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久渗

전능하신 당신들의 적대자가 말하니.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구삼(久渗)
작품등록일 :
2024.01.11 06:45
최근연재일 :
2024.03.07 07:00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8,441
추천수 :
249
글자수 :
298,498

작성
24.03.02 07:00
조회
54
추천
2
글자
12쪽

매드 티 파티(1)

DUMMY

“젠장! 이게 뭐요!”


나는 마법사에게 볼 멘 소리로 외쳤다.

그러면서 그녀의 표정을 보니,

그녀 역시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기다려요! 그래봤자 어차피 내 레벨 아래니까!”

“그럼 뭐라도 빨리 해보던가!”


녀석은 거대한 당근을 바닥에 마구 찍으며 이제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녀석을 뛰어 넘어야 할까?

아직 약간, 정말 약간 대기 시간이 남았다.

젠장. 그냥 좌우로 정신없이 피하는 방법 밖에는 없겠다.


그런데 그 순간.

녀석의 앞에 차례 차례 바위 벽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열심히 손짓하는 걸 보니 그녀의 기술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벽들도 당근 빠따질 한 번에 하나씩 박살이 난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그걸 부수고 오느라 아주 약간 놈의 전진이 지체되었다는 것.


“아니, 지금 내가 막타 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냥 불로 태워요! 머리 위에 짚!”


내가 그렇게 외치자 마법사는 상당히 고민하는 눈치다.

아니, 이 상황에 뭘 고민하냐고.

그러면서 나는 내 신발의 특수 기술의 대기시간을 확인한다.

단 10초.

그리고 놈 앞의 벽은 이제 세 개.


제발, 제발, 제발.


됐다!


녀석의 앞을 가로막는 마지막 바위벽이 부서짐과 동시에,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왔다.


나는 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몸이 둥실 떠오르는 느낌.

천장의 높이는 충분하다.

일단 나는 위로 내 몸을 옮긴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몸이 위로 더 떠올랐다.


내가 위로 올라가자 녀석이 순간 당황한 듯, 바위를 내려친 당근을 들려다 말고 시뻘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다시 당근을 들어 올리려 한다.

꼴보기 역겨울 정도다.


나는 허공을 밟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 위 약간 뒤쪽에서 멈췄다.

슬쩍 미끄러지는 몸이었지만 어쨌든 녀석의 지푸라기 왕관이 보인다.


놈이 몸을 돌리기 전에!

나는 몸을 내려 녀석 가까이에 갔다. 그리고 놈이 고개를 내리고 몸을 돌리려던 순간, 망토의 힘을 개방해 불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됐나? 됐어? 됐다!


지푸라기에 불이 붙으며 화르륵 잘 타오른다.

녀석은 그 자리에서 다시 울부짖으며 마구 고개를 젓기 시작하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마법사도 화색 가득한 얼굴로 잘했다고 외쳤다.


지푸라기 왕관은 이제 마치 불꽃의 왕관처럼 보일 정도로 타올랐다.

녀석은 당근을 잡던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흔들다가, 이제는 그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은 털리지 않고, 오히려 녀석의 손에 불길이 옮겨가기만 했다.


한참 발광을 하기에 나는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착지하고 그 광경을 보며 물었다.


“이제 끝난 겁니까?”

“영원한 왕은 없는 법이죠.”

“예?”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니, 저 새끼가 무슨 아서스도 아니고.”

“아, 이제 끝이 거의 다 났네요. 봐요. 몸이 줄어들잖아요.”

“음?”


과연 그녀의 말대로 거대한 녀석의 몸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치 바깥의 그 커다란 덩치가 불을 먹어치우는 것처럼, 덩치가 줄어들수록 불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불이 다 꺼지고 나타난 것은 그저 바닥에 누운 평범한, 아니, 조금은 작은 체구의 토끼머리 남자였다.


“이게······, 원래 모습?”

“저거 주워요.”

“예?”

“저거. 당근.”

“아니, 씨발, 나한테 그걸······.”


놀랍게도 녀석의 그것은 진짜 당근으로 변해있었다.

어이가 없었고, 찝찝하기도 했지만 일단 그 당근을 주워들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쓰라고요?”

“거기 글자가 있잖아요?”

“글자?”


과연 당근의 윗부분에 아주 작은 글자들이 새겨져있다.


“이걸?”

“그냥 앞으로 뻗어요. 허공에. 문을 연다고 생각하고.”

“문을······.”


시키는 대로 하는 나. 그러니 정말 거울 비슷한 무엇이 허공에 나타났다.


“거울? 그래서 이제는?”

“당근을 거기에 던져요.”

“아, 예, 예.”


당근을 던지자 거울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당근. 그리고 거울은 이제 수은처럼 물컹거리는 것으로 변하더니, 빙빙 회오리처럼 돌기 시작했다.


“여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 이상한 나라.”

“이상한 나라? 정말로?”

“일단 들어가 보면 바로 알겠죠. 먼저 들어가요.”

“네. 아, 잠깐. 그럼 이 녀석은?”


나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훌쩍거리는 토끼 남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차피 부활할 건데요, 뭐.”


아, 뭐, 그건 그렇지. 대부분의 몹들이 그렇듯.

더구나 처음에는 조금 미심쩍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녀의 말이 다 맞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따를 수밖에.


나는 조심스럽게 회오리치는 수은같은 곳에 손을 슬쩍 댔다.

당근처럼 손이 쑥 안으로 들어간다.

어쩐지 숨을 막고 눈을 감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남은 한손으로 코를 막고,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나갔다.


온 몸에 뭔가 물컹, 하는 느낌과 뼈까지 스며드는 듯한 한기가 잠깐 느껴지고 난 뒤에는 숲 속 새소리와 빵 굽는 냄새, 그리고 온기가 느껴진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토끼귀 모양의 커다란 장식을 지붕에 달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집과, 그 양 옆에 마치 거대한 신전의 기둥처럼 서있는 전나무 두 그루, 그리고 그 앞에 차려진 적당한 크기의 테이블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앉아있는, 다 떨어진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도.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가만히 있는데, 내 뒤로 따라 들어온 마법사가 나를 지나쳐 그 남자에게 간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앨리스. 어디에 있어?”


앨리스?

내가 찾아야 하는 사람이 앨리스라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하하하하. 하하하. 하하. 하.”


이상하게 웃는 남자. 찻잔 위에 놓인 티스푼을 들어 빙글빙글 돌리다가 그걸로 나를 지목했다.


“자격은 저쪽에 있는데? 초대받은 손님은 저······, 남자? 여자? 어쨌든. 그런 건 의미가 없으니까.”


그러자 마법사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이리로 오라고 턱짓을 했다.


나는 그쪽으로 가면서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토끼 귀가 달린 집. 다과상. 그리고······, 어딘가 맛이 간 남자.

그래.

모를 수가 없지.


매드 티 파티.

그리고 이 남자는 필시 모자 장수, 매드 해터다.


“안녕하신가, 손님. 우아하고 화려하고 장엄한 이 다과회에 온 것을 환영하지.”


우아하고?

딱히 우아한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화려해?

전혀.

장엄?

그럴 리가.


하지만 녀석은 미친놈이니까.


매드 해터. 미친 모자 장수.

이제야 왜 이곳으로 들어오는 차원문이 수은처럼 보였는지 조금 이해되었다.


모자 장수가 미친 이유와 관련이 있으니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자 장수가 미쳐있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실제 그 당시의 사회상과 관련이 있다.


당시 모자 장수들은 수은 중독에 시달렸는데, 펠트 제조에 질산수은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후에 미나마타병이라고 더 잘 알려진 수은중독 증세, 즉 신경 이상이나 정신 지체 같은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As mad as a hatter(모자장수처럼 미친)라는 관용구가 생겨난 것이다.


매드 해터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뒤에서 거의 열 개가 넘는 온갖 모자들을 소환했다.

내가 깜짝 놀라자 그는 폭소하며 말했다.


“내가 왜 모자 장수가 되었냐고? 머리를 매번 바꿔 끼는 것은 귀찮잖아! 그러니 모자를 만들어 매번 바꿔 쓰는 거지! 그래서 내가 모자 장수인 거고!”


뭐?

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저 말이 원작에는 없던 말이라고 해도, 녀석은 매드 해터라는 정체성에 아주 충실하게 임하고 있으니까.


“자, 손님이지만, 손님자격이 있는지 확인해야겠지?”


자격?

그건 3월 토끼의 당근으로 충분한 것 아니었나?

내가 마법사를 쳐다보자 마법사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수수께끼요, 수수께끼.”


곧바로 끼어드는 매드 해터.


“큰까마귀는 왜 책상하고 닮았지?”


아, 그래. 원작에 나오는 유명한 수수께끼지.

유명한 답이 있지만, 사실 이것의 확실한 답은 없다.

애초에 작가인 루이스 캐럴이 말한 적절한 답도 있지만, 그 역시 이것은 정해진 답이 없고 처음부터 그가 만들어낸 수수께끼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수수께끼를 냈으니 답은 해야겠지.


가장 유명한 답 두 가지.

첫 번째로 “Because Poe wrote on both”.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작품 이름을 이용한 대답이다.

그는 큰까마귀, 즉 The raven이라는 시를 지었고, 답은 포는 큰까마귀에 대한 시를 만들었다와 책상 위에서 썼다는 의미의 대답을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작가인 루이스 캐럴이 제시한 답은 “note”를 이용한 말장난이다. note가 소리의 음을 뜻하는 것과 글을 쓰는 공책이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이용한 대답.


어느 것을 대답해야 할 까? 그냥 둘 다?

어차피 정해진 답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때. 마법사가 좀 짜증이 난 듯 매드 해터에게 대답했다.


“포나 노트. 결국에는 그 두 가지잖아. 뭘 매번 귀찮게 말해? 그걸 모를 것 같아?”


나는 사실 속으로는 마법사가 내가 대답을 몰라 미리 선수 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매드 해터는 마법사의 말을 듣고 혀를 끌끌 찼다.


“그래서 넌 여덟 번째 칸으로 절대 갈 수가 없는 녀석이지.”


여덟 번째 칸?

그건······. 혹시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관한 이야기인가?

여덟 번째 칸.

체스를 둘 때, 내 쪽으로부터 상대 쪽의 끝에 다다르는 위치. 그것이 여덟 번째 칸이다.


앨리스와 붉은 여왕의 문답.

앨리스는 이 세상이 체스라면 자신이 여왕이 되고 싶다고 했고, 붉은 여왕은 두 번째 칸에서 최선을 다해 여덟 번째 칸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그것은 가장 약한 기물인 폰이, 마지막까지 다다르면 다른 것으로 변하는 규칙에 관한 물음이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종의 교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아버지가 말했었지.


“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앨리스가 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어.”

“나도 그래.”

“뭐?”

“네가 앨리스라면 이 세상이 정말 재미없을 것 같거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니 이미 서로 아주 잘 아는 사이인 것 같다.


“그래서. 앨리스를 너희가 정했잖아.”

“음. 오해하지 마. 내가 정한 게 아니야. 다른 쪽에서 정했지. 그리고 나는 앨리스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거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앨리스는 다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해. 어디 있어? 지금!”

“하하하. 하하. 하. 넌 갈 수 없는 곳.”

“뭐?”

“넌 이미 수수께끼의 핵심을 놓쳤어. 그저 넌······, 단순한 비숍일 뿐이야. 모자가 필요하겠는걸? 비숍에 어울리는. 어디 보자······.”


그러자 갑자기 마법사가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이봐.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마법사의 위협에도 매드 해터는 싱글벙글이다.

갑자기 품속에서 시계를 꺼내더니 마치 우리를 보라는 듯 자랑한다.

엄청나게 낡은 회중시계.

그래서 뭐?

그런데 매드 해터가 말했다.


“네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여긴 결국 6시로 돌아올 거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능하신 당신들의 적대자가 말하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24.01.24 106 0 -
54 토라나의 연회(2) 24.03.07 30 3 12쪽
53 토라나의 연회(1) 24.03.06 35 2 12쪽
52 뜻밖의 유품(2) 24.03.05 49 2 12쪽
51 뜻밖의 유품(1) 24.03.04 47 3 13쪽
50 여왕의 재판장에서 (3) 24.03.03 50 2 12쪽
49 여왕의 재판장에서 (2) 24.03.02 49 2 12쪽
48 여왕의 재판장에서 (1) 24.03.02 52 2 12쪽
47 매드 티 파티(3) 24.03.02 68 2 12쪽
46 매드 티 파티(2) 24.03.02 54 2 12쪽
» 매드 티 파티(1) 24.03.02 55 2 12쪽
44 3월 토끼 (2) +1 24.02.26 62 2 13쪽
43 3월 토끼 (1) 24.02.25 71 3 12쪽
42 인스턴스 안의 인스턴스 (3) +1 24.02.24 76 4 12쪽
41 인스턴스 안의 인스턴스 (2) +1 24.02.24 68 2 13쪽
40 인스턴스 안의 인스턴스 (1) 24.02.23 85 3 14쪽
39 실종 24.02.23 78 4 12쪽
38 채식주의자의 정체 (3) +1 24.02.20 93 5 14쪽
37 채식주의자의 정체 (2) 24.02.19 87 4 13쪽
36 채식주의자의 정체 (1) 24.02.18 89 3 13쪽
35 재건되는 마을 (3) 24.02.18 85 4 12쪽
34 재건되는 마을 (2) 24.02.17 107 3 14쪽
33 재건되는 마을 (1) 24.02.16 114 2 12쪽
32 다시 마을로 (3) 24.02.15 111 3 12쪽
31 다시 마을로 (2) 24.02.15 106 3 11쪽
30 다시 마을로 (1) 24.02.15 112 3 13쪽
29 맥도날드 경의 탄생 24.02.05 124 5 13쪽
28 캐슬맨 (2) +1 24.02.04 130 4 14쪽
27 캐슬맨 (1) 24.02.03 126 5 12쪽
26 사연들 24.02.03 155 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