리가 없다.

불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안익준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119입니다!"


그때, 2층 창문으로 소방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안익준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으로 달려가니 안익준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한 남학생이 있었다.


'쟨 또 뭐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학생은 안익준보다는 체격이 작았다. 남학생은 소방관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귀찮게!'


이미 할머니를 불길속에 집어던진 이력이 있는 안익준은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내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 나부터 살아야 한다. 나만 안 죽으면 된다.


내가 살 수 있다면, 남이야 뒤지는 불에 타 죽든 관심 없다.


이건 당연한 거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내 잘못은 없다. 제 목숨 지키지 못한 저들 탓이니까.


퍼억-


안익준이 남학생을 밀쳤다. 체격이 작은 편인 남학생은 힘없이 밀쳐져 불길속에 그대로 처박혔다.

잠시 동안 남학생이 괴로운듯 몸부림치더니, 곧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119입니다! 계십니까?"


남학생 따위 관심 없다고 생각하며, 안익준은 창문을 통해 내민 소방관의 손길을 받았다.


"학생 혼자입니까?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소방관이 안익준을 구하며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없어요."







안익준의 행패는 곧 드러났다. 애초에 숨길 수가 없었다.

GH도서관은 거의 불타버렸지만, 도서관 일부에 설치된 CCTV 몇 개는 살아남았던 것이다.

단순 화재사고인지, 아니면 방화범이 있는지 알아보던 경찰들은 CCTV에 찍힌 안익준을 보게 되었다.


CCTV에는 안익준의 행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가 노인의 물수건을 빼앗고, 노인을 때리고, 노인이 불길 속에 쓰러져 죽어가도록 내버려 둔 장면.

그가 소방관의 손을 잡으려던 여자는 불길 속에 내던지고 자신이 소방관에게 구출된 장면.


이 외에도 안익준이 저지른 행패는 더 있었다.

불타는 GH도서관에 갇혔던 그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불길을 막기 위해 2층에 있던 어린 남자아이를 방패로 삼았던 것이다.

힘없는 아이는 안익준에게 붙들려 불길 속에 내던져졌고, 안익준을 위한 희생양으로 생을 마감했다.

피해자 3명이 불타죽는 모습이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누군가가 유출한 것일까, CCTV에 찍힌 장면은 곧 SNS에 퍼져버렸다.

안익준이 어디 고등학교 학생인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구인지, 어느 집에 사는지, 나이 등의 상세 정보가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다.


[이 새끼 저번에 그 새끼 아닌가요? H고 성적조작사건?]

[하여간 요즘 어린 것들은,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판사새끼들이 제대로 판결해줬음 좋겠습니다. 이래서 어린 애들한테 함부로 금수저 물리는 게 아니에요.]

[또 빠져나오지 않을까요? 저번에 안광윤 경찰서장 어떻게 됐죠?]

[그 에파타학굔가 뭔가 때문에 나가리 됐잖아요. 아마 저 녀석 이번에는 못 빠져나갈 겁니다.]

[재판 중에 또 범죄저지르면 형이 더해지는 겁니까?]

[이번 건 범죄가 아닙니다. '긴급피난'이라 아마 무마될 걸요.]

[엥? 그런 게 어딨어요? 긴급상황이면 누구 죽여도 됩니까?]

[법이 그래요. 진짜로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허용이 되거든요.]

[존나 개억울하네요. 법이 뭐 그따구야?]



누리꾼들의 말대로, 안익준이 GH도서관 화재사건에서 저지른 짓들은 범죄로 분류되지 않았다.

안익준의 의도가 분명 악의적이고 의도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법은 안익준의 손을 들어주었다.


"썅....!"


허나 법의 너그러운 판결과는 달리, 안익준은 괴로웠다.

그는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방준이형... 날 죽이려고...? 설마, 영부가 날 죽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우리 아빠가 그동안 영부 그 새끼한테 해준게 얼만데... 그런데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해준거지...?"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으어어어..."


GH도서관 화재사건이 겨우 마무리되고, 대근건설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헌데 메모리아 4인방은 어째 하루아침에 50년은 늙은 듯한 모습이다. 몰골이 초췌하다.

그들은 영부로부터 훔쳐온 기억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영부를 욕했다. 분명, 영부는 자신의 범죄를 들키지 않으려 그런 짓을 벌인 것일 터다.

인간 황대근을 죽이기 위해서 이렇게 잔혹한 짓을 벌이다니, 영부는 악마나 다름없는 놈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의 무의식이나 꿈 속에 새로운 기억을 의도적으로 심어 놓을 수 있는 건가요?"


혜윰이 묻자 황대근이 대답했다.


"영부는 가능할 겁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영부 정도의 드림워킹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까진 가능할 거예요."


영부는 타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자신까지도 속이지 않는가.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자기 안에 심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니까.







(경기도 평택시 - GH도서관)



이틀 뒤 목요일. 황대근은 GH도서관에 있었다. 물론 그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도서관을 빙 둘러싼 폴리스라인(police line) 밖에 서서 도서관을 바라보았다.


'또 자살로 처리하는 건가.'


GH도서관 근처에는 형사들이 있었다.

단순 자살로 처리할 거라면 굳이 형사들이 올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었지만, 형사들이 제법 보였다.


'이미 자살사건으로 결론났다는데, 무슨 일이지? 또 뭐가 있나?'


황대근이 아는 것처럼, GH도서관 화재 사건은 단순 자살자의 우발적 범죄로 판명났다.


자살자, 즉 방화범의 이름은 금방준. 소방관들의 수고와 노력 덕택에 GH도서관의 불이 모두 꺼지고, 금방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헌데 그의 몰골이 영 말이 아니었다. 그의 온 몸은 하얀색 가루로 뒤덮여있었다. 마치 튀겨지기 전, 밀가루를 잔뜩 묻힌 새우처럼 보였다.


'흰 가루가 마약이라 했었지.'


금방준의 몸을 뒤덮은 것은 마약이었다.

경찰들은 마약사범이 죄책감에 못 이겨 자살을 선택했고, 자기 혼자 죽지 못해 GH도서관을 불태운 것으로 추정했다.


'내 평생 볼 마약을 지금 다 보는군.'


황대근은 의문스러웠다.

설령 경찰들의 무식한 추측대로 금방준이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면, 어째서 GH도서관에서 죽었단 말인가?


'진짜 이해가 안 돼. 분명 누군가 뒤에 있을 텐데. 배후가 있을 거란 말이지.'


황대근이 새까맣게 타버린 도서관을 바라보며 나름의 추리를 하는 동안, 도서관 안쪽, 그러니까 금방준의 시체가 발견되었던 곳에는 한 형사가 미간을 좁히며 열심히 수사중이었다.







황대근이 집으로 돌아간 사이, 황석현은 금방준의 시체를 발견했던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


'사망자 4명. 부상자 약 30명. 그리고....'


황석현은 종이를 들고 있었다. 형사들이 들고 다니는 작은 메모수첩은 아니었다. 그의 종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소돔과 고모라]


황석현은 무교다. 허나, 소돔과 고모라야 워낙에 유명한 이야기이니 모를리가 없다.

다만, 확실하고 정확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그는 곁에 있던 한 여자 형사, 여경아에게 물었다.


"자네 기독교라고 했었나?"


여경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황팀장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잘 알겠군?"

"그렇죠. 롯과 그의 아내가 신의 형벌을 피해 도망가는데, 롯의 아내가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만 뒤를 돌아보았고, 결국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이야기죠."


아주 종교적인 이야기다. 황석현은 생각했다.


'그럼 금방준이 이렇게 새우튀김마냥 죽어버린 것도 나름 종교적인 이야기를 이용한 건가.'


황석현은 감이 좋다. 이번 일 역시 구영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슨 것이다.

허나, 윗선에서는 황석현이 이리 설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증거도 얼마 없고 그냥 자살로 처리하면 될 것을 뭐하러 저리 나댄단 말인가? 이미 금방준이라는 방화범이 보이는데 말이다.


'금방준은 구영원 신도다. 그냥 단순 자살일리가 없어. 분명 그 영분가 뭔가 하는 새끼의 농간이겠지.'


틱-


황석현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제법 독한 담배라 냄새가 많이 매웠지만, 여경아는 익숙하다는 듯 덤덤한 태도를 보였다.

허나 미간은 찌푸렸다. 냄새에 적응은 해도, 좋아질 수는 없으니까.


'헌데..'


황석현은 생각했다.


'구영원하고 13년전 범인하고 분명 연관이 있을 터인데, 이번 사건도 13년 전 범인과 연관이 있을까?'


황석현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소돔과 고모라라 적힌 종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때, 그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종이 뒷편에, 이런 게 적혀있었다.


[황형사님, 날 찾고 싶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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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왕자의 발악 (2) 22.01.20 12 1 11쪽
266 왕자의 발악 (1) 22.01.20 12 1 11쪽
265 인생은 한 방 22.01.19 13 1 11쪽
264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3) 22.01.19 15 1 10쪽
263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2) 22.01.18 11 1 11쪽
262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1) 22.01.18 16 1 10쪽
261 왕의 분노 (2) 22.01.17 20 1 11쪽
260 왕의 분노 (1) 22.01.17 14 1 12쪽
259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2) 22.01.16 16 1 10쪽
258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1) 22.01.16 12 1 11쪽
25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5) 22.01.15 12 1 10쪽
25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4) 22.01.15 12 1 11쪽
25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3) 22.01.14 13 1 10쪽
25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 22.01.14 13 1 11쪽
25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22.01.13 14 1 11쪽
252 안락원(安樂院) (3) 22.01.13 13 1 11쪽
251 안락원(安樂院) (2) 22.01.12 12 1 11쪽
250 안락원(安樂院) (1) 22.01.12 15 1 10쪽
» 인페르노(inferno) (4) 22.01.11 16 1 11쪽
248 인페르노(inferno) (3) 22.01.11 15 1 11쪽
247 인페르노 (inferno) (2) 22.01.10 15 1 10쪽
246 인페르노 (inferno) (1) 22.01.10 17 1 11쪽
245 더러운 배신자 (3) 22.01.09 19 1 11쪽
244 더러운 배신자 (2) 22.01.09 17 1 12쪽
243 더러운 배신자 (1) 22.01.08 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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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악인 혹은 선인 (2) 22.01.07 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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