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감정을 뜻하는 단어는 으레 그 반대의 의미를 다루는 단어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언제나 당연하게 이루어져온 진리 중 하나입니다. 사랑과 증오, 미움과 용서, 분노와 냉정, 이성과 감정.
모든 감정은 언제나 그 의미 뒤에 숨겨진 정 반대를 지향합니다. 본래 극과 극은 통한다는 허섭스레기같이 널려진 말은 그렇게 널려진 만큼 당연할 수 밖에 없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한 가지의 감정만을 밖으로 드러내며 살아갑니다.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란 없을 테지요. 사랑, 분노, 증오, 미움, 용서, 냉정, 그 외의 모든 다양한 감정은 서로 뒤섞이면서도 동시에 뚜렷이 갈려진 모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증오와 동시에 사랑을 말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미움과 동시에 용서를 말하는 이도 많지 않습니다. 분노와 동시에 냉정을 표하는 이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 당연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 단 하나의 감정으로 살아가기에는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이 너무도 복잡하니까요. 사랑하면서도 증오할 수 있고, 미워하면서도 용서할 수 있고, 분노하면서도 냉정할 수 있으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도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게 되는 이 현실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감정만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서로 가까울 수 없는 감정들은 결국 부딫혀 하나가 됩니다. 사랑과 증오는 같은 대상을 바라보게 하는 감정입니다. 미움과 용서 역시 같은 대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분노와 냉정이야말로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대상을 향한 감정이 됩니다.
제가 위에 서술한 모든 감정은 결국 누군가를 향한, 다른 이를 향한 목적어가 됩니다. 동시에 그것은 서술어가 됩니다.
근대 문학에서의 어떤 주인공은 설렁탕을 사 왔는데도 먹지 못하는 부인을 보며 눈물을 흩뿌립니다. 울며 외칩니다. '왜 먹지를 못하니.' 그것은 단순히 먹지 못하는 부인을 책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책하며 동시에 먹지 못하게 된 부인이 있는 이 현실을 책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의 하루 온 종일을 책하게 됩니다. 그 반어적인 표현에 담긴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입니까? 아내의 아픔을 모른 척한 자신에 대한 미움입니까? 결국 맞닥뜨린 무력한 현실에 대한 슬픔입니까? 이 현실을 만들어내게 된 모든 이들에 대한 분노입니까?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감정입니다. 누군가를 증오하면서도 용서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감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야말로 분명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일 것입니다. 지금 이 추천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처럼 말입니다.
라는 글과는 그리 관계가 없을지도모르지만이상하게자꾸신경이쓰이는듯하면서도결과적으로별로이글이감상에도움이되지않는데도자꾸눈이가게되는 글.
마왕부활추진대를 강력 추천합니다.
덧 1. 그러고보니 감상란에서 카이첼님 작품 외의 작품을 추천하는 것은 처음이네요. 그만큼 재미있는 글입니다.
덧2. 위의 글이 부담스러우신 분은 그리 자세히 읽지 않으셔도 상관없으며, 상기 글은 한잔 하고 들어온 필자가 작가님의 새 글을 본 감격에 겨워 즉흥적으로 남긴 글에 불과함을 미리 밝힙니다.(다 써놓고 미리는 뭔 놈의 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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