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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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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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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25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1.13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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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안락원(安樂院) (3)

DUMMY

늦은 밤, 황석현은 집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이던 그가 겨우 잠들고 십분 정도 흘렀을 무렵, 그는 꿈을 꾸었다.


'누구지?'


꿈 속에서 그는 한 어린 남자아이를 보았다. 헌데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달걀귀신처럼 얼굴이 아예 없다.


"왜 날 버렸어?"


남자아이가 황석현에게 말했다.

얼굴이 없으니 입이 있을리도 없다. 대체 어느 부위로 말을 하는지 황석현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남자아이가 또다시 말을 건넸다.


"왜 날 그 여자한테 보냈어?"


그 여자라니. 황석현은 괴로웠다.

이 아이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하는 말인가?

왜 나를 탓하는 것일까?


"난 널 버린 게 아냐. 게다가, 난 네가 누군지 몰라."


황석현의 말에 아이는 웃기 시작했다. 비웃음이었다.


"하하! 웃기네.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아니,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알아."

"나를 모를 리가 없어."


아이가 황석현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석현은 자신도 모르게 도망쳤다. 도망치고 싶은 건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발이 움직였다.


그리고 소리쳤다.


"그런 게 아니야! 난 널 버린 게 아니라고! 허억...!"


황석현이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나 침대에서 일어나보니, 침대는 흠뻑 젖어있었다. 아무래도 자면서 땀을 흘린 모양이다.


띡-


황석현은 에어컨을 틀었다. 아마 날이 더워 악몽을 꾼 것이라 생각했다.


"후우..."


에어컨을 작동시키자 작은 방 안이 금세 시원해졌다.

도로 뽀송뽀송해진 퀸 사이즈 침대 위에 드러누운 채, 그는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진 사진을 보았다. 가족사진이었다.


'.....잘 지내나?'


사진 속에는 두 남녀가 웃으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웃고 있었다. 황석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괜히 이혼한 건가.'


황석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아이가 다 자라기도 전에, 심지어 걷기도 전에 이혼해버린 게 잘못이었나.


'왜 요즘 들어 자꾸 이 꿈을 꾸는 거냐고?'


달걀귀신처럼 생긴 아이가 나오는 악몽만 벌써 5번째 꾸고 있다.

내용은 늘 같았다. 아이가 황석현을 탓하고, 황석현은 그런 아이를 피해 달아나고.


'에이!'


한참동안이나 사진을 들여다보던 황석현은 사진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신경쓰지 말자. 그 애는 잘 자라고 있겠지! 그 여자가 데려갔으니까 더 이상 상관할 것 없다고!'







8월 1일 월요일, 황대근과 남자아이는 H아파트 놀이터 정자에 앉아있었다.

황대근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편의점에 다녀온 사이 또 만나게 된 것이다.


"고마워요 형!"


황대근은 언제부턴가 아이를 자주 만나는 터라, 편의점에 가기만 하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스크림을 두 개씩 사곤 했다.


"점심도 안 먹었다며? 빈 속에 찬 거 먹어도 되냐?"


황대근이 묻자, 아이는 걱정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저 몸 따듯해서 괜찮아요! 저번에 보육원에서 단체로 건강검진 했는데, 저는 소양인이래요! 괜찮대요!"


보육원에서 한의원도 데려가나? 황대근은 의아했지만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기에 묻지 않았다.


"형, 제가 저번에 왕씨 할아버지 만났을 때 들은 건데요."


민트초코맛 아이스크림을 한 입 물며 아이가 물었다.


"할아버지한테 치매가 있대요. 치매가 뭐예요? 안 좋은 거 같은데, 뭔지 모르겠어요."


황대근이 대답했다.


"쉽게 말하면 기억을 점점 잃게 되는 거야. 가족도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방금 전에 뭐 했는지도, 뭐 하려 했는지도 모르는 거지."

"저도 그런 적 있어요! 어제 먹은 반찬이 생각 안 날 때도 있어요."

"그거랑은 달라. 그건 일종의 건망증 같은 거지."

"건망증이요?"

"응. 건망증이 아니라해도, 원래 사람들은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살진 못해. 당연한 거야."

"그래도, 가족을 기억 못하는 건 슬퍼요."

"슬프지. 그래서 치매가 잔인한 병이라는 거야."

"너무해. 왜 그런 병이 있는 거지?"

"글쎄다. 난들 알겠냐."

"그러고 보니까 형! 저 하나 더 기억났어요!"


아이가 말했다.


"할아버지 행동이 이상해요."


황대근은 대수롭지 않은 듯 반응했다.


"계속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냐? 원래 나이들면 다들 그래."

"그게 아니라, 저한테 이상한 말을 했다니까요?"

"무슨 말인데?"

"안락원에서 막 이상한 거 먹인다고, 여기 빨리 나가고 싶다고 했어요! 할아버지 표정이 완전 겁먹은 표정이었다구요."







(경기도 평택시 - 안락원)



뒤뚱뒤뚱-


검은 복면의 남자는 다리를 절었다. 얼마 전, 영부에게 맞은 칼 부위가 여전히 남자를 괴롭히고 있던 것이다.

물론 많이 나아진 상태이기는 하다. 예전보다는 덜 뒤뚱거리니까.


"자, 여깁니다!"


남자는 박바람과 함께 안락원에 왔다. 박바람은 자신이 안락원을 짓기라도 한 것처럼 잔뜩 뻐겼다.


"여긴 처음이시죠? 괜찮습니다. 제가 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제가 여기에 대해 잘 알거든요!"


박바람과 남자 둘 다 지파장이라 계급의 차이는 없을 터인데, 박바람의 어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었다.


"여기 왕씨 할아버지 있거든요? 예전에 중국에서 살다가 십 몇 년 전인가, 한국에 와서 짱박혀 사는데 돈이 없으니 겨우겨우 여기 들어온 겁니다."


박바람이 안락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말하자, 남자가 물었다.


"가족은 없습니까? 찾아오는 형제들이나?"


박바람이 대답했다.


"그런 거 없어요~ 예전 기록자료 다 뒤져봤는데, 아무도 안 오더만요. 아!"


그때 갑자기 박바람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까 누가 오긴 오네요. 왕씨할배 좋다고 오는 사람이 있어요. 아주 어린애."

"어린애?"

"네. 저기 S고등학교 옆에 있는 보육원 아시죠? 거기 다니는 앤데, 부모가 없어서 그런가 그 왕씨 할배한테 아주 그냥 정을 따다닥! 붙였지 뭡니까."

"S고등학교면 그 큰 갈비집 옆에 있는 그 고등학교 말씀이시죠?"

"아 그렇다니까요. 보육원있잖아요. 구영원에서 남들 몰래 후원하는. 아~ 그런거 보면 우리 영부님 참 수줍은 분이십니다. 내가 이렇게 쩌는 놈이다! 하고 대놓고 후원하면 될 걸, 뭐 하러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 남몰래 하면 누가 알아나 준답니까?"


박바람의 말을 들은 남자는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지만,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아무것도 모른다.


"지파장님! 여깁니다, 여기! 여기로 오십쇼!"


박바람이 소리치는 곳을 따라, 남자는 그를 따라갔다.

안락원은 몇 개의 건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들이 들어간 곳은 행복동이라는 곳이었다.


"저기, 저 할아버지 말입니다. 여기선 왕씨할배라고 불리거든요?"


때는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박바람이 가리킨 할아버지는 일인실의 방 안에서 보호사가 떠먹여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


"저 할배가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께 피해가지 않도록 잘 처리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원래 요양원이 이런 분들 모시려고 만든 곳 아닙니까. 그냥 내버려 두도록 하세요."

"아뇨, 영부님의 지시입니다."


남자는 깜짝 놀랐다.


"영부님의 지시요?"

"네. 안그래도 안락원이 워낙에 좋다는 소문이 많아서, 여기 들어오려고 하는 분들이 떼거지거든요. 노인 분들이 여기를 평택의 하와이라고 부른다니까요?"


박바람의 대답에 남자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평택의 하와이 좋아하시네. 노인들이 여길 제발로 찾아온다고? 그럴리가 없다.

이곳에 온 노인들의 대다수는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자녀들이나 형제들이 외면하고 연을 끊은 이들 뿐이다. 이래저래 세상의 온갖 상처란 상처는 받은 이들뿐이다.


표정을 보면 알지 않나, 노인들의 얼굴에 빛이라고는 전혀 없다.


"할아버지, 좀 드셔야죠. 요즘 왜 이렇게 잘 안드세요?"


왕씨 할아버지에게 숟가락을 들이밀던 보호사가 지쳤는지 말했다.


"드셔야 해요. 나이들수록 잘 먹어야 한다니까요?"


보호사가 애원했지만, 왕씨 할아버지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고기... 고기가... 떫어... 고기가.... 고기가... 맛이 없어... 이상해..."


그러자 보호사가 말했다.


"아유, 할아버지 나이가 들어서 그래요. 원래 나이들면 입맛이 없어진다고들 하잖아요? 그래도 먹어야지 어떡해! 맛있게 먹으면, 다음번에 가족들이 올 거예요. 가족들 왔을 때 건강해 보여야죠?"







(대근건설 - 제1건물 브레인 - 사장실)



"어우, 어우! 드디어 자유다!"


때는 WBC오랜만에 점심시간에 식사를 할 때였다.

WBC는 대체로 정해진 식사시간이라는 게 없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인간 황대근이 너무나도 건강한 나머지, 덕분에 12시에 정확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드디어! 내가 여길 탈출한다!"


그 틈을 타 푸, 아니 주혁은 WBC를 탈출했다.

그는 서둘러 도망쳐야만 했다. 마치 마법의 변신약을 마시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몸이 원래상태로 돌아오고 있었으니까.


"푸같은 소리하네 진짜. 내 이름은 주혁이라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머리 역시 원래상태로 돌아왔다. 더 이상 조혈모세포를 상징하는 보랏빛의 검은 머리가 아니었다.


"썩을, 혜윰 그 자식... 내가 반쯤 죽여버려야겠어!"


주혁은 제1건물 브레인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동안 그 누구도 주혁을 말리지 않았다. 헌데, 그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영 이상했다.


'저 새끼가 여길 왜 와?'의 눈빛이 아니라, '저 새끼.... 뭐지?'의 눈빛들이었다.


허나 지금의 주혁은 그런 것들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 쉐도우에게 가야 한다. 쉐도우에게 모든 것을 일러바쳐야지. 나에게 모욕을 준 메모리아부서 놈들에게 복수해야지.


벌컥-


드디어 사장실에 도착했고, 주혁은 있는힘껏 문을 열어젖혔다.


"쉐도우 비서님! 할 말이 있습니ㄷ....어?"


호기롭게 쉐도우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려 하던 주혁은 그만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소파에 앉아있던 쉐도우의 앞에 있는 손님용 소파에는, 황대근이 앉아있었던 것이다.

분위기는 무난했다.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쉐도우가 주혁에게 '너 여기 왜 있느냐'란 눈빛을 보냈을 뿐이다.


"지금은 바쁜데, 나중에 오시겠습니까, 주이사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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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왕자의 발악 (4) 22.01.21 17 1 11쪽
268 왕자의 발악 (3) 22.01.21 16 1 11쪽
267 왕자의 발악 (2) 22.01.20 12 1 11쪽
266 왕자의 발악 (1) 22.01.20 12 1 11쪽
265 인생은 한 방 22.01.19 13 1 11쪽
264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3) 22.01.19 15 1 10쪽
263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2) 22.01.18 11 1 11쪽
262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1) 22.01.18 16 1 10쪽
261 왕의 분노 (2) 22.01.17 20 1 11쪽
260 왕의 분노 (1) 22.01.17 14 1 12쪽
259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2) 22.01.16 17 1 10쪽
258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1) 22.01.16 13 1 11쪽
25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5) 22.01.15 12 1 10쪽
25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4) 22.01.15 12 1 11쪽
25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3) 22.01.14 14 1 10쪽
25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 22.01.14 13 1 11쪽
25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22.01.13 14 1 11쪽
» 안락원(安樂院) (3) 22.01.13 14 1 11쪽
251 안락원(安樂院) (2) 22.01.12 12 1 11쪽
250 안락원(安樂院) (1) 22.01.12 15 1 10쪽
249 인페르노(inferno) (4) 22.01.11 16 1 11쪽
248 인페르노(inferno) (3) 22.01.11 15 1 11쪽
247 인페르노 (inferno) (2) 22.01.10 15 1 10쪽
246 인페르노 (inferno) (1) 22.01.10 17 1 11쪽
245 더러운 배신자 (3) 22.01.09 19 1 11쪽
244 더러운 배신자 (2) 22.01.09 17 1 12쪽
243 더러운 배신자 (1) 22.01.08 20 1 11쪽
242 악인 혹은 선인 (3) 22.01.08 21 1 12쪽
241 악인 혹은 선인 (2) 22.01.07 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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