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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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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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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20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1.1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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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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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1)

DUMMY

(경기도 평택시 - 안락원)



아이들은 잘 싸웠다. 특히 황대근이 아주 잘 싸웠다.

흉기를 보유한 보호사들은 아이들을 죽이려 애를 썼지만,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칼에 맞는 일은 없었다.

이시연은 주짓수 선수답게 잘 싸웠고, 체대입시를 준비중인 백경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천강우가 조금 문제였다.

약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파악한 보호사들이 천강우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으어어억!"


살면서 이런 끔찍한 경험을 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던 천강우가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보호사 한 명의 칼 끝이 천강우의 목덜미를 내리꽂으려는 바로 그때, 흉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황대근이 발차기로 그 칼을 멀리 차버린 것이다.

그 사이 이시연은 바닥에 떨어진 칼을 재빨리 주웠다.


"어떻게든... 된 것 같기는 한데..."


20여분 가량의 사투 끝에, 아이들은 보호사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보호사들은 그들을 죽이려 했었으나, 아이들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그저 말을 하지 못하도록 테이프로 입을 싸맨 후, 움직일 수 없도록 묶어만 둔 것이다. 별 것 아니었다.


"근데 저거 꼭 그거 같지 않냐?"


백경민이 묶인 보호사들을 보며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그 옛날에 인디언 나오는 영화 보면 인디언들이 섬에 놀러 온 백인들 목을 밧줄로 엮어서 납치해 가잖아. 약간 그런 느낌이..."


황대근 역시 그 생각에 동의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던 중이었다.


"구해... 구해줘....!"


그때 기운 없는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고, 아이들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들이 왕씨 할아버지를 구하고 있던 중이었다는 것을.


"잠깐만 기다려봐. 이 밧줄은 손으로 못 풀 것 같아. 내가 아까 칼을 주웠거든."


이시연이 조금 전 주운 칼을 꺼내보였다.


"이걸로 풀어보자."

"너 칼 다룰 줄 알아?"


황대근이 묻자, 이시연은 걱정말라는 듯 황대근의 어깨를 팡팡쳤다.


"당연히 다룰 줄 알지! 원래 사람이라는 건 위기상황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어라? 어라?"


황대근은 식겁했다.

칼을 처음 다뤄보는 것인지, 살면서 과일 한 번 안 깎아봤는지 이시연의 칼 다루는 솜씨는 형편없었다.

저러다가는 왕씨 할아버지의 손목을 잘라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황대근이 그녀를 말리며 말했다.


"내가 할 게! 그러다 할아버지 손 날라가겠네!"


몇 분이 지난 후, 왕씨 할아버지는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사람고기가 될 뻔한 할아버지를 구했다는 기쁨에 도취되었다.

허나 그러한 기쁨도 잠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들은 곧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한 대로, 영부와 박바람이었다.

헌데 아이들은 영부는 알아도 박바람은 알지 못했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영부가 박바람을 소개했다.


"인사하렴, 얘들아. 이쪽은 구영원의 지파장님이시란다."


물론 인사를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 모습에 영부는 예상했다는 듯 태도를 보였으나, 박바람은 아니었다.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코에서 김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잠깐만, 저 얼굴 어디서 봤는데?'


다른 아이들은 아니었으나, 황대근은 박바람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작년에 박정우가 영부에게 죽을 뻔 했을 때, 경찰서에서 박바람을 마주했던 것이다. 심지어 인사도 나눴었다.


'이해가 안 되네. 지 아들이 영부한테 죽을 뻔했는데 지파장의 자리로 있다니?'


황대근이 고민하는 동안, 영부가 그에게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참으로 죄인이다. 어찌하여 큰하늘님의 뜻을 이리도 거부하는 거지?"


그러자 황대근이 대답했다.


"큰하늘님이 누군지는 모르겠고, 정말로 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설령 신이 존재한다해도,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신을 아닐 것 같군요."

"하하, 재미있구나, 참 재미있어. 네가 마음에 들었으니 너에게 기회를 주도록 하지."

"기회? 어떤 기회입니까?"

"너의 죄를 고해바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너는 곧 죽게 될 것이야. 죽기 전에 고해를 통해 죄를 용서받아라. 너에게 주는 내 마지막 선물이다.

"죽을 뻔한 할아버지 살린 것도 죄입니까?"

"그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이란다. 아주 못된 사람이야. 내가 듣기로 그 할아버지는 원래 중국에 살았다고 한다. 헌데, 중국에서 결혼해 함께 살던 여자가 있었는데, 글쎄 저 할아버지가 부인을 두고 바람을 피웠다지 뭐냐. 큰하늘님께서 맺어준 인연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큰 죄악이야. 그런 죄인을 돕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아니겠니?"



황대근은 생각했다.


바람 피우는 거? 분명 죄가 맞지. 잘못한 일 맞지. 부도덕한 일 맞지.

그런데 인간 고기절임이 되어도 마땅하다는 건 아니잖아.


"대근아."


영부가 말했다.


"부엌에 와서 놀랐으리라 짐작한단다. 꽤 충격을 먹었겠지. 허나, 신의 일을 하는 자들에게는 평범하디 평범한 풍경이란다. 여기 부엌에 있는 저 고기들은, 죄를 용서 받은 자들이란다. 죄를 용서 받은 이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안락원에 있는 수많은 죄인들의 살과 피가 되어주는 거야. 그렇게 회개한 죄인의 살과 피를 먹은 안락원의 노인들은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이지."


황대근은 머리가 아팠다.

아니, 정확하게는 짜증이 났다. 뭐 저딴 새끼가 다 있단 말인가.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 들어주지, 저건 개소리 수준도 되지 않는다. 개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이제 보니 너희들의 죄 역시 하늘에 닿았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큰하늘님의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도 보인단다. 그분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니? 그분을 위해, 너희들 역시 그분께 죄를 고하렴."


영부와 박바람이 아이들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아이들에 의해 사지가 묶이고 입이 봉인된 보호사들은 그나마 자유로운 두 눈으로 현재 상황을 관전 중이었다.


이 모든 거지 같은 상황을 지켜보며, 황대근은 생각했다.


'그래,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았지.'


아직 19살 밖에 안 됐는데, 무슨 이런 험난한 인생이 있단 말인가.

결국, 아이들은 두 남자와 싸울 수밖에 없었다.







약 10분 전, 황석현과 검은 복면의 남자는 여전히 창고에 있었다.


"저를 만나고 싶었지요?"


남자의 질문에 황석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이 나쁘네."

"왜 나쁘신가요?"

"너를 눈 앞에 두고도, 잡아가지 못한다는 점이 기분나빠."

"어쩔 수 없지요. 당신은 지금 두 손이 묶여있으니, 신체가 자유롭지 못하잖습니까."

"아니, 그래서가 아니야."

"....?"

"설령 내가 지금 자유로운 상태였다고 해도, 난 널 잡아갈 수 없어. 증거가 없으니까. 너의 흔적을 찾아서 윗선에 알려도, 그 누구도 관심이 없어."

"참 억울하지요. 정의롭지 못하기도 하고요."

"....정의? 네가 정의를 논할 자격이 있어?"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논한다고 문제될 게 있겠습니까?"

"황대근의 부모를 비참하게 죽여놓고는, 정의를 부르짖는다라.... 어이가 없군."

"살인자도 때론 눈물을 흘리곤 하니까요."

"눈물? 사이코패스 주제에."

"그런 말은 듣기 싫은데요."

"뭐?"

"사이코패스한테 사이코패스라고 하면, 상처받거든요."


황석현은 어이가 없었다.


"목소리는 여전하구만."


남자가 대답했다.


"그럼요. 제 잘생긴 목소리가 그리웠지요?"

"그립기는 개뿔. 한동안 내 꿈속에 나와서 날 괴롭혔는데.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쳐."

"칭찬으로 받겠습니다."

"....네 목소리를 아는 놈은 나 뿐인가?"

"그런 듯 하군요. 아, 한 명 더 있습니다."

"누구?"

"영부 말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구영원에 대해 조사하시는 것 같던데요."

"아, 그렇지. 영부가 있었지."


쾅-!


그때 갑자기 창고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간간히 여자 비명소리도 들렸다.


"음, 아쉽게 됐네요. 우리의 만남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남자의 말에 황석현이 물었다.


"밖에 무슨 일인데? 뭔일났는지 알고 그러는 거야?"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황형사님, 열심히 저를 쫒아보십시오. 저를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달려보세요."


남자가 창고를 나가려 문을 열자, 황석현은 소리쳤다.


"이 개새끼야! 어차피 너 체포도 못하니까 나 풀어주고가!"

"어차피 곧 경찰들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 잠시만 기다리시죠, 황형사님."

"야! 이거 하나만 묻자!"


문을 열어젖히던 남자가 행동을 멈추었다.

그 모습을 보며, 황석현이 물었다.


"너, 혹시 S고등학교 앞에 있는 보육원 아냐?"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허나 황석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 아들 어디 있는지 알아? 알지? 알고 있잖아?"







박바람은 약했다.

약해도 너무 약했다. 너무나 빈약하고 힘이 없는 나머지, 그는 결국 보호사들과 함께 묶여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허나 영부는 아니었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영부의 싸움실력은 제법 훌륭한 편이었다.


"황대근! 네 몸 안에만 회사가 있는 줄 아느냐? 나에게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녀석들에게 명령도 할 수 있지!"


황대근은 영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니 뭐니, 저게 무슨 헛소리들이란 말인가.

그는 그저 자신이 무술이란 건 배워본 적도 없는데 너무 잘 싸워서 놀라울 뿐이었다.

단검이나 식칼을 들고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마치 특전사처럼 흉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대근건설 - 근골격부서)



"보호사들은 처리됐습니다, 프로틴팀장님!"


광배는 기분이 좋았다.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들 중 단 한 가지를 뽑아야 한다면, 단연 이것일 것이다.


바로 고강도 운동, 그중에서도 초초초초초고강도운동.


"너무 좋아! 근육들이 살아 숨쉬는 기분!"


보호사들을 처리하고 박바람을 처리하는데에는 근골격부서직원들 외의 직원들의 도움도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직원들은 단연 메모리아 4인방일 것이다.

사실, 4인방은 이런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인간 황대근의 싸움을 돕는 것은 근골격부서 직원들이 할 일이지, 자기들이 할 일은 아니니까, 당연히 안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광배 저 놈은 방금 전까지도 맷돌 갈다 왔으면서....! 웃으면서 이 짓을 해...?'


황대근은 광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생각도 없다.

그가 타고 있는 무동력트레드밀의 계기판에 적힌 달리기 기록계는 벌써 2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찌나 빨리 탔는지, 이제 겨우 한 시간이 되었을 뿐인데 20km들 돌파했다.


"너무 즐거워! 우리 내일도 하죠! 내일은 한 시간에 40km 달리기 어떻습니까?"


잔뜩 펌핑된 허벅지를 보며 즐거워하는 광배의 외침에, 황대근은 세포 한 명쯤 사라지게 하는 건 그리 나쁜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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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왕자의 발악 (2) 22.01.20 12 1 11쪽
266 왕자의 발악 (1) 22.01.20 12 1 11쪽
265 인생은 한 방 22.01.19 13 1 11쪽
264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3) 22.01.19 15 1 10쪽
263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2) 22.01.18 11 1 11쪽
262 메모리의 아르바이트 (1) 22.01.18 16 1 10쪽
261 왕의 분노 (2) 22.01.17 20 1 11쪽
260 왕의 분노 (1) 22.01.17 14 1 12쪽
259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2) 22.01.16 17 1 10쪽
»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1) 22.01.16 13 1 11쪽
25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5) 22.01.15 12 1 10쪽
25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4) 22.01.15 12 1 11쪽
25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3) 22.01.14 14 1 10쪽
25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 22.01.14 13 1 11쪽
25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22.01.13 14 1 11쪽
252 안락원(安樂院) (3) 22.01.13 13 1 11쪽
251 안락원(安樂院) (2) 22.01.12 12 1 11쪽
250 안락원(安樂院) (1) 22.01.12 1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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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인페르노(inferno) (3) 22.01.11 15 1 11쪽
247 인페르노 (inferno) (2) 22.01.10 15 1 10쪽
246 인페르노 (inferno) (1) 22.01.10 17 1 11쪽
245 더러운 배신자 (3) 22.01.09 19 1 11쪽
244 더러운 배신자 (2) 22.01.09 17 1 12쪽
243 더러운 배신자 (1) 22.01.08 2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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