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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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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63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1.0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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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악인 혹은 선인 (2)

DUMMY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7월 8일 금요일, H고등학교의 진학설명회날이 되었다.

대한민국 학부모라면, 집 안에 고삼 한 명 데리고 사는 집이라면 한 번 쯤은 진학설명회에 다녀왔을 터다.

물론 자식을 양떼 방목하듯 키우는 학부모도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은 아니니까.


H고의 강당에는 황대근의 양어머니, 정우엄마, 익준엄마, 경민엄마, 강우엄마 그리고 서세희까지 잔뜩 모여있었다. H고 3학년 학부모들이 죄다 모인 것 같았다.

평택이 원래 이렇게 학구열이 높은 지역이었나 싶을 정도다.

아직 진학설명회가 시작되지는 않았는데,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엄마는 뭔 낯짝으로 여길 왔대?"

"제 남편 박살난 것도 모르나?"

"한 명 있는 아들 대학보내보겠다고 저 난리쳤잖아~ 근데 아들은 고작 168등이었다며?"

"양심도 없지. 무슨 배짱이야? 전교 1등도 못 가는 곳이 서울의대야~"

"아직 재판 중 아니야? 여긴 왜 와? 와도 돼?"


익준엄마가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익준엄마는 기죽지 않았다.

아니, 기죽지 않는 척하는데는 도가 튼 여자이니 안 그래보일 뿐, 실제로는 아마 속이 썩어 문드려졌을 터다.


'흥, 잡것들.'


그녀는 속으로 다른 학부모들을 욕했다.

제 남편이 박살나고 제 아들마저 나락으로 떨어졌다면 좀 정신을 차릴 법도 하건만, 그녀는 아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타인을 깎아내려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위치가 조금이라도 올라간다 믿었던 것이다.


"우리 애는 대학 안 간대요~"


반대편에서 서세희와 이야기하던 강우엄마가 말했다.


"걱정돼서 죽겠어요, 그냥! 강우 그 녀석 뭐 먹구 살라고! 요즘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건 있다니까요? 엄마 말 들어서 잘못될 거 하나도 없는데 그 놈의 똥고집은 대체 누굴 닮았는지!"


강우엄마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었으나, 서세희는 아니었다.


"뭐, 자기 인생은 알아서 결정해야죠. 자식들이 부모가 말한다고 듣나요? 다 제 팔자려니~ 하고 살아요."

"아니, 그게 말처럼 쉬워요? 시연엄마는 정말 생긴거랑 다르게 털털하다니까?"

"자식을 어느 정도는 놔줘봐요. 대신 각서를 써요. 나중에 대학 안보내줬다고 난리피우지 말라고."

"어머, 그럼 되겠네~?"


한편, 정우엄마는 고민이 많았다. 박정우가 한 말 때문이었다.


'엄마, 나 그냥 프로게이머 하고 싶어요.'

'그럼 마음대로 해. 너 하고싶은 걸 하라고. 나중에 후회말고.'

'그래도 공부는 할래요.'

'왜? 프로게이머 한다며?'

'플랜 B는 있어야 하잖아요.'


정우엄마의 고민은 이것이었다.

자신이 대학에 가본 적도 없고, 대학입시라고는 쥐뿔도 모르는데 애를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잘못하다가 애한테 피해주는 거 아닌가?


"경민이는 그 송파쪽에 있는 대학 알죠? 체대로 유명한 대학. 거기 생각 중이거든요. 아~ 쉽지 않아요. 대회 나가는 것도 일이고."


정우엄마 반대편에 있던 경민엄마가 황대근의 양어머니에게 말했다.


"아주 불쌍해 죽겠어요 요즘. 학교 공부는 학교 공부대로 하고, 봉사활동 하고 대회 나가고 어쩌고 하다보니까 애가 아주 그냥 반쪽이 됐다니까요?"


경민엄마의 말이 잦아들고, 다른 학부모들 역시 조용해질 즈음, 진학설명회가 시작되었다.







(경기도 평택시 - H아파트)



띠리릭- 끼익-


그날 새벽 1시 쯤, 현관문의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피곤에 절은 양아버지가 들어왔다.


"왔어요?"


그런 양아버지를 반기는 것은 소파에 누워 새벽 방송을 보던 양어머니였다.


"요즘 야근이 너무 잦아요. 여름이라 그런가? 야근할 일이 뭐가 있다구..."


아내의 걱정에 양아버지는 머쓱한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어쩌겠어. 월급쟁이가 까라면 까야지. 그나저나 대근이는? 자나?"

"당연히 자고 있죠.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걔가 늦게까지 안 자는 거 봤어요?"

"하긴 그렇지."

"얼른 씻고 자요. 혹시 배고파요? 뭐 좀 줄까요?"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



"살면서 한 번도 이런 거 한 적이 없는데."


비슷한 시각, 영부는 영부실에 있었다. 그는 통깁스를 한 자신의 왼팔을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전, 그의 왼팔은 황대근에 의해 부러져버린 것이다.

물론 황대근은 딱히 악의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으나, 영부는 악의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저지른 온갖 악행은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황대근의 탓으로 돌렸다.


"죽여버리고 싶어."


영부의 황대근에 대한 적대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원래도 적대감이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더 심해졌다.

영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검은 복면의 남자가 황대근을 봐주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계획을 세우고 있나? 놈을 죽일 계획을?"


복면의 남자 역시 영부실에 있었다. 그가 영부에게 질문하자, 영부는 화를 냈다.


"너 때문에 방해받은 거야. 네가 모든 악의 근원이야. 모든 것은 너 때문이라고. 생각해보면 상황이 꼬여버린 것도, 내 팔이 부러져 버린 것도 네 탓이야. 왜 그때 황대근을 구해주러 온 거냐?!"


영부가 화를 냈지만, 남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나 때문이라고? 하하,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모든 것은 뿌린대로라고 네가 직접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었나?"


영부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뭐라고?!"

"모든 것은 뿌린대로야. 겨자씨만한 작은 씨라 해도, 결국 씨는 씨야. 변하지 않는 분명한 사실이랄까."


더 이상 할 얘기 따윈 없다는 듯, 남자가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영부가 소리쳤다.


"대답해!"


남자의 발걸음이 멈췄다. 영부가 말을 이었다.


"왜 날 방해했지? 왜 황대근을 구해줬지?!"

"이유가 궁금해?"


남자가 물었다.


"이유가 알고 싶어?"


영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의 목소리에 살기가 어려있었으니까.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마.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영부. 지금의 네 자리는 모두 내 덕분이라는 것을."


쾅-


남자가 영부실을 나갔다. 이제 영부실에는 영부 혼자뿐이다.


"젠장할..."


영부는 과거를 회상했다.

원래 영부는 구영원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남자의 그림자에 불과했을 뿐이다.

영부는 남자에게 모든 면에서 뒤쳐졌다. 남자와 비슷한 이미지이기는 했으나, 능력면에서 차이가 났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가 사라졌고, 영부에게 기회가 왔다.

허나, 기회를 잡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내가 도와주지. 네가 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도록.'


그러다 남자가 갑자기 나타났고, 철저하게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모든 권력을 영부에게 이양해 주었다.

그렇게 남자는 영부의 뒤에서 모든 것을 관활하는, 마치 '그림자정부'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싫어...."


지금의 영부가 있기까지 남자의 역할은 아주 컸다. 허나, 영부는 더 이상 남자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할 거야..... 놈을 꼭.... 꼭 죽일거야... 감히 내 말을, 큰하늘님께 선택받은 나를... 나를 능멸할 수는 없어..."


"죽인다... 꼭...."







(경기도 평택시 - H아파트)



영부가 기묘한 말들을 중얼거리는 동안, 인간 황대근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오늘 역시 꿈을 꾸고 있던 중이었다.


'....계단?'


그는 꿈 속에서 계단을 마주했다. 뒤틀린 계단이었다. 마치 시장에서 파는 꽈배기처럼 꼬아져 있는 그런 계단.

물리적인 관점으로 생각해본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형태의 계단이었다.


저벅-


허나 꿈 속에서 물리적이니 과학적이니를 따질 여유는 없다.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

황대근은 계단에 발을 내딛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계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계단의 끝에 다다르자 문 하나가 나왔다. 문의 윗부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inferno]


황대근은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한 남자가 보인다. 남자는 황대근을 향한 채 가만히 서있었다.

황대근이 가까이 다가가보았지만, 마치 인형처럼 가만히 있을 뿐이다.


'특이하게 생겼네.'


몸은 분명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인데, 얼굴은 인간이 아니다.

얼굴은 시계였다. 그것도 괘종시계.


그때 괘종시계 윗부분 중앙에 달려있는 작은 문이 열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뻐꾸기가 나왔다.


뻐꾹-


뻐꾸기가 울자, 남자가 고개를 쳐들었다. 뻐꾸기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환영합니다."


남자가 황대근에게 말했다. 남자는 황대근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남자는 황대근을 안내했다. 어디로 가는 지는 모르겠으나, 황대근 역시 그를 따라갔다.


황대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범한 풍경은 아니다. 얼마 전 꾸었던 꿈처럼, 배경은 몽환적이다.


"여깁니다."


남자가 황대근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아주 옛날 배경이었다. 작지만, 제법 아름다운 도시였다.


"참 아름다운 도시지요?"


도시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행복해 보인다.

허나, 남자의 표정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이 아름다움도 언젠가는 사라지겠지요."


그때, 하늘에서 불기둥이 떨어졌다.

난데없는 날벼락에 도시에 있던 사람들은 허둥지둥 도망다니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재난사태를 지켜보며 황대근은 생각했다.


'이거 어디서 꼭 본 장면 같은데?'


황대근의 생각은 맞았다.

이 장면은, 검은책에 나오는 그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의 한 장면이다.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신의 분노를 사 멸망하는 그 역사적인 장면인 것이다.


휙-


불타죽는 사람들의 저편으로, 도시를 벗어나는 이들이 있었다.

그중 한 여자는 미련이라도 남는지 뒤를 돌아보았고, 결국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저는 당신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남자가 말했지만 황대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물었다.


"뭘 도와주겠다는 거죠?"

"당신이 안전하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겁니다."


황대근은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당신.... 당신은 범인 아닙니까?""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당신은 13년 전, 내 부모님을 죽인 범인이잖아, 그렇지? 내가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남자는 씨익 웃었다. 아니, 얼굴이 시계니 웃는 표정을 지어봐야 시계일 뿐이지만 황대근은 웃었다고 느꼈다.


"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남자가 말했다.


"설령 제가 범인이라 해도,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저는, 그분의 일부일 뿐이죠. 당신은 지금 그분의 무의식 속에 들어와 있는 겁니다."


황대근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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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왕자의 발악 (3) 22.01.21 16 1 11쪽
267 왕자의 발악 (2) 22.01.20 13 1 11쪽
266 왕자의 발악 (1) 22.01.20 12 1 11쪽
265 인생은 한 방 22.01.19 13 1 11쪽
264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3) 22.01.19 15 1 10쪽
263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2) 22.01.18 11 1 11쪽
262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1) 22.01.18 16 1 10쪽
261 왕의 분노 (2) 22.01.17 20 1 11쪽
260 왕의 분노 (1) 22.01.17 15 1 12쪽
259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2) 22.01.16 17 1 10쪽
258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1) 22.01.16 13 1 11쪽
25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5) 22.01.15 12 1 10쪽
25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4) 22.01.15 12 1 11쪽
25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3) 22.01.14 14 1 10쪽
25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 22.01.14 14 1 11쪽
25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22.01.13 15 1 11쪽
252 안락원(安樂院) (3) 22.01.13 14 1 11쪽
251 안락원(安樂院) (2) 22.01.12 12 1 11쪽
250 안락원(安樂院) (1) 22.01.12 15 1 10쪽
249 인페르노(inferno) (4) 22.01.11 16 1 11쪽
248 인페르노(inferno) (3) 22.01.11 15 1 11쪽
247 인페르노 (inferno) (2) 22.01.10 15 1 10쪽
246 인페르노 (inferno) (1) 22.01.10 17 1 11쪽
245 더러운 배신자 (3) 22.01.09 19 1 11쪽
244 더러운 배신자 (2) 22.01.09 17 1 12쪽
243 더러운 배신자 (1) 22.01.08 20 1 11쪽
242 악인 혹은 선인 (3) 22.01.08 21 1 12쪽
» 악인 혹은 선인 (2) 22.01.07 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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