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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광님의 서재입니다.

강시사로(殭屍死路)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중·단편

박무광
작품등록일 :
2015.08.22 04:54
최근연재일 :
2016.08.12 06:4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8,645
추천수 :
453
글자수 :
100,379

작성
15.12.16 06:09
조회
1,279
추천
22
글자
8쪽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진정眞情

DUMMY

풍칙과 구궁천검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웃고 있던 노승의 표정이 급변했다.

염려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암자에 뛰어들다시피 들어간 그는 서둘러 석불상에 다가갔다.

“아미타불, 부디······.”

천천히 석불상을 움직이던 노승은 흠칫 놀랐다. 석불상이 움직이며 통로가 살짝 드러나자 안쪽에서 비릿한 혈향이 흘러나왔다.

“아미타불.”

탄식하듯 불호를 외우고 석불상을 완전히 밀어내자 미미하던 혈향이 확 퍼졌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노승은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통로는 그리 길지 않았다. 석불상 밑이 입구고 암자의 입구 아래에 있는 공간까지만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준비한 호롱불에 불을 붙이고 내려가는 통로의 끝에 도달한 노승은 굳게 닫힌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호롱불의 빛이 어둠을 몰아내며 동공을 밝혔다.

온통 피투성이였다. 사방의 벽들도 바닥도 모두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노승은 숨을 들이켰다. 그 중심에는 진이 피칠갑을 한 체 주저앉아 있었다.

“자네!”

노승이 다가가자 그제서야 노승의 기척을 느꼈는지 진은 화들짝 놀라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오지마! 오지 말라고!”

마구잡이로 팔을 휘두르며 진은 격렬하게 거부했지만 노승은 망설이지 않고 다가갔다. 부드럽게 진의 팔을 감싸쥔 뒤 그를 품에 안았다.

진은 격렬하게 저항하며 노승의 팔을 우악스럽게 쥐었다. 혈원강시의 악력은 연약한 노승의 살갗을 무자비하게 쥐어뜯었지만 노승은 조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잘 했네. 아주 잘 견디었어.”

노승은 손자를 달래는 할아버지처럼 진을 다독였다. 팔에서부터 붉은 피가 흘러나와 가사를 적셨지만 노승은 팔을 빼내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하게 진을 안아주었다.

“이제 괜찮네, 괜찮아.”

노승은 계속해서 괜찮다고 말하며 진의 등을 두드렸다. 노승의 팔을 쥐고 있던 진의 손에서 점점 힘이 풀렸고 안정을 찾아갔다.

토굴의 다른 한쪽에는 평안한 얼굴로 색색 거리며 잠들어 있는 이건이 누워 있었다. 진의 눈에는 더 이상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지 않았다.

토굴은 방음이 되어 있어 노승이 불경을 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반대로 진이 발광하던 소음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노승의 불경에서 나온 파마의 기운은 토굴을 가득 매웠다. 강시인 진과는 상극인 기운, 더군다나 광기마저 새어나오고 있었으니 진이 미쳐 날뛰는 일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피와 살을 탐하고 싶은 욕구가 끊임 없이 이성을 흔들었다. 당장이라도 누워있던 이건의 목을 물어뜯고 그 살을 씹어먹자고 광기가 속삭였다. 몇 번이고 넘어갈 것 같은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자해까지 했다.

필사적으로 버틴 끝에 파마의 기운에 의해 광기는 깨끗하게 씻겨 나갔지만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후였다.

하지만 지금 광기를 몰아내지 못했더라면 훗날 더 큰 사단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 과연 노승이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진에겐 천운이나 다름 없었다.

얼마 뒤 깨어난 이건은 피투성이가 된 진을 보고 대경했지만 자초지종을 듣고는 안도했다. 토굴에서 나오자마자 이건은 노승을 마주보고 대례를 올렸다.

“크나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 습니다.”

옆에 있던 진도 답지 않게 존칭을 쓰며 어설프게나마 이건을 따라했다. 노승은 껄껄 웃었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일세. 일어나게들.”

노승은 둘을 일으켜 세우고 풍칙과 구궁천검대에게 주었던 똑같은 보따리를 내밀었다.

“길길이 멀테니 가져가서 허기라도 떼우게. 절밥이 입에 맞을런지는 모르겠네만 배가 고프면 먹을만 할 걸세.”

이건은 감사의 의미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보따리를 넘겨 받았다. 음식이라는 말에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한 이건은 금새 허기를 느꼈다. 노승은 시선을 돌려 이번에는 진을 마주봤다.

“내 질문 하나 함세.”

“뭡, 니까?”

“자네는 무고한 피를 흘린 적이 있는가?”

옆에 있던 이건은 움찔 몸을 떨었다. 진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있다.”

거짓을 고할 수도 있었지만 노승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차마 거짓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자네 의지로 행한 일이었는가?”

“···아니다.”

즉답하지 못하고 망설임이 섞였다. 그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피에 심취한 그 순간에는 분명 그도 즐기고 있었으니까. 끔찍한 옛 기억으로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앞으로 어찌하려 하는가?”

진을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어째서 노승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대답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진은 그가 가진 마지막 소망을 내뱉었다.

“사람답게, 죽고자 한다.”

“사람답게 죽으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자네는 사람인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은 과연, 사람인가? 더 이상 붉은 피를 흘리지도 못하고 인간의 피와 살을 탐하는 마물일 뿐인가? 고뇌하는 진의 팔을 노승이 부드럽게 쥐었다.

“자네는 사람일세.”

담담하고 고요한 노승의 말이 번민하는 진의 마음을 붙잡았다.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있겠으며 업에서 자유로운 자가 어디있겠나만은,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소관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네. 그것은 하늘이 할 일이고 땅에 사는 우린 그저 지켜볼 뿐이지. 다만 주제 넘게 한마디 하자면 자네는 내가 본 이들 중에서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야. 믿으시게. 그리고.”

노승은 이건과 진을 번갈아보고 말했다.

“어제 품었던 마음을 잊지말게나. 그럼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게야.”

공허한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노승의 눈에는 걱정과 안타까움만이 비춰졌다.

진은 아무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승의 목소리에 담긴 진정을 읽었기에 순수하게 감사하며 노승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건이 앞으로 나섰다.

“그럼 어르신, 이만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지난 밤엔 감사했습니다.”

황하에 휩쓸렸다가 토굴에 들어가고 피가 말라붙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더는 암자에 있을 수 없었다. 풍칙과 구궁천검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노승에게 계속 폐를 끼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갈길들 가시게나.”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여 작별 인사를 하고 이건과 진은 돌아섰다. 발걸음을 옮기던 중 진은 갑자기 멈추어서더니 노승을 향해 돌아봤다.

“그런데 왜 우릴 도왔지?”

의외의 질문이었음인지 노승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노승의 반문을 듣고 이건과 진은 암자를 떠났다.

노승은 둘의 정체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그러니 떠나는 그 순간까지 이건과 진 역시 노승이 누군지 묻지 않았다. 그들의 인연은 여기까지 였고 앞으로 볼 일 또한 없다는 것을 그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다만 기이하고도 귀한 하룻밤의 인연을 가슴에 품고 예를 표할 뿐.

“기이하구나, 기이해. 아미타불.”

노승은 멀어져가는 둘의 등을 보다 염불을 외우며 반장했다.

소림사小林寺의 전대방장前代方丈이자 현現 참회동주懺悔洞主인 노승은 두 아해의 앞날에 희망이 있기를 빌었다.


작가의말

선작에 비해 조회수가 높아 당황 중;;;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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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결단決斷 +1 16.02.23 949 15 13쪽
15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감능甘凌 +2 16.01.28 1,078 1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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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인연因緣 +6 15.12.17 1,280 22 8쪽
»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진정眞情 +1 15.12.16 1,280 22 8쪽
8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대화對話 +1 15.12.15 1,362 20 11쪽
7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위기危機 +3 15.12.14 1,285 17 8쪽
6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노승老僧 +1 15.12.13 1,287 20 9쪽
5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참마斬魔 +1 15.12.13 1,517 21 17쪽
4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의매義妹 +2 15.12.13 1,749 23 7쪽
3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월운月雲 +3 15.12.13 1,996 27 9쪽
2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소개紹介 +3 15.12.13 2,412 33 9쪽
1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서장序章 +3 15.12.13 2,717 46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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