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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광님의 서재입니다.

강시사로(殭屍死路)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중·단편

박무광
작품등록일 :
2015.08.22 04:54
최근연재일 :
2016.08.12 06:4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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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46
추천수 :
453
글자수 :
100,379

작성
16.03.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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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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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생명生命

DUMMY

남호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을 끌어안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빛이 번쩍이더니 뜨거운 액체가 얼굴을 적셨다. 버둥거리며 품에 묻힌 얼굴을 떼어내 고개를 들었다.

“아.”

제일 먼저 일그러진 진의 얼굴이 보였고 그 다음에는 푸줏간의 고기처럼 흑조黑爪에 꿰뚫린 진의 오른팔이, 이어서 왼쪽 옆구리에 박혀 반대편까지 튀어나온 검이 보였다.

한참을 달리다 수풀을 나오자마자 벌어진 일을 남호는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황과 충격 속에 잠겨 입만 벙긋 거렸다.

“아, 아저씨.”

힘겹게 입을 열었지만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기방패가 되어버린 오른팔 대신 왼팔로 남호의 목덜미를 잡았다.

“크흐, 흐아아!”

옆구리를 뚫고 지나간 검왕의 검강에서부터 뿜어지는 열기에 내부가 곤죽이 되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혈원강시의 육체인데도 비명을 터트리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입에서 검은 피와 내장 부스러기를 뱉어내면서도 남호를 들어올려 던져버렸다. 있는 힘껏 던졌기 때문에 다칠 지도 모르지만 이 싸움의 여파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끼어든 진으로 인해 혼마와 검왕 둘 모두 당황했지만 피비린내 나는 강호에서 그들이 보낸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기 전에 그들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남궁운백은 검을 회수하고 하후패도 흑조를 뽑아내려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다시 생사결을 내기 위해선 일단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진은 하후패가 물러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크아아!”

괴성을 지르며 남궁운백의 검이 뽑혀나가는 순간 진의 왼손이 혼마의 팔을 붙잡았다.

“이 놈이.”

혼마는 흉신악살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절대지경의 고수끼리 싸움에선 반의 반수 차이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칫 했다간 남궁운백의 검에 목이 달아날 상황. 혼마는 망설이지 않고 왼손으로 진의 오른팔을 어깻죽지부터 날려버렸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혈원강시의 육체는 그 위명이 무색하게 흑조에 잘려나갔다. 이미 복수의 대상인 남궁운백과 조우한 상황에서 다루지도 못할 도구는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혼마는 그것이 진의 노림수였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검왕과 혼마의 충돌에 끼어드는 시점에서 진은 팔 하나는 잃을 각오를 다졌다. 그 대신 잃은 것은 똑같이 갚아준다. 흑조에 고정 당한 오른팔이 잘려나가며 운신이 자유로워진 진은 자세를 바꾸며 혼마의 오른팔을 쥐고 있던 왼손에 힘을 주었다.

“크아악!”

혼마는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하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팔꿈치 아래로 허전해진 오른팔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약해졌어도 혈원강시의 악력은 피륙으로 이루어진 몸을 짓뭉개기에 충분했다.

검왕 남궁운백은 갈피를 잡지 못해 곧장 움직이지 못했다. 한 편인 줄 알았던 혈원강시와 혼마가 서로 상잔하는 모습을 보이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허나 이것이 오랜 악연의 종지부를 찍을 절호의 기회임을 그도 알았다.

남궁운백은 재차 혼마에게 쇄도했다. 거의 전투불능의 상태가 된 진을 지나쳐 혼마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다.

혼마는 마구잡이로 왼팔을 휘저어 남궁운백의 검을 쳐내며 뒷걸음질 쳤다. 혈을 점해 지혈을 할 틈조차 없어서 금새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기 위해 금지된 마공을 극성까지 끌어냈다. 하지만 그것이 패착이 됐다.

본능만 남은 짐승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혼마의 공세에 기교라곤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한 팔마저 없어서 위협적이지도 않은 마구잡이식 공격에 당할 검왕이 아니었다. 물 흐르듯 흑조를 흘려낸 검이 혼마의 목을 노렸다.

허망함과 원통함에 부릅 뜬 눈을 한 혼마의 머리가 땅을 굴렀다. 멀쩡한 정신으로 상대해도 모자랄 판에 금지된 마공을 끌어내 이성이 날아가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후우.”

짧지만 격렬했던 접전을 벌인 남궁운백은 검을 집어넣는 대신 돌아서서 갑자기 등장한 남호와 쓰러진 진을 보았다.

어느새 돌아온 남호는 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진은 힘겹게 남은 왼팔을 들어 그런 남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괜찮다. 괜찮아.”

남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을 빼들고 천천히 다가오는 남궁운백을 보았다. 한때 전장에서 서로의 목숨을 탐하던 두 존재의 눈이 마주쳤다.

검왕의 검이 진의 심장을 가리켰다. 검극에는 푸르도록 시린 검강이 맺혀 있었다.

“왜 그랬나?”

남궁운백과 진은 초면이 아니었다. 절대지경의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마교를 제외하면 당연히 남궁운백을 비롯한 절대지경의 고수들이었다.

혈원강시는 절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 존재가 아니다. 명령을 내리는 술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살육과 식인을 일삼는 마물이 사람을 구하다니.

그러나 남궁운백의 생각은 빗나갔다.

“···싶어서.”

“뭐라?”

아직 재생 되지 않은 장기들 때문에 진은 폐를 쥐어짜 대답했다.

“살리고. 싶어서.”

남궁운백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의심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사람을 살리고 싶다니. 명백한 증거가 앞에 있으니 믿지 않기도 힘들었다. 분명 진은 목숨을 걸고 남호를 구했으니까. 정말 기이한 일이다.

‘아니, 애당초 강시가 말을 하고 의지를 가진 것 자체가 기사인가?’

그가 아는 혈원강시는 이지를 상실한 체 피와 살을 탐하는 마물이었지 대화가 가능한 상대가 아니었다. 고민하는 가운데 남궁운백의 기감에 세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미약한 기운과 일류 그리고 알고 있는 기운이 하나.

남궁운백은 몸을 틀어서 진과 기척이 다가오는 방향을 모두 시야에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궁운백의 기감에 잡힌 세 명이 나타났다.

창을 등에 맨 중년 사내와 그 품에 안긴 여아. 그리고 그 뒤를 땀 범벅이 되어 쫓아오는 청년. 수로왕 감능과 남설 그리고 이건이었다.

“호야!”

“진!”

남설과 이건은 동시에 남호와 진을 발견하고 뛰쳐나갔다. 서로를 발견한 두 남매는 얼싸안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움과 서러움, 안도와 걱정이 뒤섞이고 뒤엉킨 복잡한 감정을 눈물로, 울음으로 모두 토해냈다.

처참한 진의 몸을 본 이건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너 몰골이······.”

“왔군.”

감정의 고조가 느껴지지 않는 말투에 이건은 울컥 하고 속에서 끓어올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야! 젠장할! 시간도 없는 자식이 왜 무리를 하냐고!”

불과 화산에서 풍칙과 조우했을 때만 해도 강건했던 육체가 지금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자신을 험하게 다루는 모습이 안타깝고 가련했다. 아무리 혈원강시라도 살생을 하지 않고 잘려나간 팔을 회복하는 일은 무리다.

“내가. 살렸다.”

“그래, 네가 살렸어. 그래도 그렇지 넌 남보다 네 몸부터······.”

“이런 거였구나. 살린다는 것은.”

감능과 남궁운백의 존재마저 잊어버리고 잔소리를 퍼부어줄 생각이던 이건은 새삼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처음이다. 싸우고 죽이고 죽음만을 생각하던 그가 누군가를 살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살린다는 것은. 이런 거였어.”

여전히 감정의 고조가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지만 뭔가 달랐다. 길진 않으나 절대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을 함께 보낸 이건은 그 변화를 알아챘다.

“건. 너도. 이랬나?”

무엇을 묻는지 알아들은 이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입을 열 순 없었다. 입을 열면 말보다 다른 것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랬군.”

진은 이건에서 아이들로 시선을 옮겼다. 울다 지쳤는지 아니면 그간 고되었던 시간 동안 쌓인 피로가 몰려 왔음인지 서로 부둥겨안고 기절하듯 잠든 두 남매를 보았다.

“그랬어.”

진의 입가가 희미하게 떨렸다.

“좋구나.”

누군가를 살린다는 것은.




소호를 가로지르는 배 위.

구궁천검대의 부대주를 맡고 있는 이휘李輝는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별들이 수놓은 검은 화폭을 보는 이휘의 마음은 평온한 하늘과 다르게 심란하기만 했다.

“안 자고 무얼 하느냐?”

인기척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도 이휘는 놀라지 않고 돌아서 고개를 숙였다.

“그냥 밤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풍칙은 최근 부쩍 수척해진 이휘를 보며 혀를 찼다.

“모산 때문이냐?”

“···네.”

잠깐 망설였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풍칙은 그녀에게 있어서 아버지나 다름 없는 존재였고 그녀와 이건의 뒷사정도 모두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앞에서까지 자신의 마음을 감출 필요는 없었다.

“장강에서 혈원강시를 잡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강소성으로, 높은 확률로 모산으로 가게 되겠지.”

이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풍칙은 안쓰러운 눈으로 과거 어린 동생의 손을 쥐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소녀를 보았다. 혼마의 손에 멸문한 모산파의 유일한 생존자. 그녀에게 모산은 고향인 동시에 무너진 과거가 잠든 지옥이었다.

더욱이 이대로 간다면 혼마와 조우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원수에게 적의를 가지는 자도 있지만 공포에 짓눌리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괜찮습니다.”

실상은 전혀 괜찮지 않을 텐데 이휘는 그렇게 말했다.

“정말 괜찮습니다.”

주문을 외우듯 그녀는 또 한 번 반복했다. 여전히 두렵지만 결의가 담긴 눈으로 그녀는 말했다.

“두 번이나 가족을 잃을 수는 없으니까요.”

풍칙의 두터운 손이 이휘의 어깨 위에 앉았다. 따스한 온기가 손을 타고 어깨에 흘러 그녀의 마음에 닿았다.

“대주님.”

이휘는 풍칙과 눈을 마주쳤다.

“건이를 벨 건 가요?”

“···그래야 한다면.”

조금의 망설이 있었지만 풍칙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미 예상한 대답이었음에도 이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화산에선 나도 모르게 망설이고 말았다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베어야 한다면 벨 것이야.”

“하지만 건이가 악의를 가지고 일을 벌이진 않았을 거에요.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걸 수도 있잖아요?”

“휘야.”

담담하나 확고한 의지가 실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나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이런 안일한 생각에서 균열이 벌어지고 굳건해 보이던 집단도 무너진다.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법이지.”

풍칙은 멀지 않은 과거를 떠올렸다. 정사연합과 마교가 부딪히며 있었던 일들. 한순간의 동정심과 망설임이 낳았던 수많은 참사를 기억했다.

“나는 모든 마를 멸하겠다고 맹세했다. 사연이 있든 없든 내 눈앞에 마가 놓여있다면 나는 마를 참할 것이다.”

그것이 참마도란 명호를 가진 풍칙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풍칙의 입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힘겨워 하는 이휘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나에게 나의 신념이 있듯이 너에겐 너의 신념이 있겠지. 지켜내 보거라. 너의 신념을.”

그 말을 끝으로 풍칙은 선실로 돌아갔다. 홀로 선상에 남은 이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품은 신념을 되뇌어 보았다.

“두 번 다신 가족을 잃지 않겠어.”

피는 이어지지 않았을 지라도. 두 번 다신.

“동생을 잃지 않을 거야.”

이휘는 고개를 들어 다시 밤하늘을 보았다. 그때도 밤하늘은 이렇게 맑았었는데. 이휘는 오랜만에 그리운 이름을 불러보았다. 잃어버린 동생의 이름. 두 번 다신 볼 수 없게 된 아이의 이름.

“휘야.”

본명을 버리고 동생의 이름을 짊어진 누이는 배가 도착할 때까지 선상을 떠나지 않았다.


작가의말

뒷부분은 사실 나중에 넣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왔는데 분량은 짧고... 더 쓰자니 끊기 애매하고... 에라 모르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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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계획대로 +2 16.08.12 472 7 7쪽
23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밤의 산길은 위험하지 +2 16.07.13 521 7 12쪽
22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악동은 사건을 부른다 +2 16.06.28 675 7 10쪽
21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서신 두 장 +2 16.06.23 687 6 3쪽
20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결희結喜 완 +5 16.04.20 736 14 12쪽
19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노애怒哀 +3 16.04.16 656 18 9쪽
18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응원應援 +7 16.04.08 830 17 11쪽
»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생명生命 +1 16.03.23 816 15 12쪽
16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결단決斷 +1 16.02.23 949 15 13쪽
15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감능甘凌 +2 16.01.28 1,078 17 9쪽
14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충돌衝突 +5 16.01.21 968 20 12쪽
13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광인狂人 +4 16.01.10 1,036 24 10쪽
12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혼마昏魔 +4 16.01.07 1,104 18 8쪽
11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장강長江 +2 15.12.31 1,234 17 10쪽
10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인연因緣 +6 15.12.17 1,280 22 8쪽
9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진정眞情 +1 15.12.16 1,280 22 8쪽
8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대화對話 +1 15.12.15 1,362 20 11쪽
7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위기危機 +3 15.12.14 1,285 17 8쪽
6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노승老僧 +1 15.12.13 1,287 20 9쪽
5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참마斬魔 +1 15.12.13 1,517 21 17쪽
4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의매義妹 +2 15.12.13 1,749 23 7쪽
3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월운月雲 +3 15.12.13 1,996 27 9쪽
2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소개紹介 +3 15.12.13 2,412 33 9쪽
1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서장序章 +3 15.12.13 2,717 46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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