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창렉스 님의 서재입니다.

솔로몬의 후예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라이트노벨

창렉스
작품등록일 :
2019.05.09 21:16
최근연재일 :
2021.04.01 20:43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2,054
추천수 :
1
글자수 :
208,381

작성
21.03.26 23:46
조회
22
추천
0
글자
12쪽

Long Night 6

-Hello, world-




DUMMY

눈이 뜨였다.


죽을 만큼 아팠지만 죽지는 않았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검은 하늘. 그리고 그런 하늘에서 어지러이 춤추는 희뿌연 연기.


뒤통수와 등에 이고 있는 것은 푹신한 무언가. 발에서부터 가슴께까지 덮고 있는 따뜻한 무언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


샬롯은 서서히 몸을 일으켜 앉은 뒤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그녀는 하얀 이불을 덮고 있었으며,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시간은 아직 밤이었고, 검게 탄 홍두건단 아지트에선 불 대신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레이몬드빌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껏 본 적 없는 특이한 차림새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새하얀 프릴이 달린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메이드복의 색상은 검은색, 보라색, 파란색으로 제각기 달랐다.


파란색 메이드들은 여럿이 모여 무언가 홀로그램 영상 같은 것을 띄워 조작하고 있었다. 홀로그램 영상은 샬롯과 라이너, 카리나가 아지트에 다가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런 메이드들의 뒤에선 보라색 메이드 2명이 이것 저것 지시를 하고 있었으며, 그 뒤에선 검은색 메이드가 팔짱을 끼고서 연기가 풀풀 흘러나오는 현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칼을 가진, 자신과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샬롯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는데,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그녀가 샬롯 쪽을 돌아보았고,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딱히 미소를 짓지 않고, 무표정인 상태 그대로 살롯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메이드복은 단순히 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나무가지 또는 잎파리의 옆맥 따위를 묘사해 놓은 듯한 금색의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피처럼 붉으며 동굴처럼 깊은 보석 같은 붉은 눈을 갖고 있었으며, 머리칼은 블랙홀을 잘라 붙인 듯 한 없이 검었다.


"깨어났구나."


앳되면서도 고압적인 목소리. 경례나 다른 행동 일체를 하지 않고 그저 우두커니 선 채로 자신을 내려다 보는 그녀에게서, 샬롯은 이상하리 만치 위압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제압 당했다는 느낌이었다. 또한, 단장과 무언가 비슷한 느낌이 희미하게 들었다.


"누, 누구시죠?"


그 말에 메이드는 이상한 질문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내 직종을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니면 나라는 사람의 신분이 궁금한 걸까?"

"네······?"


그녀는 샬롯의 대꾸를 듣기도 전에 허공에 엄지와 검지를 벌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허공에 네모난 홀로그램 화면이 뜨며 그녀의 명함으로 보이는 것이 나타났다.


[티나브리스 메이드 육성 학원 총무부장 애슐리 지스 싸릴]


"보다시피 메이드고, 메이드 양성 기관의 기관장이야. 사람들은 나를 원장이나 학장 등으로 부르지. 애슐리 씨라고 불러도 좋아. 지금은 학원에서 잠시 나와 특별반 인원을 이끌고 원시 초능력자들의 추적을 하고 있어.


아, 티나브리스가 뭔지는 알지? 국선 초능력 해결사 기관, 초능력 군대, 연구정부의 앞잡이, 어쩌고 저쩌고."


다시 팔짱을 끼고서 뭔가 엄청난 말들을 일방적으로 쏟아놓는 이 여성. 샬롯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기 위해 잠시 멍을 때려야 했다.


티나브리스, 분명 들어본 적이 있다. 카리나 씨가 그들을 부르기 위해 오클라호마 시티로 향했었지.


"카리나 씨가 여러분을 불러온 건가요?"

"카리나?"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애슐리.


"아아, 분명 레이몬드빌로부터 여성이 한 명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았지. 하지만 그녀가 우리 기지에 찾아왔을 적엔 우린 이미 원시 초능력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출발한 뒤였어. 아마 그녀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까 싶은데······."

"샬롯!"


멀리서부터 바이크의 폭음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리나가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카리나 씨!"

"무사했구나!"

"카리나 씨도요."


카리나는 바이크에서 내려 샬롯에게 다가오고, 반가운 듯이 웃으며 손바닥으로 그녀의 볼을 부비적부비적 만져댔다. 샬롯도 그녀가 무사했다는 사실이 기뻐 그저 웃기만 했다.


카리나 역시 애슐리가 했던 것과 거의 같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티나브리스 기지에 도착했을 적엔 이미 병력이 떠난 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나.


"그들은 내게 이렇게 얘기했어. 내가 여기로 다시 돌아올 즈음엔 이미 메이드들이 모든 상황을 끝내놨을 거라고. 그래서 여기로 돌아와 보니 정말로 모든 게 끝나있었지."


애슐리가 어꺠를 으쓱이며 말했다.


"마을을 구하기 위해 뛰어난 희생정신을 발휘한 멋진 분이지. 여기서 오클라호마 시티까지 정부의 보호를 받지 않는 구간이 몇 있는데, 그런 곳들을 단신으로 뚫고 왔으니깐 말이야."

"내가 좀 터프하긴 하지."

"곧 불법 사이키터로서 처벌을 받게 되긴 하겠지만."


그 말에 카리나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표정은 여전히 태연했지만 샬롯은 그녀가 걱정되어 변호하는 말들을 쏟아내었다.


"카리나 씨는 수 년간 지배당하던 레이몬드빌을 구하기 위해 그러신 거에요. 애슐리 씨,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나요?"

"안 돼."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단호하게 내뱉는 애슐리.


"그녀의 의지는 높게 사지만 그것도 처벌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저지른 행위야. 올바른 처벌을 받아야지만 그녀의 각오가 허무해지지 않아."

"그치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받아들일 순 없었다. 게다가 애슐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내 눈엔 다 보여. 너도 마찬가지야. 불법 사이키터, 샬롯 램브리니 메어컨."


그 말에 샬롯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마을에선 곧 축제가 벌어질 텐데, 이들의 분위기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런 와중에 애슐리가 샬롯에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이킷을 손에 넣은 건지 물었다.


샬롯은 침울해 하면서도 케빈과 얽힌 옛날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에게 괴롭힘 당한 일, 그로써 샬롯이 깨닫고 결심한 것들, 동네 아는 오빠인 싸쥬로부터 사이킷을 이식받은 일. 애슐리는 팔짱을 낀 채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샬롯의 기나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마지막에 샬롯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반드시 사이랜서가 된 뒤에 케빈을 때려잡을 거에요."


두 눈은 불이 붙어 이글거리고 목소리는 마그마처럼 뜨거웠다. 그 갸륵함과 당돌함에 애슐리는 잠시 벙찌더니 호탕하게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이제 사이키터가 되고 하루 밖에 되지 않은 여자애가 최고의 사이랜서인 케빈을 잡으려한다니, 게다가 그게 케빈의 여동생이라니, 정말 재밌는 우연이네."

"······."

"사실 나도 케빈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널 사이랜서로 키워줄 테니 내 밑으로 오렴."


샬롯은 그 말을 듣자 눈이 번쩍 뜨였다.


"사이랜서요?"

"그래, 합법적으로 범법자를 잡을 수 있지. 적어도 범죄자와 메이드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을 일은 사라져. 너도 알고 있지?"


샬롯은 카리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고, 그 의미를 파악한 카리나가 한 마디 거들어주었다.


"사이랜서가 되는 건 네 꿈 아니었어? 이제 시작이라고 했잖아. 가 봐."

"하지만 카리나 씨가 처벌을 받으면······."


주먹을 꼭 쥐고 애달프게 읊조리는 샬롯의 말에 끼어드는 애슐리.


"너랑 같이 카리나 씨도 눈감아줄게. 그럼 괜찮지?"

"반장님,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보라색의 양복을 입은, 흡사 집사와도 같은 모습을 한 안경잡이 청년이 애슐리의 곁에 다가와 진언했다.


"샬롯 씨는 몰라도 기지에 직접 찾아간 카리나 씨는 이미 티나브리스에 그 존재가 알려진 것이 아닌지······."


그 말에 애슐리가 그를 홱 돌아 보았다.


"괜찮아! 현재 연구정부가 가장 밀어주는 싸릴 가문, 그곳의 자제인 내 결정에 티나브리스의 누가 토를 달 수 있다는 거지? 마리? 라이오르? 이런 잡범 한 명 정도는 눈감아줘도 아무도 나한테 뭐라 못 해. 내 말 알겠어?"


눈을 희번득하게 뜨고서 고압적인 목소리로 깔리는 애슐리의 설교에, 젊은 신사는 알겠다고 대답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애슐리는 그러고서 다시 샬롯을 돌아보고, 생긋 미소지으며 물었다.


"괜찮지? 네 또래 친구들도 있다구."


샬롯은 대놓고 부정을 저지르는 이 여성을 따라가도 좋을지 생각했다. 그녀는 문득 싸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일을 해결하면 리포드로 돌아와 초능력 제거 시술을 받고 정당하게 사이랜서 시험을 치러 가라고 말이다.


샬롯은 그 이야기를 애슐리에게 해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사이킷 제거 정도라면 우리들이 해주겠어. 사이랜서 시험에도 엔트리 시켜줄게."

"그래도 싸쥬 오빠에게 인사는 하고 싶었는데······."


계속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결단을 늦추는 샬롯의 태도에 애슐리의 목소리가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이곳 텍사스에 원시 초능력자가 하나 더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우리들은 그녀석이 도망치기 전에 신속하게 추적해서 처리할 예정이야. 지금 우릴 따라오지 않으면 평생 다시는 못 만나게 될지도 몰라. 우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거든."


그녀는 샬롯에게 얼굴을 한 층 가까이 들이밀며 덧붙였다.


"샬롯, 인생의 대부분은 드라마틱하게 흘러가지 않아. 기회가 왔을 때 재깍재깍 잡아야만 해."


샬롯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기 또래 또는 자기 보다 어린 여자애들도 메이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샬롯은 그녀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었으며, 그때 애슐리를 따르기로 결심했기에 지금 이곳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눈치챈 애슐리가 빠르게 끼어들었다.


"쟤네들도 자기들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서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거야. 모두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가 인정한 천재들이지. 너 역시 그런 자질을 갖고 있어서 내가 이런 제안을 하는 거야.


샬롯 램브리니 메어컨, 마지막으로 묻겠어. 나를 따라올 거야? 아니면 여기에 남을 거야?"


인생에서 기회는 그리 많지 않고 그때마다 열심히 잡아내야 한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말하고 나서야 샬롯은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알겠어요. 따라갈게요."


파티에도 참가하지 못 하고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지만, 카리나는 샬롯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송신해주었다. 샬롯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을 품은 채 두 번째 스테이지로 나아갔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다시 행복했던 옛날로 돌아가기 위해, 샬롯은 지금 이별을 택했다.


'케빈 프레드릭 메어컨. 넌 지금도 마천루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며 나 같은 사람들을 비웃고 있겠지. 내가 널 거기에서 끌어내려 주겠어. 금 가루가 뿌려진 따뜻한 스프가 아니라 바닥의 차가운 흙탕물을 먹게 해주겠어.'


--------------------------


아마 다음화가 마지막화가 될 것 같습니다




-For 꿈과 믿음의 바다를 헤엄치는 소년 소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솔로몬의 후예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일반연재 승급했습니다. 21.03.16 47 0 -
49 break of day 21.04.01 93 0 8쪽
» Long Night 6 21.03.26 23 0 12쪽
47 Long Night 5 21.03.23 24 0 12쪽
46 Long Night 4 21.03.19 33 0 11쪽
45 Long Night 3 21.03.15 38 0 14쪽
44 Long Night 2 21.03.14 30 0 12쪽
43 Long Night 1 21.03.13 34 0 11쪽
42 황혼의 때 21.03.12 51 0 11쪽
41 아발론의 고아들 21.03.11 23 0 11쪽
40 SORRY, I'M STRONG. 21.03.10 54 0 13쪽
39 SORRY, I'M WEAK. 21.03.09 31 0 13쪽
38 Lunatic Gate 6 19.05.10 90 0 11쪽
37 Lunatic Gate 5 19.05.10 45 0 9쪽
36 Lunatic Gate 4 19.05.10 49 0 10쪽
35 Lunatic Gate 3 19.05.10 57 0 7쪽
34 Lunatic Gate 2 19.05.10 52 0 8쪽
33 Lunatic Gate 1 19.05.10 68 0 8쪽
32 Big Arms 19.05.10 54 0 14쪽
31 로빈 후드의 우울 5 19.05.10 52 0 11쪽
30 로빈 후드의 우울 4 19.05.10 49 0 8쪽
29 로빈 후드의 우울 3 19.05.10 43 0 7쪽
28 로빈 후드의 우울 2 19.05.10 47 0 12쪽
27 로빈 후드의 우울 1 19.05.10 53 0 13쪽
26 Dogfight 2 19.05.10 49 0 7쪽
25 Dogfight 1 19.05.10 41 0 7쪽
24 행진 19.05.10 65 0 9쪽
23 모험의 시작 19.05.10 51 0 7쪽
22 대파괴 4 19.05.10 59 0 9쪽
21 대파괴 3 19.05.10 47 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