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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광님의 서재입니다.

강시사로(殭屍死路)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중·단편

박무광
작품등록일 :
2015.08.22 04:54
최근연재일 :
2016.08.12 06:4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8,639
추천수 :
453
글자수 :
100,379

작성
15.12.14 06:00
조회
1,284
추천
17
글자
8쪽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위기危機

DUMMY

노승이 가져다준 금창약을 바르고 한층 편해진 얼굴로 잠들어 있는 이건을 진은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고비는 넘겼다. 큰 시름을 내려놓으니 긴장이 풀렸다.

‘다행히 방향은 제대로 맞춰서 왔다.’

황하에서 기어나와 정처 없이 달리기만 했다. 혹시라도 엉뚱한 방향으로 오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노승에게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다.

‘하남에는 무사히 도착했다. 예정지였던 낙녕도 이곳에서 멀지 않다.’

이건만 정신을 차리면 된다. 하남까지 왔으니 추격도 느슨해졌으리라.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찬바람이 들어왔다. 고개를 돌린 진의 눈에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노승이 들어왔다.

“절밥이 입에 맞을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들게. 객이 왔는데 대접은 해야지.”

노승이 내민 것은 물바가지와 산나물이 함께 담긴 밥그릇이었다.

딱히 식욕을 느끼지 않고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기 때문에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밥그릇을 쥐었을 때 느껴진 따뜻한 온기에 생각이 바뀌었다.

식사. 따뜻한 맛.

“같이 먹어.”

“뭐라?”

의외의 말에 놀란 노승의 눈이 커졌다. 짧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 끝에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린 노승은 그릇들을 내려놓고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무안해진 진이 숟가락으로 애꿎은 밥그릇을 때릴 때 노승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빈손은 아니었다.

“난 일찍 배를 채운터라 같이 먹지는 못하겠고 자네가 먹는동안 앞에서 다도라도 즐기겠네. 괜찮겠지?”

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노승은 털썩 주저앉아 가져온 다기를 내려놓고 차를 따랐다. 그윽한 다향茶香이 퍼져 암자 안을 채웠다.

진이 밥그릇을 비우고 노승이 찻잔을 비우는 동안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누가 본다면 참 어색하게 느껴질 식사였다. 하지만 차를 음미하는 내내 노승의 입가에선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깨끗하게 그릇을 비우고 내려놨다. 노승은 여전히 눈을 감은 체 다향을 즐기고 있었다.

‘맛있겠······!’

진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지금 떠오른 생각은 식욕이었다. 하지만 노승이 마시고 있는 차를 보고 든 생각이 아니었다.

노승을 보고 식욕을 느꼈다.

‘설마.’

진은 물바가지에 얼굴을 비췄다. 촛불에 의지해 확인한 눈동자는 붉게 빛나고 있었다.

예상이 들어맞은 것을 확인한 진은 이를 악물었다.

화산에서 벌인 공방에서 튀어나왔던 광기. 지금까지 괜찮아서 없어진 줄 알았건만 착각이었다. 이건의 목숨이 경각에 다랐을 때는 광기가 나설 자리가 없었다. 모든 신경을 이건에게 쏟아부었으니까. 이건을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광기마저 짓눌렀다.

하지만 고비를 넘기고 긴장이 풀리자 해소되지 않은 광기가 다시 스며나왔다.

‘위험하다.’

한 번 시작된 광기는 의지로 제어할 수 없다. 억누르는 일은 가능하지만 그뿐이다. 결국 억누르고 있던 광기는 폭발하고 그렇게 된다면.

‘또다시 살육에 미친 괴물이 되어버린다.’

달칵,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노승의 예리한 음성이 진의 귓가에 파고 들었다.

“손님이 오셨군.”

‘손님?’

광기가 기감마저 흐렸음인지 진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하필이면 이런 때, 이런 상황에 누군가 찾아왔다는 말에 이를 악물었다. 과연 누가 어둑한 심야에 외로이 산중을 홀로 지키고 있는 절간을 찾아올 것인가? 답은 뻔했다.

‘추격대인가.’

추측이지만 확신에 가까웠다. 느슨해지기는커녕 바짝 쫓아온 것이 분명했다.

‘똑같은 실수를 또.’

두 손이, 두 팔이, 온 몸이 떨려왔다. 이건을 데리고 도망칠 생각이 떠오르기 무섭게 가라앉았다. 지금 이건을 데리고 나간다면 분명 머지 않아 이성을 잃고 만다. 자신은 사람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도망치던 와중에 이건을 해치지 않을 거라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었다.

“저 아해를 안고 따라오게.”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노승이 진의 어깨를 짚었다. 하지만 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서!”

호통 소리에 놀란 진의 몸이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이건을 안아들고 노승을 따라간 곳은 암자 안에 있는 거대한 불상의 뒤편이었다.

진이 질문하기도 전에 노승은 자기 키의 두 배는 되는 불상을 잡더니 옆으로 밀었다. 돌을 통째로 깎아서 만든 불상은 족히 수백 근은 넘는 무게를 자랑한다. 그런 불상이 노승의 손길에 밀려났다. 아무리 상식을 잊어버린 진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놀라운 점은 불상 밑에 웬 통로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신 정체가 뭐야?”

이쯤되자 진도 노승은 평범한 승려가 아님을 깨달았지만 노승은 당장 대답할 마음이 없었다.

“일단은 이리로 들어가게. 그리고 참게. 명심하게.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해.”

거듭 강조하고 노승은 진을 통로로 밀어넣고 다시 불상을 제자리로 옮겼다. 감쪽 같이 두 사람을 숨긴 노승은 이건의 이부자리를 치우고 바가지에 있던 물을 단숨에 비웠다. 이로서 다른 사람이 머물러 있던 흔적은 없다. 이제 밥은 자신이 먹었고 찻잔도 자신이 마시던 것이다.

품에서 목탁을 꺼내든 노승은 조용히 염불을 외우며 목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노승이 말한 손님이 암자에 도착했다.

“혹시 안에 누가 있으시오?”

건장한 사내의 목소리가 문너머로 들려왔다. 진작부터 기척을 느끼고 있었지만 노승은 모르는 척 문을 열었다.

“밤이 깊었는데 뉘시오?”

달빛이 내리쬐는 그곳에는 먼지투성이가 되어 미첨도를 등에 맨 사내가 형형한 눈으로 서 있었다.

“이런 곳에 암자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본인은 풍칙이라하고 무림에선 참마도라는 과분한 명호로 불리고 있습니다.”

풍칙이 자기를 소개하고 포권을 쥐었다. 노승도 한 손으로 합장하며 화답했다.

“아미타불. 본승은 혼자 부처를 모시며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늙은이외다. 속세의 이름은 버린지 오래이니 그저 노승이라고만 부르시오. 그런데 이런 야밤에 첩첩산중에는 어인 일로 오셨소?”

한 순간 눈에서 이채를 발한 풍칙은 눈빛을 감추고 입을 열었다.

“악인들을 쫓고 있는 중입니다. 사특한 마교의 잔당과 협조하고 있는 배신자인데 흔적이 이곳까지 이어져 있어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소?”

노승의 반응은 태연했다. 풍칙의 눈이 번뜩였다. 노승의 태연한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마교가 뭔지도 모르는 은거한 노인이거나, 연기를 하고 있거나. 내심 이곳에 이건과 진이 숨어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던 풍칙은 미끼를 던졌다.

“수하들이 이곳으로 오는 중인데 숫자는 본인까지 아홉 명입니다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기서 하룻밤을 묶어도 되겠습니까? 폐는 끼치지 않고 잠만 자고 새벽 일찍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구려. 거기 서 있지만 말고 들어오시오. 산의 밤은 생각보다 많이 춥소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노승이 수락해버리자 풍칙은 오히려 당황하고 말았다. 했던 말을 삼킬 수도 없으니 겉으로는 감사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풍칙이 암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쳐졌던 구궁천검대가 속속히 도착했다. 암자에서 하루를 묵고 간다는 풍칙의 말에 모두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루 전 황하에서 흔적을 발견하고 쉬지 않고 흔적을 따라 경공을 펼친 그들은 모두 실신할 정도로 지쳐있었다.

그들이 쫓고 있던 이건과 진이 암자의 불상 밑에 숨어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구궁천검대는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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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계획대로 +2 16.08.12 471 7 7쪽
23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밤의 산길은 위험하지 +2 16.07.13 521 7 12쪽
22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악동은 사건을 부른다 +2 16.06.28 674 7 10쪽
21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서신 두 장 +2 16.06.23 687 6 3쪽
20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결희結喜 완 +5 16.04.20 736 14 12쪽
19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노애怒哀 +3 16.04.16 656 18 9쪽
18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응원應援 +7 16.04.08 829 17 11쪽
17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생명生命 +1 16.03.23 815 15 12쪽
16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결단決斷 +1 16.02.23 949 15 13쪽
15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감능甘凌 +2 16.01.28 1,078 17 9쪽
14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충돌衝突 +5 16.01.21 968 20 12쪽
13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광인狂人 +4 16.01.10 1,036 24 10쪽
12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혼마昏魔 +4 16.01.07 1,104 18 8쪽
11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장강長江 +2 15.12.31 1,233 17 10쪽
10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인연因緣 +6 15.12.17 1,280 22 8쪽
9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진정眞情 +1 15.12.16 1,279 22 8쪽
8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대화對話 +1 15.12.15 1,362 20 11쪽
»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위기危機 +3 15.12.14 1,285 17 8쪽
6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노승老僧 +1 15.12.13 1,287 20 9쪽
5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참마斬魔 +1 15.12.13 1,517 21 17쪽
4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의매義妹 +2 15.12.13 1,749 23 7쪽
3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월운月雲 +3 15.12.13 1,995 27 9쪽
2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소개紹介 +3 15.12.13 2,412 33 9쪽
1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서장序章 +3 15.12.13 2,717 46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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