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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광님의 서재입니다.

강시사로(殭屍死路)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중·단편

박무광
작품등록일 :
2015.08.22 04:54
최근연재일 :
2016.08.12 06:4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8,667
추천수 :
453
글자수 :
100,379

작성
15.12.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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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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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노승老僧

DUMMY

그믐달이 뜬 밤하늘 아래 모닥불이 잔가지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온기를 퍼뜨렸다.

하지만 모두에게 온기가 닿진 못했는지 이건은 축 늘어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혈색 하나 없는 파리한 안색과 비오듯 쏟아지는 땀. 상식을 잊어버린 진이 보아도 정상이 아니었다. 아픈 정도를 넘어서 심각했다.

옆에서 모닥불을 쑤시던 진은 이건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차가운 그의 손이 열기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길 바랐다.

‘위험하다.’

진의 시선이 이건의 몸을 향했다. 늑골과 오른팔이 부러져 임시방편으로 부목을 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임시방편이었다. 중상을 입은 체 절벽에서 떨어지고 황하를 떠내려왔다. 살아있는게 기적인 몸을 이끌고 닷새를 이동했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으니 지금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의원을 찾아야 하지만 얼마나 가야 마을이 나올지도 몰랐다.

‘이 방향이 맞긴 한걸까?’

장담할 수 없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업고 뛰어갈까?’

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상처가 벌어져서 악화될 텐데 무리수를 둘 수는 없었다. 단거리라면 모를까 장거리는 무리였다.

‘모르겠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답을 내리지 못했다. 아니, 내릴 수 없었다.

명령하는 사람이 없다. 이끌어주는 사람도 없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건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단 한 번도 그리한 적이 없으니까.

‘멍청이.’

무력감이 심신을 짓눌렀다. 분한 마음에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사람을 죽이는 일 외에 한 번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 적이 없었으니까, 라는 변명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고 또 생각하지만 모르겠다는 대답밖에 떠올리지 못해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진의 기감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

벌떡 일어난 진은 이건을 안아들고 인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달려갔다.

무슨 생각으로 인기척을 쫓았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막연하게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달렸다. 화살도 추월할 정도로 빠르게 내달리던 진의 눈에 마침내 인기척의 주인이 들어왔을 때 발을 굴렸다.

땅이 울릴 정도로 강한 충격을 일으키며 몸을 멈춰 세웠다. 그러면서도 충격이 이건의 몸에 전달되지 않게 조절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인기척의 주인은 노승老僧이었다. 산책이라도 하던 중이었는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던 노승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과 안겨 있는 이건을 보았다. 진이 달려온 길은 마치 도랑처럼 깊게 파여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진이 만들어낸 광경에 당연히 겁에 질려있겠지만 진은 배려를 해줄 상황도 아니었고 그런 점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이건을 살여야 한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리를 지배했다.

진은 노승 앞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노승이 다른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무릎을 꿇었다.

“도와줘.”

“···아미타불.”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려는지 불호를 외우며 노승은 눈을 감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절을 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렸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에 비해 노승은 놀랍도록 담담했다.

“이 녀석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데 내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제발 도와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다. 아니면 의원이든 누구든 아무라도 불러와줘.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겠다.”

염주를 굴리며 잠시 침묵하던 노승이 눈을 떴다. 이건을 향한 걱정과 자괴감으로 인한 광기에 반쯤 붉어진 진의 눈동자를 마주봤다.

“아미타불. 참으로 기이한지고.”

진은 속이 타들어간다는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했다. 계속 불호만 외우는 노승에게 재촉하려는 찰나, 노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따라오시게.”

노승이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하자 진도 황급히 일어나 뒤를 따라갔다. 초조한 속내는 점점 까맣게 변해갔지만 노승의 걸음은 여유롭기 그지 없었다. 노승을 따라가 도착한 곳은 불상을 모시고 있는 암자였다. 겉보기와 다르게 암자의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작은 함을 들고 온 노승이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에 눕히게.”

진은 노승 앞에 이건을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이건의 몸을 살피고 맥을 짚은 노승은 혀를 찼다.

“허, 어찌 이런 몸으로······.”

시선을 들어 진과 눈을 마주친 노승은 또 한 번 혀를 찼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미타불. 참으로 기이하도다. 기이해.”

무엇이 기이하다는 말인지 궁금했지만 그보다 이건의 상태가 더 중요했다. 참지 못하고 몸을 들썩이는 그를 노승은 조용히 타일렀다.

“가만히 기다리게.”

노승이 들고온 함을 열자 침구와 기름종이로 싼 단약으로 보이는 것들이 여러개가 보였다. 노승은 단약을 하나 짚어들어 이건의 입안에 넣어주고 침구를 꺼내 조심스럽게 침을 놓기 시작했다. 이각 정도 되는 시간이 흘렀을 때 노승은 마지막 침을 놓고 한숨을 터트렸다. 그도 긴장했던건지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침을 놓고 기혈을 바로 잡는 약을 먹였으니 일단 급한 불은 껐네. 푹 자고 나면 조금 괜찮아질게야. 열도 열이지만 외상도 가볍지 않은데 이건 의원에게 보여야 할 것이네. 금창약도 어딘가 있을테니 가져다주겠네.”

“고맙······.”

“그런데.”

노승은 진의 말을 잘랐다.

“자네들은 정체가 뭔가? 정체가 뭐길래 이 밤중에 산속을 헤매고 한 명은 목숨이 위험했을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고 외상까지 입고 있는가?”

진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거짓말을 할 재주도 없었다. 무엇보다 속내를 꿰뚫어 보는듯한 노승의 눈동자를 마주하기 힘들었다.

“아미타불.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하지 않아도 되네. 밤이 늦었으니 이부자리를 마련해주겠네. 한숨 푹 자고 내일 가게나. 이 아해도 이 상태로 길을 가는 것은 무리일테니. 금창약은 지금 가져다줌세.”

노승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혈색이 돌아온 이건의 얼굴을 보고 진은 마음을 놓았다.

“다행이다.”

손을 뻗어 이건의 손을 쥐었다. 이건은 듣지 못할 한마디 말을 다시 내뱉었다.

“다행이다.”

온통 이건에게 신경이 쏠려있던 진은 미처 뒤늦게 닫히는 문소리를 듣지 못했다. 열려있던 틈 사이로 다행이라고 말한 그의 목소리를 노승이 듣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풍칙을 필두로 구궁천검대는 황하의 줄기를 따라 열심히 주변을 수색했다. 황하를 따라온지도 오늘로 나흘째.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그들은 점점 지쳐갔지만 부대주라고 할 수 있는 이휘와 풍칙은 첫날과 비교해 조금도 눈빛이 바뀌지 않았다.

“대주님.”

구궁천검대원 중 하나가 풍칙을 불렀다.

“더 이상의 수색은 무의미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뭍으로 나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은······.”

이휘의 눈치를 본 대원은 뒷말을 흐렸지만 모두가 이어질 말을 알고 있었다. 이건도 혈원강시도 물고기밥이 되어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바다까지 흘러가고 있으리라.

“아니.”

이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올 때까지 계속 찾는다.”

“하지만.”

혈원강시도 문제지만 동생을 잃게 생긴 이휘의 마음을 대원들도 모르지 않았다. 구궁천검대는 마교에 의해 부모님과 형제자매, 친인척까지 모두 잃어버린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휘가 이건을 얼마나 각별히 여기는지 알기 때문에 동료들도 하다못해 이건만큼은 찾고 싶었지만 현실을 볼 때 가능성이 없었다.

“뭍으로 나온 흔적을 찾지 못한다면 시체라도 건져서 돌아간다.”

풍칙이 나서자 대원들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다시 수색을 재개했다. 그리고 다시 한시진이란 시간이 흘렀다.

“대주님! 찾았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이휘와 풍칙은 한걸음에 내달려 흔적을 발견한 대원에게 다가갔다.

대원은 말하는 대신 손가락을 가리켰고 손가락을 쫓아 시선을 움직인 이휘와 풍칙은 작은 혈흔을 발견했다. 그리고 혈흔을 시작으로 꺾여져 있는 풀들도 발견했다.

“가자.”

풍칙이 먼저 걸음을 옮겼고 구궁천검대가 움직였다.

‘두 번 다시.’

이휘는 두 눈을 불태우며 으스러질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었다.

‘가족을 잃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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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계획대로 +2 16.08.12 473 7 7쪽
23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밤의 산길은 위험하지 +2 16.07.13 521 7 12쪽
22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악동은 사건을 부른다 +2 16.06.28 676 7 10쪽
21 2부 악동협행惡童俠幸 서신 두 장 +2 16.06.23 687 6 3쪽
20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결희結喜 완 +5 16.04.20 737 14 12쪽
19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노애怒哀 +3 16.04.16 658 18 9쪽
18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응원應援 +7 16.04.08 831 17 11쪽
17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생명生命 +1 16.03.23 817 15 12쪽
16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결단決斷 +1 16.02.23 950 15 13쪽
15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감능甘凌 +2 16.01.28 1,080 17 9쪽
14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충돌衝突 +5 16.01.21 970 20 12쪽
13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광인狂人 +4 16.01.10 1,036 24 10쪽
12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혼마昏魔 +4 16.01.07 1,105 18 8쪽
11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장강長江 +2 15.12.31 1,235 17 10쪽
10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인연因緣 +6 15.12.17 1,281 22 8쪽
9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진정眞情 +1 15.12.16 1,280 22 8쪽
8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대화對話 +1 15.12.15 1,362 20 11쪽
7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위기危機 +3 15.12.14 1,286 17 8쪽
»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노승老僧 +1 15.12.13 1,288 20 9쪽
5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참마斬魔 +1 15.12.13 1,517 21 17쪽
4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의매義妹 +2 15.12.13 1,750 23 7쪽
3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월운月雲 +3 15.12.13 1,997 27 9쪽
2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소개紹介 +3 15.12.13 2,413 33 9쪽
1 1부 강시사로殭屍死路 서장序章 +3 15.12.13 2,718 46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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