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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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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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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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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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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목격자의 기억 (2)

DUMMY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4교시, 담임 김철환의 담당 과목인 수학시간에 2학년 2반 아이들은 두런두런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 가지 주제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바로 체육대회 계주 선수를 누구를 뽑을 것이냐에 관한 주제였다.


"작년에 1학년 때 계주 뛴 사람? 중학생 때도 괜찮고, 초등학생때도 괜찮아! 누구 계주 뛰었던 사람?"


반장 김현이 교탁을 탕탕 치며 소리치자, 제멋대로 떠들어대던 아이들이 모두 그녀를 쳐다보았다.

김철환은 김현에게 알아서 정하라 말하고는 급한 일이 있다며 교실을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황대근은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급한 일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가는 것이라고.


"천강우! 너 중학교 때 계주 뛰었었지? 이번에 나가라."


김현과 천강우는 같은 Y중학교 출신이었다. 그 둘은 신기하게도 중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을 했었다. 서로에 관해 모르고 싶어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황대근 역시 Y중학교 출신이었지만,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Y중학교로 전학을 온 터라 김현과 친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내가? 나 늙어서 이제 잘 못 뛰어."


천강우의 어이없는 발언에 김현은 들은체도 하지 않고 칠판에 그의 이름을 적었다.

그러자 천강우는 그녀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듯 툴툴거렸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그의 광대가 천강우의 본심을 대변했다.


'강우가 잘 뛰기는 하지. 힘은 약해도, 지구력은 좋으니까. 저 녀석이 나가면 잘 할 거야.'


황대근은 중학생 시절, 천강우와 함께 테니스를 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근력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천강우는 황대근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지구력과 관련해서는 천강우의 실력도 제법 뛰어났던 것이다.


"나도 나갈래!"


박정우가 갑작스레 소리치자 2학년 2반 아이들은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김현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네가? 잘 뛸 수 있겠어?"


보편적으로는, 대한민국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있어서 체육시간이라는 것은 최고의 시간이나 다름 없다.

답답하고 갑갑한 교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으며, 몸 속에서 펄펄 끓어대는 피와 호르몬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고, 상쾌하게 땀을 흘릴 수 있는 시간이니까.


더구나 내년이면 고3이다. 고3에게는 체육시간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고3의 현실을 되새기자, 그 누구보다도 체육시간을 좋아하는 황대근은 벌써 내년이 오는 것이 두려워졌다.


"넌 체육시간마다 벤치에 앉아있지 않았냐?"


김현의 말대로 박정우는 체육시간에 딱히 적극적인 학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아이들이 박정우를 소외시켰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박정우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그들의 무리에 끼지 않았을 뿐이다.


'못하든 잘하든 상관없으니까 같이 하자고 해도 늘 거절했지.'


황대근 역시 박정우에게 몇 번이고 함께 하자고 제안했으나, 박정우는 늘 거절했다.

그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그에게 다가오는 기회란 기회는 모조리 없애버렸다.

그런 그가 갑자기 계주 선수로 나가겠다고 주장하니, 김현도 황대근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아니야, 김현! 나 할 수 있어! 넌 나 뛰는 것도 본 적 없잖아?"

"내 말이 그거야. 본 적이 없으니까 안 된다는 거야. 천강우는 내가 봤어. 그러니까 괜찮지만 넌 안 돼."

"잠깐만."


박정우의 뒷편에 앉아있던 안익준이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리더니 반장에게 말했다.


"금방 점심시간이잖아. 한 번 시합을 해 봐."


안익준의 제안에 김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합?"

"그래. 네가 계주 나가고 싶은 사람 손 들으라고 해서 정말 들 애들이 몇이나 되겠어? 속으로는 하고 싶은 데 소심해서 말 못하는 애들도 있을 것 아냐."

"그런가?"

"금방 4교시 끝나.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 시합하고, 남자애들은 남자애들끼리 시합해서 계주를 정하면 되잖아. 뛰는거 뭐,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고."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4교시가 끝나자마자 2학년 2반 학생들 중 대다수는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배고픈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분 뒤면 운동장은 곧 배가 부른 학생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 전에 빨리 계주 선수를 정해야 했다.

여학생들의 계주 선수 뽑기용 시합이 끝나고, 김현은 선수 명단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그럼 여자애들은 이렇게 2명이 나가면 되는 거지? 이제 너희만 정하면 끝이야! 결승전은 황대근하고 천강우, 안익준하고 박정우 이렇게 4명만 하면 돼!"


황대근이 결승전까지 올라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박정우의 둥그런 앞머리가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을 즈음, 황대근의 땀구멍에서는 1g의 땀도 흐르지 않았으니까.

그만큼 황대근은 아주 가볍게 뛴 것인데, 2학년 2반의 남학생들 중 그 누구도 황대근을 쉽게 따라잡지 못했다.

남들보다 훨씬 긴 다리와 길고 탄력있는 종아리. 그의 체형은 달리기에 최적화된 축복받은 체형이다.


"자 그럼... 정확하게 1분만 휴식했다가 뛰는 거다? 너희 4명 중에서 2명만 뽑을 거야. 최선을 다해서 뛰어."


황대근과 나머지 3명은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황대근의 오른쪽에는 천강우가, 왼쪽에는 박정우가 있었다. 박정우의 왼쪽에는 안익준이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김현은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


"좋아, 준비 됐지? 3..... 2...... 1.....! 출발!"






(대근건설 - 뇌부서 - 뇌파추적팀)



점심시간, 백혈구 모양 감자칩으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 주혁은 뇌부서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번에 마셨던 뇌부서만의 전매특허 커피인 분홍색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입맛이 뚝 떨어졌던 것이다.

다시는 분홍색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수백번을 다짐했을 때 쯤, 그는 뇌파추적팀에 도착했다.


분홍색 가운을 입은 뇌파추적팀 직원들은 주혁이 오자 90도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비록 주혁은 심장부서 출신이었지만, 7이사들 중 강도윤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는 이사였다.

그러니 직원들이 주혁에게 깍듯하게 구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릴리팀장 어디 있나?"


주혁의 말에 뇌파추적팀 직원들 중 한 명이 부리나케 달려나와 릴리가 있는 곳으로 그를 안내했다.

릴리는 직원 휴게실 소파에 기대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주혁이 보기에 그녀는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자신만의 생각에 빠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릴리팀장."


릴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썹을 까딱 했을 뿐이다.

감히 이사가 눈 앞에 있는데 일어서지도 않는, 깡다구인지 싸가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그녀의 행동을 보며 주혁은 속으로 웃었다.


'역시, 뇌부서의 아웃사이더답군.'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면서 주혁은 그녀에게 말했다.


"릴리팀장, 저번주부터 바로 어제까지의 뇌파 자료를 주게. 수면시 뇌파 자료와 안정시 뇌파 자료도 포함해서 말이야."


'뇌파 자료'라는 말이 나오자 그녀는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떴다.


"그건 왜 달라고 하시는 건가요? 아무리 주이사님이라 해도, 함부로 저희 측 자료를 넘겨드릴 수는 없습니다."


주혁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이성적으로 마음에 들었다는 게 아니라, 대근건설에서 일어난 이 수수께끼같은 일들을 함께 풀어갈만한 동료로서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이 여자는 믿을 수 있는 존재다. 강도윤처럼 떠벌리고 다니지도 않고, 브레인처럼 멍청하고 권력만 좆는 그런 타입도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의 의무에 책임을 다하는 존재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주혁은 그녀가 앉은 소파 앞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


"황대근 알지? 메모리아 부서놈."


빙 둘러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포인트만 짚어 말하는 주혁의 눈을 보며 릴리가 대답했다.


"당연히 알지요."

"얼마전에 드림팀에서 나왔다는 사라진 기억에 관련된 자료 말이야,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릴리는 아주 미세하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약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주혁은 그 미세한 떨림을 보더니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무의식에 있던 기억을 분명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사라진 기억에 관련된 자료들이 자꾸만 튀어나오고 있다."


간이 의자앞에 있는 탁자 위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집으며 주혁이 말을 이었다.


"사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다시 튀어나오는 건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야. 원래 인간이라는 존재는 특정 기억을 지웠다고 생각해도, 진짜로 그 기억을 지우지는 못하거든. 그저 머릿속 깊은 심연 속에 묻어놓을 뿐이지. 쉽게 찾아내지 못하도록."


릴리는 주혁이 쥐고 있는 오렌지 주스를 노려만 보고 있었다.


"며칠 전 인간 황대근은 또 꿈을 꾸었지. 그가 겪은 '그 사건'과 관련된 꿈이었어. 이번에는 좀 특이하게도 담배 냄새가 났다고 하더군."

"담배 냄새는 '그 사건'의 범인이 피우는 담배예요. 범인의 얼굴은 기억 못해도, 담배 냄새는 기억하더군요."

"나는 헨리가 의심스러워."


주혁의 말에 릴리는 순간 몸을 움츠렸다.

함부로 사장에 관한 이야기를, 그것도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이다.

릴리는 주혁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에 대해 속으로 고민했다.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주혁은 목소리를 한 껏 낮추며 말했다.


"메모리아 부서의 황대근은 헨리가 데려온 놈이야. 일명 찢어진 낙하산이지. 보통 낙하산들은 뇌부서로 들어오지, 메모리아 부서로는 가지 않으니까 말이야."


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는 말이야, 헨리가 황대근을 이용해 무슨 일을 저지르려는 건 아닐까 싶어. 예를 들면 과거 대근건설에 있었던 '그 사건'같은 짓 말이지."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신가요?"


주혁은 씨익 웃었다.


"메모리아 부서 황대근이 인간 황대근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의심스러워. 분명 메모리아 부서의 황대근에게는 무언가가 있어.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사장님은... 왜 의심하는 거죠?"

"헨리가 지금까지 죽인 놈들을 생각해봐. 트래디션, 트라우마. 이 둘은 인간 황대근의 무의식과 관련이 깊은 놈들이었어. 그런데 최근에 일어난 일들과 살해당한 둘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의심이 가지 않아?"


그의 말에 릴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하지만... 트래디션은 흑사병을 퍼뜨린 죄로 죽은 거예요. 그리고 트라우마는 페로가 죽인 거고요."

"자넨 그걸 믿나?"

"네?"

"헨리가 지어낸 말들을 믿느냔 말이야? TK방송국에서 하는 말들이 모두 사실일 것 같아?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건 아니고? 텔레비전을 통해서 나오는 말들은 믿으면 안 돼. 그 중 분명 진실도 섞여있겠지만, 대부분은 거짓이 섞인 진실일 뿐이니까."


릴리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제가 최근에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무슨 이야기?"

"위장팀에서 수상한 자료하나가 발견되었다고 했어요. 드림팀 자료인데.... 문제는 지금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죠."






(대근건설 - 호흡기부서 - 폐팀)



일을 안 해도 한달에 500만셀씩 용돈을 받으며, 신입 주제에 억대 연봉을 받는 황대근은 언제나처럼 여유롭게 회사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 황대근처럼 여유롭게, 또 느긋하게 회사를 날로 먹는 직장인이 몇이나 될까?


"여긴 처음 와 봐요."


옆에서 적혈구 라떼(딸기맛이다)를 홀짝이던 혜윰이 말했다.


"폐팀 직원들은 특이하게 생겼다고 하던데, 진짜인가 봐요."


그녀의 말대로 폐팀 직원들의 외모는 매우 특이했다.

그들은 모두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거대한 포도알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여긴 무슨 근골격부서 같네요. 다들 열심히 운동하고 있어요."


근골격부서와 이곳이 다른 점은 단 한가지다.

바로 근골격부서 직원들은 모두 웃으며 운동(?)을 하지만 이곳 폐팀 직원들은 모두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같은 표정을 지으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폐팀 직원들은 보통 폐포라고 부르는데, 혜윰은 폐포들 중 유독 힘들어보이는 한 직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 저분... 회사가 얼마나 빡시게 굴렸으면 머리 정수리가 텅 비었을까요? 아무래도 제가 만든 탈모약을 드려야겠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대근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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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 직원 21.09.24 37 1 13쪽
29 미미(美味)! 21.09.24 40 1 13쪽
28 체육대회 21.09.23 40 1 13쪽
27 하체의 꽃은 스쿼트 21.09.23 44 1 12쪽
26 목격자의 진술 21.09.22 46 1 13쪽
25 목격자의 기억 (4) 21.09.22 39 1 13쪽
24 목격자의 기억 (3) 21.09.21 44 1 12쪽
» 목격자의 기억 (2) 21.09.21 42 1 13쪽
22 목격자의 기억 (1) 21.09.20 44 1 14쪽
21 트라우마 (3) 21.09.20 43 1 13쪽
20 트라우마 (2) 21.09.19 50 1 13쪽
19 트라우마 (1) 21.09.19 51 1 13쪽
18 행운과 불운 21.09.18 48 1 13쪽
17 근손실 21.09.18 51 1 13쪽
16 그 사건과 그 사건 21.09.17 85 1 13쪽
15 21.09.17 58 1 14쪽
14 꼴랑? 21.09.16 58 1 14쪽
13 3번이냐, 4번이냐? 21.09.16 70 1 12쪽
12 거짓 보도 21.09.15 71 1 13쪽
11 케어와 플루 21.09.15 71 1 13쪽
10 it form bit 21.09.14 85 1 12쪽
9 월급루팡 21.09.14 91 1 14쪽
8 페스트(Past) 21.09.13 108 1 13쪽
7 WBC(White Blood Cell) 21.09.13 138 1 13쪽
6 삭제 21.09.13 172 1 14쪽
5 대회 준비 21.09.13 272 1 14쪽
4 첫 출근 21.09.13 421 1 14쪽
3 황대근과 황대근 21.09.13 870 3 13쪽
2 소문의 신입 21.09.13 2,201 6 8쪽
1 프롤로그 21.09.13 2,514 2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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