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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渗

전능하신 당신들의 적대자가 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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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삼(久渗)
작품등록일 :
2024.01.11 06:45
최근연재일 :
2024.03.07 07:0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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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5
추천수 :
249
글자수 :
298,498

작성
24.03.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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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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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매드 티 파티(2)

DUMMY

매드 해터의 비웃음 섞인 대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이만 갈고 있는 마법사.

매드 해터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다시 한 번 크게 웃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녀석이 뭔가를 말하려 하기 전에 내가 물었다.


“그런데······, 네 시계는 날짜만 표시되고 시간은 표시되지 않는 시계일 텐데?”


그 물음에 매드 해터가 빙긋 웃으며 다른 시계를 꺼냈다.

그리고 눈앞에서 두 시계를 흔들어보였다.


“맞아. 맞아. 원래 내 시계는 이것이었지. 이건······, 잠깐 맡아놓은 거고.”

“맡아 놔?”

“백토끼한테.”


아, 백토끼. 화이트 래빗. 녀석의 첫 등장도 시계를 보며 바쁘다 바빠, 하면서 앨리스 앞을 지나가는 거였지.


“자, 이제 대답을······.”

“잠깐. 도마우스는? 도마우스가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처음으로 그 말을 듣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매드 해터.


“그 망할 쥐 녀석은 앨리스와 함께 갔지. 내 팔걸이 자리를 뿌리치고!”

“앨리스와 함께? 음······. 잠깐. 설마······. 혹시 재판이 있나?”

“재판이라. 그럴지도?”

“앨리스는 그럼 하트 여왕의 재판장에 있다는 말이군.”


마법사가 내 말을 듣더니 약간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앨리스······. 다 읽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누구 때문에.”

“누구?”

“그건······.”


망할 아버지라고 대답하려는데 매드 해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귓속말 금지! 우리 친구 시간이 지겨워서 다시 돌아가려고 하잖아! 이 파티를 없던 일로 하려 한다고!”


무슨 소리인지 정말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나는 매드 해터에게 물었다.


“뻔한 대답은 앨리스에게 가는 길을 열지 못할 거라는 말인가?”

“당연하지!”

“그럼 어떤 대답을 원하지?”


매드 해터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다른 수수께끼를 냈다.


“내 주머니 어느 쪽에 계란이 있을까?”


나는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주머니에 계란의 위치를 묻는 수수께끼는 원작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쉽지.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오른쪽.”

“왜?”

“그 대답이 항상 옳은(right) 대답이니까. 그리고······. 왼쪽(left) 주머니의 계란은 이미 떠났으니까(left).”


내 대답을 듣고 마법사도, 짧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빙긋 웃는 매드 해터.


“머리는 도마우스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보이는데? 모자를 쓸 자격이 있어. 자! 어떤 모자를 쓸래?”


다시 모자를 쭉 늘어놓으려는 매드 해터.


“아니, 아니. 나는 모자를 쓰려는 게 아니라, 그 앨리스······, 라는 사람을 찾아야 해서.”

“아, 그래? 진작 말을 하지.”


그러자 발끈하는 마법사.


“그래서 내가 같이 왔잖아!”


하지만 매드 해터는 차를 홀짝 한 모금 마신 뒤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넌 못 찾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야.

나라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야, 뭐야.


다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매드 해터.


“솔직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전혀 되지는 않지만, 뭐 어쨌든 나한테 맡겨진 일이 그거라서. 그러니까 무슨 실마리라도······.”


녀석은 웃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심각한, 혹은 마치 나를 훑어보는 듯한 눈으로 얼마간 응시를 했다.

역시나 참지 못한 마법사가 닦달했다.


“그러니까 뭐라도 좀 알게 해 달라고! 힌트라도 주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매드 해터.


“힌트는 안 돼.”


젠장.


“너무 날씬한 녀석들은 하트의 여왕이 싫어하니까. 킥킥킥. 하트의 여왕은 뚱뚱하거든.”


마법사는 이제 아예 혈압이 솟구치는 얼굴로 매드 해터를 보며 씩씩 거리다가 한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매드 해터는 시계를 보며 곧 6시가 와서 다시 파티를 시작할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잠깐.

힌트? 날씬해?

젠장. 생각하기도 싫은 인간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 인간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네 발로 땅을 짚지.”


마법사는 뭔 소리야,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매드 해터는 모자를 마구 두드리며 흥분했다.


“왜? 왜? 왜?”

“베르나는 네 발로 땅을 기어 다니까.”


이제 마법사가 매드 해터가 아닌 내게 되물었다.


“아니, 그건 또 어디서 나온 이름이에요? 그리고 네 발로 땅을 기어요? 그게 무슨······.”


내가 뭔가 대답을 하기 전에, 매드 해터가 말했다.


“좋아! 좋은 답이었어! 꽤 훌륭해!”


황당해하는 마법사.

사실 나도 조금 당황스럽다. 이게 정말 맞을 줄은, 아니, 녀석을 만족시킬 줄은 몰랐으니까.


“좋아! 우리 친구. 여기 이 멍청한 비숍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겠어?”

“말해 봐요. 대체 무슨 의미인가요?”

“음······. 먼저 그걸 생각해봐요. 힌트, 그리고 날씬하다.”

“예? 어······, 그건······.”

“같잖아요.”

“뭐가요?”

“알파벳이. H.I.N.T. 그리고 T.H.I.N. 순서만 바뀐 거죠.”

“예? 그건······. 아! 아나그램!”


아나그램. 철자의 순서를 바꿔 다른 단어를 만들어내는 기법.

매드 해터는 힌트를 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대답은 동음이의어로, 혹은 같은 단어를 가지고 발생한 다른 사건을 억지로 연결시켜 만든 대답이지만, 아나그램은 철자의 순서를 바꿔 억지로 연관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니, 그런데 VERNA는? 아, RAVEN(큰까마귀)의 아나그램인가요?”

“그렇죠.”

“그런데 네 발로 긴다는 건 뭔가요?”

“음······. 베르나는 원래 여자 이름이죠?”

“네.”

“그리고 그 뜻은?”

“네? 뜻이요? 어······.”

“봄날, 봄의 시작, 혹은 봄에 올라오는 초록빛. 뭐 그런 의미죠.”

“아······.”

“그리고 봄의 초록빛은 보통 어떤 것에 대한 비유로 사용하죠? 겨울을 지나, 얼어붙은 땅이 녹은 뒤에 다시 올라오는 초록색 풀들.”

“그건······, 탄생?”

“네.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면 처음에 어떻게 다녀요?”

“······기어 다니죠.”

“그리고 책상 역시 네 개의 다리.”

“아······.”


매드 해터는 나의 설명에 박수를 쳤다. 하지만 마법사는 여전히 의문인 얼굴이었다.


“그건 너무······, 억지 아닌가요?”

“그럼 note의 두 뜻으로 답을 만드는 건 억지가 아니고?”

“예? 그건······.”

“어차피 수수께끼의 답은 억지죠. 다만, 아예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연관시킬 수 있는 답을 만드는 것. 그게 수수께끼의 본질이죠.”

“음······.”


어차피 지금 잘난 듯 대답하는 이 말들도, 사실은 내 생각이 아니다.

망할 아버지.

아버지가 어린 시절 나에게 말해준 것들이다.


그때 매드 해터는 백토끼에게 맡아놓았다는 회중시계의 버튼을 눌렀다.


“6시에게 이야기했어. 조금 천천히 와도 된다고.”

“만족스러운 답이었다니 다행이네. 자, 그럼 앨리스가 있는 곳은 어떻게 열 수 있지?”

“7시가 올 거야, 곧. 7시에게 부탁하면 되겠지.”


매드 해터는 시간을 의인화한다. 7시에게 부탁한다는 말은, 결국 7시에 문이 열릴 수 있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말이야. 문제는 그게 아닐 텐데?”

“뭐?”

“너희들도 알잖아. 재판. 재판이라고. 어떻게 앨리스를 빼올 거지?”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

“싸워? 하하하하하하하. 싸운다고? 그들의 재판장에서? 그들의 세상에서? 왜? 포커에서 이길 거야? 아니면 포커를 쓸 생각이야?”


포커. 카드놀이의 이름이지만 찌르는 물건인 부지깽이라는 말도 된다.


“자! 문제는 하트의 여왕이 아니야! 어차피 그 여편네는 목을 잘라라! 수염을 뽑아라! 이런 말만 외쳐댈 거야. 그리고 앨리스는 죽겠지.”

“죽어? 왜?”

“뭐? 여왕이 원하는 결과잖아. 그리고 모르겠어? 이유는 나중에 만드는 거야. 결과가 먼저고, 이유는 나중이라고.”

“하트의 여왕이 거울 나라에 있는 건가? 그건 아닐 텐데.”

“거울 나라? 아하하하하하! 거울 나라라니. 깨진 거울로 찌를 셈이야?”

“찔러?”

“하트의 여왕은 그저 떠들어댈 뿐이지만 남편인 하비 공의 취미는 카드 병사들을 시켜 찌르는 거야.”


횡설수설한 말 같지만, 방금 전의 힌트와 날씬하다는 말 때문에 이 녀석의 말을 함부로 넘길 수가 없다.


나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하비 공? 철자가 어떻게 되요?”

“네? 아, 이봐. 다시 말해봐. 하비 공의 하비(hobby)? 또 말장난이야?”

“오, 하비 공은 아일랜드 출신이라서 말이야.”

“뭐? 젠장할. 그러니까 뭐냐고.”

“귀찮고 무례하고 멍청한 비숍 같으니라고. 잘 들어. HAVEY. 이게 어려워?”

“아. 그게 아일랜드 계열 성씨였나.”


마법사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철자를 끊어서 말했다. 매드 해터는 다시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그가 누군가를 지정해서(tabs), 찌르게(stab) 한다는 말이지?”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러면서 비숍, 아니 마법사를 보고 혀를 다시 한 번 찬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매드 해터.


“잠깐만 기다려봐!”


그렇게 말하고는 3월 토끼의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더니 뭔가 커다란 가방을 낑낑대며 들고 왔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찻잔과 접시들을 발로 거칠게 확 밀어버려 쓸어버리고는 그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건 뭐야?”

“흠. 내 선물이지.”

“뭐?”


마법사가 가방에 저도 모르게 손을 대려하자 그 손을 찰싹 때리며 지금껏 보지 못한 무서운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격이 없는 손은 저리 치워. 모자 쓰고 싶냐?”


그러자 슬그머니 긴장한 얼굴로 물러나는 마법사. 마치 당장이라도 전투 한 판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대체 모자가 무슨 힘이 있는데 저러는 건지 알 수는 없다.


그렇게 잠깐 마법사를 노려보다가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활짝 웃는다.


“자, 거기에서 필요한 것들이야! 보라고.”


가방 가운데 지퍼를 열자 활짝 펼쳐진 안에는 몇 가지 무기가 있었다.


“무기?”

“골라.”

“이 중에서······, 하나만?”

“그래. 하비 공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가 있어.”


그 말에 마법사도 관심을 가지고 슬그머니 다시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곧 실망했다.

그 무기들은 아이콘화 되지 않고 실제 물건으로 있기에 곧바로 등급을 알 수는 없었지만 사실 겉으로 보기에도 딱히 대단하게 보이지 않는 무기들이었다.

차라리 평범하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일 정도로 형편없는 무기들.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는, 아예 써먹지도 못하게 불완전한 것들이었다.

자루 없는 도끼머리, 반쯤 부러진 칼날, 반으로 쪼개진 단검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개중 제일 멀쩡한 투 핸드 소드를, 그것 역시 칼날이 중간에 꺾여있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것을 이리저리 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내게 물었다.


“이것도 그냥 고르는 건 아니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녀석이 말한 하비 공의 철자를 들었을 때부터, 그리고 트럼프 카드와 관련된 인물이라는 것에서 반쯤은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나그램에 하나 더 추가가 되겠네요.”

“예?”

“같은 발음 단어로 바꾸기.”

“그건······.”

“카드(card)의 제일 첫음과 같은 발음은?”

“K? 그러면 kard······. 아, 다크(dark)?”

“그리고 하비라는 성도 바꿔봐요.”

“그건······. 설마 무거운? 헤비(HEAVY)?”

“이제 잘 하네. 그럼 그 둘과 반대가 되는 하나를 찾아봐요.”

“어두움의 반대, 그리고 무거움의 반대. 하나······. 아! LIGHT!(가벼움, 빛).”

“바로 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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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토라나의 연회(1) 24.03.06 34 2 12쪽
52 뜻밖의 유품(2) 24.03.05 46 2 12쪽
51 뜻밖의 유품(1) 24.03.04 44 3 13쪽
50 여왕의 재판장에서 (3) 24.03.03 48 2 12쪽
49 여왕의 재판장에서 (2) 24.03.02 47 2 12쪽
48 여왕의 재판장에서 (1) 24.03.02 50 2 12쪽
47 매드 티 파티(3) 24.03.02 66 2 12쪽
» 매드 티 파티(2) 24.03.02 51 2 12쪽
45 매드 티 파티(1) 24.03.02 52 2 12쪽
44 3월 토끼 (2) +1 24.02.26 60 2 13쪽
43 3월 토끼 (1) 24.02.25 68 3 12쪽
42 인스턴스 안의 인스턴스 (3) +1 24.02.24 74 4 12쪽
41 인스턴스 안의 인스턴스 (2) +1 24.02.24 65 2 13쪽
40 인스턴스 안의 인스턴스 (1) 24.02.23 81 3 14쪽
39 실종 24.02.23 76 4 12쪽
38 채식주의자의 정체 (3) +1 24.02.20 90 5 14쪽
37 채식주의자의 정체 (2) 24.02.19 82 4 13쪽
36 채식주의자의 정체 (1) 24.02.18 87 3 13쪽
35 재건되는 마을 (3) 24.02.18 83 4 12쪽
34 재건되는 마을 (2) 24.02.17 105 3 14쪽
33 재건되는 마을 (1) 24.02.16 112 2 12쪽
32 다시 마을로 (3) 24.02.15 108 3 12쪽
31 다시 마을로 (2) 24.02.15 104 3 11쪽
30 다시 마을로 (1) 24.02.15 110 3 13쪽
29 맥도날드 경의 탄생 24.02.05 121 5 13쪽
28 캐슬맨 (2) +1 24.02.04 127 4 14쪽
27 캐슬맨 (1) 24.02.03 123 5 12쪽
26 사연들 24.02.03 151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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