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283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09.21 18:35
조회
43
추천
1
글자
12쪽

목격자의 기억 (3)

DUMMY

(대근건설 - TK법원)



"트라우마는 인간 황대근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트라우마가 페로에게 살해 위협을 가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대근건설은 솔직히 말이 회사지, 사실 하나의 국가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대근건설 안에 법원 하나 있다고 이상할 것은 없다.


"피고인 페로는 대근건설을 위해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여기 있는 대근건설 식구 여러분들 모두 잘 알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기피하는 디톡스는, 귀찮은 잡일과 쓰레기 제거, 그리고 노폐물 제거에 힘쓰는 훌륭한 집단입니다. 이런 이들이 어떻게 악의적으로 누군가를 살해할 수 있겠습니까?"


피고인석에 우중충한 얼굴로 앉아있는 페로의 옆에는 그의 변호사가 열심히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가운데 정 중앙 높은 의자에 앉아 모든 것을 내려다 보는 재판장은 변호사의 말이 전부 진리라는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희 대근건설은 오직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최우선으로 삼으며 살아갑니다. 바로 인간 황대근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포(for) 대근!"

"포 대근!"


변호사의 말에 재판장과 배심원들은 '포 대근'을 외치며 주먹을 쥔 오른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재판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페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일 터다.


"그러니 존경하는 재판장님, 인간 황대근을 위해 위험을 무릎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결국 페로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개죽음을 당한 트라우마는 한순간에 정신이 나간 미친 놈 취급을 받게 되었고, 페로는 대근건설을 구한 영웅으로 추켜 올려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브레인은 페로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얼굴을 구겼다.


"우리가 인간을 지킨다—♪ 우리가 인간을 돕는다—♪ 우리는 인간의 멘탈을 지킨다—♪ 무너지지 않게 지킨다—♪"


재판이 끝나고 법원에 있던 모든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근건설의 주제곡인 포(for) 대근을 합창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우리가 있다는 걸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한다—♪ 열심히 일한다—♪

퇴근도 못하고 하루 종일 일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간을 지킨다—♪ 지킨다—♪

우리는—♪ 대근이 몸 속에 있는 멋진 일꾼들—♪


큰 목소리로, 하지만 음정과 박자는 완전히 무시하며 노래를 부르는 강도윤의 옆에는 소화기 부서 출신 이사인 백설하가 서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강도윤이 말했다.


"정말 페로가 죽인 걸까요? 제 생각에는 메모리아부서 직원들 중 한 놈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 페로는 메모리아놈들이 뿌린 흑사병 때문에 변을 당한 게 분명합니다. 그나저나 트라우마가 죽었으니, 이젠 뇌부서도 좀 잠잠해지겠지요? 최근에 자꾸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했는데, 역시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합창이 끝난 후, 법원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법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며 백설하가 말했다.


"트라우마는 극복을 하는 것이지, 물감 지우듯 지워지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전쟁에 나갔던 병사들이 PTSD를 괜히 겪겠어요? 이번 건은 페로가 실수한 거라구요."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강도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페로가 실수했다고요? 페로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디톡스가 사장님의 충직한 개라는 걸 모르는 직원들도 있나요?"


모를 리가 없다. 강도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만, 설령 페로가 트라우마를 죽인 범인이 맞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습니다. 트라우마는 어차피 죽어야 하는 존재였어요. 살아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죠."


입술을 쭉 내밀며 퉁퉁이처럼 말하는 강도윤을 보며 백설하가 말했다.


"과연 그럴까요? 트라우마가 살해되고 나서 위장팀에서 뇌부서출처로 보이는 수상한 자료 하나가 발견이 되었는데도요? 이래도 트라우마의 죽음이 합당하다고 생각해요?"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 직원 휴게실)



점심시간, 황대근은 위장팀에 갔을 때 주웠던 자료를 휴게실에 있는 텔레비전에 연결해보기로 결정했다.


"이상한 장면 나오는 건 아니겠죠?"


옆에 앉아있던 혜윰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무서운 거라든가, 아니면...."

"별 거 아닐 겁니다. 그냥 가볍게 보자고요."


띡—


자료를 재생 시키고 몇 초 뒤, 황대근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나오는 장면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면 속의 장면은, 황대근이 저번에 꾸었던 꿈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는 화면에 두 눈을 고정한 채 혜윰에게 물었다.


"혜윰씨, 최근에 안구팀에서 무슨 특별한 자료 보내주지 않았습니까?"


그녀 역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안구팀에서 사진 자료 하나를 보내주시기는 했어요."

"무슨 사진이었습니까?"

"녹슨 자전거 사진이었어요. 대근이가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아파트 근처 자전거 보관소에 있던 낡은 자전거들을 무심코 쳐다봤는데, 그 중 유독 녹이 슨 자전거가 있었나봐요."

"황대근의 반응은요? 어땠습니까?"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고 그랬어요. 미세하지만, 떨림의 강도는 제법 강했다고 했어요."

"다른 건 없습니까?"

"동공이 떨리는 동시에 대근이 심장 박동수가 130까지 올라갔다고 했어요."






(대근 건설 - 제 1건물 브레인 - 사장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사장실로 간 브레인은 헨리가 없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사장실 중앙에 놓여있던 소파에 편하게 몸을 기대며 쉐도우에게 물었다.


"사장님 어디가셨습니까? 왜 안보이시지?"


브레인에게 등을 돌린 채 창밖을 바라보던 쉐도우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어디 가셨습니다."

"뭐, 어딜 가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저번에 사장님 봤을 때는 변비 걸린 것처럼 인상이 아주 날카로웠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또 원래 대로 돌아오셨어요. 인상이 다시 부드러워지셨다, 이겁니다. 요즘 갱년기신가?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군."


불필요한 말을 너무 많이 내뱉었다고 생각했는지, 브레인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했다.


"큼, 큼! 그나저나... 사장님께서 날 왜 부르신 거지? 자네는 알고 있나, 쉐도우?"


똑똑똑—


누군가 사장실 문을 두들겼다. 곧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사장님.....? 어라? 안 계시네?"


페로였다.

페로가 왔다는 것을 인지한 쉐도우는 이제는 창밖을 향해 등을 보이며 페로와 브레인에게 말했다.


"사장님께서 두 분께 시키실 일이 있다고 합니다."


쉐도우의 말에 브레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당신이 우리한테 명령하는 겁니까? 일개 비서주제에?"


말을 마치자마자 브레인은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쉐도우의 눈빛이, 바로 얼마 전 헨리로부터 느낄 수 있었던 바로 그 차갑고 냉랭한 눈빛과 흡사했던 것이다.

그 눈빛을 볼 때마다 브레인은 자신의 몸 속에 있는 혈관이 모두 얼어붙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 계속 말 해보시죠, 비서님."


브레인이 꼬리를 내리자 쉐도우는 말을 이었다.


"이고를 찾으십시오."


쉐도우의 말이 끝나자 브레인과 페로는 서로의 얼빠진 얼굴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멍청한 얼굴에서 가장 빨리 벗어난 페로가 말했다.


"자, 잠깐! 이고를 찾으라고요? 이고를 죽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죽이는 게 아니라 찾는 겁니까?"


쉐도우가 대답했다.


"사장님께서는 분명 이고를 죽이라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최근에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리고 미래를 생각했을 때 이고가 있어야 뇌부서의 힘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사장님께서는 판단하셨습니다. 만약 이고를 죽인다면, 대근건설은 위태로워 질 수 있습니다."


그러자 브레인과 페로는 여전히 멍청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페로가 말했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트라우마를 죽인 것처럼 꾸며졌는데 말입죠. 제가 죽인 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메모리아놈들이 가끔 절 보며 비난의 눈길을 보내고는 하거든요? 어쨌든 전 아닙니다. 물론 뭐... 그때 드림팀에서 트라우마를 본 건 사실이지만요. 그리고..."


끊임없이 주절주절대는 페로의 말을 끊으며 브레인이 말했다.


"자네는 그게 문제야. 말이 너무 많은 것 말이야. 나처럼 점잖고, 어? 또 온유하고 유순하고 그래야지. 나처럼 일을 조용히 처리하란 말이야."


두 남자의 헛소리들을 들으며, 쉐도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 놈이나 저 놈이나 도긴개긴이다.'


하지만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은 채 그가 말했다.


"이미 트라우마는 대근건설의 적이 되었습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페로. 모든 것은 다 잘 될 겁니다."






(대근건설 - 메모리아 부서 - 직원 휴게실)



오후 2시, 점심을 먹고 한창 나른할 시간이었다. 황대근은 몸이 찌뿌둥한지 직원 휴게실로 걸어갔다.


털썩—


"으악!"


황대근이 소파에 앉자마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앉아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소파에는 혜윰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누워있었다.

황대근은 혜윰의 가는 허리를 깔아 뭉개버린 것이다.

혜윰은 황대근에게 눌려 짜부러진 자신의 허리를 매만지며 울먹였다.


"아이고, 아파라! 그동안 저한테 쌓인 게 많았나봐요... 흑!"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울상 짓는 혜윰에게 황대근이 말했다.


"미안해요 혜윰씨.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급하게 앉느라 못 봤어요."

"여긴 갑자기 왜 온 거예요? 여기서 뭐 해요?"


그 질문이야말로 황대근이 혜윰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혜윰씨야말로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자세히 보니, 소파 앞 탁자에는 이상하고 수상한 액체가 들은 약병들과 삼각 프라스크, 그리고 알코올 램프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황대근은 가뜩이나 깐깐하고 쓸데없이 깔끔을 떠는 컨트롤이 이 광경을 보게 된다면 뭐라고 할까 궁금해졌다.


"뭘 만들고 있었던 겁니까?"


황대근이 추궁하자 혜윰이 대답했다.


"저번에 컨트롤부장님이 마셨던 탈모약 말이에요. 아무래도 부작용이 조금 있는 것 같아서요."


조금? 부작용이 조금이라고? 황대근은 의문스러웠다.

의도치 않게 탈모약을 먹게 된 컨트롤은 약을 마신 그 다음날 까지도 역동적이고 괴랄맞은 장운동이 멈추질 않아 이틀 사이에 몸무게가 3키로그램이나 빠졌다고 한다.

더 이상한 점은, 컨트롤이 입은 정장 사이로 몸에 난 털들이 삐죽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러다가는 털들이 컨트롤의 온 몸을 덮을 것 같을 정도로 그의 몸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텅 비어있었던 컨트롤의 정수리에는 머리가 자라나 있었다.


'지금 컨트롤이 없어서 다행이지. 컨트롤이 몸에 난 털들을 제모하러 요즘은 하루에 한 두 번씩 병원에 가니까 말이야. 지금 혜윰이 하는 얘기를 그가 들었다면, 혜윰의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치려고 했을지도 몰라.'


문득 황대근은 궁금해졌다.


"그런데 왜 굳이 탈모약을 만드는 겁니까? 혜윰씨는 탈모도 없잖아요?"


혜윰의 머리는 아주 풍성했다. 먹는 대로 영양분들이 머리로만 가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노후를 준비해야죠."

"노후요?"

"네, 일일복권에 당첨되서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었는데, 그건 가망이 없는 것 같고. 또 저도 대근씨처럼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서 연봉협상이나 할까 싶었지만.... 왠지 두 번은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그래서?"


혜윰은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탈모약을 팔려고 하는 거죠! 제대로 된 탈모약 하나만 개발하면, 그날로 억만장자 되는 거 아니겠어요?"


작가의말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그 직원 21.09.24 37 1 13쪽
29 미미(美味)! 21.09.24 40 1 13쪽
28 체육대회 21.09.23 40 1 13쪽
27 하체의 꽃은 스쿼트 21.09.23 44 1 12쪽
26 목격자의 진술 21.09.22 46 1 13쪽
25 목격자의 기억 (4) 21.09.22 39 1 13쪽
» 목격자의 기억 (3) 21.09.21 44 1 12쪽
23 목격자의 기억 (2) 21.09.21 41 1 13쪽
22 목격자의 기억 (1) 21.09.20 44 1 14쪽
21 트라우마 (3) 21.09.20 43 1 13쪽
20 트라우마 (2) 21.09.19 50 1 13쪽
19 트라우마 (1) 21.09.19 51 1 13쪽
18 행운과 불운 21.09.18 48 1 13쪽
17 근손실 21.09.18 51 1 13쪽
16 그 사건과 그 사건 21.09.17 85 1 13쪽
15 21.09.17 58 1 14쪽
14 꼴랑? 21.09.16 58 1 14쪽
13 3번이냐, 4번이냐? 21.09.16 70 1 12쪽
12 거짓 보도 21.09.15 71 1 13쪽
11 케어와 플루 21.09.15 71 1 13쪽
10 it form bit 21.09.14 85 1 12쪽
9 월급루팡 21.09.14 90 1 14쪽
8 페스트(Past) 21.09.13 108 1 13쪽
7 WBC(White Blood Cell) 21.09.13 138 1 13쪽
6 삭제 21.09.13 172 1 14쪽
5 대회 준비 21.09.13 272 1 14쪽
4 첫 출근 21.09.13 421 1 14쪽
3 황대근과 황대근 21.09.13 870 3 13쪽
2 소문의 신입 21.09.13 2,201 6 8쪽
1 프롤로그 21.09.13 2,514 21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