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쟁이 뱀파이어와 채식주의자 구미호, 연예인에게 반한 마법사, 난독증인 늑대인간에 조폭두목 엘프, 각선미를 뽐내는 팔등신 인어까지 뒤섞여 살아가고 있는 요지경 같은 세상. 그 속에서 경찰청 이족(異族)전담반 오드비 형사는 오늘도 헌혈팩으로 목을 축이며 사건 속으로 뛰어들어 갑니다.
요즘처럼 고무림에 와서 간편하게 선호작품 글씨를 클릭하기 전에는, 삼대통신사의 VT서비스망에 접속해 시시각각 오르는 전화요금과 경쟁하며 빠른 손놀림으로 연재게시판을 글들을 갈무리해서 아껴보곤 했지요.
그시절 무협이나 판타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던 것이 오컬트물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이 부류의 소설들은 다루고 있는 직접적인 소재가 얼만큼 흥미로운 것인가 하는 기대보다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는 일이 많았지요.
오컬트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이족전담반이지만, 글을 읽으면서 퇴마록이나 효연철학원 같은 그시절의 소설들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에게 홀려버리는 멋진 경험을 오랜만에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보네요.
서로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쌓여가고, 쌓아놓은 이야기들이 더 큰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들 속에서 열심히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등장인물들에게 매료당해 새삼 반하고 새삼 미워지고 새삼 안타까워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싫지 않은, 소설이 주는 정말 큰 선물의 하나 같아요.
이족전담반의 세계관은 독특하지만, 구조나 발상이라는 면에서는 좋은 의미로 전형적이라면 아주 전형적일 수 있는(팔구십년대 몇몇 왜국 소년지류 장편만화를 재미있게 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더욱) 글이라서 분량이 많아도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네요. 다루고 있는 주소재는 생각해볼만한 것이지만, 골치아프게 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연기하고 있으니 어려운걸 싫어하는 저에게도 안성맞춤이구요.
장르소설을 펼친 독자분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함정이 초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경쾌하게 진도를 뽑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함정이란 다른게 아니라, 일인칭이면서도 글의 시작부분에 시점이 짧은 호흡으로 이리저리 옮겨지는 것인데요. 이후의 내용까지 읽어간다면 그 이유가 나름대로 납득이 가긴 하지만, 온라인 연재물을 접하는 독자로서는 서두 몇편의 속독만으로는 좀처럼 느낌('필이 온다'고 하죠 아마 ^^;)이 오지 않는지라 자칫 난해하거나 산만하게 생각될수도 있겠다 싶네요. 초반탈락자가 많아서 좋은 작품을 묵혀두고도 많은 분들이 접하지 않는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 사족을 남깁니다.
저를 무려 일주일간 잠잘 시간을 줄여가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이족전담반! 여유있게 긴 이야기를 즐기시려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적절한 가오(?)와 적절한 유머가 있는 이야기. 게다가 초 성실연재와 초초 많은 분량은, 본격적으로 구미가 당기기 시작한 저와 같은 분들에겐 정말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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