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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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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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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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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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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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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근손실

DUMMY

(경기도 평택시 - 근성장 헬스장)



대근건설 직원들을 잠시 뒤흔들어 놓았던 꿈을 꾸고 그 다음 날 토요일, 황대근은 친구들과 함께 아침 일찍부터 헬스장으로 갔다.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황대근은 전날 밤 꾸었던 꿈에 관해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분명 꿈을 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꿈이었는지, 꿈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띡—


황대근과 백경민, 그리고 천강우는 헬스장 출입 카드를 찍은 후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유산소존에 있는 트레드밀(treadmill)에서는 30대 정도로 추정되는 여자가 속도를 6에 맞춘채 열심히 걷고 있었다.

웨이트존(weight zone)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뭐부터 할까? 유산소?"


천강우가 트레드밀 쪽을 훑어보며 말하자 백경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근 웨이트부터 해야지. 오늘은 가슴하는 날이야. 힘 빵빵할 때 해야지."

"나 그래서 어제 밤에 탄수화물 로딩하고 왔잖아. 라면 먹고 밥까지 말아먹었음."


천강우가 뿌듯해하자 백경민은 그를 비웃었다.

악의가 있는 비웃음은 아니고, 놀려 먹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가 다분한 비웃음이었다.


"야, 벤치프레스 60kg도 무거워 하는 놈이 무슨 탄수화물 로딩을 해?"


그러자 천강우는 억울한지 소리쳤다.


"60kg도 무거운 무게야! 네가 무식하게 힘 쎄서 모르는 거라고, 이 근수저 새끼야! 그리고 60이면 내 몸무게보다 많이 나간다고!"

"너 몸무게 60 안되냐?"

"어.... 50대 초반 정도 될 걸."

"그럼 크게 차이도 안 나잖아!"

"네가 타고난 거라고!"


확실히 백경민의 근력은 타고났다.

아니 어쩌면... 천강우의 근력이 유독 떨어진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황대근과 백경민의 근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비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황대근은 두 친구가 언성을 더 높이기 전에 말리며 말했다.


"일단 시작하자. 사람 없을 때 많이 해 둬야지."


황대근은 벤치에 누워 20kg짜리 빈 바벨(barbell)을 들고 간단한 워밍업을 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백경민과 천강우도 차례차례 워밍업을 끝냈다.


"아, 너랑 같이 운동 못 하겠다. 따라와!"


백경민은 여전히 60kg의 벽을 넘지 못한 천강우에게 가슴 운동의 기본부터 알려주겠다며 커다란 거울이 있는 웨이트존으로 그를 데려가 강제로 푸시업을 시키기 시작했다.

천강우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한번도 안 쉬고 푸시업을 30개 째 하고 있을 때, 황대근은 여전히 벤치에 누워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었다.


스르릉— 탁-


그가 바벨 양 쪽에 20kg짜리 원판을 두 개씩 꽂았을 때였다.


띡—


황대근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헬스장에 입장했다.

바로 안익준과 박정우였다.


"저 새끼들 여긴 왜 왔지? 아, 맞다. 쟤들도 여기 다니지. 왜 하필 같은 시간대에 온 거야? 재수 없게."


두 사람이 입장하는 것을 목격한 백경민이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박정우 저 새끼는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헬스장은 대체 왜 오는 거야? 호크아이마냥 여기 저기 염탐만 하고 다니잖아!"


그러던지 말던지, 황대근은 100kg짜리 바벨을 가슴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백경민과 천강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황대근 쟤는 근육이 큰 것도 아니면서 왜 저렇게 잘해? 저게 바로 실전근육이라는 건가? 그럼 나도 실전 근육 아닌가? 나도 근육 작은데?"


천강우의 근거 없는 말에 백경민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무슨 실전근육이야, 그냥 생존 근육이지. 아, 저 새끼들 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안익준과 박정우가 황대근과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안익준은 황대근과 친구들처럼 헬스장에서 나눠주는 공용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박정우의 옷차림이 조금 특이했다.


그는 근육맨들이 입을 법한, 유두 부분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헬스용 나시를 입고 있었다. 아래는 스쿼트 할때 아주 유용한 반바지 레깅스를 입었다.

박정우의 몸은 전형적인 거미형 체형이었는데, 그가 입고 있는 옷들은 그의 몸매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읏차!"


100kg 바벨을 안정적이고 완벽한 자세로 20번이나 들어 올린 황대근이 바벨을 원래 있던 자리로 옮겨놓은 후,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런 뒤 그가 바벨에 꽂혀있는 20kg 짜리 원판 4개를 빼려고 하자 박정우가 말했다.


"그냥 둬! 나도 벤치프레스 해야 하니까!"


그러자 안익준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너 어제 나랑 같이 가슴 했잖아? 이틀 연속 한 부위만 조지는 건 좋지 않아."

"난 할 수 있어!"


박정우는 막무가내였다.


"맘대로 해."


황대근은 어차피 관심이 없었다. 박정우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헬스장에 오면 내 근육에나 관심을 둬야지, 남의 근육에 관심을 두어서 무엇 하겠는가.


원판 정리를 하려던 그는 벤치 옆에 뒀던 헬스장 수건과 물통을 집어든 채, 커다란 거울이 있는 웨이트존으로 친구들과 함께 걸어갔다.

안익준은 오기를 부리는 박정우에게 말했다.


"100kg이 말이 100kg이지, 절대 컨트롤하기 쉬운 무게는 아냐."

"난 할 수 있다니까! 안익준, 너도 황대근이 싫다며?"

"그런데?"

"그럼 내 편을 들어줘야지! 난 황대근이 서울의대가는 것도, 전교 1등을 하는 것도 싫지만. 재수 없게 운동도 잘하고 몸매까지 좋은 건 더 싫어! 넌 내 편이잖아! 안 그래? 날 도와줘야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황대근과 친구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박정우를 보며 안익준은 싸이코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 편을 들어 달라고....."


안익준이 중얼거리든 말든, 박정우는 워밍업도 하지 않은 채 벤치프레스에 냅다 누워버렸다.


"너 역시 그저 나의 흥미를 돋구는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걸.... 왜 모르지...?"


안익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박정우는 과하게 심호흡을 하며 100kg 바벨을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의 그 열등감이, 나의 흥미를 돋군다는 걸, 왜 모를까....?"


첫 번째 시도, 실패였다. 당연하다. 박정우는 벤치프레스를 60kg는 커녕, 30kg 조차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했다.


"박정우... 넌 전교 10등은 커녕 전교 100등도 안 되지. 하지만 난 달라. 난 전교 2등이다."


두 번째 시도, 들었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순수한 근력으로 든 것이 아니었다. 억지로 바벨을 들어올리느라 박정우의 허리는 활처럼 휘었으며, 그의 가시처럼 가느다란 팔은 사시나무마냥 위태롭게 흔들렸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는가? 30kg도 제대로 못 드는데, 어떻게 100kg을 들어 올릴 수 있었을까? 열등감의 힘인 것일까? 열등감은 인간을 이렇게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일까?


"넌 그냥 내 장난감일 뿐이야, 박정우... 넌 그저 황대근과 재미있게 놀기 위한 내 이용물일 뿐이라는 걸.... 잊지 말도록..."


콰앙—!


깔렸다. 결국 박정우는 100kg 바벨에 깔렸다.

커다란 소음을 일으키며 바벨은 박정우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사, 사, 사... 살려......살려주.....ㅓ...."


100kg. 말이 백 키로지 실제로 100kg 짜리 바벨이 가슴을 압박하면 보통 사람들은 숨 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울 것이다.


"아...ㄴ....익...준.... 살려....줘...."


안익준은 새파랗게 질린 박정우의 얼굴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이고, 진짜! 회원님! 제가 컨트롤 가능한 무게로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오전 타임 근육질의 여성 트레이너가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듣고는 박정우가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트레이너는 안익준과 함께 박정우를 짓누르고 있는 바벨을 들어 올려 세이프 바에 안전하게 올려두었다.


둘은 한참 동안 트레이너의 안전교육을 받은 후에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박정우는 조금 전의 충격이 심했는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멍을 때리고 있었다.


"네 주제를 알아야지..."


안익준이 중얼거리자, 정신이 번쩍 든 박정우가 입가에 흐른 침을 닦으며 물었다.


"ㅇ, 어? 나한테 뭐라고 했어?"


안익준은 씨익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원래 오늘 우리 등 하려고 했었으니까, 랫 풀 다운(rat pull down)이나 하러 갈까?"






(대근건설 - 근골격부서 - 근육과 운동팀)



인간 황대근의 가슴 운동이 무사히 종료되자 근육과 운동팀 직원들은 모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근육과 운동팀에는 아주 거대한 도르레와 지레가 있었는데, 근육과 운동팀 직원 여러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도르레와 지레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황대근이 100kg짜리 바벨을 가슴 위로 들어 올릴 때마다 근육과 운동팀 직원들은 힘을 합쳐 거대한 지레를 움직였다.


탈탈탈—


근육과 운동팀장 프로틴이 땀으로 푹 젖은 자신의 초콜릿 색 머리를 수건으로 털고 있을 때였다.


"프로틴팀장님!"


뇌부서 감정팀의 직원인 코티졸이다. 코티졸은 예전에는 면역과 신경, 그리고 내분비 부서에서 일을 했었다고 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센시티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코티졸은 뇌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운동 좀 작작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짜증이 나서 죽겠다고요!"


벌써 세 번째 초코맛 프로틴을 마시며, 프로틴은 말했다.


"진정하게, 코티졸. 자꾸 화내면 근손실 나. 에너지를 아껴야지. 자네의 그 에너지는 근육이 회복하고 성장하는데 쓰이도록 내버려 두라고."

"팀장님이 운동만 하면 자꾸 짜증이 나는데 어쩌라는 거예요!"

"운동을 하는데 왜 짜증이 나는가?"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왕근이 말했다.

곁에 있던 황대근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것도 병이라고.


"운동은 신성한 것이라네, 코티졸! 운동이야말로 진정으로 숭고하고, 고귀하고, 진실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어! 운동은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네!"


바로 이 대목에서 황대근은 속으로 뜨끔했다.

얼마 전, 보디빌딩 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 타기약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코티졸은 왕근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었는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왕이사님. 여기 계신줄 몰랐습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곧 인간 황대근이가 운동을 할 시간이 되어서 말이야, 여기 이 두 친구에게 견학을 좀 시켜주려고 했지!"


왕근이 옆에 있던 황대근과 혜윰을 가리켰다. 그러자 코티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때 황대근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코티졸은 뇌부서 직원이다. 소문의 황대근을 좋아할리가 없다.


"아~ 그 쩌리 새끼?"


코티졸이 빈정거렸다.


"하는 것도 없는 쩌리 부서에서 일하면서, 연봉은 억대로 받으셔서 좋겠습니다? 예? 저보다 많~이 받으시는 것 같던데? 아주 즐거우시겠어요?"


황대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상처도 받지 않았다.

저런 유형의 유치한 빈정거림은 황대근을 상처 입힐 수 없었다.


"그만 하게, 코티졸! 대근군이 억대 연봉을 받는 건, 나와 약속했기 때문이었네!"


왕근이 말했다.


"우리 근골격부서에서 주최하는 신성한 보디빌딩 대회에서 1등을 한 선수에게는 큰 선물을 주는 것이 우리의 전통일세! 이 전통은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깨진 적이 없다네! 불만 갖지 말게!"


코티졸은 가만 있지 않았다.


"하지만, 초짜 신입이 억대 연봉이라뇨! 이게 말이 됩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이걸 허락한 강이사님도 미친 거 아닙니까?!"

"약속은 약속일세! 또 전통은 전통이야!"

"왕이사님!"


웨에에엥—


그때 갑자기 천장에 투박한 모양으로 박혀 있는 경보기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근육과 운동팀 직원들과 프로틴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황대근이 묻자 프로틴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주... 아주 무서운 일일세.... 대근군...."


무서운 일? 그게 대체 무엇인지 황대근은 궁금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금 전 울린 그 경보음은... 비뇨기와 19금 부서의 리비도(libido)팀에서 보낸 경보음이야..."

"리비도팀이요?"

"그래... 최소한 20살이 될 때까지는 인간 황대근이 야시꾸리한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했는데...."


야시꾸리한 것?


"근손실, 근손실 온단 말일세! 야시꾸리한 것에 힘을 쏟으면, 근육을 위해 쏟아야 할 힘이 부족하단 말일세! 단백질 빠져나간다고! 안 돼!"


계속해서 근손실을 외쳐대는 프로틴을 보며, 황대근은 고개를 저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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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 직원 21.09.24 37 1 13쪽
29 미미(美味)! 21.09.24 40 1 13쪽
28 체육대회 21.09.23 41 1 13쪽
27 하체의 꽃은 스쿼트 21.09.23 44 1 12쪽
26 목격자의 진술 21.09.22 46 1 13쪽
25 목격자의 기억 (4) 21.09.22 39 1 13쪽
24 목격자의 기억 (3) 21.09.21 44 1 12쪽
23 목격자의 기억 (2) 21.09.21 42 1 13쪽
22 목격자의 기억 (1) 21.09.20 44 1 14쪽
21 트라우마 (3) 21.09.20 44 1 13쪽
20 트라우마 (2) 21.09.19 51 1 13쪽
19 트라우마 (1) 21.09.19 51 1 13쪽
18 행운과 불운 21.09.18 48 1 13쪽
» 근손실 21.09.18 52 1 13쪽
16 그 사건과 그 사건 21.09.17 85 1 13쪽
15 21.09.17 58 1 14쪽
14 꼴랑? 21.09.16 58 1 14쪽
13 3번이냐, 4번이냐? 21.09.16 70 1 12쪽
12 거짓 보도 21.09.15 71 1 13쪽
11 케어와 플루 21.09.15 71 1 13쪽
10 it form bit 21.09.14 85 1 12쪽
9 월급루팡 21.09.14 91 1 14쪽
8 페스트(Past) 21.09.13 108 1 13쪽
7 WBC(White Blood Cell) 21.09.13 138 1 13쪽
6 삭제 21.09.13 172 1 14쪽
5 대회 준비 21.09.13 272 1 14쪽
4 첫 출근 21.09.13 421 1 14쪽
3 황대근과 황대근 21.09.13 871 3 13쪽
2 소문의 신입 21.09.13 2,201 6 8쪽
1 프롤로그 21.09.13 2,515 2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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