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어느 외딴 바다에 섬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섬에는 아무도 살지 않지만, 맛있는 과일과 각종 기화요초가 만발한 아주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섬에 어느날 밤 빛이 하나 내려왔습니다.
그 빛의 정체는 지구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금속발광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빛이 땅에 닿자,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한 외계인들이 내렸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들은 저 먼 우주를 건너온 지구외 문명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 무인도에 착륙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태양계를 지나던 우주선의 고장으로 가장 생태환경이 좋은 지구까지 간신히 불시착 한 것이죠, 물론 뛰어난 과학력으로 불시착의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그들은 동족들의 구원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작지 않은 우주선 크기로 인해 그들은 100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었지만, 섬의 풍족한 과일등은 그들이 먹고지내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단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구원요청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였지요.
고장난 동력장치로는 저 멀리 있는 자신의 별이나 가장 가까운 하이퍼게이트(주:공간이동장치)로 구조신호를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원시적인 수단에 기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신상에 염원을 모아서 차크라펄스를 보내는 방법입니다.
이 펄스는 때로는 매우 강력하여, 지구인들에게 퀘이서라는 이상천체로 비추어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인류보다 한 단계 진화했다는 명백한 영적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상을 조각하여 제사를 지내고 염원을 모으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조각을 해본사람이 한 명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조각의 재주를 가진 사람을 뽑을 수는 있었지만 10명이 채 안되었습니다. 간신히 채운 10명이 수백명분의 신상을 조각할 수 있어야 했지요. 신과의 영적채널을 열기위한 그 신상,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그들은 신상을 그저 신과 통하기 위한 게이트 정도로 여겼는데요, 그래서 그들의 신의 이름과는 별도로 신상을 '모아이' 라고 불렀습니다.
모아이가 얼마나 그럴듯한가에 따라서 그 효율이 좌우됩니다. 그들의 희노애락을 긍정적에너지로 전환해주어, 여러 영적 승화가 가능하게 해주는 이 전통적인 봉신(封神)방법은, 그 궁극의 목적인 신과의 채널을 통해서 영적교감을 일으키게 되며, 자신의 고향과의 수백만광년의 거리는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가망있을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자신의 별에서도 모아이를 조각하는 것이 임무였던 조각가는 충분히 아름답고 힘이 넘치는 모아이를 조각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홉명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조각하는 손재주는 있었지만, 문제는 모아이의 크기였습니다.
10미터이상으로 거대한 모아이는 조각에 매달린 사람으로선 모양을 확인해가며 조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전업 조각가였던 사람 한명 뿐이었죠.
한 명이 수백개를 조각하려면 늙어 죽을 것이고, 다른 아홉명이 그사람 만큼 잘하지는 못해도 조각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 방법이란, 다른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 아홉명의 조각을 멀리서 봐주면서 잘못된 점을 소리쳐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조각가에게 '모아이'를 받고 싶어 했습니다. 접신의 단계에 좀더 쉽게 올라갈 수 있는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지요. 그의 칼질 하나하나엔 현기가 어려 있었으며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구경꾼들은 그저 칭찬만 열심히 하면 되었습니다.
다른 아홉명의 조각가의 뒤에 줄을 서서, 응원하고, 잘못된점을 지적해주고, 그들이 숙련된 조각가가 될 수 있도록 애써주는 사람은 갈 수록 줄어들었습니다. 그들의 조각을 보는 것은 재미없었습니다. 전업 조각가에 비해서 너무나 어설펐고, 기운이 빠졌습니다. 물론 구경꾼들에게 맏기면 더 조각을 못했겠지만, 그들이 조각을 보는 눈조차 없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중에 가장 괴발개발로 모아이를 조각하던 한 조각가가 조각을 포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응원하던 사람도 지쳐서 사라지자, 더이상 자신의 조각을 평해줄 구경꾼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0미터나 되는 조각상에 붙어서 조각하면서 전체적인 균형을 맞출 실력을 미처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작업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구경꾼 중에는, 자신이 잘생긴 모아이를 받는다 해도, 전체가 모아이를 받아서 접신을 이루지 않는 이상, 모성(母星)에 도달하는 에너지로는 어림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더 쉽게 마치기 위해서 잘생긴 모아이를 받기 위한 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업 조각가의 뒤에 수백명의 줄이 이어졌습니다.
어쩌다 다른 조각가들도 굉장한 모아이를 만들어 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몇사람이 그 조각가의 뒤에 줄을 서서 응원하기도 했습니다만, 곧 시들해지거나, 좋은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줄을 서거나, 조언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한 번쯤 좋은 모아이를 만들어 보았던 조각가들 조차도, 새로운 모아이를 조각할 때는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초반에 형태를 잡는 것이 제일 중요한 모아이 조각에 있어서, 또 다시 좋은 모아이를 조각하기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멀리서 보고 형태를 조언해주는 사람이 부족하니 재능이 있는 사람들 조차도 갈수록 지쳐만 갔습니다.
다른 조각가들이 외면당하고, 작업을 포기하거나, 못생긴 모아이를 생산해놓고 고민에 빠지는 일이 빈번해지자, 유일한 전업 조각가는 더 바빠졌습니다. 동료들의 모아이도 봐주어야 하고, 자신은 더욱 많은 모아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작업이 많아지자, 이제는 몸이 병이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구경꾼 중 일부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이곳에서 과일을 먹으며 살겠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우주선에서 태어났거나 이 섬에 불시착 한 후 태어난 어린 소년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겐 그 섬이 그들이 밟은 유일한 육지이며, 제 2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참다 못한 전업 조각가가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조각하는 모아이는 왜 안봐주시나요?"
군중의 누군가가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들 조각하는 것은 재미 없어요. 특히 빈 돌에 조각을 시작할 때는 말이죠, 조각이 어느정도 진척되면 보러가죠."
선심쓰듯 말하는 그 한 마디에 전업 조각가가 휘청거렸습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들의 조각을 봐주지 않으면, 우리의 모아이 조각 프로젝트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저 혼자서 수백개의 조각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또 다른 군중이 말했습니다.
"그사람의 조각이 재미있다면 보러 갈꺼에요, 조각가님처럼 신명나는 칼질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책임 아닌가요? 우리는 원하는 조각가님 뒤에 줄을 설 권리가 있어요!"
그 사람의 말도 맞았습니다. 누구는 잘생긴 조각을 받고, 누구는 못생긴 조각을 받으라는 법은 없었습니다. 전체를 위해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모아이가 없다 해서 그들이 죽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이 낙원 같은 섬에서 과일 따먹고 잘 살면 되었습니다.
특별히 돈을 받고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닌 열명의 조각가는 속이 상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조각경험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그래서 모성으로 돌아간다면 큰 돈벌이를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자신들은 그들에게 공짜로 모아이를 조각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수구초심(고향에 돌아가고싶은 마음)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전력투구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그 조각가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소리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리고 그 군중들의 이야기는 모아이 프로젝트가 망해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 없다 생각하는 2세대 소년소녀 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모아이의 목적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접신을 하는 도구로서 모아이를 갖고 싶어 했지요. 그리고 그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전업 조각가의 뒤에 줄을 섭니다. 심지어는 조각을 잘 못하는 나머지 아홉 조각가들에게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저런 개념없는 쓰레기나 만드니까 누가 줄을 서냐? 좀 잘해보던가?"
답답합니다. 누구는 처음부터 조각 잘합니까? 열심히 하다보면 분명히 잘 하는 날이 있을 것 아닙니까? 혹자는 실력만큼 대우받는 것이라 말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다간 자신들의 희망이 사라져 버리겠 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몇 사람들에게 호소를 합니다.
"조각가들을 도와줍시다, 돈드는거 아니지 않습니까? 뒤에가서 전체가 잘 조각되어 가는지 조언해줍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개인적인 친분의 조각가들을 찾아가 조언해주는 것 만으로도 바빴습니다. 사람들을 계도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오히려 큰 소리 내면서 사람들을 선동하는 시간이 남아도는 것은, 굳이 모성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모아이프로젝트'는 망해도 상관없는 삶의 조그만 부분중의 하나였습니다.
섬에서 대부분 귀에 들려오는 이야기는, 개인의 시간관계상, '조언을 받고 싶으면 먼저 조각을 잘해라, 니들이 반성하는게 먼저다' 라는 목소리가 만연 했습니다. 일견 옳을 수도 있는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모아이프로젝트'에 애착이 있다면 그래선 다 같이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 전체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이는 몇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했던 이들 조차, 어찌해야 우매한 군중들에게 그것을 전달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중 한사람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호소문이었지요. 재미있게 쓰고 싶었습니다. 재미가 모성에 돌아가는 것보다 우선인 이사람들은 재미있지 않으면 글도 읽으려 들지 않을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이야기에 빗대어 우화를 만들었습니다. 지구에서 '이솝우화' 라고 불리는 부류와 비슷한 이야기 였습니다.
그는 이 우화에 '모아이프로젝트'에 대한 사랑을 담고 염원을 심어서 만들었습니다. 모성에 돌아가게 될 날을 꿈꾸면서 말이죠.
어떻습니까? 이들은 결국 안드로메다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 * *
에필로그
네덜란드 탐험가인 J.로게벤이 1722년 부활절(Easter day)에 이 섬을 발견하였는데, 이 섬엔 아무도 살지 않고 10m크기의 거대석상들만이 덩그러니 여기저기 놓여 있었습니다. 그 중 미공개석판에 발견된 그들의 문자엔 이런 말이 써있었다 합니다.
"2세대들이 조각가들을 비난할 때 쓴 '개념은 안드로메다에 두고왔냐' 였다고 한다."
ps. 그 고민하는 조각가들은 누구일까요?
ps2. 현대에 이스터섬이라 불리게 된 이 섬의 2세대들은 누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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