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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광님의 서재입니다.

강시사로(殭屍死路)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중·단편

박무광
작품등록일 :
2015.08.22 04:54
최근연재일 :
2016.08.12 06:4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8,649
추천수 :
453
글자수 :
100,379

작성
16.04.16 12:36
조회
656
추천
18
글자
9쪽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노애怒哀

DUMMY

“괜찮겠나?”

강찬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모산으로 갈 생각이라면 굳이 내가 시선을 끄는 쪽보다는 진강鎭江까지 가는 편이 나을 텐데.”

이건은 거절의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강찬은 개운치 않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그 나름대로 계획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물러났다.

“그럼 작별이군.”

“감사했습니다.”

“고맙다.”

강찬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배를 몰고 사라졌다. 강찬은 이대로 배를 더 몰아 진강을 거쳐 홍택호로 갈 예정이었다. 이건과 진을 내려준 곳은 남경南京. 목적지인 모산과는 백오십 리(6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여기서 모산까지는 부지런히 걸으면 이틀, 넉넉 잡으면 나흘 거리다.

“가자.”

이건은 진의 남은 한팔을 어깨에 걸쳐서 부축했다. 배를 타고 장강을 내려가는 중에 진은 정신을 차렸지만 몸은 예전만 못했다. 절대지경의 고수조차 버거워 하던 혈원강시의 위용은 없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병색만 남았다.

이젠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피를 섭취하지 않고 만신창이가 된 몸도 한 몫했지만 혼마가 격발시킨 주술의 영향이 더 컸다.

진은 거부하지 않고 이건의 부축을 받아 남경에 들어섰다. 과연 강소성의 성도답게 화려함을 자랑했다. 곧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날이 춥지 않아 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특이하다 못해 괴이한 이건과 진의 모습을 보고 한번씩 눈길을 줬다. 딱 보아도 당장 쓰러질 것만 같은 병신과 사지 멀쩡한 청년이 함께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했다.

“괜찮아?”

쏟아지는 시선에 이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다.”

진은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뛰노는 아이들, 값을 흥정하는 아낙네와 상인, 객점을 드나드는 보부상, 길바닥에 나앉아 구걸하는 거지까지 그 모든 것들을 눈에 담았다. 이전에는 이건이 그토록 보여주려 했어도 보지 않던 모습을 하나, 하나 천천히 뜯어보았다.

‘사람답게 죽으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자네는 사람인가?’

노승이 해주었던 말을 잊지 않았다.

비록 사람이 될 수는 없을 지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알기 위해 계속해서 삶을 눈에 담았다.

감능이 벌어준 하루의 시간을 남경에 보낸 그들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남경을 빠져나왔다.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걸었다. 이건은 진이 무리한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말리지 못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이틀 만에 모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모산.”

구봉九峰, 십구천十九泉, 이십육동二十六洞, 이십팔지二十八池의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모산을 마주한 이건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모든 인연의 시작이자 이 여정의 종착점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뒤숭숭 했다.

“가자.”

구봉 중 모산파가 자리했던 곳은 울강봉郁岗峰. 미리 숙지해놓았기 때문에 이건은 헤매지 않고 울강봉으로 향할 수 있었다. 빽빽한 대나무숲을 걷고 촘촘히 널린 샘과 못을 지나 마침내 울강봉의 서쪽 비탈에 도착했다.

모산파. 한 때 정파의 주축이었으며 술법으로 이름 높았던 도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십 년이란 세월의 흔적이 쌓여 거대한 무덤이 되었고 드문드문 보이는 기암괴석과 부서진 파편만이 남아 자취를 드러냈다.

“건.”

“···응?”

“혼자 있고 싶다.”

진의 부탁에 이건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래로 내려갔다.

“다른데 가면 안 된다?”

어린 아이에게 당부하듯 말하는 이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기감에 이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진은 걸음을 옮겼다.

그저 주변을 돌아보며 정처 없이 걸었다. 여전히 그의 머릿속은 먹물처럼 검었다. 모산에 오면 뭐라도 기억 날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빌어먹을.”

진은 자신이 뱉은 말에 놀라서 움찔 몸을 떨었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욕설에 당황했다.

‘내가 왜 욕을?’

곰곰히 생각하던 진은 이내 자신이 화가 났음을 깨달았다. 사람답게 죽고자 사람이었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품고 달려왔던 유일한 희망이 부질 없었음에 화가 났다.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 애썼지만 뿌옇게 낀 안개 속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각, 이각, 반 시진, 한 시진의 시간이 흘러도 여전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어쩌면 그동안 그가 흘린 수많은 무고한 피에 대한 대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가 원해서 저지른 일이 아닐 지라도 그의 손에 무수한 목숨이 사라졌으니 하늘이 그 죄값을 묻는 걸지도 몰랐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자리를 비켜줬던 이건이 돌아왔다고 여긴 진은 상심한 마음을 감추고 돌아섰다.

“왔······.”

돌아보며 말하던 자세 그대로 굳었다. 이건이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혈원강시!”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를 부른 자는 검을 뽑았다. 진은 멍하니 그자를 바라보았다.

“죽어!”

분루를 흘리며 달려오는 무인. 그녀는 구궁천검대의 부대주 이휘였다.


‘부디 뭐라도 기억해냈으면 좋겠는데.’

이건은 지나왔던 대나무숲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시진쯤 기다렸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 정도 시간이면 모산파가 있던 터를 둘러보기엔 충분하리라.

일각, 반 시진 그리고 한 시진의 시간이 흐르고 슬슬 다시 올라가 봐야겠다고 여길 때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인기척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돌아서며 본능적으로 검에 손을 가져갔지만 검을 뽑기도 전에 제압 당해 땅에 처박혔다. 신음을 흘린 이건은 목소리만 듣고 자신을 제압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대주님······.”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났다.

“어째서냐?”

이건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며 풍칙이 물었다. 하지만 이건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여기까지 와서 말하지 않을 셈이냐? 우린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산으로 올 것이라 예상했지.”

‘진이 기억을 되찾을 때까진 시간을 벌어야 해.’

이건은 머리를 굴렸다. 당황스럽고 이미 제압 당했지만 풍칙이 진이 있는 곳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희소식이었다. 지금의 진은 일반인이나 다름 없는 육체가 되었다. 풍칙을 상대로는 일초지적도 안 된다.

하지만 이건은 시간을 끌 수 없었다.

“혈원강시는 파괴될 거다. 상태를 보니 절정의 무인이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더구나. 이휘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을 거다.”

“네?”

“후, 혼마가 죽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죄책감과 복수심을 혈원강시과 함께 베어 버리면 좋겠지. 그러니 너도 그만 포기하고 말해보거라. 대체 왜 혈원강시를 데리고 도망쳤느냐?”

마기에 홀린 것도 아니요. 혈원강시의 힘을 탐한 것도 아니다. 이건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온 풍칙은 확신했다. 그랬기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은 혈원강시를 데리고 도주할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본래 혈원강시든 이건이든 만나면 바로 베어버릴 작정이었지만 이휘의 부탁을 들어 이유라도 들어보려 했다.

풍칙의 말을 들은 이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제압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쳤지만 헛된 짓이었다. 그의 실력으로 절대지경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안 됩니다! 누이를, 누이를 막아야 합니다!”

다급하게 외쳤지만 풍칙은 무심한 눈으로 이건을 내려다 보았다.

“이유부터 말하거라!”

동료를 버리거 혈원강시를 데리고 도망친 이유.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했던 그가 이휘를 두고 진과 함께 모산까지 왔던 이유.

차마 자신을 보살펴준 의매에게 조차 말하지 못한 이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이건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 혈원강시는······.”

이건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풍칙의 낯빛이 변했다.


탄성이 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아.”

진은 깨달았다. 울며 검을 쥐고 달려오는 이휘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막혀 있던 벽이 허물어졌다. 왜 모산이란 장소만이 그의 뇌리속에 박혀 있었는지 기억했다. 어째서 자신이 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떠올랐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었다.

매일마다 찾고 불렀던 이름. 가장 많이 불러본 이름이기에 가장 소중한 이의 이름이기에 남아있던 기억. 자신의 이름은 잊을지언정 매일마다 불렀던 이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이진.’

검을 들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오는 그의 누이를 보며 진은, 이휘는 소리 없는 울음을 터트렸다.


작가의말

일주일이라고 했는데 하루 늦어버렸네요.

이제 마지막편, 결락만 남았습니다. 원래 이것까지 써서 한번에 올리려 했지만... 시간이 없네요 ㅠㅠ 이글도 퇴고 없이 부랴부랴 올린 거라 좀 엉성합니다...

아, 계속 힌트는 던져드렸으니 마지막에서 놀라신 분은 없겠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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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밤의 산길은 위험하지 +2 16.07.13 521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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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서신 두 장 +2 16.06.23 687 6 3쪽
20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결희結喜 완 +5 16.04.20 736 14 12쪽
»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노애怒哀 +3 16.04.16 657 18 9쪽
18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응원應援 +7 16.04.08 830 17 11쪽
17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생명生命 +1 16.03.23 816 15 12쪽
16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결단決斷 +1 16.02.23 950 15 13쪽
15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감능甘凌 +2 16.01.28 1,078 17 9쪽
14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충돌衝突 +5 16.01.21 968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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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대화對話 +1 15.12.15 1,362 20 11쪽
7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위기危機 +3 15.12.14 1,285 1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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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의매義妹 +2 15.12.13 1,749 23 7쪽
3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월운月雲 +3 15.12.13 1,996 27 9쪽
2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소개紹介 +3 15.12.13 2,412 33 9쪽
1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서장序章 +3 15.12.13 2,717 46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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