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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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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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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58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09.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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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목격자의 진술

DUMMY

(대근건설 - 소화기 부서 내 카페)



누군가 메모리아 부서로 전서혈을 보냈다. 피니시였다.

전서혈을 읽은 황대근은 여전히 배앓이를 하고 있는 컨트롤의 눈치를 살살 보더니, 재빨리 메모리아 부서를 빠져나왔다.

황대근이 메모리아 부서에서 벗어나 혈관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혜윰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딜 그렇게 가는 거예요? 몰래몰래?'


깜짝 놀란 황대근은 순간 소리를 지를 뻔 했으나, 가까스로 참아내고는 말했다.


'피니시팀장님께서 전서혈을 보내셨습니다. 급히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갈래요!'

'예?'


그렇게 어쩌다 보니 황대근은 혜윰과 함께 혈관 버스를 타고 소화기 부서에 도착했다.

전서혈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피니시는 소화기 부서 내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적혀있었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황대근은 카페 테라스에 앉아 기장떡을 먹고 있는 피니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피니시팀장님!"


황대근이 손을 흔들자 피니시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미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대근의 옆에서 따라오던 혜윰은 그를 따라 피니시에게 손을 흔들다 그만 먹고 있던 적혈구 모양 젤리를 바닥에 쏟아버리고 말았다.


바닥이 지저분해졌다는 것을 감지한 아주 작은, 혜윰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 크기정도 되는 미생물들은 순식간에 혜윰이 있던 자리로 다가와 떨어진 젤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소속인 미생물들이었다. 그들은 소화기 부서가 있는 제 4건물인 헝그리(hungry)에서 청소를 주로 담당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이다.


"기장떡 하나 드시죠."


피니시가 황대근과 혜윰에게 기장떡을 건넸다. 혜윰은 이미 아침을 먹었음에도 여전히 배가 고픈지 피니시가 건넨 기장떡을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대근씨도 하나 드시겠습니까? 소화에 좋은 떡입니다."


피니시가 황대근에게도 기장떡을 권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팀장님 지금 바쁠 시간 아닌가요? 한참 대근이가 먹은 아침을 소화기셔야 할 시간일텐데요."


학교에 가는 평일에 인간 황대근은 보통 아침 7시 30분에 아침을 먹는다.

현재 시각이 8시 10분 정도 되었으니까, 피니시가 바쁠 시간임에 틀림없다.

허나 피니시의 모습은 제법 여유로워 보였다.


"오늘은 일요일이잖습니까. 일요일에는 지금 시간에 일어나지 않지요. 거의 하루 종일 쉬지도 못하고 망치로 음식을 부수는데, 일요일 딱 이 시간만큼은 저도 짧은 여유를 즐겨야지요."


소화기 부서에서 대장팀과 항문팀 다음으로 힘들기로 악명 높은 위장팀.

황대근은 감사했다. 비록 뇌부서에게 온갖 미움이란 미움은 다 받지만, 여유롭고 할 일이 많지 않은 메모리아부서에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황대근이 묻자, 피니시가 먹던 기장떡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빙빙 돌릴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근씨, 트래디션이 왜 죽었는지 아십니까?"


피니시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듣게 된 황대근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뉴스에 나온 대답을 해야 하나요?"


피니시는 씨익 웃었다.


"헨리가 죽인 겁니다. 물론 직접 죽이지는 않았겠지만."


황대근은 놀랐다.

브레인에게 납치되었던 케어를 생각하고 있던 그는, 트래디션을 죽인 범인이 브레인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브레인이 아니라면 쉐도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니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사장님께서요? 어째서죠? 트래디션 부장님을 죽일 이유가 있는 겁니까?"

"사장님은 메모리아 부서에 보관된 자료를 모두 파기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돌아가신 트래디션 부장님께서는 인간 대근이의 모든 기억을 담고 계신 분이시지요. 그런 분을 죽이면, 인간 대근이를 손에 넣기 쉬울 것이라 예상했을 겁니다."


황대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그런 일을 왜 하려는 걸까요?"


피니시가 대답했다.


"헨리의 목적은 인간 황대근을 지배하는 겁니다. 뇌부서와 헨리는 자신들이 마치 인간인 것 마냥 굴고 있어요. 대근건설의 존재 이유는 인간 황대근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그들은 변해버렸습니다."


황대근이 헨리를 만난 것은 입사하기 하루 전 날, 사장실에서 본 게 전부였다.

그 뒤로는 본 적이 없다.


"인간 황대근이 겪은 '그 사건'과 관련된 직원들이 하나 둘 죽어가고 있습니다."


피니시가 말했다.


"트래디션, 트라우마... 이 둘은 대근이가 겪은 '그 사건'과 관련이 많은 존재들이었죠. 그런 존재들을 죽였다는 건, 헨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과거를 지우려는 걸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과거를 조작하려는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헨리의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결코 헨리가 원하는대로 일이 쉽게 진행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마지막 남은 기장떡을 입에 넣는 피니시를 보며 황대근이 물었다.


"쉽게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요?"

"대근이가 겪은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대근건설의 모든 직원들이 삭제해 두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무의식 속에 보관된 기억은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헨리의 예상대로라면 트라우마와 트래디션이 죽으면 아무런 이상 현상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죠."


순간 황대근은 혜윰이 보여주었던 녹슨 자전거 사진을 떠올렸다.

그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사진 한장을 꺼내 피니시에게 건넸다.


"저번에 혜윰씨가 뇌부서 안구팀으로부터 받은 사진자료라고 합니다. 자전거를 보자마자 인간 대근이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고, 또 심장 박동수도 갑자기 올라갔다고 합니다."

"낡고 녹이 슨 자전거로군요."


피니시는 자신이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녹이 슨 철로 온 몸이 뒤덮인 괴물 꿈을.

그리고 피니시는 머리속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퍼즐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무의식이 깨어났군요."


황대근이 얼굴을 찌푸렸다.


"무의식이라고요?"


피니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대근이는 자신이 어렸을 때 겪었던 '그 사건'에 대해 현재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래디션과 트라우마가 죽고, 드림팀에서 무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던 자료들이 제멋대로 재생되는 것을 보면... '그 사건'에 관한 기억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 같군요."

"그 기억이 되살아나면 위험한 겁니까?"


피니시는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건' 자체가 워낙 끔찍한 사건이었던지라... 되살아나서 좋을 건 사실 없죠."

"혹시, 트래디션 부장님이 돌아가셔서 꿈 속에 보이는 살인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닐까요?"


황대근의 대답에 피니시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요점을 정확히 찔렀다고.


"그럴 가능성은 높습니다. 트래디션 부장님께서는 '그 사건'에 대해 잘 알고 계셨으니까요."


황대근이 물었다.


"피니시 팀장님께서는 대근이가 겪은 '그 사건'에 관해 잘 알고 계시나요? 기억 나는 게 있으신가요?"


피니시는 고개를 저었다.


"'그 사건'이 일어날 당시 제가 그곳에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만, 어찌 된 일인지 저 역시 하루 하루 갈수록 기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대근이가 살인현장을 목격했다는 것 뿐입니다. 그 후 대근이는 충격에 빠졌고,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무의식 속에 던져버린 것이죠."


쿠당탕탕—


기장떡으로는 모자랐는지 대추차를 홀짝홀짝 들이키던 혜윰은 갑자기 의자에서 내동그라져 바닥에 엎어져버렸다.


"혜윰씨, 괜찮으십니까?"


놀란 황대근이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피니시가 혜윰을 보면서 피식 웃자, 황대근은 혜윰의 붉어진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 이런. 혜윰씨의 간은 매우 찌질하신가 보군요."


그리고 정확히 1초 뒤, 황대근은 피니시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혜윰씨 설마... 기장떡에 아주 조금 들어간 막걸리 때문에 취한 겁니까.....?"






(대근건설 - 제 1건물 브레인 - 사장실)



{안 돼! 안 된다고! 죽이지 마! 죽이지 마!}


텅 빈 사장실에는 쉐도우 혼자뿐이었다.

그는 가죽 의자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흐음..."


화면 속에는 동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는데, 얼마 전 페로가 드림팀에서 훔쳐온 바로 그 자료였다.


"다시 들어 볼까."


영상이 끝나자 쉐도우는 되감기 버튼을 눌러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안 돼! 안 된다고! 죽이지 마! 죽이지 마!}


"이해가 안 되는군. 왜 자꾸 '그 사건'에 관련된 기억들이 발견되는 거지? 그리고 이 기억은 왜 음성만 나오는 거야?"


쉐도우는 짜증을 내며 컴퓨터의 전원을 강제로 꺼버렸다. 그와 동시에 페로가 사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쉐도우 비서님! 새로운 소식입니다!"


뛰어왔는지 페로의 머리는 땀으로 절어 있었다.

역한 땀냄새 때문에 순간 짜증이 난 쉐도우가 소매로 코를 막으며 말했다.


"무슨 소식입니까?"

"얼마 전에 위장팀에서 발견되었다는 그 자료 말입니다! 드림팀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그 자료요!"

"......"

"메모리아 부서의 황대근이가 그 자료를 주웠다고 합니다!"


너무나 밝고 명랑한 얼굴로 말하는 페로의 얼굴을 보며, 쉐도우는 순간 그의 얼굴을 강하게 내리치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만 했다.


"제가 브레인 부장님보다 먼저 안 소식입니다!"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페로에게 쉐도우는 그만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닥치고 이고나 빨리 찾아오십시오!"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다음 날 월요일, 1교시부터 수학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2학년 2반 학생들은 한껏 우울해 하고 있었다.

수학 과목도 과목이지만, 김철환이라는 선생 자체가 워낙 재미없게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김철환은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을 대하는 센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옛날 방식에만 머물러 발전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선생일 뿐이다.


딩동댕동—♫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10분이 지나도록 김철환은 교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인간 또 지 수업 있는 거 까먹은 거 아냐? 김철환 신용호랑 거의 비슷한 나이 아냐? 걘 대체 언제 은퇴한다냐?"


천강우가 투덜거리자 황대근이 말했다.


"언젠가는 오겠지~"

"물론 안 오면 나야 더 좋지만."


깐깐하고 화를 자주 내는 김철환을 기다리느라 쥐 죽은 듯이 조용했던 2학년 2반 교실은 금세 떠들썩한 소리로 채워졌다.

그 광경을 본 2학년 2반의 반장 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교탁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교탁에 도착하자, 2학년 2반 학생들은 일제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쌤 금방 오실 거야, 조금만 조용히 하자."


김현의 말에 안익준은 약간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금방 오신다고? 네가 직접 물어봤어?"


짜증나는 안익준의 말투에 김현이 말했다.


"이런 적 한 두번도 아니잖아. 조금만 기다리면 오실 거라고. 그리고 니 자리에 가서 앉아, 안익준."


"예~ 예~"


안익준이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자리에 가서 앉자, 김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떠들고 있으면, 김철환은 언제나 반장인 김현을 혼내곤 했다.

물론 반 아이들을 이끄는 것이 반장의 의무라고는 하지만, 혈기왕성한 18살 아이들이 어른들 말도 제대로 들어먹지를 않는데 동급생의 말이라고 들어먹을리가 없다.


'너 하나 때문에 애들이 저 모양이 된 거 아니냐! 네가 못하니까 그런 것 아니냐! 네가 하는 게 뭐가 있냐! 반장이 돼서... 에잉, 쯧! 내가 쪽팔려서 다른 선생들한테 얘기도 못 한다, 못 해!'


김현이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김철환의 말이 머릿속을 맴도는 것을 애써 무시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교실 앞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김철환이었다.


"조용히 하고 있었군, 넌 자리에 가서 그만 앉아라."


김철환은 왼손에 들고 있던 수학 교과서를 교탁 위에 올려두었다.


"수업 시작하자. 저번에 어디까지 했지?"


바로 그때, 황대근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김철환의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자신이 꿈 속에서 맡았던 담배 냄새와 정확히 일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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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 직원 21.09.24 37 1 13쪽
29 미미(美味)! 21.09.24 40 1 13쪽
28 체육대회 21.09.23 40 1 13쪽
27 하체의 꽃은 스쿼트 21.09.23 44 1 12쪽
» 목격자의 진술 21.09.22 46 1 13쪽
25 목격자의 기억 (4) 21.09.22 39 1 13쪽
24 목격자의 기억 (3) 21.09.21 43 1 12쪽
23 목격자의 기억 (2) 21.09.21 41 1 13쪽
22 목격자의 기억 (1) 21.09.20 44 1 14쪽
21 트라우마 (3) 21.09.20 43 1 13쪽
20 트라우마 (2) 21.09.19 50 1 13쪽
19 트라우마 (1) 21.09.19 50 1 13쪽
18 행운과 불운 21.09.18 48 1 13쪽
17 근손실 21.09.18 51 1 13쪽
16 그 사건과 그 사건 21.09.17 85 1 13쪽
15 21.09.17 58 1 14쪽
14 꼴랑? 21.09.16 58 1 14쪽
13 3번이냐, 4번이냐? 21.09.16 70 1 12쪽
12 거짓 보도 21.09.15 71 1 13쪽
11 케어와 플루 21.09.15 71 1 13쪽
10 it form bit 21.09.14 85 1 12쪽
9 월급루팡 21.09.14 90 1 14쪽
8 페스트(Past) 21.09.13 106 1 13쪽
7 WBC(White Blood Cell) 21.09.13 136 1 13쪽
6 삭제 21.09.13 170 1 14쪽
5 대회 준비 21.09.13 271 1 14쪽
4 첫 출근 21.09.13 420 1 14쪽
3 황대근과 황대근 21.09.13 869 3 13쪽
2 소문의 신입 21.09.13 2,200 6 8쪽
1 프롤로그 21.09.13 2,513 2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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