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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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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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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1,802

작성
21.09.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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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페스트(Past)

DUMMY

(대근건설 - 뇌부서 - 뇌파추적팀)



뇌 부서 직원만 입을 수 있는 분홍색 가운을 입은 여자가 뇌파 추적 컴퓨터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여자는 점심 시간이 끝나고 제일 먼저 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인간 황대근의 현재 뇌파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상해. 30분 전에 찍힌 뇌파가.... 어떻게..... 무슨 일이지....?"


여자의 이름은 릴리. 뇌파추적팀의 팀장이다.

그녀는 각종 학연, 지연, 혈연이 지배하는 복잡하고 난잡한 막장 뇌부서에서 유일하게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팀장의 자리까지 올라온 존재다. 어느 회사에나 흔히 있는 정치질에도 그녀는 언제나 중립 상태를 유지했다.


덕분에 뇌부서의 온갖 비리에서 그녀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다르게 말하면 뇌부서에서 그녀는 아웃사이더나 마찬가지란 소리다.

허나 그 누구도 릴리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워낙 실력이 출중한데다가 일처리가 무서울 정도로 깔끔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뇌파가 끊겼어. 표시가 전혀 안 되어있잖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 릴리는 즉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바로 뇌부서의 부장, 브레인에게 보낼 보고서였다.


슥— 슥—


"됐다. 당장 보고해야지. 이건 심각한 문제야."






(대근건설 - 제 1건물 브레인 - 사장실)



"뇌파추적팀장이 제게 보낸 보고서입니다 사장님."


뇌부서의 부장, 브레인이 릴리가 보낸 보고서를 사장 헨리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디톡스가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트래디션을 죽이기 전에 안구팀의 컴퓨터를 조작했어야 합니다. 안구팀장은 눈치도 없이 무릎팀에 자료를 보냈습니다. 지금쯤이면 WBC의 케어도 이상한 것을 눈치챘을 겁니다."


브레인은 자신의 분홍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이러다가.... 불법으로 트래디션을 죽였다는 걸 다른 직원들이 알게 되는 날에는.... 저희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불안한 모습이다.


"페스트(past)."


창밖을 바라보던 헨리가 중얼거렸다.


"페스트. 페스트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과거 '그 사건'을 기억하겠지?"

"당연하지요."

"'그 사건'은 J가 황대근의 과거를 이용해 황대근의 자아를 흡수하는 것을 시도했던 사건이었다. 아주 위험한 사건이었어."

"그 사건과 페스트가 무슨 상관입니까? 페스트는 또 뭐고요?"


브레인의 질문에 헨리는 씨익 웃었다.


"어차피 안구팀은 인간 황대근의 눈만 볼 수 있어. 그 말은 즉, 이곳 대근건설에서 벌어지는 일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지. 안구팀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황대근을 돕기 위해서야."

"그, 그 말씀은....?!"


불안해 보였던 브레인의 구겨진 얼굴에 점차 미소가 번졌다.


"디톡스는 내 손아귀에 있다. 명분은 대근건설의 청소부라지만, 어차피 그들은 내 개인 군대나 마찬가지야. 만약 디톡스 중에서 이 일을 누설하는 놈이 있다면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그럼... 뇌파추적팀장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안구팀의 컴퓨터 전원이 꺼졌던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안구팀 컴퓨터 전원은 절대 꺼지지 않습니다."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헨리의 말에 브레인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바보 같은 표정이었다.


"ㅇ, 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둘러대면 된다."

"황대근한테 PTSD가 생길 만한 일이 있었나요? 황대근은 어지간하면...... 아! 설마..? 그 일을...?"

"말이라는 건 교묘한 것이야."


창가에 서 있던 헨리가 브레인이 있는 탁자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렇다고 하면 사실이 될 수 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게 바로 말이라는 거야."


브레인은 존경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헨리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일종의 서동요 기법이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브레인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처럼 미친듯이 박수를 쳤다.


"대단하십니다 사장님!"


박수가 잦아들었을 때, 브레인이 나지막히 물었다.


"저, 그런데.... 아까 말씀하셨던 페스트는 뭔가요?"

"디톡스가 메모리아부서 자료를 영구 삭제했다는 것을 대근건설 임직원들이 모두 알게 되었으니, 사태를 조종하기 더 쉬워졌다는 뜻이지."

"쉬워졌다니요?"

"지금쯤 메모리아부서는 트래디션의 행방불명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야. '그 사건'을 이용해서 메모리아부서를 더 쪼아버리는 거다."

"호오..."

"트래디션이 메모리아부서에 보관 된 과거 기록들을 가지고 J와 같은 범행을 저지르려 했고, 그 여파로 안구팀의 컴퓨터 전원이 일시적으로 고장이 났다고. 그래서 메모리아부서에 보관된 자료를 영구 삭제했으며 범인인 트래디션을 감옥에 넣었다고 하면 되는 것이야!"


짝짝짝—


이제 브레인은 존경심을 넘어선 경외심과 황홀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헨리를 우러러 보고 있었다.


"굉장하십니다! 정말 굉장하십니다!"

"페스트. 즉 흑사병이다. 과거라는 바이러스로부터 발생한 흑사병. 지금부터 트래디션을 흑사병을 퍼뜨린 범인으로 만들도록 하지."






(대근건설 - 메모리아 부서 - 비밀의 방)



"짠! 다 됐습니다!"


혜윰이 삼각 플라스크 병에 담긴 진한 초록색의 약을 황대근에게 건넸다.

그것을 역겹게 바라보던 황대근은 마치 전 세계 인류의 콧물을 모아 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황대근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곧바로 후회했는데, 이유는 자신이 저 짜증 나는 액체를 마셔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자, 자! 쭉~ 들이켜요~! 첫 잔은 원샷이겠죠~?"


대체 어떤 재료를 넣어야 이런 역겨운 약이 완성되는 것일까? 혜윰이 정말 빠르게, 눈 깜짝할 사이에 약을 만든 탓에 황대근은 혜윰이 약 속에 무엇을 넣었는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다른 한 편으로 그는 차라리 재료를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어? 차갑네?'


삼각 플라스크를 받아든 황대근은 생각보다 약이 차갑다는 사실에 내심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반면 혜윰은 꽤나 즐거워 보였다.


"자! 원샷! 원샷!"

"....너무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앗, 죄송해요! 갑자기 회식하는 기분이 들어서... 언제부턴가 메모리아 부서는 회식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거든요. 돈이 없어서. 아무튼 얼른 드셔 보세요! 원~ 샷!"


꿀꺽—


입 안에 약을 다 털어 넣은 황대근은 자연스럽게 표정을 찌푸렸다.

입 안이 끈적끈적해지고 기분 나쁜 텁텁한 맛이 나는 게, 마치 고블린의 농도 짙은 콧물을 마시는 것만 같았다.


"으으... 이거 무슨 약이라고 했죠?"


괴로워하는 황대근에게 티슈 하나를 건네며 혜윰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대근씨의 몸이 왕이사님과 같은 근육질로 보이게 해 주는 약이에요. 타기약(他欺藥)이라고 부르죠."


혜윰의 말에 황대근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런데 제 몸은 그대로 인데요?"

"제가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타기약은 대근씨의 몸은 그대로 두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대근씨의 모습을 다르게 보이도록 해주지요."

"혜윰씨가 볼 때는 어떻습니까?"


혜윰은 엄지를 높이 치켜들었다.


"제 2의 왕이사님같아요! 머리만 빡빡 미시면 완전 똑같을 것 같아요!"


제기랄. 황대근은 조금 슬퍼졌다.






(대근건설 - 근골격부서 - 보디빌딩 전용 시합장)



괴로웠던 7일이 지나고 드디어 대회날이 되었다.

7일동안 황대근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출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왕근과 맞먹는 근육(물론 실제로 가진 건 아니지만)때문에 가뜩이나 좁아터진 메모리아부서가 꽉 찼기 때문이다.

메모리아부서의 다른 직원들은 황대근이 지나갈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던 것이다.

다행히 오늘만 지나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에 황대근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거 입어야 하는 건가요?"


혜윰이 건네준 삼각 티팬티 아니, 시합복을 한 손가락으로 들어 보이며 황대근이 물었다.

혜윰이 건넨 시합복은 겨우 중요 부위를 가릴 수 있는 사이즈였다.

뭐랄까, 나뭇잎 하나만 그곳을 덜렁 가리고 있는 기분이랄까.


"싫으세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럼 어쩔 수 없죠."


혜윰이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황대근은 애써 무시하고 혜윰이 가져온 다른 시합복을 집어 들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시합 전용 트렁크 팬츠다. 사각 수영복과 크게 다를 것 없었기에 황대근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탈의실로 달려갔다.


"서포트 도와 줘서 고마워요 마이크로. 탄도 직접 발라주고. 저 도와주신다고 오늘 하루 통째로 버리셨네요."


더러워진 손을 깨끗이 닦고 나온 마이크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정도는 별 것 아니야.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보다 펌핑 좀 해야 하지 않겠어?"


황대근은 순간 멈칫했다.

자신이 타기약을 먹었다는 사실은 오직 황대근과 혜윰만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펌핑을 굳이 하지 않아도 이미 황대근의 몸은 타의 추종을 불허 했지만, 마이크로는 그 사실을 모르기에 황대근은 말했다.


"그럼요, 펌핑 해야죠. 저기 가방에 밴드가 있을 겁니다. 후면 삼각근이랑 측면 삼각근 펌핑 좀 해야겠네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회가 드디어 끝났다.

인간들이 주최한 보디빌딩 대회는 대회 참가자가 많기에 심사가 제법 걸리지만, 대근건설에서 이루어지는 보디빌딩 대회는 꽤 금방 끝나는 편이다. 애초에 근골격계부서의 왕근이 주최한 대회였기에 참가자도 많은 편은 아니었다.

어쨌든 결과는 압도적인 1등이다. 심사위원 모두(그 중에 왕근도 있었다) 황대근의 완벽한 근육에 매료된 것이다.


"1등이라니! 우와~ 콧물 먹은 보람이 있네ㅇ....억!"


황대근이 서둘러 큰 손으로 혜윰의 입을 막자 마이크로가 물었다.


"콧물? 콧물이라니?"


자신을 노려보는 혜윰을 애써 무시하며 황대근이 말했다.


"운동하고 식이조절하느라 눈물 콧물 다 뺐다는 얘기죠, 삼촌~"

"하긴. 그 동안 정말 힘들긴 했을 거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식욕을 억제한다는 게 오죽 쉽냐? 그나저나 한 달 동안 이렇게 엄청난 근육을 만들어내다니... 넌 정말 대단한 놈이다. 무염닭가슴살이라니. 누가 그딴 걸 발명했는지. 3대가 폭풍설사 걸려라."


한 달. 초급자가 아닌 이상 근육이 1kg는 커녕 0.5kg 늘기도 어려운 기간이다.

약을 먹지 않았다면 황대근은 1등은 고사하고 시합장에 발도 못 들였을 것이다.

다행히 근육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하는 마이크로는 1퍼센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황대근군!"


저 멀리서 상의를 탈의한 왕근이 황대근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어째서 상의를 탈의한 것인지, 또 겨드랑이는 왜 저렇게 깨끗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황대근은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나는 자네가 1등을 할 줄 알았지! 자네 이름이 괜히 황대근인게 아니야! 큰 근육!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이란 말인가!"


왕근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대체 얼마나 감동적이면 이런 일에 운단 말인가.


"곧 시상식이 시작될 거라네. 사진도 찍을 걸세. 상도 함께 줄 거야."


상이라. 황대근은 자신이 대회에 참가한 목적을 다시 한 번 더 상기했다.


"왕이사님, 저번에 말씀 주셨던 그 혜택 말입니다."

"아! 혜택 말인가! 당연히 주고 말고!"

"다행이네요."

"오늘이 지나면 기별이 갈 거라네. 연봉협상 말고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것도 된다네! 원하는 부서가 있는가? 특진 어떤가? 이것도 꽤...."

"없습니다."


황대근의 말에 왕근은 처음으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없다고? 그게 무슨 소린가 대근군?"

"특진 대신, 연봉협상을 하고 싶습니다만."


뭣하러 뇌부서에 가겠는가? 뭣하러 심장부서에 가겠는가?

할 일은 적고, 귀찮게 사내 정치질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여유롭고 자유로운 메모리아부서에 남아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 지내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한 것이다.


"연봉 협상?"

"네. 뇌 부서에 가는 대신, 뇌 부서에서 받는 억대 연봉을 제게도 적용시켜주십시오."


작가의말

오늘 하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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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목격자의 기억 (3) 21.09.21 43 1 12쪽
23 목격자의 기억 (2) 21.09.21 41 1 13쪽
22 목격자의 기억 (1) 21.09.20 44 1 14쪽
21 트라우마 (3) 21.09.20 43 1 13쪽
20 트라우마 (2) 21.09.19 50 1 13쪽
19 트라우마 (1) 21.09.19 51 1 13쪽
18 행운과 불운 21.09.18 48 1 13쪽
17 근손실 21.09.18 51 1 13쪽
16 그 사건과 그 사건 21.09.17 85 1 13쪽
15 21.09.17 58 1 14쪽
14 꼴랑? 21.09.16 58 1 14쪽
13 3번이냐, 4번이냐? 21.09.16 70 1 12쪽
12 거짓 보도 21.09.15 71 1 13쪽
11 케어와 플루 21.09.15 71 1 13쪽
10 it form bit 21.09.14 85 1 12쪽
9 월급루팡 21.09.14 90 1 14쪽
» 페스트(Past) 21.09.13 107 1 13쪽
7 WBC(White Blood Cell) 21.09.13 137 1 13쪽
6 삭제 21.09.13 171 1 14쪽
5 대회 준비 21.09.13 271 1 14쪽
4 첫 출근 21.09.13 420 1 14쪽
3 황대근과 황대근 21.09.13 869 3 13쪽
2 소문의 신입 21.09.13 2,201 6 8쪽
1 프롤로그 21.09.13 2,514 2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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