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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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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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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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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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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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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

DUMMY

(경기도 평택시 - 안락원)



며칠 뒤 8월 5일 금요일 점심, 안락원에 있는 식당 주방은 한창 바빴다. 매주 금요일 점심 때마다 안락원의 어르신들을 위한 특식준비 때문이다.


사실, 거의 매주 삼시 세끼에 고기반찬을 챙겨주기는 하는데, 금요일 특식은 조금 다르다. 평소에는 평범한 고기반찬이라면 금요일에는 아주 맛있는 한우를 준다.

한우 자체가 값이 비싸고, 소고기를 수십 명의 노인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주려면 예산이 빠듯할 텐데, 안락원은 매주 고기를 준다.


이 날만큼은 평소에는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고 심지어는 거부하던 노인들도 배가 터져라 고기를 먹는다.


"아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천천히 드셔요~"


헌데, 고기를 흡입해대는 노인들의 모습이 조금 기괴하다.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마치 살려고 먹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는 이런 음식 못 먹을 것처럼 굴고 있다.


"쯧쯧. 이래서 나이는 곱게 먹어야 한다고들 하지요."


그런 노인들의 모습을 영부와 그의 신도들은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안락원에 봉사를 온다.


"영부님, 저도 영부님처럼 늙고 싶습니다!"


영부의 곁에 있던 40대 정도의 여성 신도가 말했다.


"영부님은 제 롤모델이세요."


그러자 영부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과찬의 말씀입니다. 이 늙은 것을 너무 비행기 태우심 안 됩니다."


영부와 신도들이 말 같지도 않은 덕담을 주거니받거니 하는 동안, 왕씨 할아버지는 막 구워져 나온 1등급 한우를 허겁지겁 집어먹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살아야겠다는 욕망이 이글거렸다.







(경기도 평택시 - 안락원)



다음 날, 8월 6일 토요일 점심때였다. 황대근이 구해주었던 남자아이는 보육원을 빠져나와 안락원으로 갔다. 자유시간을 이용해 왕씨 할아버지를 보려는 것이다.


"할아버지!"


귀여운 남자아이의 등장에 왕씨 할아버지는 아이를 반겨주었다.


"할아버지, 몸이 아프시다구 했잖아요. 괜찮으세요?"


아이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어, 괜찮어. 할아버지 잘 먹고 잘 자고 튼튼해."


남자아이는 안심했다. 아이는 저번에 할아버지가 했던 이상한 소리들은 그냥 잊기로 결심했다.

사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아이는 그저 할아버지가 건강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할아버지, 근데 저기 누워계시던 할머니 어디갔어요?"


왕씨 할아버지의 옆 침대에는 김씨 할머니가 산다.

그 할머니는 남자아이를 아주 귀여워 했는데, 아이가 이곳에 놀러올 때마다 늘 먹을 것을 손에 쥐어주고는 했다.


"응? 할아버지? 할머니 어디 가셨어요?"


아이가 계속해서 질문했지만, 왕씨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대답없는 할아버지에게 심통이 난 남자아이가 토라지려 할 때 쯤, 보호사들이 들어왔다.

점심시간이 된 것이다. 그들은 방에 있던 노인들에게 식판을 나누어주었다.


"우와, 고기다! 나두 먹을래요!"


남자아이는 식판을 보며 소리쳤다. 식판에는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검붉은 색의 고기가 담겨져 있었다.

어쩐지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자, 할아버지? 오늘은 잘 드셔야해요."


보호사는 수저에 밥 한숟가락과 고기 한 점을 올려 왕씨 할아버지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헌데 할아버지는 먹기 싫어 보인다.


"할아버지! 저도 한 입 주세요!"


고기가 탐이 났는지, 아니는 자기에게도 달라며 고기에 손을 가져다댔다.


쾅-


그리고 바로 그때, 왕씨 할아버지는 식판을 엎어버렸다.


"이런 거 먹는 거 아니야!"







(평택경찰서)



"머리아파 죽겠구만~!"


한편, 황석현은 한참 자료조사중이었다.

다른 동료 경찰관들이 나가서 맛있는 점심을 사먹을 동안(그들은 인기많은 꽂게탕집으로 갔다),

황석현은 홀로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구영원, 구영원... 구영원 관련 자료는 이것들 뿐인가."


그는 구영원에 관한 자료를 조사중이었다.


"뭐가 이리 복잡해. 마인드맵을 그려보자."


그는 머릿속으로 마인드 맵을 하나 그려보았다.

가장 중앙에 있는 가장 큰 원은 구영원, 그리고 그 옆으로 잔가지를 친 작은 원들.

원 하나는 에파타학교, 다른 하나는 GH도서관.


물론, 공식적으로 구영원이 에파타학교와 GH도서관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분명히 구영원하고 관련이 있는데, 안광윤 땜에 묵살당해버렸잖아. 하지만 이제 안광윤도 바닥신세인데... 아마 연관된 놈들이 한 둘이 아니라 무서운 거겠지. 그게 다 떠벌려지면 지들도 모가지 날아갈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 원은 바로 이것이다.


"남은 건 바로 여기, 안락원."


황석현은 생각했다. 안락원 역시 보나마나일 거라고.


"안락원도 구영원 소유일 게 뻔해. 영부가 그곳에 들락거리는 걸 내가 확인했으니까."


헌데 단 한 가지. 황석현을 헷갈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 놈은 대체 누구지? 처음 보는데?"


그가 들고 있는 사진자료에는 한 남자가 찍혀있었다. 바로 검은 복면의 남자였다.


"수상하긴 참 수상하단 말이야. 이 새낀 뭔데 한여름에 복면을 쓰고 돌아다녀? 오튜버인가?"


벌컥-


황석현이 두 눈알이 빠지도록 자료를 들여다보고있는데, 사무실 문이 열렸다.


"황팀장님!"


여경아였다.


"팀장님, 점심 안 드세요? 요즘 자꾸 마르시는 것 같은데."


여경아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마시며 황석현이 대답했다.


"어, 뭐. 언젠간 먹겠지. 그보다 말이야, 자네가 준 자료 아주 유용해."

"들키지 않게 해주세요. 윗선이 알면 저도 모가지거든요."

"걱정말라고."


여경아가 자기 책상에 올려져있던 칫솔을 찾는 동안, 황석현은 안락원 사진자료를 보며 중얼거렸다.


"여길... 조사 좀 더 빡시게 해봐야겠는데.







(경기도 평택시 - H아파트 놀이터 정자)



"그래서, 경찰이 온데요."


남자아이가 황대근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정자에 앉아 또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야기중이었다.


"요즘 경찰 한 명이 안락원에 온대요."

"경찰? 얼굴은 봤어?"

"저는 못 봤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

"보호사 형누나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거든요."

"보호사분들이랑 친해?"


아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누나들이 저한테 잘해줘요. 먹을 것도 쥐어주고요."

"먹을 거?"

"네. 저번에 우리 할아버지가 또 이상한 행동을 하셨거든요? 식판을 뒤엎어버렸어요. 제가 고기 먹고 싶다고 했더니 싫으셨나봐요."

"그래서 보호사분들이 너한테 고기를 줬구나?"

"네. 그런데 맛이 조금 이상했어요."

"어땠는데?"

"뭐라구 해야 하지? 맛없는 감 먹었을때를 뭐라고 표현하죠?"

"떫다?"

"아, 맞다! 맞아요! 떫었어요! 그렇게 이상한 맛이 나는 고기는 처음 먹어봤어요."







(경기도 평택시 - 안락원)



그날 늦은 오후, 황석현은 자기차량을 끌고 안락원으로 이동했다.


"여기가 안락원인가."


황석현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무사히 안락원으로 입성했다.

무슨 사건이라도 벌어졌느냐는 관계자의 질문에, 황석현은 GH도서관 화재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GH도서관 화재사건은 어느 정도는 핑곗거리에 불과하긴 했다. 하지만,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안락원에서는 보통 김씨 할머니라고 불리셨었죠. 저희 어머니는 본인이 원하셔서 안락원에 가셨습니다.'


황석현은 얼마 전, GH도서관 화재 사건 때 목숨을 잃었던 할머니의 유족과 만날 수 있었다. 이 할머니는 바로 왕씨 할아버지 옆 침대에 있던 그 할머니였다.


'자식들에게 짐 지워주기 싫으시다면서, 저희가 한사코 말렸는데도 굳이 안락원에 가셨어요. 처음에는 좋아보이셨어요. 맨 처음 면회 몇 번 갔을 때 표정이 밝으셨으니까. 그런데, 면회를 가면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지고 수척해지시는 게 눈에 보이는 거예요.'


'저희 할머니는 키가 좀 작으세요. 150초중반 정도? 그 나이대에 몸무게가 겨우 40키로그램을 유지할 정도로 빠졌다는 건, 심각한 거잖아요. 원래는 굉장히 정정하신 분이에요. 체격도 있으시고. 그 작은 키에 몸무게가 60키로그램이면 제법 나가시기는 하죠.'


'노인네가 병 걸린 것도 아니고, 그냥 살이 빠졌다니까요? 그래서 안락원에 전화를 했죠. 밥을 안 주느냐고요.'


'그랬더니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서 확인을 해 봤어요. 정말로 밥을 제때 주나 안 주나.'


'가서 확인했더니 정말로 밥을 주긴 주더라고요. 당황하긴 했는데... 조금 이상했어요.'


'노인들 표정이 하나같이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거기 관계자한테 물어봤죠. 노인들 안색이 왜 저리 어둡냐고.'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밥을 잘 안드신대요. 자기들은 먹이려고 애쓰는데, 안 드신다는 거예요.'


황석현은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안락원이 의심스럽다고.

노인들이 밥을 굶을리가 있겠는가. 당장 내일 죽을 것 같이 아픈 노인네가 아니라면, 어지간하면 밥을 굶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끼니를 제 때 챙기지 못한다는 걸 얼마나 큰 일로 생각하는데, 노인들이 밥을 굶겠는가.


"아, 거기는 안 됩니다!"


김씨 할머니의 유족이 말했던 것을 상기하며, 황석현이 주방으로 가려고 하자 관계자가 그를 말렸다.


"지금 주방이 좀 난리가 나서요. 잠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신 휴게실을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금방 치우겠습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냥 잠깐 보고 나올거니까요."

"아뇨, 저희가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결국, 황석현은 휴게실로 가야만 했다.

7성급 호텔 주방도 아니고 겨우 요양원 주방하나 보는데 뭐 저리 난리들인가? 황석현은 기분이 나빴다.


'그건 그렇고, 정말 이상하군. 노인네들 얼굴이 하나같이 죽상이야.'


황석현은 왕씨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그 할아버지는 세월은 속일 수 없는지라 얼굴에 주름은 한 가득이지만, 어딘가 또렷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저 빈 자리가 김씨 할머니 자린가.'


왕씨 할아버지 옆에는 텅 빈 침대가 있었다.


'분명 그 할머니 자리겠지.'

"저, 형사님! 주방 정리 끝났습니다!"


그때, 관계자가 황석현을 불렀다.

황석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게실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음?"


휴게실에는 아주 커다란 창문이 있다. 바깥 상황이 훤히 보일 정도로 큰 창문이었다.

그러니, 황석현이 창문을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쟤는.... 어디서 본 것 같지, 왜?'


창문 밖에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왜... 기분이 묘하지?'


자신도 모르게 남자아이에게 눈길이 가는 것을 애써 돌리며, 황석현은 주방으로 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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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왕자의 발악 (2) 22.01.20 12 1 11쪽
266 왕자의 발악 (1) 22.01.20 12 1 11쪽
265 인생은 한 방 22.01.19 13 1 11쪽
264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3) 22.01.19 15 1 10쪽
263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2) 22.01.18 11 1 11쪽
262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1) 22.01.18 16 1 10쪽
261 왕의 분노 (2) 22.01.17 20 1 11쪽
260 왕의 분노 (1) 22.01.17 15 1 12쪽
259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2) 22.01.16 17 1 10쪽
258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1) 22.01.16 13 1 11쪽
25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5) 22.01.15 12 1 10쪽
25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4) 22.01.15 12 1 11쪽
25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3) 22.01.14 14 1 10쪽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 22.01.14 14 1 11쪽
25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22.01.13 14 1 11쪽
252 안락원(安樂院) (3) 22.01.13 14 1 11쪽
251 안락원(安樂院) (2) 22.01.12 12 1 11쪽
250 안락원(安樂院) (1) 22.01.12 15 1 10쪽
249 인페르노(inferno) (4) 22.01.11 16 1 11쪽
248 인페르노(inferno) (3) 22.01.11 15 1 11쪽
247 인페르노 (inferno) (2) 22.01.10 15 1 10쪽
246 인페르노 (inferno) (1) 22.01.10 17 1 11쪽
245 더러운 배신자 (3) 22.01.09 19 1 11쪽
244 더러운 배신자 (2) 22.01.09 17 1 12쪽
243 더러운 배신자 (1) 22.01.08 2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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