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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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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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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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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5

DUMMY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산적 두목은 미친놈 보듯 샬릭을 쳐다봤다.


“그래, 그럼 조심히 올라가시오. 하기야 산을 넘으려면 올라가긴 해야지.”


올라가든 내려가든 간에 여길 떠난다는 건 똑같다. 저 정신 나간 놈이 여길 떠나기만 한다면 잠깐의 짜증이 충분히 참아줄 수 있다.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 몸을 돌려 산채를 떠났다. 제리얀이 그 뒤를 따르며 속삭이듯 물었다.


“일단 물러났다가 적당한 때를 기다려 습격하는 거지? 네 성격이라면 당장 칼부림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중하게 구네?”


샬릭이 뭔 소리를 하냐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습격한다니, 내가 왜? 이미 원하는 걸 얻어냈는데 저 친구들을 또 괴롭히라고? 과연 요정이나 할 법한 생각이로군.”


마침 산채를 완전히 빠져나온 참이었기에 제리얀은 참지 않고 소리쳤다.


“그게 뭔 개소리야! 방금 그 사람들 봤잖아? 산적 두목 놈은 자기네한테 몸을 의탁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그건 딱 봐도 개소리야. 다들 겁먹은 얼굴이었다고. 게다가 그 무리에는 젊은 남자가 없었어. 죄다 여자와 아이뿐이었는데 그게 뭘 의미하는지야 뻔하잖아.”


“그러니까 지금 넌 그 산적 놈들이 어느 마을을 약탈하고 남자들은 죄 죽인 다음에 여자와 아이들만 데려왔으리라 말하는 건가?”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거야?”


“아니, 아마 네 생각이 맞을걸. 젊은 남자들이 데리고 와봤자 괜히 반항이나 할 테니 살려둘 필요가 없었을 테고 여자와 아이는 어디든 써먹을 데가 있으니 데려왔겠지. 어쩌면 인신매매를 하려는 걸지도 모르겠군. 요즘 세상엔 흔한 일이잖나.”


“그걸 알면서도 그냥 간다고?”


샬릭이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럼 내가 저들을 구해야 하나?”


그래야 하지 않나? 너무나 뻔뻔하게 묻는 탓에 제리얀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물론 꽉 쥔 주먹을 샬릭에게 휘두를 용기는 없다. 만약 주먹을 휘둘러야 한다면 그건 샬릭이 아니라······.


“안 하는 걸 추천하지.”


샬릭의 나직한 목소리에 제리얀이 화들짝 놀랐다. 설마 내가 자길 때리려고 한다고 오해했나?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제리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네가 하려는 짓.”


생각해보니 이런 대화를 전에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는 제리얀이 샬릭을 말리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반대가 됐다.


“혼자서라도 사람들을 구하러 가겠다느니 그런 바보 같은 짓 하지 말라고. 넌 마법은 잘 써도 약간 멍청한 구석이 있어서 혼자 가봤자 분명 붙잡힐걸. 내가 널 구하러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왜 답답하게 끌려다니냐고 욕해. 그러니까 그러지 마.”


제리얀이 입술을 더욱 세게 깨물었다. 전과 같은 상황이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샬릭은 제리얀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람들을 구해냈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샬릭은 그럴 만한 힘이 있지만 자신은 그럴 만한 힘이 없으니까.


오로지 힘의 논리만이 통하는 시대다.


“세상을 떠돌다 보면 저런 광경을 자주 보게 될 테지. 그때마다 끼어들어서 다 구해낼 것 아니면 괜히 나서지 마. 너만 힘들어.”


제리얀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고 기억하지.”


“그래. 너무 기죽어 있지 말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어쩌면 저 산적들이 마을을 약탈한 게 아니라 진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걸지도 모르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요즘 시대에는 산적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게 더 안전할걸. 적어도 저 친구들은 무장했잖나.”


지금 저걸 위로랍시고 하는 걸까? 제리얀은 어이가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저물어 갔다. 산속은 본래 해가 빨리 저무는 법이므로 오늘은 여기까지만 가고 야영을 준비하기로 했다.


제리얀이 땔감을 모아와 불을 붙였다. 아까 산적 두목에게서 받아낸 식량을 확인하니 빵이나 고기 따위가 제법 많았다.


개중에는 염장 고기가 아니라 방금 도축한 고기도 있었으므로 그것부터 먹기로 했다. 대충 나뭇가지에 고기를 꽂아 굽고 있으니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늘 저녁은 고기인가? 오랜만에 먹는군.”


주변을 둘러보겠다며 떠났던 샬릭이 수통에 물을 채워 돌아왔다. 아마 근처에 개울이 있었던 모양이다.


제리얀은 샬릭이 건넨 수통의 뚜껑을 열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얼굴이 우울했다.


“얼굴이 죽상이네. 사람이 웃고 살아야지. 한 대 때리기 전에 좀 웃어.”


제리얀이 빙긋 웃었다.


“······아니, 이게 아니야.”


“아니, 그게 맞아. 괜한 생각 그만하고 그냥 웃고 있어.”


“이래선 안 되는 게 맞아. 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할 힘이 있는데 그냥 떠났지. 그건 옳지 않은 일이야.”


샬릭이 나뭇가지를 뚝 부러트려 모닥불 속에 던지며 말했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할 힘이 있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그래, 명확한 지적 고맙다.”


제리얀이 기어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가야겠어.”


“그러지 말라니까.”


“샬릭, 네가 도덕적 관념이 부족하다는 건 알겠다. 그래도 내게 힘을 보태줄 수는 없어?”


“그 친구들이 잡아 온 사람들을 용에게 제물로 바치기라도 하는 게 아니고서야 그럴 순 없겠는데.”


하여튼 이 미치광이 용 사냥꾼 같으니라고. 용이 관련된 일이면 알아서 나서는 주제에 용과 상관없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제리얀은 후 하고 한숨을 내뱉더니 왔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갈 때 가더라도 식사는 하고 가지 그러냐. 배가 든든해야 싸움도 잘해.”


샬릭이 잘 익은 고깃덩어리를 내밀었다. 사실 제리얀도 몹시 허기진 상태였으므로 그 호의를 거절하긴 어려웠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기를 찢어 입으로 삼켰다. 기름진 맛이 식욕을 돋구었으나 오래 먹고 있을 순 없었다.


지금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잡혀 온 사람들이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지 않는가. 제리얀이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샬릭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 도와주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제리얀은 그를 비난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내심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만약 그 사람들을 구하는데 성공했다고 치자. 그럼 그 뒤엔 어떻게 할지 생각해뒀나?”


샬릭의 질문에 제리얀이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을 구하고 난 뒤? 당연히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디로 보내야 하나? 원래 있던 마을이야 약탈로 쑥대밭이 됐을 텐데. 다른 마을에 보내려고 해도 이만한 숫자를 받아줄 마음씨 착한 곳이 있을까?


만약 있다고 해도 그들을 거기까지 안전하게 데려갈 자신은 있나? 생각을 거듭하던 제리얀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졌다.


샬릭이 말했다.


“착한 척하는 건 쉽다. 그러나 끝까지 책임지는 건 어렵지. 요즘 세상에는 특히 더 그래. 내가 그래서 그만두라고 한 거야. 착한 척하는 자신에게 취하는 것만큼 추한 일도 없어.”


제리얀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쥔 채로 고민하다가 결국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해야지.”


“그래? 그럼 수고해라. 난 잘 테니까 혹시나 가던 중에 생각 바뀌면 돌아오고.”


제리얀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결심을 굳혔다. 혼자서라도 해야지. 외면하는 건 간단하지만 그래서야 안 된다.


그가 혼자서라도 산채로 돌아가기 위해 한 발자국 내딛을 때였다. 갑자기 머리 위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밤이고, 산속이니 바람이 부는 거야 이상하지 않지만 순간적으로 머리 위가 어두워졌다. 지금은 밤이긴 해도 달이 밝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저 위에 뭔가 있었다. 거대한 덩치에 한 쌍의 날개를 펄럭이고 있고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이는 존재.


“저게 뭔······.”


온갖 괴물이 다 설치고 다니는 세상이니 저런 존재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다만 문제는 그 무시무시하게 생긴 존재가 이쪽을 내려다 보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천천히 하강하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기까지 하다.


“샬릭, 샬릭!”


“뭐야, 벌써 갔다 왔나? 아니면 애초에 안 간 건가?”


정말 그새 잠에 빠졌는지 샬릭은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제리얀은 그의 투구를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하늘을 봐! 하늘!”


“잘 자고 있었는데 왜 이래? 갑자기 별자리 찾기에 관심이 생겼어? 하늘은 또 왜······.”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던 샬릭이 입을 다물었다. 그가 보기에도 영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식사를 하러 가던 중에 뭔가 불빛이 보이길래 내려와 봤더니.”


정체 모를 존재가 기어코 지상에 착지했다. 그는 두 발로 선 거인의 형상에 염소 머리를 가진 괴물이었는데 그제야 그 정체를 알 것만 같았다.


악마다. 지옥이니 연옥이니 하는 곳에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존재가 아니라 생물로서 이 땅에 존재하는 괴물이다.


“이런 곳에 먹을 게 떨어져 있을 줄은 몰랐군. 본격적인 식사를 하기 전에 입맛을 돋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악마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이 몹시 기괴해서 제리얀이 저도 모르게 윽 소리를 냈다.


“식사라니? 식사라면 혹시 산적 놈들한테 가는 거냐?”


제리얀의 질문에 악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인가. 살이 야들야들해서 맛이 괜찮지. 산적 놈들한테 가는 거냐고? 그래, 맞아. 놈들은 날 위해서 식사를 준비해두지. 대신 난 그들을 지켜주고.”


산적 놈들이 어떻게 그리 크게 세력을 키웠나 했더니 악마의 비호가 있었나. 제리얀이 두 주먹을 불끈 쥘 때였다.


“뭐야, 이놈은?”


샬릭의 목소리에 악마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건 먹기에 좀 딱딱해 보이는데. 구이로 먹어야겠군.”


“내가 잠이 덜 깨서 그런지 헛것이 보이나?”


샬릭이 투구 위로 눈 비비는 흉내를 냈다. 그걸 본 악마가 껄껄 웃었다.


“겁을 먹고 정신이 나가버린 모양이군. 하기야 그럴 만한 일이지. 나는 그 무시무시한 악······.”


“이건 용인가?”


갑자기 뭔 뜬금없는 소리지? 악마는 물론이고 제리얀도 당황해서 말했다.


“샬릭? 진짜 잠이 덜 깬 거야? 저건 용이 아니야. 악마라고.”


“용이 아니라고? 그럼 곤란한데.”


용이 아닌 게 왜 곤란하나? 오히려 저게 진짜 용인 게 더 곤란한 상황인데.


제리얀의 의문에 샬릭이 답했다.


“난 용 사냥꾼이라서 용 말고는 죽이면 안 되는데, 저놈이 용이 아니라면 죽일 수가 없잖아.”


언제부터 그런 규칙이 있었다고? 제리얀이 알기로 당장 몇 시간 전에도 돈 때문에 산적들을 죽이지 않았나.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는 와중에 샬릭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 이렇게 하자. 내가 보니 너는 덩치가 크군, 용처럼 말이야. 날개도 있고, 눈에서 안광도 번쩍거리는 데다가 날카로운 이빨도 무시무시해. 그럼 넌 사실상 용이 아닌가?”


그게 뭔 개소리인가? 제리얀은 물론이고 악마도 당황했다.


“이거 정신 나간 놈인가? 내가 왜 용이야? 나는 악마다! 이 일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악마 군주로서······.”


“넌 정체를 숨긴 용이 아닌가? 악마인 척하면서 날 속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역시나 정체를 숨긴 용이었나? 이 간악한 놈. 더는 두고 볼 수 없군.”


악마는 정말 미치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내가 왜 용이냐? 애초에 내가 정체를 숨긴 용이라는 증거가 있나?”


“있지, 증거.”


있다고? 악마가 어이없어 하는 사이에 샬릭이 당당히 말했다.


“너는 용인데, 변신으로 본모습을 숨기고 있잖아. 네가 용이 아니라면 용으로 변신해봐!”


악마가 탄식했다. 미친놈에게 잘못 걸린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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