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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광님의 서재입니다.

강시사로(殭屍死路)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중·단편

박무광
작품등록일 :
2015.08.22 04:54
최근연재일 :
2016.08.12 06:4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8,652
추천수 :
453
글자수 :
100,379

작성
16.01.28 08:17
조회
1,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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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9쪽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감능甘凌

DUMMY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안 했군. 난 무위채의 채주를 맡고 있는 강찬이오. 상황이 이 꼬라지지만 어쨌든 반갑소.”

간부급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채주 본인일 줄은 몰랐기에 이건은 조금 놀랐다.

‘너무 쉽게 믿는데?’

강찬의 뒤를 따라가던 이건은 살짝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짧은 순간 만들어낸 이유 치고는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들려줬지만 강찬의 태도는 너무 순순했다. 파고든다면 얼마든지 허점을 집어낼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의문은 곧 풀렸다. 어느새 지하로 향하는 통로의 입구까지 도달했을 때 강찬이 입을 열었다.

“거참, 총채주께 연락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또 맹에서 구궁천검대까지 보낼 줄은 몰랐소.”

“?”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몰라서 이건은 침묵했다. 불안한 기분이 점점 커졌다.

“혼마 그놈이 나타나고 곧바로 총채주께 연락을 보냈지만 바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거든. 우리도 혼마의 말을 듣고 싶진 않지만 힘이 없으니 다른 도리가 있나? 그래서 총채주가 올 때까지만 버텨보자는 심정이었는데 총채주께서 맹에도 연락을 넣었다더니 이리 든든한 지원이 올줄이야. 총채주와 참마도, 거기에 구궁천검대라면 혼마도 죽은 목숨이지.”

강찬의 말을 듣고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낭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감능이 이곳에 나타난다면 봉변을 면치 못한다.

이건은 조바심을 감추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머리를 굴렸다.

아직 감능이 나타나진 않았다. 도주를 위해선 장강수호채의 도움, 특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를 얻어야 했다. 처음에는 채주를 잡아서 인질극이라도 벌일 생각이었지만 감능이 나타나면 무리다.

‘아니지, 아니야. 아직 감능이 올지 안 올지도 몰라. 저자도 우리가 빨리 왔다고 말했으니 시간이 있을 거야.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면 돼.’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리는데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악취 때문에 생각하던 것을 멈췄다. 몇 걸음 뒤, 강찬을 따라 지하감옥의 끝에 도달했을 때 강찬과 이건은 숨을 삼켰다.

“이런 육시랄 놈······.”

한쪽에는 잔혹한 주검이 된 십여 명의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다른 쪽에는 지금까지 가져다준 음식이 썩어 악취를 풍겼고 살아남았지만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공포에 시달린 아이들의 모습은 피폐했다. 살아있는 열댓 명에 달하는 아이들은 낯선 이들의 등장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강찬은 뒤따라온 두 명의 수하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명령한 뒤 본인도 앞장 서서 아이들을 챙겼다.

‘미안하다.’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아이들을 안아든 강찬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자그마치 서른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꾸준히 납치했다. 모두 살아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른의 목숨으로 수백을 살릴 수 있다고 스스로 변명했다. 총채주가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외면했건만 실태를 보는 순간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몰살을 당하더라도 싸워야 했다. 장강수호채라는 이름이 우는 구나.’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이다. 이번 일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강찬은 미안하다는 말만 되내었다.

‘남호의 누나는 어디에 있지?’

혼마를 향해 치솟는 살의 속에서도 이건은 애써 냉정을 찾으며 아이들을 살폈다.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시체를 포함해서 여자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다행히 살아있었다.

이건은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앉아 있는 여아 앞에 가서 무릎을 구부렸다.

“얘.”

아이는 고개를 들어 이건을 보았다. 낯선이에 대한 경계심조차 보이지 않는 부서진 눈을 보자 울컥하는 감정이 또다시 치솟았다.

“이름이 남설, 맞니?”

아이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동생이 부탁해서 왔어. 남호가 네 동생 맞지? 동생에게 데려다줄게.”

이름을 언급하자 눈에 띄게 얼굴색이 변한 아이, 남설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 거리며 이건에게 다가왔다. 작고 여린 손으로 이건의 옷자락을 꾹 쥐어 떨리는 다리를 지탱했다.

“호아는, 호아는 괜찮아요? 아무데도 안 다쳤어요? 어디 아프진 않아요?”

이건은 힘겹게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아 다행이다. 다행이다.”

쥐고 있던 옷자락을 놓고 스르륵 무너진 남설은 눈물을 그렁그렁 맺으며 다행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건은 시큰해진 콧잔등을 훔치고 남설을 안아들었다.

“꺅?!”

“가자, 동생에게 데려다 줄테니.”

지하감옥을 나가기 위해 돌아선 이건은 밖으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경직됐다. 그건 이건보다 일찍 지하감옥을 나서려 했던 강찬도 마찬가지였다.

유생처럼 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 등에는 창을 메고 있는 남자가 싸늘한 눈으로 강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강찬.”

“···예, 총채주.”

‘총채주?’

“이게 무슨 꼴인지 설명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납득하지 못하면 오늘 넌 내 손에 죽는다.”

이건은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을 느꼈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수로왕水路王 수룡권협水龍拳俠 감능甘凌!’

왜, 어떻게, 벌써 등등의 상념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당황하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코앞에 닥친 상황을 타계할 방책이 필요했다.

“그것이······.”

강찬은 처음에 감능을 보고 매우 놀란듯 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혼마 하후패가 찾아온 일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말했다.

짧지 않았던 이야기가 끝나고 듣는 내내 눈을 감고 있던 감능이 눈을 떴다.

“무위채주 강찬.”

“예.”

“서른의 목숨으로 이백이 넘는 식솔들 그리고 무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해 수천 명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다는 말은 이해한다. 처음에는 서른 명도 아니고 열 명에서 시작했으니 더 쉽게 생각했겠지. 하지만, 납득은 할 수 없다.”

강찬의 고개가 숙여졌다. 무슨 말을 한들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도 알았다.

“우리가 누구지?”

“장강을 수호하는 자들입니다.”

“그걸 아는 녀석이!”

감능의 발이 강찬의 정강이를 후려 찼다. 뼈가 부러질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강찬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버텼다.

“열여섯이나 되는 어린 생명이 죽었다. 살아남은 열넷도 이 일 때문에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갈 지도 모른다.”

강찬의 다물어진 입이 파르르 떨렸다. 정강이에서 전해지는 통증보다도 비수가 되어 꽂히는 감능의 말이 더 고통스러웠다.

“훗날 자식에게 떳떳한 아비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녀석이 아이들을 희생해서 목숨을 부지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아?”

“···죄송합니다.”

“수하들의 목숨을 지키고 싶어서? 꼭두각시가 되어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아서? 수호채로 바뀌면서 했던 맹세는 뒷간에 버리고 왔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평생 수적질만 하다 살아왔으니 설령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장강을 지키는 남아로 죽겠다던 우리의 맹세는 시궁창에 갖다 버렸느냐는 말이다!”

꿀먹은 벙어리처럼 강찬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죄송하다는 말도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강찬에게 감능은 무심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넌 채주가 아니다. 그리고 장강수호채의 사람도 아니다.”

“초, 총채주!”

“열여섯이다.”

절망하는 강찬을 보는 감능의 눈빛은 단호했다.

“열여섯의 생명이, 열여섯의 가능성이 너의 판단으로 꽃 피어보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열여섯의 목숨을 잃게 한 대가를 치르고 오기 전까지 넌 장강수호채의 사람이 아니다. 알았나?”

절망에 빠져들던 강찬은 감능의 말에 담긴 뜻을 깨달았다. 총채주는 그를 완전히 내쫓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판단으로 벌어진 일에 대한 속죄와 값을 치르고 오라는 의미였다.

강찬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감능을 지나쳐 지하감옥을 벗어났다. 총채주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결심했다면 지금 당장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감능은 자신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는 강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남설을 꼭 끌어 안고 있는 이건을 보았다.

“그래, 그쪽은 구궁천검대의 일원이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속이 바짝 타들어가는 긴장 속에서 이건은 부디 감능이 풍칙과 구궁천검대를 만나지 않았기를 빌었다. 하지만 이어진 감능의 말은 이건의 기대를 무참히 부숴뜨렸다.

“배신자가 어떻게 그리고 어째서 이곳에 나타났는지 한 번 들어나보지.”

“하, 하.”

진과 함께 도주하면서 이후 맞딱뜨린 최대의 위기였다.


작가의말

으음... 아무래도 20편보다 길어질것 같네요. 대충 25편 정도? 분량을 꽉꽉 눌러담는다면 20편 내외로 끝나겠지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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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결단決斷 +1 16.02.23 950 15 13쪽
»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감능甘凌 +2 16.01.28 1,079 1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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