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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님의 서재입니다.

솔로몬의 후예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라이트노벨

창렉스
작품등록일 :
2019.05.09 21:16
최근연재일 :
2021.04.01 20:43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2,047
추천수 :
1
글자수 :
208,381

작성
21.03.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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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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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SORRY, I'M WEAK.

-Hello, world-




DUMMY

샬롯의 웅변이 끝나자 의사와 간호사들은 저들끼리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들리는 말에 살짝 귀를 기울이니 카리나의 이야기가 들렸다. 한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카리나 씨는 예전엔 사이랜서였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그에 한 간호사가 그렇다며 카리나가 일반인으로서 샬롯 일행에게 협력한 최초의 주민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또 다른 의사가 말하길, 예전에 이 마을에 사이랜서가 찾아왔을 때에도 카리나는 비슷한 반응이었다며, 그 사이랜서는 다른 이들의 도움은 받지 않으려 했지만, 카리나 만큼은 도와달란 말도 안 들었는데 무작정 그를 따르려 했다며 각별한 사이처럼 보였다 하였다. 그리고는 이번에도 무턱대고 이들을 도우려 하는 건 아닐까, 보안관이 그렇게 줏대가 없어서야 안 될 텐데, 하고 걱정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잠자코 듣고 있던 샬롯이 끼어들었다.


"저도 자세한 얘긴 못 들었지만, 카리나 씨는 그때 있었던 일로 인해 크게 상처를 입으셨고, 그래서 저희가 찾아왔을 때 처음엔 크게 경계를 하셨어요. 하지만 저희의 가능성을 보여드린 이후로는 저희를 도와주시게 되었어요. 분명 큰 결심을 하신 것이겠죠."


그러자 의사 하나가 그게 사실이라면 큰 결심을 하긴 했겠군, 하고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다른 의사와 간호사들도 그 말에 동의를 하는 듯했다.


샬롯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카리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선 그들이 자신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듯했지만, 지금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자 보안관의 줏대에 대해 걱정을 내비치던 의사가, 그럼 우리가 널 믿기 위해서 우리에게도 너희의 가능성을 보여달라고 샬롯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가능성······."


솔직히 샬롯은 조금 곤란했다. 그 가능성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선 하벨카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환자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했고 그걸 위해선 이들의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간부가 된 원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그렇기에 홍두건단은 누구 보다도 우리의 생명줄을 단단히 쥐고 있어. 꼬마야, 아무리 네가 도박을 잘한다 하더라도, 그 도박에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게 우리 가족, 우리 동료들의 목숨이라면 손을 내밀어 줄 순 없지."


그 의사는 샬롯을 더욱 몰아붙였다. 자기 주변에서 희생이 나는 것이 확실하다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현실에 순종하며 살아가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샬롯에게 미안해 하면서도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한 모습을 내비쳤다. 샬롯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쉬움과 초조함은 숨길 수 없었는지 입술을 연신 혀로 적셨다.


그녀는 생각했다. 상황이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까, 이대로 계속 기다린다고 폭탄이 저 혼자서 터질까? 터지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카리나와 둘이서 폭탄을 찾아야 하는 걸까? 그럼 그 동안 홀몸으로 하벨카에게 맞서고 있을 라이너는? 그가 하벨카에게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시간을 지체한다며 그가 무서운 꼴을 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설령 폭탄이 터진다고 해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무사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건물이 모조리 무너져서 더 큰 피해가 일어나진 않을까? 당장 다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사람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할 텐데? 홍두건단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보고만 있더라도 다른 병원에 자리가 있을까?


생각이 생각을 물고, 생각이 나뭇가지처럼 무수히 펼쳐져나가는 샬롯의 관자놀이에 식은 땀이 맺혔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때, 무리에서 가장 늙은 의사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가능성을 보이기 위해선 우선 우리가 협력을 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환자의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그녀가 안심하고 원장을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샬롯은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아까 속으로 했던 생각과 똑같은 말을 그가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가운의 주머니에서 기계로 된 검고 탁구공만 한 공을 꺼내, 환자들에겐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보였다.


"이게 바로 폭탄이다."


샬롯의 등에 다시 한 번 전기가 달렸다. 그렇게나 애타게 찾아해맸던 폭탄이 바로 눈 앞에 찾아온 것이었다. 늙은 의사는 병원 안으로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할 것을 제안했고, 의사들도 그의 뜻을 헤아렸는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1층 대기실, 카리나까지 무리에 낀 상태에서 늙은 의사가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원장은 이 병원의 의사들 모두에게 폭탄을 나누어주고는 때가 올 때까지 가지고 있으라 했다. 그리고 때가 오면······ 의사 한 사람이 지정한 곳에 폭탄을 두고 터뜨리라 했지. 분명 너희들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해, 환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다시 들어오면 그제서야 터트릴 것을 지시했을 거야."


"환자가 들어오면 터트린다고요?"


샬롯은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고 의사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모두는 자물쇠라도 채워진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으며 표정 또한 석회처럼 딱딱히 굳어 있었다.


샬롯은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이들 또한 홍두건단을 두려워 하여 자신과 싸쥬를 비난한 리포드 주민들과 다를 바 없었다. 겁쟁이 같은 사람들, 샬롯은 이들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늙은 의사의 말이 끊었다.


"우릴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아무리 주변 사람을 지키고 싶어도 그렇지, 의사가 환자에게 위해를 끼친다니 말이야."


늙은 의사는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바깥에 쌀알처럼 바글바글 모여 있는 환자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외과의인데, 내가 담당하는 환자들 중에 네 또래 아이를 아들로 가진 여성 환자가 있다. 그리고 아이는 매일 같이 와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지. 지금 그 아이에겐 어머니가 유일한 가족이야. 그는 어머니가 다쳐서 입원하게 된 것에 대해 크게 상심하고 있어."


그는 눈을 감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한숨 소리엔 미세한 떨림이 담겨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는 커녕 폭탄으로 산산조각 내버릴 뻔했다. 우리는 의사다. 지켜야 할 것은 우리의 가족 뿐만이 아니야. 환자들을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닌 치료해주는 것이 본래 우리의 사명이다. 홍두건단을 두려워한 탓에 지금껏 그걸 잊고 살았지."


그렇지 않은가? 모두들, 하고 말하며 늙은 의사가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지만 표정은 점차 누그러지고 있었다.


"이들의 힘과 선량함을 믿어보자. 그 동안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다. 폭탄 따위는 버리고 말이다."


늙은 의사는 자신의 신념을 샬롯 일행에게 조심스레 내밀어 보였다. 두려움에 억압받아 지하 감옥에 가두어진 그의 진실된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뿜은 양심의 빛은 열쇠가 되어, 다른 의사들의 마음속에 있던 감옥의 문들도 열어젖혔다. 비록 얼굴로 잘 들어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샬롯의 말에 토를 달 생각은 없어 보였다.


"버리라곤 했지만 이런 위험한 물건을 버릴 곳도 없으니 당분간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게 좋겠군. 샬롯 양, 우릴 믿어줄 수 있겠지?"


늙은 의사의 말을 들은 샬롯은 혹여나 하는 마음에 미세하게 움찔거렸지만, 그들이 자신을 믿어주기로 했으니 자신도 그들을 믿어주는 것이 도리였다. 샬롯은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환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을 테니 샬롯 양은 가능성이란 걸 보여줘."


늙은 의사의 말과 함께 모든 의사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분위기는 조금이나마 누그러지고 샬롯은 오늘 처음으로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었다.


"샬롯."


카리나의 목소리에 바늘에 찔린 듯 화들짝 놀라는 샬롯.


"아직 안심하지마. 폭탄 가진 의사들 뒤에서 감시하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엔 아직도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샬롯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수라장을 지나온 그녀에게는 아직도 시원찮은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샬롯은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며 아직 긴장을 놓을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병실로 들어간 늙은 의사의 뒤를 따랐다.


이후 환자와 보호자들을 다시 들이고, 그들 역시 본래 자신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제서야 병원은 병원으로서의 모습을 온전히 되찾을 수 있었다. 아직 폭탄이 해체되지 않았다는 긴장감은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불신에 불신이 얽히던 괴로운 상황은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샬롯은 자신의 몸뚱이와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그녀도 여기까지 오기까지 거의 쉬지 않았고, 몇 번이나 싸움을 해왔다. 사이랜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소녀 입장에선 이 정도만 해도 차고 넘칠 정도로 괴물 수준이었다.


살롯 너 잘했어. 그 정도면 분에 넘칠 정도로 잘했어.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북돋았다. 한낱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녀에다, 옛날엔 오빠라는 이름의 쓰레기에게 심한 괴롭힘도 받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당당히 서있다. 자신의 힘으로 모두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가 대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원장을 어떤 식으로 쳐부술까 고민을 해야할 때였다. 그녀는 잠시 병원에 대한 일들을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원장의 얼굴을 어떻게 피떡으로 만들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크으아아악!'


백열등을 두 눈 앞에 들이댄 것같이 환한 빛이었다. 두 눈이 아릴 정도의 환함과, 온 몸이 저릴 정도의 고통. 그리고 무언가가 자신을 번쩍 들어다 던져 벽에다 처박아 버리는 괴력.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폭음.


샬롯은 머리가 어질거렸고, 소리가 온통 아득했다. 눈 앞은 희뿌연 것으로 온통 채워져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한 이해는 수 초도 걸리지 않았다.


폭탄이 터져 버린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의사들은 폭탄을 터트리지 않겠다 했는데,


내가 딴 생각을 한 탓에 터진 건가?


말도 안 돼, 나 때문에 사람이 터져 죽은 거야?


라이너와 카리나 씨의 낮짝을 어떻게 보지? 다른 환자들은? 죽은 환자의 가족들은?


어째서? 어떻게? 왜? 수많은 의문들이 샬롯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쳤다. 이제껏 믿어왔던 솔로몬도 지금 이 순간에는 침묵했다. 하지만 샬롯은 그런 사실 조차 신경쓰지 못 할 정도로 패닉에 빠져 있었다.


"엄마!"


그런 샬롯의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한 남자 아이의 외침이었다. 두 손 가득 카네이션 다발을 품은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샬롯의 곁으로 온 것이다.


"안 돼! 오지 마!"


반사적인 외침과 움직임이었다. 샬롯은 소년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려 현장을 보지 못하게 했다. 소년은 무슨 일이냐며,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며 급하게 외쳤다.


"자동 소화 시스템 기동."


회색의 기계음이 원내에 울려퍼지고, 회색의 격벽이 내려와 병실을 막았다. 그리고 격벽 안 쪽에서부터 치익 하고 소화액을 뿌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에요? 뭐에요 저거?"


"일단 밖으로 나가자."


샬롯이 아이의 팔을 잡아 끌려 했지만 소년은 팔이 뜯긴 것처럼 소리지르며 놓으라고 외쳐댔다. 샬롯은 아이를 품에 껴안았다. 그녀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었다. 그녀는 그 상태로 아이를 끌고 대기실로 향했다. 물론 아이의 놓으라는 외침은 사이렌처럼 계속되었다.


그러다 문득 소년이 들고 있던 카네이션 다발에 꽃힌 쪽지를 발견한 샬롯.


'엄마에게 토미가'


분명 이 토미라는 소년이 엄마를 위해 쓴 쪽지이리라.


토미, 옛날에 무척이나 친하게 지냈지만 케빈이 찢어 버린 그 소년과 같은 이름. 샬롯은 그를 지켜주지 못 했기에 오늘날 이곳에 있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 또 한 번, 토미를 지켜주지 못 했다.


"미안, 미안."


미안해, 미안, 미안. 지켜주지 못 해 미안해. 샬롯은 그 말만을 소년의 귀에다 읊조렸다.


"토미, 미안해. 토미······."




-For 꿈과 믿음의 바다를 헤엄치는 소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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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break of day 21.04.01 93 0 8쪽
48 Long Night 6 21.03.26 22 0 12쪽
47 Long Night 5 21.03.23 23 0 12쪽
46 Long Night 4 21.03.19 33 0 11쪽
45 Long Night 3 21.03.15 38 0 14쪽
44 Long Night 2 21.03.14 30 0 12쪽
43 Long Night 1 21.03.13 33 0 11쪽
42 황혼의 때 21.03.12 51 0 11쪽
41 아발론의 고아들 21.03.11 23 0 11쪽
40 SORRY, I'M STRONG. 21.03.10 54 0 13쪽
» SORRY, I'M WEAK. 21.03.09 31 0 13쪽
38 Lunatic Gate 6 19.05.10 89 0 11쪽
37 Lunatic Gate 5 19.05.10 45 0 9쪽
36 Lunatic Gate 4 19.05.10 48 0 10쪽
35 Lunatic Gate 3 19.05.10 57 0 7쪽
34 Lunatic Gate 2 19.05.10 52 0 8쪽
33 Lunatic Gate 1 19.05.10 68 0 8쪽
32 Big Arms 19.05.10 54 0 14쪽
31 로빈 후드의 우울 5 19.05.10 52 0 11쪽
30 로빈 후드의 우울 4 19.05.10 48 0 8쪽
29 로빈 후드의 우울 3 19.05.10 43 0 7쪽
28 로빈 후드의 우울 2 19.05.10 47 0 12쪽
27 로빈 후드의 우울 1 19.05.10 53 0 13쪽
26 Dogfight 2 19.05.10 49 0 7쪽
25 Dogfight 1 19.05.10 41 0 7쪽
24 행진 19.05.10 65 0 9쪽
23 모험의 시작 19.05.10 51 0 7쪽
22 대파괴 4 19.05.10 59 0 9쪽
21 대파괴 3 19.05.10 46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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