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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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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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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1,802

작성
21.09.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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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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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황대근과 황대근

DUMMY

과거, 대근건설에 J라는 남자가 입사했다.

J는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뛰어난 업무 처리 능력을 보여주어 어린 나이에 초고속 승진을 해 탄탄대로를 밟았으며, 그에게는 영원히 꽃길만 가득할 것으로 보였다.

모두들 J를 좋아했다. J는 모두에게 친절했다. 그는 미생물들과 효소들에게도 친절할 정도였다. 대근건설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는 미생물과 효소들도 그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J는 사라졌고, 대근건설의 그 누구도 J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모든 직원들이 J의 존재에 관해 잊어버렸을 때 쯤, 대근건설은 사상 최대의 부도 위기를 겪게 되었다.

J가 대근건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인간 황대근의 '자아'인 이고(EGO)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과 합치는 대담한 일을 시도한 것이다.


결국 이고를 빼앗긴 인간 황대근의 육신과 정신 건강이 바닥을 기게 되었고, 곧 대근건설은 자연스럽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량의 실업자들이 발생했으며, 길거리에는 배가 고파 굶주리는 어린 아이들이 즐비했다.


결국 인간 황대근의 자아는 파괴될 위험에 처했지만, 대근건설의 뛰어난 경비병인 면역세포들과 WBC(White blood cell)가 J를 간신히 진압하였다.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이들을 밀쳐내며, J는 이렇게 말했다.


'강한 힘이야, 강한 힘이라고! 난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았어. 너희는 여기서 인간 황대근의 따까리 노릇이나 할 거냐? 우린 진짜 인간이 될 수 있는 거야! 주체가 될 수 있는 거야!'


그렇게 J는 대근건설에서 영원히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모든 이들이 J를 소화기 부서의 항문팀으로 보내 대근건설에서 퇴출시키라며 입을 모았다.


소화기 부서의 항문팀. 이곳으로 퇴출 된 이들은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얻은 채 대근건설에서 영원히 추방된다.

냄새도 나고 미관 상 보기 좋지 않기도 하지만, 결코 명예로운 퇴출이라고는 할 수 없다.아무리 미친 놈이라 해도 항문을 통해 강제 퇴사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J는 추방되지 않았다.

사내 재판결과에 따르면, 그동안 대근건설에 많은 공헌을 한 J의 행적을 감안했을 때 항문팀으로 퇴출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당연히 이 부당한 결과에 대근건설의 모든 임직원들은 반발을 했지만, J를 항문팀으로 퇴출하지 않는 대신 소화기 부서의 장팀에서 음식물 찌꺼기가 지나간 흔적을 닦는, 장내 미생물들 따위나 하는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나는, 나는 일부가 아니야. 인간 황대근의 일부가 아니라고. 난 그냥 나야. 난..... 나는.... 나는 황대근의 따까리가 아니야! 난 찌꺼기가 아냐! 내가 누군데.....! 내가 누군 줄 알고.....!'


메모리아 부서로 좌천된 J는 혼자서 끝도 없이 중얼거리다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 아니 근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J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대근건설의 대다수 직원들은 J가 죽었다고 믿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며 종종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그 법 있잖아, 사장님하고 임원들이 직접 결정한 법안이래.'

'이름을 황대근으로 하면 안 된다는 법? 왜? 겨우 이름인데?'

'우리가 인간 황대근의 자아를 파괴할까 봐 그런 거지. 그때 그 일 생각 안 나냐? J가 인간 황대근의 모든 과거를 자기 몸 속에 쑤셔 박은 거. 그것 때문에 인간 대근이가 죽을 뻔 했잖아!'

'왜 대근이의 자아를 부수려고 한 거지?'

'부수려고 한 게 아냐. 흡수하려고 한 거지.'

'그러니까, 왜?'

'나도 정확한 건 몰라. 당사자 본인만 알겠지.'


'아! 그러고 보니까 나 저번에 이런 소문을 하나 들었거든? J가 죽고 J의 몸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는 거야!'

'피겠지.'

'피가 아냐! 그걸 본 사람들이 그러는데, 처음 보는 희한한 것이었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도깨비불처럼 생겼대!'

'도...깨비불?'

'그래! 그런데 그게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대. 듣기로는, 그 도깨비불은 J가 흡수했던 대근이의 기억과 추억이라고 하더군."

'그러고 보니 들어본 것 같아. 내가 듣기로는 기억과 추억이 아니라... 뭐라고 하던데?'


'그 사건' 이후로는, 대근건설의 그 누구도 인간 대근이의 기억과 추억이 보관되어 있는 메모리아 부서에 가기를 꺼려했다.

메모리아 부서는 냄새나고 더러운 소화기 부서의 장과 항문팀은 비교도 안 될 더럽고 무서운 부서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인간 대근이의 하루 동안의 기억을 정리하고 보관하고 살펴보는 뇌 부서는 마치 신과 같은 취급을 받는데, 대근이의 기억을 보관하는 메모리아 부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대근건설 식구 여러분! 우리는 인간 황대근의 앞날을 위해 앞으로 쭉 나아가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과거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찬란한 앞날, 미래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과거는 조금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회사의 모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미래의 주인이자 과거의 폭군이다! 바로 이것이 아닙니까?'


일 년에 한 두 번, 사장 헨리가 쏘는 대근건설의 가장 큰 회식날 헨리가 한 말이다.


'그럼 모두 건배합시다!'


헨리가 소주잔을 높이 들어 올리자 대근건설 직원들이 일제히 술잔이 들린 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테니스장)



때는 6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려 태양이 분주하게 예열을 할 때였다.


팡—! 파앙—!


숨이 턱 막히는 땀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늘의 정중앙에 떠 있던 태양이 서쪽으로 조금, 아주 조금 움직였을 때라 테니스장의 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제법 대단했다.


"훈아! 서브 넣을 때 무릎 좀 더 구부려라! 그래야 스프링마냥 튕겨져 나가서 서브가 잘 꽂히지. 안 그냐? 넌 키도 크면서 우째 니 키를 활용을 못하냐! 팍팍! 막 이렇게! 팍팍! 알겠냐?! 애가 힘을 못 써요, 힘을!"


새빨간 챙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남자가 서브 연습에 한창인 김훈에게 소리쳤다.

햇빛에 그을린 탓인지 얼굴이 곰보처럼 변해 이목구비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남자는 늙어 뻣뻣해진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선수 생활을 은퇴한지 제법 지나 둔해진 몸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꽤 괜찮은 시범을 보였다.


"누~가 스핀 서브를 첫 써~브 부터 넣냐고! 첫서브는 플랫으로 그냥 때려버리라 했잖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걍 때리라고!"


남자의 이름은 신용호. H 고등학교의 테니스 동아리를 맡은, 나이가 벌써 곧 6학년을 바라보는 늙은 선생이다.

은퇴하고 편하게 쉬어도 아무도 뭐라 안 할 나이이건만, 신용호는 H고등학교 출신인 자기가 동아리의 감독을 맡아야 한다며 강하게 주장, 아니 생떼를 썼다.


"우리 대근이! 내 새끼! 나의 자랑! 지금처럼만 해라!"


서브를 던지는 족족 정확하게 에이스에만 던지는 황대근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신용호가 말했다.

황대근과 함께 서브와 리시브 연습을 하던 황대근의 친구 천강우는 단 한 개의 서브도 받아내지 못한 채 혀를 내둘렀다.

그 옆에서 지켜보던 백경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문계 학생이면 인문계 학생 답게 공부만 잘하라고. 싸가지 없게 이럼 안 되는 거야."

"이 학교에 돈이 없어서 그렇지, 속도 측정기 가져다 놓으면 분명 시속 200은 찍을 거다."


백경민과 천강우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황대근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파라솔 근처로 걸어갔다.


"내가 잘 하는 게 아니라 너희가 못 받는 거다."


친구의 지나친 겸손함에 짜증이 난 천강우가 소리쳤다.


"야! 아까 나 네 서브 못 받는 거 봤잖아? 내가 리시브 연습을 한 건지 골키퍼 연습을 한 건지 헷갈릴 정도라고! 공이 보이지를 않어! 우리가 못하는 게 아냐!"

"저..... 저기...... 나 가방 좀 가져가도 될까?"


조금 전 신용호에게 대판 깨졌던 김훈이 3인방에게 다가와 소심하게 말을 건넸다.


"그거 내 가방이거든.... 가져가도 될까?"


김훈은 큰 키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비굴한 자세로 3인방에게 정중히, 아니 찌질하게 물었다.

김훈의 키는 2미터가 조금 넘는, 아주 거대한 키다. 테니스 선수로서는 축복받은 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김훈은 황대근처럼 그저 일반 학생에 불과했다.

황대근의 키가 170후반 정도니까 테니스에서는 김훈이 훨씬 유리할 텐데, 김훈은 좀처럼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큼큼!"


가방에 테니스 라켓을 넣은 김훈은 3인방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부리나케 테니스장을 빠져나갔다.


"저 새끼 저럴 때는 무슨 우사인볼트마냥 빠른데, 왜 운동할 때는 굼벵이처럼 구는 거냐? 도움이 전혀 안 되잖아. 완전 민폐라고. 그 키를 그따구로 쓸 거면 날 주지, 난 170도 안 된단 말이야."


천강우의 투덜거림에 황대근과 천강우는 익숙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저벅저벅—


바로 그때 저 멀리서 3인방을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학생, 안익준이 그들에게 걸어왔다.

안익준 또한 테니스 동아리에 가입한 학생이었다.


"신용호가 네 칭찬 많이 하더라. 좋겠어."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안익준이 칭찬인지 뭔지 모를 말을 건네자 황대근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뭐, 그렇지."

"근데 그거 아니, 대근아?"

"......?"

"사람이 실수하는 때는, 바로 안심할 때라는 걸."


여우새끼처럼 의도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말을 남긴 채, 안익준은 라켓을 챙겨 유유히 테니스장을 빠져나갔다.


"저 미친놈 왜 저래? 고까우면 지가 더 열심히 하던가, 지가 못해 놓고 왜 화풀이야?! 개새끼가!"


안익준의 재수 없는 뒤통수에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며 백경민이 소리치자 황대근은 그를 말렸다.


"됐어, 내버려 둬. 한 두 번 저러나. 저 새끼 원래 저 모양이지."

"근데 오늘 저녁은 뭐 나올까? 돈까스? 돈까스였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경양식으로!"


천강우가 기름이 줄줄 흐르는 돈까스를 상상하며 군침을 다시자 백경민이 말했다.


"돈까스는 무슨, 너 뱃살 좀 빼야지?"


천강우는 억울한 표정으로 친절하게도 운동복이 가려준 자신의 살짝 튀어나온 뱃살을 만지작거렸다.


"야, 솔직히 나는 나온 것도 아냐! 나 정도면 그냥 평범한 편이지!


서로 으르렁대는 천강우와 백경민의 어깨를 감싸며 황대근이 말했다.


"그만들 싸우고 우리도 그만 가자! 매점이나 들러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가자. 내가 살게."

"와... 저번에 상금 한 번 탔다고 쏘는 거야?"


천강우가 큰 눈을 빛내며 황대근을 경이로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얼마 전, 황대근은 교내 과학경시대회에서 우승을 해 상금을 탔었던 것이다.


"한동안 양민학살하더니.... 모아둔 게 제법 되시나 봐요?"


백경민이 혀를 내두르자 황대근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뭐, 먹기 싫음 관두든가."

"아니 내가 언제!"






(대근 건설 - 메모리아 부서)



"저.... 왕이사님이 여긴 무슨 일로.....?"


메모리아 부서의 문 앞에 서 있던 여자직원 한 명이 벌벌 떨며 왕근에게 물었다.

분명, 그녀는 메모리아 부서로 발령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초짜 직장인임에 틀림 없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스스로도 모르게 그녀에게 호감을 느낄 정도니까.

검은색이지만 묘하게 보랏빛이 도는 중단발에 빨려들어갈 듯 호수같이 깊은 눈, 적당한 키와 비교적 아담한 체구.

아무래도 왕근 곁에 서 있으니 더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황대근이를 만나러 왔소!"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하얀 셔츠를 입은 왕근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가 입은 셔츠에 간신히 대롱대롱 달려있는 단추들은 마치 살려 달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나 거구의 왕근을 단 둘이서 마주한다면 벌벌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적당한 근육은 매력적이지만, 저게 사람인가 괴물인가 싶은 과한 근육은 거부감을 종종 일으키고는 하니까.


"화.... 황대근이라면....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말인가요.....?"

"그렇소!"

"아.... 아직.... 아직 출근을 안 했는데........"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메모리아 부서를 향해 걸어오는 낯선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왕근과 그녀의 고개가 소리를 따라 움직였고, 그 둘은 곧 그들이 찾는, 아니 왕근이 찾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벌벌 떠는 여자와 과하게 부담스러운 왕근의 대흉근이 출렁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로운 태도와 담담한 목소리로 그들을 상대했다.

신입 특유의 긴장감이나 어색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황대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의말

어쩌다보니 오늘도 하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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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목격자의 기억 (1) 21.09.20 44 1 14쪽
21 트라우마 (3) 21.09.20 43 1 13쪽
20 트라우마 (2) 21.09.19 50 1 13쪽
19 트라우마 (1) 21.09.19 51 1 13쪽
18 행운과 불운 21.09.18 48 1 13쪽
17 근손실 21.09.18 51 1 13쪽
16 그 사건과 그 사건 21.09.17 85 1 13쪽
15 21.09.17 58 1 14쪽
14 꼴랑? 21.09.16 58 1 14쪽
13 3번이냐, 4번이냐? 21.09.16 70 1 12쪽
12 거짓 보도 21.09.15 71 1 13쪽
11 케어와 플루 21.09.15 71 1 13쪽
10 it form bit 21.09.14 85 1 12쪽
9 월급루팡 21.09.14 91 1 14쪽
8 페스트(Past) 21.09.13 108 1 13쪽
7 WBC(White Blood Cell) 21.09.13 138 1 13쪽
6 삭제 21.09.13 172 1 14쪽
5 대회 준비 21.09.13 272 1 14쪽
4 첫 출근 21.09.13 421 1 14쪽
» 황대근과 황대근 21.09.13 871 3 13쪽
2 소문의 신입 21.09.13 2,201 6 8쪽
1 프롤로그 21.09.13 2,514 2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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