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242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09.14 18:35
조회
84
추천
1
글자
12쪽

it form bit

DUMMY

대근이, 7살이 된 기념으로 삼촌이 재미있는 얘기하나 해 줄까?

대근건설에는 총 일곱 명의 이사들이 있단다. 이건 알고 있지?


대근이가 지적한 대로 부서는 8개인데 이사는 7명밖에 없지. 왜일까?

마지막 8번째 부서인 메모리아 부서는 존재하지 않는 부서 취급을 당하고 있거든.

현재 대근건설의 7이사들이 '그 사건'이 일어난 후 메모리아 부서를 완전히 매도해 버렸어.

사실 부정부패로 따지면 뇌 부서나 심장 부서가 더 심한데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 사건'의 원인은 메모리아부서도 아니었어. 뇌 부서출신의 J였지.

그런데 왜 굳이 메모리아부서를 매도해야 했을까?

이유는 간단했어. 너무 간단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지. 바로 쓸모없다는 것이 이유였어.

이미 지나간 과거를 굳이 보관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야.

메모리아 부서에 인간 대근이의 기억과 추억을 보관하지 않아도, 뇌 부서에 자료가 있으니 상관없다는 논리였어.


허나 이 논리에는 오류가 하나 있어. 바로 메모리아 부서를 거치지 않는다면 뇌 부서에 대근이의 추억에 관련된 자료가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


하지만 아무리 메모리아부서가 항의를 해도 소용없었어.

우리 미생물들도 열심히 메모리아 부서의 시위에 동참했지만... 소용없었지.


응? 왜 도와줬느냐고? 그야 메모리아부서는 우리 미생물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해줬거든. 우월감에 휩싸여 마치 아랫것들을 굽어보듯이 대하는 친절이 아닌,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이 담긴 친절이었어.


.....미생물들이 차별받는 이유?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7개 부서, 그 중에서도 뇌부서는 우리 미생물들이 하는 일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 우리가 하는 건 뭐든지 쓸데없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뇌부서에서는 우리 미생물들의 쥐꼬리만한 월급을 반토막 내고, 비정규직으로 돌려버렸지 아니, 일용직으로.

아주 못됐어. 가진 놈들이 더하다니까.


이런, 이야기가 조금 샜네. 어쨌든 뇌 부서의 위상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거야. 지금도 마찬가지고.

뇌부서는 자기들이 대근건설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생각하거든. 우린 인간 황대근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가끔 그 녀석들은 자기들이 인간 황대근인 줄 착각하고 사는 것 같아.


아무튼, 우리 미생물들과 메모리아부서가 항의를 하고 시위를 해서 이사회의가 열리게 되었지.

메모리아부서와 미생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느냐가 바로 회의 주제였어.


결과가 어땠느냐고? 메모리아부서 직원 90퍼센트 해고, 그리고 월급은 원래 받던 것의 절반의 절반만 받는 걸로 합의를 보았지.

원래 뇌부서 출신 이사인 강도윤은 처음부터 메모리아부서를 없애버리자고 강력하게 제안했어.

이사들이 강도윤의 의견에 반발하자, 7이사들 중에서도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던 강도윤은 이렇게 말했지.


"오호, 그러십니까? 그럼 나머지 이사님들이 받는 월급의 절반을 떼어 메모리아부서에 보너스로 줘야겠군요! 뇌부서를 제외한 나머지 6개 부서 직원들의 월급까지 포함해서요! 제가 못할 것 같습니까? 예?!"


넌 상상도 못할 거야. 그때의 강도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아, 물론 좋은 의미로 대단하다고 한 건 아냐.

뭐... 결국 메모리아부서는 대대적 인원 감축이 들어갔고... 실업자는 어마무시하게 쏟아져 나왔지.

회사에서 잘린 메모리아부서 출신 직원들은 대근건설에 항의했지만,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어. 오히려 항의했던 직원들이 욕을 먹었지.


왜냐하면, 7이사들은 그날 열린 회의에서 이런 결정도 내렸거든.


"메모리아부서에서 흑사병, 즉 페스트(past)를 퍼뜨렸다고 합시다. 그렇게 메모리아부서에 책임을 전가하면, 실업자들이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우리에겐 아무 영향도 없을 겁니다. 다른 대근건설 직원들은 분명 그 실업자들을 욕할 테니까요. 아! 그리고 미생물들도 그들이 흑사병을 퍼뜨리는 것에 동참했다고 합시다! 미생물 놈들 수가 워낙 많아서, 혹시라도 그 놈들이 들고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골치 아파질 테니까요."


7이사들은 결국, 메모리아 부서와 미생물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거야.

우린 억울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지.






(대근건설 - 메모리아 부서)



[it from bit]


메모리아 부서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문구다.

이 문구는 벽에 걸려 있었는데, 혜윰에게 듣기로는 트래디션이 걸어놓은 문구라고 한다.

혜윰에 의하면 이 문구의 뜻은 '존재는 정보로부터 왔다'라는 뜻이라 한다.

메모리아 부서의 상징과도 같은 문구다.


"부장님이 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요?"


한바탕 회식이 끝나고, 부서에 황대근과 단 둘이 남아 화려했던 회식의 흔적을 치우던 혜윰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 분은 메모리아부서의 화석이나 다름 없는 분이세요. 메모리아부서 지박령이라는 별명도 있으시죠. 참 좋은 분이신데, 어디로 가신건지..."


황대근은 칭찬인지 아니면 칭찬을 빙자한 욕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혜윰의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혜윰의 말대로라면 트래디션은 사무실에서 잘 나가지 않는 일벌레나 다름없다. 그런 존재가 아까 점심때부터 지금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고 황대근은 생각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일까?


'7이사..... 혹시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똑똑—


황대근과 혜윰이 회식의 흔적을 거의 치웠을 때쯤, 누군가 메모리아 부서로 찾아왔다.

이 늦은 시각에 대체 누구일까?


"WBC 대장 케어입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대근건설 - 메모리아 부서)



탁—


"드릴 게 이것 밖에 없습니다."


황대근은 스틱 커피 하나를 컵에 타 케어에게 건넸다.

그러자 케어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괜찮습니다. 딱히 대접 받으러 온 건 아니니까요."

"퇴근도 안 하시고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혜윰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손에 든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케어가 말했다.


"WBC는 퇴근이란 게 없습니다. 24시간 내내 돌아가지요. 저희 백혈구들과 조혈모세포들이 일을 멈추면 인간 황대근에게 피해가 갈 테니까요. 저희 WBC는 언제나 대기 상태입니다. 언제라도 호출하면 달려갑니다."


굉장한 직업정신이다.

24시간 내내 일을 한다니, 물론 교대근무를 하겠지만, 그래도 빡빡한 일정임에는 틀림 없다.


"메모리아부서에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케어는 낮에 있었던 안구팀 관련 사건을 황대근과 혜윰에게 들려주었다.

안구팀의 컴퓨터 전원이 꺼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황대근은, 낮에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냈다.

뭔가 의문스럽고 찜찜했지만, 황대근은 별 것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머리 속 저 편으로 그 기억을 던져버렸다.


"죽거나 질병이 아닌 이상, 안구팀 컴퓨터 전원이 꺼질 리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곳에 와 본 겁니다.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하고요."

"디톡스가 이곳에 왔었습니다."


황대근의 입에서 디톡스라는 단어가 나오자 케어는 얼굴을 찡그렸다.


"방금 디톡스라고 하셨습니까?"

"네. 그들이 이곳에 와서 메모리아 부서의 자료 절반을 가져가더군요. 혜윰씨가 말하기로는 디톡스는 대근건설의 청소부라고 하더군요. 필요 없는 것들을 치워주는."

"그들은 사장의 개입니다."


사장의 개? 황대근은 의문이 들었다.

대근 건설의 사장이라는 자가 뭐 하러 청소부를 자신의 충견으로 만들겠는가? 무슨 이득을 본다고?


"개라니요?"

"말 그대로 사장의 개라는 소립니다. 하, 그나저나... 이거 큰일 났군요. 디톡스가 편법을 저질렀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메모리아 부서의 자료는 '그 사건'이후 디톡스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법이 제정이 되었습니다."

"그럼 디톡스가 불법을?"

"간단히 생각하면 법을 어겼으니 불법이기는 한데, 따지고 들면 불법이 아닌 셈이랄까요."

"계속 말씀해주세요!"


이제 혜윰은 몰래 숨겨두었던 팝콘까지 가져와 먹고 있었다.

분명 아까 회식 때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혜윰은 복스럽게 잘 먹었다.

저리 먹는데 살도 안찌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


"대근건설 회사법에 따르면 '디톡스는 메모리아 부서의 자료에 대한 권한이 없다'라고 되어있는데, 그 밑에 아주 작게 적혀있는 추가 조항이 있습니다. 바로 '단, 예외의 경우는 제외한다. 예를 들어 사장의 권한으로 대근건설의 발전에 필요없다고 생각되거나 대근건설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판단되는 자료가 있을 경우...'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따지면 디톡스의 행위는 편법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진다.

애초에 법망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을 친절하게 마련해 둔 셈이니까.


"메모리아 부서에 보관된 자료는, 인간 황대근의 기억과 추억이 담겨있는 자료입니다. 그건 현재 18살의 인간 황대근을 만든 뿌리나 다름 없습니다. 뿌리가 흔들리면, 모든 게 흔들리는 법이죠. 인간은 과거에 집착하거나 매달려서는 안 되지만, 과거라는 토양에 추억과 기억이라는 뿌리를 튼튼히 내려야 자아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맞는 말이다.

현재의 나 자신은, 과거의 나와 1분 전의 내가 모여 만들어진 정보의 집합체이다.

그 뿌리 깊고 역사 깊은 정보의 일부가 훼손된다면 현재 인간 황대근을 이루는 근간이 흔들릴 위험도 존재한다.


"이고(EGO)를 찾아야 합니다."


케어가 혜윰이 탁자에 놓은 팝콘을 씹으며 말했다.


"범인은 분명 이고를 노릴 겁니다. 범인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이 인간 황대근이라면, 이고를 지켜야 합니다. 만약 범인이 이고마저 건드린다면... 그땐 대근건설도 위험해집니다."


범인이 원하는 게 대체 무엇일까? 황대근은 생각했다.

범인도 분명 이곳 대근건설의 일부임이 틀림없을 텐데, 뭐 하러 자멸하는 길을 택하는 것일까?


"저희도 도울게요!"


마침내 마지막 남은 팝콘까지 입에 모두 털어 넣은 혜윰이 또 다른 캐러멜 팝콘 봉지를 꺼내며 소리쳤다.

저 정도 먹었으면 이젠 물릴 때도 되었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황대근은 생각했다.


"그렇죠 대근씨?"


대근건설에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황대근은 판단했다.

그리고 그 일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황대근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래야죠."


편하게 돈 많은 백수인 채로 살고 싶었는데, 어째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대근건설 - 디톡스)



황대근과 혜윰이 바라보고 있는 이 건물은 대근건설의 청소부들, 즉 디톡스 직원들이 일하는 건물이다.

황대근은 노란색과 라임색으로 뒤덮인 옆으로 길쭉한 건물을 보며 건물이 참 맛있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옆에 있던 혜윰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입맛을 다시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케어 대장님은 무슨 생각으로 우릴 여기로 보낸 걸까요?"


혜윰이 말했다.


"디톡스 건물에 메모리아부서 직원이 들어가도 되나요? 안 되는 거 아니었나요?"


혜윰의 말대로 메모리아부서 직원은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 한 둘이 아니다.

왕근이 황대근에게 보인 파격적인 행보 역시 예외적인 것이었으니까.


"아니 뭐, 도난 당한 자료를 찾아오라는 건 좋다 이거죠. 그런데 우리가 여길 어떻게 들어가느냐고요?"


케어는 메모리아부서를 나오면서 자신은 이고를 찾아볼 테니, 둘은 디톡스로 가서 도난 당한 자료를 찾아오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어째,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작전을 둘이 맡게 된 것 같다.


"우선 옷을 입어야 합니다."


황대근의 말에 혜윰은 눈썹을 까딱했다.


"네? 이미 입고 있잖아요?"

"아뇨, 디톡스 직원의 옷을 빼앗아 입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빼앗느냐는 건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면 간단하죠~"


순간 황대근은 혜윰이 무서워졌다.


"아뇨, 죽일 필요까지는 없고... 그냥 잠시 기절만 시키면 될 겁니다."


작가의말

오늘 역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그 직원 21.09.24 37 1 13쪽
29 미미(美味)! 21.09.24 40 1 13쪽
28 체육대회 21.09.23 40 1 13쪽
27 하체의 꽃은 스쿼트 21.09.23 44 1 12쪽
26 목격자의 진술 21.09.22 45 1 13쪽
25 목격자의 기억 (4) 21.09.22 39 1 13쪽
24 목격자의 기억 (3) 21.09.21 43 1 12쪽
23 목격자의 기억 (2) 21.09.21 41 1 13쪽
22 목격자의 기억 (1) 21.09.20 44 1 14쪽
21 트라우마 (3) 21.09.20 43 1 13쪽
20 트라우마 (2) 21.09.19 50 1 13쪽
19 트라우마 (1) 21.09.19 50 1 13쪽
18 행운과 불운 21.09.18 48 1 13쪽
17 근손실 21.09.18 51 1 13쪽
16 그 사건과 그 사건 21.09.17 85 1 13쪽
15 21.09.17 58 1 14쪽
14 꼴랑? 21.09.16 58 1 14쪽
13 3번이냐, 4번이냐? 21.09.16 70 1 12쪽
12 거짓 보도 21.09.15 71 1 13쪽
11 케어와 플루 21.09.15 71 1 13쪽
» it form bit 21.09.14 85 1 12쪽
9 월급루팡 21.09.14 90 1 14쪽
8 페스트(Past) 21.09.13 106 1 13쪽
7 WBC(White Blood Cell) 21.09.13 136 1 13쪽
6 삭제 21.09.13 170 1 14쪽
5 대회 준비 21.09.13 271 1 14쪽
4 첫 출근 21.09.13 420 1 14쪽
3 황대근과 황대근 21.09.13 869 3 13쪽
2 소문의 신입 21.09.13 2,200 6 8쪽
1 프롤로그 21.09.13 2,513 21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