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295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1.09 18:40
조회
18
추천
1
글자
11쪽

더러운 배신자 (3)

DUMMY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



7월 14일 목요일 저녁, 영부는 설교중이었다.

그는 예배실에 있었는데, 오늘의 설교 주제는 바로 소돔과 고모라에 관한 것이었다.


"큰 하늘님께서 이르시니, 나의 하려는 것을 하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큰하늘님께서 또 이르시니,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영부는 겁을 주고 있었다.

신도들을 향해,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구원을 얘기했고, 또 형벌을 얘기했다.

신의 분노와 신의 저주, 신의 질투와 신의 규칙, 신의 말씀을 듣지 않은 어리석은 인간들의 최후.

나를 믿는다면 구원받겠지만, 나를 믿지 않고 나의 뜻에 따르지 않으며 나를 외면한다면 그 끝은 지옥불일 거라고.


"영부님."


영부의 무시무시한 설교에 신도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구영원도 벌을 받을까요?"


신도의 질문에 영부는 두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신도들에게는 마치 신과 대화하는 영험한 힘을 가진 초인처럼 보였다.

1분 가량이 지났을까, 영부가 운을 뗐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 아브라함은 큰하늘님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의인이 10명이라도 있으면, 그곳을 멸망하지 않으시겠냐고요. 거듭되는 아브라함의 질문에 큰하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의인 단 한 명만 있어도 그곳을 멸망시키지 않겠노라!"


"헌데 큰하늘님은 결국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습니다."


"허나, 선택받은 롯과 그의 가족들은 살아남았지요."


"롯과 그의 가족들은 의인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을까요?"


"새천국에는, 아무나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큰하늘님께서 지으신 거룩한 새천국에 새까만 악마가, 설령 덜 자란 새끼악마일지라도 발을 들여놓게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겁니다."


"곧 큰하늘님의 진노가 이 땅에 내려올 겁니다."


"악한 자들은 불에 타 죽을 것이나, 선한 자들은 살아남을 겁니다."


슥-


또 다른 신도 하나가 손을 들었다. 영부는 그 신도에게 질문하라는 듯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자 신도가 물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소돔과 고모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영부가 대답했다.


"그것은 큰하늘님만이 아십니다. 큰하늘님의 분노가 어디에 닿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대근건설 - 제1건물 브레인 사장실)



쉐도우는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다.

누군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단식판단하건데 분명 남자일 터다.


"들키지 말아야 할 텐데요."


쉐도우가 말했다.


"당신이 들키면, 인간 황대근과의 연결고리가 사라집니다. 백설하를 제대로 숨기십시오. 들켜서는 안 됩니다. 스켈레톤 역시 마찬가지. 제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큼큼, 제 몫은 제대로 챙겨주는 겁니까?"


쉐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제야 남자는 긴장했던 표정을 풀더니, 한껏 기지개를 해 보이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놈들 속이느라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시겠지요? 저번에 한 번 들켰을 때 얼마나 식겁했는 줄 알기나 하십니까? 제대로 챙겨주셔야 합니다!"


남자의 허세섞인 말에도, 쉐도우는 옅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맡은 일이나 제대로 하십시오."







그날 밤, 메모리아 4인방은 다시 인간 황대근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백설하가 망각의 호수에 묻혀있다는 것도, 망각의 호수의 물이 투명해졌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리고 누군가 망각의 호수에 왔었다는 것 역시 알아냈다.

그들이 한참 동안이나 호수에 머물러있었지만, 이번에는 동굴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


이는 모두 혜윰의 약 덕분이었다.

호수에 오기 전, 4인방은 고민했다. 망각의 호수가 우릴 밀어낼리가 없는데 왜 그랬을까?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누군가 이곳에 왔기 때문에, 타인이 이곳에 왔기 때문에 망각의 호수가 예민해진 것이다.


'자, 여기 은신(隱身)단이에요.'


은신단은 아주 새하얀 동글동글한 환약(丸藥)이다.

황대근은 이전에 이 약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거부감이 좀 덜할 법도 하건만, 여전히 적응을 하지 못하는 그였다.


잘못 먹었다가 컨트롤처럼 이상한 털이 솟아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었다.

허나 황대근의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4인방 모두 은신약을 먹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몸이 투명해졌을 뿐.


"역시, 혜윰씨는 최고의 약쟁이입니다."


칭찬인지, 아니면 은근슬쩍 내뱉는 욕인지 모를 말을 하는 황대근에게 혜윰이 화답했다.


"이 시대 최고의 약쟁이죠."


어쨌거나 약의 힘 덕분에 4인방은 모습을 감추었고, 망각의 호수는 그들을 내치지 않을 수 있었다.

저번에는 계획도 없이 워낙 급작스럽게 호수에 온 터라, 백설하 밑에 스켈레톤 역시 묻혀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그들이었다.


"일단 백이사님이랑 스켈레톤을 어떻게 구해낼 지 생각해 볼까요?"


황대근의 지시에 따라, 나머지 직원들은 일제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호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게다가 호수가 투명해졌으니, 잘못 닿았다가는 영영 기억을 잃게 되는 게 아닐까?


"에이, 진짜... 그냥 냅두면 된다니까 굳이 가서 확인하라고 하냐?"


4인방이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호수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황대근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잘 알고 있었다.

수도 없이 들어왔고, 가장 가까이에서 들어왔으니까.


"귀찮구만~ 하긴 남의 돈 받는게 뭐 쉬운가."


주혁이었다.


"밤에 수영하는 것도 뭐, 나쁘진 않지."


주혁은 잠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간단한 스트레칭을 몇 번 하더니, 곧 호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뭐, 뭐야?'


황대근은 당황스러웠다. 다른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혁이 드디어 미친 것인가? 망각의 호수에 제 발로 뛰어들다니?


아니지, 그 전에 호수 안에는 백설하가 있는데? 스켈레톤도 있는데? 주혁이 두 남녀의 반시체를 보고 당황하는 건 아닐까?


"아~ 잘 있네. 거봐, 이렇게 잘 있다니까!"


허나, 4인방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주혁은 스켈레톤과 백설하를 보고도 놀라기는 커녕, 오히려 태연했다.

심지어 마치 시체를 처리하는 살인범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기절해있는 스켈레톤과 백설하가 잘 있는지 여유롭게 확인할 정도였으니까.


"저 새끼다."


호수 밖으로 나오는 주혁을 보며 혜윰이 중얼거렸다.


"저 새끼, 우리 아빠 납치한 새끼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침 은신단의 약효가 떨어질 때였다.

점점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4인방은, 즉시 주혁에게 달려들었다.


"으억!"


당연히 주혁은 깜짝 놀랐다. 그는 도망가려 했으나, 4:1이니 불리했다.

더군다나 주혁에게는 그 흔한 신체적 능력도 없었다. 허우대만 멀쩡한 놈이다.


"자, 자, 자, 잠깐! 너희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오해 같은 소리하네."


혜윰이 미리 준비해두었던 굵은 밧줄로 주혁의 손목을 결박하며 말했다.


"자, 같이 부서로 가서 진솔한 대화를 좀 나눠볼까요?"


주혁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난 이렇게 막 다루는 거 취향 아닌데. 취향이 좀 거칠구나, 너?"


허나 혜윰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제가 좀 와일드한 걸 좋아해서."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



한편, 영부는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 들어가 있었다.

의도적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고, 꿈을 통해 발현된 무의식일 뿐이었다.

그러니 진짜 의미에서의 무의식이라기보단, 일시적인 형태의 무의식일 것이다.


"멋진 궁전이로구나."


꿈 속에서 그는 궁전에 있었다. 이전에 겨우 재건한 피의궁전이 아닌, 진짜 궁전이었다.

아주 먼 옛날, 솔로몬 대왕이 살던 바로 그 예루살렘 궁전과 맞먹는 크기의 궁전이다.


"왕이시여, 여기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들을 데려왔습니다."


영부는 아주 높은 단상 위에 올라가 있는 왕좌 위에 앉아있었다.

그런 그의 발 아래에는 박바람의 얼굴을 한 신하가 굽신거리며 영부에게 알랑방귀를 뀌고 있었다.


박바람, 아니 신하는 영부에게 자신이 데려온 미녀들을 보여주었다.

그녀들의 얼굴을 자세히 훑어보니, 라헬의 여종들의 얼굴들과 비슷해 보인다.


"잘 했다."


영부가 말했다.


"헌데, 우리나라에 없는 여자도 있는 듯 하구나. 저 아이는 외국인이 아니더냐?"


영부가 옹기종기 모여있던 여자들 중 한 명을 가리켰다.

그 여자는 유독 키가 컸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허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 아이의 얼굴이 궁금하구나."


영부의 말에 신하가 여자에게 소리쳤다.


"어명이다! 고개를 들어라!"


신하가 소리치자,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개를 듦과 동시에,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여자의 얼굴이 점점 드러났다.


흰 얼굴에 검은 머리, 약간의 곱슬기가 있어 강아지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어?"


영부는 당황했다. 고개를 들어올린 여자의 얼굴을 이전에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화, 화, 황대근?"


허나 이 궁전에서 당황한 것은 영부 혼자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박바람의 얼굴을 한 신하도, 영부의 곁에 있던 호위무사도 모두.


"너, 너, 너, 네가 여길 왜 온 것이냐?!"


영부가 소리쳤지만, 황대근은 뻔뻔한 얼굴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네 기억 훔치러 왔지."







한편 인간 황대근은 괘종시계얼굴을 한 남자와 함께 영부의 무의식에 있었다.

영부가 꿈 속에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무의식에 있는 동안, 두 남자는 영부의 진짜 무의식에 있었던 것이다.


"아쉽군요."


안타깝게도 남자와 황대근은 영부의 기억을 훔치지 못했다. 백설하가 정신을 차렸고, 또 스켈레톤 역시 구조되었으니까.

백설하가 구조됨과 동시에, 괘종시계얼굴을 한 남자와의 연결고리가 사라졌다.


"정말 아쉬워요."


남자가 말했다.


"아마 당분간 우린 만나기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황대근은 저번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의문 하나를 남자에게 건넸다.


"왜 영부의 기억을 훔치려 하는 건가요?"


남자가 대답했다.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저를 위해서라고요? 저번에도 그런 말을 했잖아요. 다른 이유 없나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궁금하니까요."

"곧 알게 될 겁니다. 허나, 지금은 안 됩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슥-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힐긋 보더니, 황대근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만나기 어렵겠군요. 하지만, 만남이 있다면 이별도 있고, 이별이 있다면 만남도 있는 법이지요."


"허나,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당신이 저의 얼굴을 마주하고, 저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겠지요."


"이런 허상의 공간이 아닌, 진짜 세계에서 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0 어른의 찌질함 22.01.22 15 1 12쪽
269 왕자의 발악 (4) 22.01.21 17 1 11쪽
268 왕자의 발악 (3) 22.01.21 16 1 11쪽
267 왕자의 발악 (2) 22.01.20 12 1 11쪽
266 왕자의 발악 (1) 22.01.20 12 1 11쪽
265 인생은 한 방 22.01.19 13 1 11쪽
264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3) 22.01.19 15 1 10쪽
263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2) 22.01.18 11 1 11쪽
262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1) 22.01.18 16 1 10쪽
261 왕의 분노 (2) 22.01.17 20 1 11쪽
260 왕의 분노 (1) 22.01.17 14 1 12쪽
259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2) 22.01.16 16 1 10쪽
258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1) 22.01.16 12 1 11쪽
25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5) 22.01.15 12 1 10쪽
25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4) 22.01.15 12 1 11쪽
25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3) 22.01.14 13 1 10쪽
25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 22.01.14 13 1 11쪽
25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22.01.13 14 1 11쪽
252 안락원(安樂院) (3) 22.01.13 13 1 11쪽
251 안락원(安樂院) (2) 22.01.12 12 1 11쪽
250 안락원(安樂院) (1) 22.01.12 15 1 10쪽
249 인페르노(inferno) (4) 22.01.11 15 1 11쪽
248 인페르노(inferno) (3) 22.01.11 15 1 11쪽
247 인페르노 (inferno) (2) 22.01.10 15 1 10쪽
246 인페르노 (inferno) (1) 22.01.10 17 1 11쪽
» 더러운 배신자 (3) 22.01.09 19 1 11쪽
244 더러운 배신자 (2) 22.01.09 17 1 12쪽
243 더러운 배신자 (1) 22.01.08 19 1 11쪽
242 악인 혹은 선인 (3) 22.01.08 21 1 12쪽
241 악인 혹은 선인 (2) 22.01.07 18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